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를 극장에서 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해보지만 오전 10시 아니면 오후 9시이후의 극단적 선택지 밖에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모바일로 풀리면(풀릴까?) 보기로 한다. (모두 알듯이 멀티플랙스에 걸리는 영화는 소수다) 


이 영화에 대한 어느 소개 기사 제목이 '인간은 질줄 알면서도 싸워야할 때가 있다' 였다. 구속된 IRA단원들을 강력범이 아니라 정치범으로 분류해달라고 영국정부에 주장하며 감옥안에서 여러 투쟁을 벌이나 효과가 없자, 보비샌즈라는 사람은 결국 죽기로 결심하고 단식을 하는 내용이다. 전향종이에 사인한번만 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장기수가 석방 된 것이 불가 십년쯤 전이고, 감옥도 아닌데 어디가 짱돌하나 안던지고 40~50일 단식투쟁이 즐비한 현재의 우리사회와 70년대말 영국의 폭력성이 묘하게 겹치니 서글픈 일이다. 


서경식 선생이 민족을 구성하는 것에 언어와 역사를 들었다. 예이츠는 지배자의 언어로 시를 쓸 수 밖에 없음을 한탄했다. 지배자의 사고의 틀로 지배자에 의해 토막난 역사를 배울 수 밖에 없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너희들 때문에 굶어죽고, 맞아죽고, 일하다 죽은 분함은 얼마나 세월이 흐르면 흐려질까. 어쩌면 그 분함은 시간이 흐르거나 힘으로 눌러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용서를 빌어야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지휘자 구자범의 소식을 접했다. 연대 철학과 89학번으로 졸업후 늦깍이 음학유학을 가 독일에서 크게 인정받고, 귀국후 광주시향에서 활동하며 천재라 각광받다, 어느날 추문에 휩싾이며 사라졌다. 그가 연극무대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꼭 다시 지휘자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그 구자범이 음악 일자무식인 내 기억에 남은 이유는 2010년 518 광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시민합창단및 연주자 518명과 함께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기념비적 공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가 4악장과 5악장을 우리말로 옮겨 합창되었다. 우리사회의 한빛이 되어 살아난,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했던 사람들을 추모하며 말이다.


총선이 다가오고 뻔히 질 줄 아는 싸움을 하는 당신들에게 나의 한표를 던진다.


-김상봉 교수가 한글로 옮긴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5악장

일어나! 자, 일어나! 
내 벗, 내 님, 
새 아침에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 
그 밝은 빛, 그 빛 널 비추리. 

우리 살리려, 너 피 흘려, 
우리 살리려, 너 피 흘려. 

새 날, 새 아침, 
새 날, 새 아침에 
네 앞에 눈부신 빛 비추리. 

오 그대, 내 사랑 그대. 
너 슬퍼하지 말라. 

네 꿈, 오 네 꿈, 
네가 꿈꾼 세상 
이제 우리가 이루어 가리. 

오 그대, 
너 뜻없이 산 것 아니리. 
뜻없는 눈물도 아니리. 

빛을 따른 자, 다 죽었으나, 
모두 다시 살아나리.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예비하라! 예비하라 새 삶을! 

오 고통스런 내 삶, 
나 외롭지 않네. 
오 어두운 저 죽음, 
나 두렵지 않네. 

나 높이 날아 오르리라, 
새 날, 새 세상 향해 
사랑 날개로, 
참 빛, 눈 부신 그 곳으로. 

나 높이 날아 오르리라, 
사랑 날개 타고. 
사랑 날개 타고 높이 날아 오르리라. 

살기 위해 죽으리라! 
살기 위해 죽으리라! 

일어나! 
자, 일어나! 
내 사랑아, 너 일어나! 

어둠을 뚫고, 
어둠을 뚫고, 

한 빛, 한 빛, 
한 빛 되어 살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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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로자는 스스로가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해온 장석준씨가 역자와 함께 이름을 올린 것에서 짐작 가듯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막스갈로의 평전을 읽은 바 있어 이야기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주말 아침 몇 장을 읽어가다 새삼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녀는 목숨마저 위협받던 시기에 폴란드의 유태인이었고, 열살남짓이면 코르셋을 입어야하고, 고등교육의 기회조차 없던 시절의 여성이었으며, 선천적으로 다리를 절었다. 그녀는 대학입학과 운동을 위해 스위스로 홀로 떠난다. 그곳에서 남자들에게 귀속된 여성으로서의 상징인 머리를 스스로 자른다. 왜인지 이 장면이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그녀를 실패한 혁명가로 기억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도 비극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미 위대하다. 사슬을 끊고 한걸음 내딛어, 그순간 해야할 것을 해냈다. 그녀의 삶이, 실패가 아름답다. 우리는 얼마나 시절이 좋은 편인가.


내가 사는 지역구는 예상대로 야권후보단일화가 되어 역시나 마음이 식었다. 은평갑에 박주민이 꼭 당선 되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비례 2번을 주지 않는 더민주가 짜증나지만 꼭 이겨 4년동안 새누리당과 박근혜 잔당에게 세월호가 가시처럼 거슬리게 그가 국회에 박혀있었으면 좋겠다. 


희망이 매우 적지만 경주에 용*참사 책임자, 김석기는 꼭 떨어지면 좋겠다. (책임자를 책임자라 부르면 처벌받는다는 소문이 있다) 전라도 경상도 유권자는 공히 정신 차려라. 전라도의 새누리당 후보들은 생각보다 꽤나 괜찮다. 경상도의 새누리당 후보와는 솔직히 같은 당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전라도의 더민주 후보, 경상도의 새누리당 후보의 다수는 국회의원은 커녕 공직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할 사람들이다. 계속 찍어주니까 저런 인간들 공천해주는 거다. 제발 정신차려라.


 이정희씨가 입법에 성공하지 못한 진보적 법률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냈다. 잠시 잊었지만 그녀는 법률 전문가이기도 하다. 뉴스에서 다뤄주지 않아서 진보정당 의원들이 어디서 뭐하는지 잘 모르지만 일당 백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옛날 운동권식 구분법으로 마구 갈라치기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진보정당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90%이상 같다. 통진당 출신 홍정규씨는 더민주랑도 80% 싱크로를 보인다고 했다. 동의한다. 당들의 통합엔 반대하지만(10% 차이에 매우 귀중한 가치들이 묻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보의 정신 아니겠는가) 연대는 언제나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번 총선에서 통진당 출신 후보들도 많이 생존해오길 빈다. 


머리도 나쁜데 전망 따위 집어치우고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한다. 매우 적은 희망에 대해 무한 긍정의 마음으로 이번 한주는 시작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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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3-2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드 로자] 읽어봐야겠어요, 휘모리님.

다른 의미이긴 했지만, 저도 어제 남동생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넌 니가 할 수 있는 걸 해,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게.`
휘모리님 페이퍼에서 이런 글을 만나게 되네요.

무해한모리군 2016-03-28 11:44   좋아요 0 | URL
제 나쁜 점이 모조리 나오는 시기예요 요즘. 아무것도 안하고 읽고 읽고 읽기만 하는거죠... 첫사랑이랑 헤어지고 삼개월은 대학 도서관에서 서고 책장 하나를 다 읽었는데, 다행히 좀 자라서 회사는 다니고 있네요. 그래서 그런지 엉뚱한 것에 위로를 받네요. 누가 뭐래도 글도 사람도 아름답다고 다시 생각이 들고 있어요.

아무개 2016-03-2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두번쨰 구입도서는 <숨통이 트인다>에 이어 <레드 로자>로 결정.

아무것도 안하고 읽고 읽고 읽기만 하는때....저도 그럴때가 있어요.
저도 그럴때가.... 별로 좋지 않은 시기이기도 해요.

무해한모리군 2016-03-29 09: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무개님. 저는 숨통이 트인다를 목차만 보고 구매는 안했어요.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다보니, 좀더 깊이 있게 다룬 책이 아니면 안사게 되네요. 제수준엔 녹색평론도 꽤 무거운 읽을거리라 나름 두달 꽉채워서 읽습니다만.

무기력하네요. 살면서 슬픈 시기는 있어도 무기력한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일을 그만둬야 좋아지지 싶어요.

어렸을땐 서른이 넘으면 마음이 잔잔해지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 아하하하

아무개 2016-03-29 09:14   좋아요 0 | URL
무기력에 우울함 까지
동시에 닥쳤을때
제가 할수있었던 일이라고는
무기력과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는것 뿐이더라구요. 참내.....

저는 마흔이 넘으면
철좀 날까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ToT)

머큐리 2016-03-3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닥치는 대로 읽기만하는 시기이긴 하죠.. 읽고 나서 깨끗하게 머리에서 지워버려서 문제이긴 한데...
 

오늘은 뉴스가 아닌 전범선과 양반들의 새앨범 <혁명가>를 들으며 출근한다. 저 위에 사진은 앨범자켓으로 무려 전범선 본인이다. 양반록을 하신다는 이분들은 목소리부터 사운드까지 완전히 취향이다. 특히 우리소리를 연상시키는 추임새(?)가 아주 좋다.


자 타이틀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사를 보자.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만 있을 건가

번데기처럼 가만히

안된다고 그렇게

말로만 하지 말고

아래로부터 찬찬히 

자 한번 엎어보자

(중략)

우주의 모든 기운이 

그대와 나만을 둘러싼다

무서울 것이 없구나

딱 한번만 더 엎어보자.

=======================


이분들은 여전히 동학농민 운동중.

가사가 총선정국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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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6-03-2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전형적인 70~80년대 록같아서 촌스러운데 그게 신선하다
 


고귀한 유산 - 송경동


내가 죽어서라도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며

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노동자들이 목숨을 놓을 때마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보수언론들이 이야기한다


천상 호수 티티카카호까지 가는 뻬루의 고산 열차는 

1870년 착공해 완공까지 삼십팔년이 걸렸다

공사 기간 중 이천명 넘는 인부들이 죽었다

중간 역도 없이 만년설 속을 열세시간 달리는데

딱 한번 이십분간 정차한다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이천명의 상여를 타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사회가 우리의 삶을 이용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특별히 애도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내릴 수 있는

생의 정거장은 의외로 많지 않다


=================

유성기업 노조원이 17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대자동차는 창조컨설팅이라는 업체를 조정해

힘없는 하청업체인 유성기업 노조를 집요하게 파괴하려 했다.

법,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하수라고 어른들에게 배운 내겐 몹시 어리둥절하게도, 법에서 복직시키라고 한 조합원들을 끝내 재해고 했다. 

이 나라의 인재라는 자들은 무슨 컨설팅을 한다며 수억씩 받아가며 헌법에 적시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노조파괴 공작에나 참여하고, 나라세금 받아먹는 검찰이라는 자는 그걸 몇년이나 끌다 기소조차하지 않는다니 부끄럽다. 

남들보다 더배우고 사회적 혜택을 누리는 자로서 남들보다 더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규칙조차 지키지 않고 힘있는자에게 빌어먹는가.


송경동 시인이 연애시를 쓰는 세상에 살고싶다. 목숨까지 걸지않아도 약자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구멍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시가 아무리 좋아도 시인이 삐라같은 시를 써야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 시인이 재판장에 서는 세상은 글러 먹었다. 아주, 글러먹은 세상이다.

2011년 유성기업 노조의 요구는 주간연속2교대`밤에는 잠을 자자`였다. 심야인 12시부터 아침 7까지는 일하지 말자는 것이다. 국회의원들, 재벌간부들, 무슨컨설팅 하는자들, 검사님들은 주야교대 해봤을까? 12시간 철야에 일해보았을까?

배운놈들이 언제나 제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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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3-20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운 놈들이 사회를 위해 좋은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우린 거꾸로 달리고 있어요.ㅠ
송경동 시인의 시집을 사는 것으로 마음을 보탭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3-21 17:0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순오기님. 늘 생각하지만 돈을 제일가치로 취급하는 사회에서는 도둑의 마음을 누구나 가지게 되는거 같아요.... 제 마음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일본만화에서 가장 자주 다뤄지는 주제는 무언가를 향한 '정진(精進)'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수련해야하는 것이다. 


 사람은 손으로 산다. 손으로 몸으로 살지 못하면 어딘가가 망가진다. 그래서 몇대씩 세습을 하는 우리나라 재벌들의 비행을 어느정도 이해한다. 타인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물건이 마구 버려지는 세상엔 그물건을 만드는 인간도 그리되는 법이다.


지난 몇주간 우리 정치와 기업의 비인간적 풍토에 기가 질린다. 함께 짧게 4년 이상 같은 곳에 몸담고 활동했던 인간을 잘라내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이러저러해 너를 자르노라는 설명정도는 찾아가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제 곁 사람들에게도 저러는데 국민을 생각할리 만무하다. 


 지난 몇달간 회사일이, 도시에 사는 것이 싫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내 몸을 움직여 만들어낸 것으로 살고, 눈에 보이는 살가운 사람들을 챙기며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필시 어딘가 망가졌을텐데 우선 눈물샘이 망가졌나보다. 쓸쓸한 김훈의 글에도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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