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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SE (2disc)
이창동 감독, 김여진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스포일러주의 / 한남용어주의 *5ㆍ18 이니까 관련 영화 안본거 한편 땡겨주자! 설경구팬 불한당원 꼬셔서 봤다. 패러디 된 기찻길 장면만 알았지, 이런 영화일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대충 영호가 계엄군인 것만 알았음) 80년 5ㆍ18과 영화 속에서의 현재 1999년 사이에는 대략 20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후 명작의 반열에 오른지 20년이 지나 지금은 2021년이다. 난 지난 20년 동안 이 영화를 안봤길 너무 다행이다. ‘5ㆍ18을 다룬 몇 안되는 영화 중 가해자의 삶을 다룬 최초의 영화!’라는 타이틀로,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 격랑의 한국 현대사 속 망가져가는 인간의 선택! 혹은 설경구 연기 죽인다~!! 뭐 이런류의 평들만 읽었으면 진짜 속터져 죽었음. 영화보고 너무 불편하고 이해안되고 빡쳐서 100자평 뒤졌다. “남성끼리 피해자 가해자 다 해먹고 화풀이는 여성한테 전부해대는 쓰레기 같은 사회. 그 사회를 담은 영화에 감정이입해 눈물 흘리는 수많은 박하사탕의 주인공들. - ID : 채고, 별은 0.5, 왓챠피디아” 내말이여, 제말이요, 예!! 제가 제가 이런 평을 너무 읽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는 ‘(자기연민으로 꽉찬)나쁜 한국 남자의 일생’ 이라는 부제달고 보는 게 차라리 맞고, 감독이 거장이라고 하니까 일부러 그렇게 그린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 여혐이 심각해서 얼탱이가 없었다. 영호가 해대는 여혐은 혐오의 표본이고, 그걸 비틀어서 보여줬다고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영화가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이 불쾌했고, 그것까지도 한국사회였으니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좀 다른 의미로 한번쯤 보아야하는(한 번 이상 볼필요는 없을 듯)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박하사탕의 이야기는 역순 구성을 취하지만 정방향으로 돌리면 이렇다. ‘순수청년 - 계엄군 - 고문경찰 - 사장님 - IMF - 도산 / 이혼 / 자살’ 나름 그가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가 영화적 반전이라면 반전일 테지만, 첫사랑 순임(문소리역)을 순수한 시절, 돌아가고 싶은, 박하사탕!!으로 그린 것부터가 너무 한(국)남(성)스럽다. 성녀/창녀(혹은 숭배와 혐오) 이분법이 고전적인 여성혐오의 시작인데, 어떤 순수(박하사탕)가 깨지고 짓밟혔을 때 그렇게까지 쉽게(?) 흑화(!!)해버리는 놀라운(!!!) 비약적 합리화와 순수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 코웃음이 쳐졌다. 가장 깨끗할 것이 아니면 쓰레기가 되겠어!! 라니?? 야, 넌 중간없어? 물론 우리는 순간순간 양자택일이란 선택지 앞에 서긴 하지만, 인간은 반성이라는 걸 하거든. 영호는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걍 자기반성을 졸라 할 줄 모르는 인간에 불과하고 그 전형적임이 전형적으로 기능해온 한국사회 진짜 참 엉망이었구나 싶어서 새삼 없던 인류애 다시 한번 식었다. 그래, 한 사회의 질이란 그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총합이겠지.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아왔던 거지ㅋㅋㅋ 자, 여러분 이제 우리는 평범한(?)인간으로 호명된 ‘김영호’를 다시 봅시다. 그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한국남자는 성매매 그렇게 많이 자주 하나요?) 성급하게 일반화 하면 안되죠. 하지만 아마도 영화는 평범한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을 (감독의 의도가 다분한) 그는 유별나게 자기반성을 할줄 모르는 이분법의 소유자로서, 언제나 그는 그를 연민(?)하는 여성들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면서 그를 욕하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며 이해해주고 싶어지셨나요? 노노~ 그럴 필요 전혀 없어요. 이해와 위로라는 노동을 한쪽 성의 역할로 고정시켜버리면 그들은 자기가 자신에게 느끼는 연민이 진짜 타당한 연민인줄로 압니다. 불쌍히 여겨주면 진짜 지가 불쌍한 줄 알아요. 정신차리라고 불쌍히 여겨준건데 정신 절대 안차립니다. 그 이해의 결과로 죽는 순간까지 끝까지 허접해진답니다. 쓰레기에게 쓰레기라고 가해자에게 가해자라고 쪽을 주고 혼내주고 해야합니다. 안그러고 우쭈쭈해주면 버릇나빠져요. 그런 인간을 그린 영화가 바로 ‘박하사탕’입니다 여러분.
쓰다보니 말이 길어졌는 데, 사실 영화에서 가장 건지고 싶은 역할은 김여진이 연기한 ‘양홍자’였다. 솔직히 첫사랑 순임이야 그냥 남자들 판타지고, 영호 부인 ‘홍자’가 그나마 인상적인 캐릭터 였는데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김여진은 조연 취급하고 노출씬어쩌고만 나와서 졸라 빡침... 그래서 나라도 여기에 리뷰를 남겨 영화에서 남편한테 매맞는 예수쟁이 부인으로 퇴장하는 홍자언니를 꺼내주고 싶었다. 실제로 영화보면서 친구한테 “아니, 저 새끼(영호)는 김여진이 위로해주는데 우리 여진언니는 누가 위로해줘? 엉? 설마.. 하나님??? 오노..”하면서 격분했음. 처음에 자전거를 배워달라고 끼를 부리며 영호 앞에 등장하는 홍자는 나중에는 자가용 운전선생으로 보이는 청년이랑 바람이 나고(엄청 처 맞는다.. 개 ㅉㅏ증남... 진짜 그 시절엔 그랬겠지?), 영호의 사업이 망한 후 이혼했으며, 거지꼴로 대가리를 들이미는 영호에게 아파트 문을 절대 열어줄 생각이 없는 걸로 보아 아주 깎듯이 절연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 - 자동차 - 이혼(영호버림)’ 이것을 ‘이동 범위의 넓어짐(자유로워지고 싶음)’으로 읽는 다면 별다른 자원이 없는 그녀는 (처음에는 남자들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 싶었다라는 은유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남들에게 그것들을 배운 그녀가 더더 멀리 나아가는 삶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가 투척한 찝찝함을 떨쳐보기로 한다.
죄는 영호가 지었다. 홍자는 죄의식을 가질 필요없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영호따위 기찻길 위에 올려놓고 돌아가서 죽든 치어 죽든 말든 생까버리고, 울 홍자 언닌 미래로!! 언니 퐈이팅!! 울 홍자는 영호 새끼 버리고 딸이랑 잘살자. 아주 겁나 잘살자. (이건 정말 내 뇌피셜인데) 영호한테 위자료로 받은 아파트는 제발 강남 아파트였어라!!!!!!!!! 쒸익쒸익 😤
생각한다. 남자 주인공의 편협한 자기연민에 가려져서 실종돼버린 각 여성들의 서사에 대해. 스포트라이트 바깥인, 남자 창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대로만 편집되어 납작한 그녀들을 위해 이런 외전을 써본다.
사랑 받지 못해 못말리는 예수쟁이가 된 것 처럼 그려진 홍자는 교회 안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강남에 아파트 여러 채 가진 건물주가 되고, 납작하게 그려진 ‘순수’의 상징(공장에서 박하사탕을 천개씩 쌌다는) 순임이는 야학선생을 하다 518을 겪고 야학-노동운동을 하는 지하 운동권의 대모로 자라나, 실은 그날 경찰이 된 첫사랑 영호를 포섭하러 온거였던 것이쥨ㅋㅋㅋ 마지막으로 군산에서 물망초를 운영하시는 다방 언니는 사실 영호한테 연기 연습 중이셨던 배우 지망생이었던 걸로.... 암튼 모두에게 골고루 입체적인 캐릭터를 나눠줘 보아도... 하, 하지만 정말인지. 이 영화... 역사 속 가해자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도구처럼 사용되는 너무도 간단한 성녀/창녀..들... 이거 너무 지독했다. 그녀들을 그렇게 취급해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한 남자(당시에는 인간이었겠지? 남자가 아니라ㅋㅋ)에 대해 질문해 보는 게- 대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했었다고 치고/
이젠 정말로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건 되돌릴 수 없는 어떤 흐름이면 좋겠다. 영호는 나 돌아갈래!하고 외치지만, 영호 말고는 거기 나오는 어떤 여자들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 현대사 역시 그렇다. 가끔 한숨 나올 정도로 한심한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여성들에게 돌아갈만한 과거는 없었다. 확실히 떠나와야 하는 어떤 기이한 부정의의 세계들만이 말해지거나 서사가 부여되지 않은채로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