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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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권으로 이사를 와서 자주 못 가지만 예전에는 대둔산이라는 곳을 자주 등산했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절경이 아름다우면서도 산세가 험하기로 이름난 산이다.

케이블을 타고 올라가서도 한참을 험한 산을 오르다가 보면 정상 부근에 가까워서 작은 동학운동 기념비가 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학운동의 마지막 사람들이 여기서 일본군과 대치하다가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구를 보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은 이 험한 산 꼭대기까지 오르게 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이 산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가졌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구한말 동학운동을 배경으로 전봉준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야구경기의 패색이 짙은 9회말 경기를 보는 것처럼, 이미 스코어가 너무 벌어져 돌아킬 수 없는 축구의 후반전을 보는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했다.

나는 동학운동이 단순히 탐관오리의 학정에 반발해 일어난 농민운동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당시의 조선의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이미 외쇄의 세력에 점령 당해있고, 민씨 일가들은 권력을 통해 백성들을 탈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봉준과 동학 접주들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일어난다.


이 책은 다른 동학운동과 관련된 책과는 달리 대원군과 개화파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설정이겠지만 이 책에서는 전봉준이 동학운동을 일으키기 전 대원군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남쪽에서 난을 일으키면 어떠겠냐며 대원군의 의중을 묻는다.

대원군은 이제 믿을 것은 백성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대원군이 동학운동을 지지한 것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동학운동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다시 찾기 위해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동학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뿐만 아니라 인간 전봉준의 끝임없는 고뇌를 읽어야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과감한 혁명가이기 보다는 고뇌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등장한다.

난을 일으키기 전에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정말 이 길 밖에 없는가?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우금재에서 전투가 패퇴한 후 죽어가는 한 백성과의 대화는 정말 압권이었다.


전봉준이 군말 없이 군사를 따라나섰다. 방금 지나쳐 온 길가 짚더미 위에 부상당한 군사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 잘 뭉쳐 받쳐준 짚단을 벤 채 몸에도 짚단을 덮은 사내가 숨을 몰아쉬었다. 전봉준이 다가가 피로 범벅된 사내의 손을 잡았다. 얼굴이 희고 고왔다.

"왜 혼자 누워 있소?"

"동무들에게 두고 가라 하였습니다. 난 틀렸습니다."

"그런 소리 할 거 없소. 우리랑 갑시다."

"장군!"

사내가 피로 미끄덩거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통증 때문인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 길이 가장 옳았다고 확신하십니가?"

세상을 빨아들이려는 갈망이 눈에서 번뜩였다. 전봉준이 또박또박 말하였다.

"그대가 목숨 걸고 나선 길이오. 의심하지 마오"

사내가 밭은 기침을 하더니 안심하는 소리로 일렀다.

"백성들은 장하였소. 그들을 배신하지 마시오. 변절하지 말시오"

"그 말을 따르겠소"

- 본문 중에서 (P308)


구한말 처럼 나라가 시끄럽다.

보수와 진보가 극단에서 싸우고 있다.

서로 나라를 위한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나서서 바로 잡겠다고 한다.

나라는 오랫 동안 둘로 갈라져서 북쪽에서는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아댄다.

중국은 미국과 맞서는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고,

일본은 자위대 헌법을 바꾸어 자위대 해외 파병을 가능케 했다.

남한의 허락없이는 한반도에 군사를 보내지 않겠다더니 이제는 북쪽은 허락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정부에서는 우리의 허락없이는 자위대가 못 들어오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구한말과 비슷하게 돌아간다.

청나라 군사도 허락을 받고 들어왔고, 일본군도 허락을 받고 들어와 백성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허락을 받고 우리나라를 합병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자신의 앞 일이나 걱정하라고 한다.

그렇다! 내 앞 걱정하기도 벅찬 시대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려운 것일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 소설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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