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 소년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패트릭 맥케이브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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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시골집 뒤편에는 못 쓰는 가구나 농기구들을 쌓아두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 항상 어둡고 음침했다.

한 번은 우연히 그 곳에 있던 물건을 들 춘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물건이 있던 바닥에서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가락 마디처럼 굵은 지렁이, 붉은 색깔을 띄는 지네, 온갖 종류의 벌래들이 눅눅한 땅바닥 속에서 꿈뜰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들추었던 물건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그곳에서 뛰쳐 나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곳에 가지도 않았고, 다시는 그 곳의 물건을 들어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은 우리의 마음 상태도 시골집 뒤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음 안에도 어둡고 음침한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벌래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들춰내기를 싫어한다.

혹시라도 들춰내었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다시 그곳을 덮어 두기를 원한다.

보기 싫어했던 그것들이 그 곳에 없다는 듯이......

 

[푸줏간 소년]을 읽으면서 내내 어린시절 시골집 뒤편의 물건 바닥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얼른 덮고 싶고, 그것이 거이에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싶었다.

작가가 주인공 소년의 의식과 심리의 어두운 부분을 묘사하는 것이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끔찍해서였다.

아니, 어쩌면 소년의 의식과 심리의 묘사 속에서 내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나의 의식과 심리가 들어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아일랜드의 '브랜디'라는 소년의 의식과 생각을 따라간다.

브랜디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서서히 미처가는 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다.

그런 브랜디의 유일한 위안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 조와 보내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나마 도시에서 필립이 전학 온 후 부터 쉽지 않다.

풍족하고 깔끔한 집에 사는 필립과 필립의 어머니 누전트 부인은 브랜디와 그의 가족을 '돼지'로 취급하며 경멸한다.

결국 브랜디의 어머니는 자살을 하고, 아버지는 브랜디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말한다.

브랜디의 의식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결국 아무도 없는 누전트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에게 끌려 간다.

그 후 브랜디는 사제들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에서 성적학대를 당한다.

그는 그 곳에서 '프랜시 브래디가 더 이상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졸업장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버틴다.

그러나 브래디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한다.

심지어는 유일한 친구인 조마저도 브래디를 피하고, 필립과만 친구로 지낸다.

결국 브래디는 이 모든 것이 누전트 부인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누전트 부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커져만 간다.

그리고 결국 누전트 부인을 살해한다.

 

 

처음 이 소설을 접할 때에는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라 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어린 주인공의 순수한 마음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그가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런 내용을 기대하고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어둡고 음침한 소년의 마음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어둡고 음침한 소년의 마음에서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고 괴로웠다.

 

브래디의 주변 사람들은 누전트 부인을 비롯해 브래디를 경멸한다.

심지어 누전트 부인의 그의 더러운 외모를 보고 돼지로 비유한다.

소설에서 브래디는 스스로를 돼지로 부른다.

스스로를 자학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시도들은 매 번 거절감과 좌절감만 심어준다.

 

사실 브래디가 누전트 부인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그의 아들 필립을 시기하는 것은 그의 집안과 필립이 부럽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그들의 무리에 섞이고 싶기 때문이다.

브래디의 의식 속에서 필립과 누전트부인은 그런 브래디의 마음을 조롱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필립 누전트의 목소기가 들렸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온통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필립이 말했다. 그 녀석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아시죠 어머니? 그 녀석은 우리의 식구가 되고 싶어 해요. 그 녀석은 자기 이름이 프래시스 누전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녀석이 원한 건 처음부터 그거였어요. 다 아시죠 그렇죠 어머니? (P98)

 

마침내 그런 생각이 들자 누전트 부인이 말했다. 그 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나더러 자기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했어요.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애가 당신한테 그런 짓을 했다고요 브래디 부인. 그 애가 우리 집에 온 이유가 그거였어요! 그 여자의 가슴 때문에 또 숨이 막혔다. 미지근한 게 내 목구멍 속에 있었다. 내가 먼저 그를 친 것 같다 그가 쓰러지더니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날 해치지 말라 프랜시 난 널 사랑해! (P150)

 

브랜디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누전트 부인과 필립에게 계속해서 해를 가한다.

그것은 사실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브랜디의 또 다른 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갈 때마다 브랜디는 거절을 당하고 그의 자존감을 계속해서 찢겨진다.

결국 브랜디는 스스로를 돼지라고 여기고, 누전트 부인을 돼지처럼 살해한다.

 

 

앞에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흔한 성장소설이나 스토리 위주의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한 소년의 의식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재미나 흥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 의식이 흐름을  아주 섬세하고 예리한 필치로 그리고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스트옙스키 이후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린 최고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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