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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 - ‘명색이 페미니스트’ 마리 루티의 신랄하고 유쾌한 젠더 정신분석
마리 루티 지음, 정소망 옮김 / 앨피 / 2018년 12월
평점 :
아점으로 브런치 느낌나게 해먹어야지~ 이러면서 저녁늦게 마트갔다가 그냥 다 너무 비싼 것 같아서 유기농 우유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우유 사왔다. 유기농 우유 디게 고소하던데. 장보는 동안 핸드폰에서 장애인 연대 ‘불법시위’ 한다고 문자가 계속 울려서 어이가 없었다. 혐오는 이제 완전한 정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뭐 한국이 안그런 적이 있기냐 한가만은. 사람들은 다 견디고 사나보다. 아직은 괜찮은가보다. 나는 괜찮다. 돈이야 번만큼 쓰면 되고, 물가가 너무 오른다 싶으면 유일한 소비인 책 소비를 줄이면 된다. 집 앞에 도서관 있다.
마리 루티 다시 꼼꼼히 읽는 중인데, 역시 천재다. 푸코로 분석해서 라캉으로 해결책 찾아주실 요량인 듯. 푸코도 허리 휘는 데 라캉도 읽어야하는 것인가😅?? 그럴 필요가 없다. 루티느님이 답을 찾아주실 거니까. 마리 루티는 밀키트다. 내가 할 것은 이 잘 다듬어진 재료들로 내 밥상을 차려서 맛있게 먹는 것이다.
젠더 강박 장애, 내 언어로 풀면 ‘성역할 수행 강박’과 신자유주의적 에토스, 역시 내 언어로 풀면 ‘과도한 사회화’
를 하며 사느라 나 자신이 어떤 나쁜 감정들을 목졸라 없애버리려고 했는지… 그게 어떤 식으로 내 몸과 마음을 망가뜨려 왔는지… 오늘의 노동을 하면서 틈틈이 생각해 볼거다. 나는 내가 병든 사회에 무리하게 적응하려 했기 때문에 아팠다고 생각하는 데…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과제(잘ㅋ안됨ㅋ)인데… 이제 적응 안해도 되게 사회생활(?)을 셋팅해 놓고도 종종 나쁜 감정들과 싸우듯 씨근덕 대는 것은, 이것은. 조금은 다른 시각과 언어를 탑재해서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태인 것 아닌가하고 곰곰.
어떤 불안들은 분명 사회가 각본화/제도화 시킨 저열한 가치관에 적응하느라 무리해서 생긴 게 맞다. 그런데 이성애 가부장제, 신자유주의와 상관없이 “(8) 삶이란 본디 연약하고 불안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 자신 안의 허세와 기만이 나를 더 부정적인 상태로 몰아 넣었던 것도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갑자기 영화 <콜미 바이 유어네임>에서 아빠 교수님이 “우린 너무 빨리 치료되고 싶어서 우리를 자신을 망쳐”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비단 술, 담배, 유튜브…(;;;)뿐만 아니라 나쁜 관계들 역시. 너무 쉽게. 그러니까 어떤 나쁜 감정들bad feelings은 당연히. 당연스럽게 느끼고 감당할 줄 알아야 하는 ‘실존적인 감정’인데 그걸 느끼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힘들었던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 더 톺아볼 시간을 내어야하겠다.
연말에 타종식 생방 보고 동생들을 집에 보내면서 나는 왠지 울고 싶었고 울 것 같았다. (떨어지기 싫어서) 나 외롭나? 라고 생각했다가 이건 정당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었다. 헤어지는 게 아쉬운 건 당연한 거야. 오늘이 너무 좋았으니까. 이제 나는 또 나 자신으로 복구되어야함. 이러면서 잠들었다.
외로움. 어떤 외로움은 분명히 그 뒤에 타인과의 비교하는 감정들이 깔려있다. 다 되는 데, 나만 안되나? 다 있는 데 나만 없는 건가? 할 때 느끼는 소외감과 비슷하다. “(28) 결여-갈망-욕망” 루티는 이것에 대해서 도식화한다. 결여. 갈망. 욕망.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 각본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결여’의 근거를 제대로 보면된다. 그러니까. 나는 ‘결여’된 존재인가? 사회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 내가 나를 보면. 아니다. 뭘 하냐면. 나는 나를 나의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병든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물론 나는 없는 것이 많다. 그러나 없기에 있게된 것도 많다. 이를테면 사람들을 안만나면 나랑 이렇게 잘 놀 수 있…. 안정적인 월급을 버리면 일하다 비는 시간에 이런 글을 막 써도 되는 거고… 책 읽고 싶은데 오늘처럼 좀 바쁠 수도 있는 날엔 일찍 일어나면 된다. (후훗-)
항상 집에 누군가가 있었다. 항상 곁에 누군가가 있었고. 그날 동생들과 헤어지면서 느낀 찰나의 울먹임은 내가 이런 기분(헤어지기 싫은 기분)을 느끼는 걸 싫어했기(사실은 어색해 했기)에 오랜기간 관계 중독이다시피 했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게 했다. 분리되고 싶지 않음. 어른이 되기 싫음. 일종의 퇴행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걸까. 지금 나는 좋다. 혼자다. 너무 좋다. 혼자라서.
나는 기본 소득의 이상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시간 부자, 여유 부자였으면 좋겠다. 물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이 아니라 집에 머물러야 했을 때 남자들이 육아하기 싫어서 차라리 일터로 보내달라고 했던 혹실드의 연구를 알고 있다. 가사노동 및 돌봄에 대한 가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테지만, 식당 음식값 올라가는 속도를 보니ㅋㅋㅋ (…김밥 4500원 너무함…) 신자유주의가 먼저 혹독한 재평가를 해주실 듯. 그런데 정말 다들 괜찮은가? 갸웃갸웃.
지난 대선은 기본소득 찬반 대결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사생활 혐오대결이었다. 난 그게 싫었고. 일이 이렇게(?)되어 버린데에는 명백히 민주당이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개혁을 더 개혁적으로 단행하지 않은 거야. 왜. 여튼 연결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사회가 요구하는 혼인과 육아를 하지 않은 탓으로 나를 돌아볼 시간이 정말 많이 생기고 보니... 기본소득이 되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나처럼 한가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떤 감정은 좀 느껴야 하는 거구나… 하는 걸 알게된다면, 조금 더 복잡하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자신을 느끼고, 쉬운 이분법에 자기 자신을 가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어렵긴 한 것 같다. 수련중입니당.)
“(24) 누가 넌 ‘여자니까…’라고 말할 때 마다 내가 여자인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인격체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귀찮아서 쉬운 문화적 클리셰에 의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움직이는 캐리커처로 단순화 되는 느낌이었다.”
이 문장이 좋았다. 나는 여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은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동등한 인간임을 열심히 해명하려고 어쩌면 더 무리해가며 노력해왔는 데, 사회는 여남은 같은 인간이 절대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그것만 알려줬음 좋았을 텐데 발달된 인터넷 문명의 수혜로(?) 남성들 대다수가 포르노를 보며 그걸로 여자를 배운고로 여자를 쑤셔박을 구멍으로 여긴다는 것 까지도 알아버림. (여기서 나는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은 억울한 남자들이 있다면… 네 알겠고요. 그게 여자들이 공적 생활에 참여하게 되면서 느끼는 그 억울함이랑 아주 미량 소량 비슷할 겁니다. 나는 다른 남자라는 것을 여자들에게 열심히 해명하세염~) 뭐 경험적 지식에 의거하면 가진 자, 덜 가진 자 할 거 없이 진보, 보수 할 거 없이 배운 놈, 덜 배운놈 할 거 없이 다 그랬다. 인간 전에 여자. (젊을 때는 끈적이는 시선을 덜 받으려면, 빨리 유부녀가 되어서 임자 있는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이드니 아직 한창인 것 같은 데? 폐기처분하려 든다 쩝.) 그래서, 좋다. 여자. 나 여자다. 근데 여자 그거 니가 생각하는 거거 아니야! 여자 목소리 좀 들어라!이랬더니 갑자기 또 휴머니즘 가지고와. 남녀싸우지 말아요,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 으휴 답답해. 으잉 답답이들.
그런데 나는 책에서 이 단어를 만났다. *쉬운 문화적 클리셰.* 그렇다. 이게 싫었던 거구나.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게 싫었던 거였어. 대체로 남성성을 이상화하고 여성성을 평가절하 하는 (성별임금격차로 현실화되어있는) 이성애가부장제에서 쉬운 문화적 클리셰로 반대쪽 성별을 고정시키고 쉽게 퉁쳐 생각하려고 하는 쪽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쪽. 가진쪽 성별의 더 가진 자들이고 권력을 누려온 자들이다. 그러니까 아.저.씨. 거기에 그들만의 계급경쟁에서 탈락 되었다는 열등감이 추가되면. 개.저.씨. 한국사회에서는 나이도 권력이라 나이가 들면 그래도 좀 힘이 생긴다. 아직 그 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채로 미리 부터 열등감이 추가된 한.남.충. 우리는 남자들이 김치녀라고 하던대로 그들의 특성에 맞는 이름을 붙여줬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참 싫어라해. 내가 이런말을 쓰기 시작하자... 주변의 남자들이 두 명빼고 다 사라지고 말았다!! ㅋㅋㅋ 내가 패는 것은 개저씨, 한남충으로 기표화되는 한.남.성.인데, 그 한남성 업데이트좀 하라고 구구절절 뭐가 싫다 뭐가 싫다 말을 해줘도, 그걸 성찰의 기회로 안쓰고 또 다 자신을 공격하는 거라고 여기는 데에는…. 무지와 게으름… 귀찮음과 그렇게 안해도 잘 삼… 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올해부터 좀 다정해지기로 했으니까.* 쉬운 문화적 클리셰에 나라는 인간을 가두지 말아줄래?* 라고 지적인 냄세 풀풀 풍기며 말하고 싶은 데... 왜 그렇게 말해봤자 하등 쓸데 없는 짓인지 이 책이 알려주고 있다. ㅋㅋㅋㅋㅋ 마리 루티 천재! 여하튼 그냥 이딴 식(?)으로 계속 쓸 거라는 소리.
나는 역해도 꾹 참고 내 글을 열심히 읽으면서 자기를 성찰할 남성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불편한 감정들을 느껴보세요~ 그것이 왜 불편한가?ㅋㅋㅋㅋ 하기 싫으면 말아요 ㅋㅋㅋㅋ 사회는 이성애 가부장제 중심이라 자기성찰 안해도 능력만 좋으면 받아줄 여자들 천지 삐까리여~~~ㅋㅋㅋ 근데 굳이 보시겠다면 그건 내가 글을 너무 재밌게 잘써서 그런거라고 생각할게요 ㅋㅋㅋㅋ
돌아가서. 이제 기본소득은 꿈 꾸기 어려워진 한국에서 그냥 셀프 노동소득, 시간 없기 싫어서 대신 *결혼 안함*사실은 *결혼 못함*에 선택 당한 나는. 사람들이 시간 부자, 여유 부자가 되면 좀 느긋해져서 자기 성찰도 하고, 잘못하면 사과도 하고… 막 그럴거라고 생각했는 데… ‘인격체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좀 들었다. 왜냐면 작년의 내가 좀 그러했다. 내가 원하던 조건을 내가 스스로 만들었는 데도 가끔은 두리번 거리면서 남들과 비교할 거리들을 찾아서 나를 학대하는 느낌. 올해는 좀 달라져야지.
이 책은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수월하게 취하는 행동/생각/태도(이분법, 집단적 환상, 자기계발…)들이 사실은 더 나쁜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기제임을 보여준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체화되어 있는 한국사회는 분함과 억울함을 자기계발(성공)과 진영논리, 약자혐오 세 가지로 해결하자고 온 사회가 합의 한 것 같다. 다들 좀 그만하면 안될까? 다른 이야기들 좀 하면 안되는가요? 우리는 너무 빨리 치유되고 싶어서 자신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은 더 복잡하게 어렵게.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지. 나쁜 감정들은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전에 일단 좀 느껴보기도 해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왜 나쁜 건지. 사회생활 하느라 소중한 내 감정을 너무 단세포처럼만 쓰게 만들고 만 것은 아닌지.
너는 어떠냐고? 글에서 느껴지시겠지만 나는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그래도 잘 하려고 노력 중이다. 시간내고 공들여서 내 억울함에 내 우울함에 내 분노에 내 괴로움에 ‘잠겨’ 있는다. 그것들은 역하지만 그것들은 끝난다. 겪었어야 할 것들이다. 느끼지 않으려 했기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너 좀 외로워 보인다고?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옆에 사람이 없고, 나 혼자 있으니까 잠기는 것이 가능해진 거다.
내 경우 애초에 자아가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부러 외로운 상황 속에 혼자 두지 않았 않았더라면,
이런 감정들을 느껴야 한다는 통찰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4) 그 정신분석가는 내가 독신이라는 점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독신으로 남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라고 추정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관계들을 나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실패로 추정했다. 내가 사실은 장기적인 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고, 여태까지 관찰해보았더니 결혼한 사람들이 나보다 만족감이 떨어지더라고 말했다면 그의 표정이 어땠을까. 아마도 내가 과거의 아픔을 회피하려고 방어적이 됐으며, 취약한 진짜 자아를 보호하고자 가짜 자아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쌓았다고 했을 것이다. … 오래가는 친밀한 관계들이 가져다주는 실망을 고려했을 때, *우리 모두가 그것을 원해야 한다는 것은 특이한 관념*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커플을 이루면 근본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완성될 것이라고 희망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관계는 우리를 침식하고 고갈시키고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이것이 내 경력과 삶의 다른 가치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보상’인가. 차라리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한 결여와 소외감, 불완전함이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조건임을 인정했다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행복한 결혼에 딴지를 걸거나, 독신 생활이 더 위엄있고 영감을 주며 행복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무리 불행해도 결혼이 미혼보다 낫다는 생각에 의문을 던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