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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또는 지난 겨울.

추석쯤 상견례 하고 날 잡을 거야,

말했던 그녀는 그즈음 심심하면 거제로 내려갔다.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 따위는 아웃오브안중 되는 거 그거 여자라면 대부분 알 만큼 안다. 나도 당연히 안다. 맹세코 그래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당하는 기억과 상처주는 기억은 원체 다른 법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주말을 보내고 올라오는 낭만 데이트였다가 점점 부산 다녀왔어 할 정도가 되었고, 꼭 그래서는 아니라도 얼굴 못본 지 한참이나 되었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 나이 들면 저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무거워 친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종종 부족해진다. 우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서로 일으켜주며 평생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도 제 무게마저 감당못할 날들이 오겠지. 저마다의 행복 속에서 친구의 서글픔 따위 까맣게 잊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살아가는 일은 그런 거니까.   

선착장에서 배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며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 대단한 정성이라며 나는 종종 비웃었고,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못 할 일이 없다며 되려 행복해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정도는 아니지만 아파하는 모습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말해주었다. 여기 공기 좋으니까 내려와, 거제일주 하자. J랑 같이 와도 좋아. / 됐거든.  

 

당시 우린 밥먹듯 통화하며 서로의 일상을 보고하는 사이였는데 때로 떨어져 있어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이상한 사이이기도 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떡볶이에 맥주 마시다가 <귀여운 여인>과 <로마의 휴일> 보며 질질짜는 짓 따위는 안해도 되었다. 가끔은 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이었다. 내 생각에 그건 우리 청춘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아무리 사랑에 상처 받아도 로맨틱한 프로포즈 받고 예쁜 드레스 입고 멋진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바로 그 멋진 남자에게로 시집가고 싶었다. 그런 바람 때문에 여전히 두 영화가 적어도 내게 낭만적임 또는 로맨틱함의 절정으로 남아있는지도.(^^) 그녀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가 시집을 가거나 말거나, 다 잊고 시험에 몰두했는데 갑자기 기억난 건 이 사진 때문이다. 영화를 뒤적거리는데 사진이 나왔다. 얜 왜 예쁜 얼굴을 안 찍고 뒷모습을 찍은 걸까. 첨에 든 생각은 이거였고 이후 좀 더 농도 다른 생각이 몰려왔다. 이건 작년 사진도 아니고 아마도 더 이전 사진일텐데 그러니까 지금보다 몇 살 더 어렸을 때일텐데 나지만 전혀 나 같지가 않다. 팔다리 길고 손가락도 길고 볼륨 별로 없는 게 나 맞긴 맞는데 사진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2년 뒤 이런 생각을 할 거라 예상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 살 더 어릴 때가 예뻤구나. 온누리 여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 물론 과거의 나보다 지금이 더 나답구나 싶은 여자도 있고 과거따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지금이 예뻐. 라는 여자도 당연히 있겠지만. 나는 그때 참 예뻤구나. 더 어릴 때는 더 예뻤겠지. 어른들이 젊은 사람을 보면 내가 볼 때 별로 예쁘지도 않고 딱히 변함 없는데도 어째서 예쁘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나 요즘 그런 거 느끼는 스물아홉 증후군앓이 중. 이건 어쩌면 평생 직장 찾는 취업 스트레스 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몰라. 취업은 고작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일에 불과하지만(꿈도 사고) <그때 참 예뻤구나>의 문제는 존재 자체의 심오하고 찬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사진은 그녀가 찍어주었다. 몇 장은 찍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멍청한 표정으로도 찍혔다. 신나서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중이었지 싶은데 아마 나도 모르는 새 마네킹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디카가 내꺼였으므로 사진은 고스란히 내게 남아있다.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당장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지만 전화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지. 어쩌면 전화번호 바꿔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내일 전화해야지. 친구야, 시집 가도 안 미워할게. 사랑해줄게.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어느 남자에게나 넘칠 만큼 사랑받아도 괜찮을 만큼.   

 

읽다 만 책 속에 보통이 있었다. 읽다 만 책이 너무 많아서 쌓고 또 쌓고 또 쌓여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몽땅 안 읽어본 책 취급하기로 맘먹는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안면 없는 책이 될 것도 같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재출간본. 제목을 왜 바꿨을까. 5초 정도 생각하다 패스한다. 배경 일일이 신경쓰는 타입 아니고, 어차피 읽지 않았고, 소장하지 않아서 문제될 게 없다. 오래 전에 받았고 그보다 덜 오래 전에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끝을 보지 못했다. 사랑에 시간을 비워두지 못할 만큼 늘 맘이 급하고 예민한 상태였기에 사랑노래가 자주 지겹고 애석하게 느껴졌다. 키스는 더 그랬다.  

대학 때 참 예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이 있었다. 같은 과 재학중 수업이 같아 함께 구내식당과 매점, 캠퍼스와 도서관, 강의실을 누비며 그 아이는 말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여행을 가자는 바람에 레이스 달린 예쁘고 야한 속옷 세트를 샀어요. 당시 스물 둘. 자기와 나이 차가 좀 있는 남자여서 어린 애처럼 보이기 싫었다고 했다. 여자로 보이고 싶어 준비해갔지만 남자는 사랑을 나눌 생각이 없더라고도 했다. 지켜주고 싶다나 뭐라나.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 받았다고 했다. 정말 좋아했구나. 내가 말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키스만으로도 젖게 만드는 남자. 자기가 좋아하는 그 남자가 그만큼 키스를 잘한다는 얘기였겠지만 그건 굉장히 뭐랄까, 다른 사람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느낌을 느껴본 어린 여자가 말하는 거대한 고백처럼 여겨졌다. 나도 어렸는데 뭘 얼만큼 알 수 있었을까. 남자들에게 말해주어야 하나. 사랑하지 않으면 여자에게 키스를 해서는 안된다고. 그 키스 한 번이 당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폭풍같이 커다란 늪일 수도 있고, 그녀를 죽고 살릴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애는 죽고 싶어했다고.   

 

물론 그애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키스만으로도 여자를 젖게 만드는 남자가 스물 두 살의 어린 여자애를 사랑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나누는 말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전혀 안나지만 키스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종종 그애 생각이 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여자애였다.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라 말은 안했어도 속으로 내가 내내 걱정했었다는 걸 그애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졸업식에서도 못 봤고 이후로도 연락을 못했다. 연락은 물론 인연도 끊어졌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보통씨, 그렇다면 나를 위해 쓴 책이란 말인데 주제가 점점 삼천포로 가고 있다는 생각 안들어요? 어쨌거나 읽지 않아도 모아온 당신이니까 이번에도 모아두고 나서 읽어볼게요. 고마워요. 나를 위해 종교를 말해주어서.( ") 

어차피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한 거겠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이렇게 믿고 싶다. 특히 상대가 남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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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6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9-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이다.... 아이리시스님 얼굴 봤네,
어우 청순에 미인형, 내가 완전 부러워하는 형이잖아요. 팔뚝도 가늘구, 난 그게 젤 부러워요, 홍홍.

어릴때는 정말 친구에게 신경쓰고 힘든 사람에게 신경쓸 에너지가 있었죠,
나이들면서 확실히 각박해지는거 같아요, 그래도 잘 늙으면 어릴 때보다 더 현명하고 따스하게
사람들과 보듬고 지낼 지혜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 중이예요. 그런거 같아요,
나이 들면서 같은 나이라도 엄청 동안과 노안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동안과 노안이 있지 않을까...

동안과 노안이란 표현, 조금 어설픈데 무슨 말인지 내맘 잘 알자나요, 아이리시스님? 쪽~~~~~~~~~쪽쪽쪽쪽
(뽀뽀 백번 해도 감사한 마음 다 표현못 할 나의 예쁜 아가씨~)

아이리시스 2011-09-16 13:04   좋아요 0 | URL
마고님, 안녕. 페이퍼 왜 안쓰는 거예요, 버럭!! 인사시기를 놓쳤잖아요. 사진이 예뻐서 저 때의 내가 너무 부러워서 안 올리고는 못 배기는 간절함, 그런 게 문득 솟아났어요. 용기도 났어요. 그리고 저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니까요. 히히. 저 팔뚝 안 가늘어요. 지금을 보여주고 싶다, 진짜..^^ 그런데 손가락도 길고 팔다리도 긴 편이라 많이 먹고 들어가는 편. 갑자기 자뻑모드 -_-;; 나라도 나를 이렇게 대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변명모드 -_-;;

공감해요. 나이 들면서 같은 나이라도 엄청 동안과 노안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당연히 있죠. 그리고 그 마음이 같은 나이임에도 동안과 노안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고님 보면 생각나는 건데 추석연휴 끝나자마자 수요일에 폭락했던 장이 어제,오늘 큰 폭 올라오고 있어요. 거참, 저는 이제 손 뗐는데 남 좋은 일 보고 있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정글싸움이기도 하고 말이죠. 히히. 저 올해 많이 크고 있어요.

나의 예쁜 아가씨~ 호호호호. 완전 행복해요. 뽀뽀 백번 해줘요. 기다릴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좋은 하루 되세요.^^

비로그인 2011-09-1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인연이라는 게 있을까요? 아이리시스님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까, 조금 막연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필요에 의해 서로를 찾는 순간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씁쓸함도 입에 남구요. 그래도 살다보면 언젠가 그런 인연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겠죠? 내일 친구분이랑 거하게 회포를 푸셔요. 나중에 섬생활하는 게 (섬소년?) 제 꿈인데 거제도도 한 번 놀러가봐야겠네요. 거제일주, 좋을 것 같아요.

보통은 이름만 들어본 아저씨에요. [불안]이라는 책을 수학여행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욕 좀 먹었어요 ^^) 그 이후로는 만나보지 못했네요. 책상 위에 수도자처럼 앉아 있는 사진이 뇌리를 스치는...

아참, 두 장의 사진에 제목을 붙여봤어요. 한가한 동네 옷집에서의 패션쇼 현장. ㅎㅎ
저는 언젠가 피터팬 복장을 하고 사진을 남기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느 정도 그런 게 있어요. 나이들수록 필요할 때만 찾는.. 그래도 아직은 필요에 의하지 않고도 투정부리고 진상 떨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다행이고 행운이에요. 수학여행 가서 [불안]을 읽다니, 하하하. 말없는수다쟁이님도 엄청 책을 사랑하셨구나? 완벽한 문학소년이었네요.

저기 친구가 하는 옷가게 였어요. 타겟이 30대 이상이어서 우리가 입을 옷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거제에 아예 눌러살고 잇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사다난해서 아직 전화를 못하고 있고, 날이 너무 더워요.-_-;

피터팬 복장 언제 할건데요? 네? 미리 좀 알려줘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1-09-1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련된 부산 아가씨였군요.
반갑사옵니다.^^

아이리시스 2011-09-16 13:1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세련이라는 말은 좋은 뜻을 다 포함하고 있는 단어 같아요. 짧은 말 속에 뭔가 꽉 찬 의미가 든 듯해서 좋아요. 오늘은 오랜만에 펄 매니큐어를 발랐어요. 엄마도 발라주구요. 저는 핑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그레이펄 이예요. 세련된 손동작을 해야 할 것 같은 날이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스텔라님.^^

페크pek0501 2011-09-1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제목이 제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여기서 스텔라님도 보네요.^^^

보통의 책은 다 읽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읽지 못했어요.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예요. 이 책으로 많이 배웠어요. 흥미롭고 배울 게 많아요.

오늘 님의 사진도 보고 나이도 알게 되고...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은데요.

우정과 연애...연애가 시작되면 연애 이외엔 모든 게 시시해져 버려서 친구도 멀어지죠. 그런데 그런 것 다 거치고 아주 늙게 되면 다시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게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 들어요. 60, 70대의 어머님들을 보면 알게 되죠.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8:46   좋아요 0 | URL
네ㅡ 펙님, 보통 좋죠? 저도 생각해봤는데 감명깊게 맘속을 뚫고 지나갔던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뿐인 것 같아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 일주일을> 그리고 위에 있는 <너를 사랑한다는 건>도 읽었던가 읽다 말았던가 한데 덜 좋아서는 아니지만 첫 책이 제일 남아요. 펙님도 그런가봐요. 그래도 여전히 보통이 읽고 싶어요. 이번책은 종교라 어떤 식으로 풀지 더 궁금한데, 표지가 대체적으로 맘에 안든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ㅋㅋㅋ

우정과 연애론은 저도 동감입니다. 우정이 멀어질 때면 연애가 가까워지고, 연애가 멀어질 때면 우정이 간절해지는. 그래서 늙어갈 수록 동반자가 중요한 것 같고, 마지막까지 함께 가야 할 친구도 소중해요. 관리라는 말 그렇지만 둘 다 잘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셨어요?

June* 2011-09-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u - ♥
 

아이리시스 2011-09-16 18:47   좋아요 0 | URL
준님, 추석연휴에 뭐했어요? 잘 지냈어요?

cyrus 2011-09-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이쁘시네요.(+_+) 아이리시스님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나중에 사진을
삭제하시는건 아니시겠죠? ㅎㅎ 예전에 한번 양철나무꾼님이 서재에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올리셨다는데
저는 늦게 들리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

여자의 심리는 정말 복잡미묘한거 같아요. 모태솔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
남자의 행동에 대해서 동생분이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랜 기간동안 무르익었으면 남자의 행동이 동생분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울테지만요.
모든 연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제 주위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사귄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몸으로 사랑을 확인하더군요.. ^^;; 그러다가 얼마 못가 깨지게 되고요.

아이리시스 2011-09-16 20:14   좋아요 0 | URL
삭제는 하나마나 누가 확인이나 하나요, 뭐! 정.말. 이쁜 것 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후덜덜. 나무꾼님은 저도 아쉬운데, 그래서 막 조르는 중이거든요. 단계별로 졸라볼까 하구요.ㅋㅋㅋ

아 맞다, 키스 잘했던 그 남자는 동생을 여자로 본 건 아니었대요. 여행을 둘이 떠난 건 맞는 것 같은데 그애 말로는 아무리 예쁜 속옷을 입었어도 침대에서는 물론 손조차 손도 안대더라고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건 그냥 우리 생각인 것 같고, 어떤 남자는 그랬다나봐요.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중이었대요.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 여자가 되고 싶었던 그애는 거절당하기 위해 떠난 여행인 걸 몰랐던 거예요. 남자는 처음부터 밤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은 거지요. 여행을 가니까 당연히 1박 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하여튼 그애에겐 굉장한 성장통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한. 이후 연하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그 얘기도 종종 해줬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예쁘고 똑똑한 여자는 모두 도도하고 지혜롭고 튕길 거라 생각하는데 그애는 예상을 벗어나는 여자였어요, 제가 생각해도요. 우리가 친해진 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내 과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과하고 성실한 구석에다가 이해 안 가는 행동도 종종 했어요. 그게 참 예뻤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듯 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모습이 이중적이면서도 신비롭잖아요.

아, 몸으로 확인하는 사랑. 그건 현 시대 10대와 20대가 가장 공감하는 내용 아닐까 싶어요. 확인하는 속도에 따라 사랑의 기간도 정해지는..^^

아이리시스 2011-09-16 20:21   좋아요 0 | URL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키스는 왜..................(-_-;) 키스는 되고 잠은 안잔다니 무슨 마음인 거예요? 시루스님. 남자를 대표해서 한 번 말해봐요, 큭큭.

cyrus 2011-09-16 22:36   좋아요 0 | URL
ㅎㅎ 아이리시스님도 못 보셨군요.

댓글을 읽고나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리고 마지막 댓글은...
그냥 모른척 하고 넘어가주세요 =3=3=3

아이리시스 2011-09-17 01:28   좋아요 0 | URL
네, 그냥 넘어가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꿈꾸는섬 2011-09-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너무 예쁘다고 쓰려다가 정말 예쁘다로 바꿔 쓸게요.
정말 팔다리도 시원시원하고 완전 부러운 몸매까지 소유하고 계시군요.
저도 가끔 예전 사진보다보면 낯선 느낌 받는데......
전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키스하는 남자들은 거의 없다고 보는데, 키스는 아무하고나 안 하지 않나요?
예전 알던 XY의 말이 돈 주고 관계를 가져도 키스는 절대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그 사람 말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냥 제 생각에도 키스 아무나하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젊은 날의 관계는 지속될 수도 깨질 수도 변수가 너무 많잖아요.

아이리시스 2011-09-17 01:31   좋아요 0 | URL
꿈섬님, 안녕. 추석연휴 잘 보내셨죠? 인사를 깜빡하고 못 여쭤서 마음이 막.. 엉엉엉.
완전 부러운 몸매.는 착각하시는 거구요, 키스는 저야말로 정말 신기해요. 다른 남자와의 키스를 내가 각색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하하하. 돈 주고 관계를 가져도 키스는 절대 못하겠다는 말은 저도 들었는데 아마 처음에는 만나볼까 했는데 나중에 아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키스도 아무나 하고 하면 큰일나죠. 아, 어떡해.......(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쉰P 2011-09-1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의 읽는 즐거움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 알라딘에는 미인이 많습니다. 뇌색적 미인인 양철나무꾼님과 시크한 베리베리님 이렇게 2대 얼짱으로 나름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고, 같은 부산 쪽에 꼬마요정님이라 하는 분은 동생 분의 미모로 유추해 보아 미인라 여겨져(동생 사진을 올리셨거든요. ㅋㅋㅋ) 트라이앵글 미인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이리시스님의 사진을 뵈니 알라딘 미인 사대천황으로 정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네 분의 순위는 없으니 안심하시고 (순위 정했다가는 위험한 사태가 ㅋㅋㅋ) 암튼 오늘은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를 읽고 문득 연락 끊긴 제 생각도 나네요. 아 보고싶다...
근데 불교의 사대천황은 이미지 찾지 마세요. 엄청 무서버요. -.- 그런 의미의 사대천황은 아닙니당...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9-19 18:19   좋아요 0 | URL
아아, 루쉰님, 이거 리뷰 아니잖아욧!ㅋㅋㅋ 미인은 모르겠고, 사대천황은 또 바뀔 것 같은데요. 막 루쉰님 머릿속에 순위 매겨진 거 아니에요? 하하하.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일단 저는 루쉰님 보호해줄게요. 그러면 이제 정갈한 글씨로 쓴 메모와 사진을 함께 보내줄래요? 저도 사대천황 시켜줄게요.ㅋㅋㅋ 언제 근무하는 거예요?

알로하 2011-10-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예쁜 아이리시스님이라고 불러야겠어요.ㅋㅋ29앓이, 겪고 있는 1인으로서 격하게 공감해요! <키스하기 전에~> 이책은 왠지 보다가 말았던 책이네요. <왜 나는 너를~>은 재밌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키스하기 전에~>는 심심하더라구요. 사랑, 전 이제 스스로가 사랑치에 가깝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들도 다 진실은 아니더라구요. 사랑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드니까 이게 29앓이의 한 증상인가 싶기도 하고요.

아이리시스 2011-10-12 17:47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러니까 정말 신기한 우연이게도! 우리 친구란 말이죠?^-^ 그렇구나, 어쩐지! 우리 너무 심하게 앓지는 말고 지나가요. 나중에 이 순간도 추억이 되게요. 제 소원은 사랑치도 좋고 다 좋은데, 제발 별일 없이 잘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이. 꼭 내가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직도 간혹 들어요. 가을 지나고 겨울 오면 더 심해질 지도 모르는데, 알로하님, 힘내요. 우리 힘내자구요. <키스하기 전에~> 저거 잘 안 읽혔어요. 그러니까 보통은 잘 쓰고 다양하게 쓰지만, 이상하게 쭉 잘 읽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

댈러웨이 2012-11-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글 안 읽고 사진만 보다가 가요. 또 보러 올거에요. 별에다가 색칠할 거에요.



땡큐.땡큐.땡큐. 오늘 노래 올려줄께요. 페이퍼 쓰고 있는데, 제 방식이 맘에 안들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요. 하. 심장이 뛰어요. 나 여잔데??? --;

아이리시스 2012-11-14 21:24   좋아요 0 | URL
으히히히 댈러웨이님 이러면 사람들이 누가 ㅎㅎㅎ 썼지, 클릭해서 본단 말이예요(키득키득) 지금도 저렇게 아리따우면 좋겠지만 저 때는 제가 생각해도 아리따웠던 것 같고 지금은 네버! 저렇지 않아요. 별에다가 색칠하지 마요.

앗싸! 그냥 남자해요. 조만간 꽃하고 +@ 해가지고 사들고 저 보러 와요--;;
땡큐. 오늘 노래 잘 들을게요. 댓글이 없으면 안 들은 게 아니라 심취한 걸로..
 

 

 

당파싸움은 조선후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줄기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왕실의 왕위다툼 정도로 인식됐는데 조선후기 들어오면서 공신들의 힘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세력 바람에 따라 당대의 줄기가 이리저리 휘기도 한다. 피바람이 불고 왕이 끌려 내려오고 허수아비 왕이 올라가기도 한다. 고려나 조선전기에 비해 조선후기는, 서민 위주의 정책들이 많고 문화적으로도 한글소설, 판소리, 사설시조 등이 널리 퍼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왕실정치는 그들 중심으로만 돌아갔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을 하루에 몇 번씩 읊으며 조선시대 역사의 맥을 짚어갈 때 나는 알아야 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분별없이 수용했다. 어느새 야사는 시대의 디테일을 연결시키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역사는 그를 두고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불운한 세자라 불렀다. 어째서 세자가 다른 곳도 아닌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는지 오늘날 그 정도는 상식이다. 놀라운 건 이유를 파헤치고 들어가보면 현 정치상황이 보인다는 것. 지금의 정당정치와 조선후기 당파싸움은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 이후 북학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으로, 아내 강빈과 정치적 뜻을 함께한 형 소현세자 대신 왕위를 계승한 봉림대군이 효종이 되면서 조선후기 당파싸움이 본격화 된다. 눈을 씻고 봐도 그들의 싸움에 백성이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역사란 늘 승자 중심, 높은 자 중심, 권력 가진 자 중심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왕권을 누가 계승할 것인가, 실세는 누가 쥐게 되는가, 훗날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래서 왕실에는 피바람이 일상이다. 실제로 왕권이 강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정도고 늘 왕조차 안심할 수 없을 만큼 흔들렸다. 조선역사에서 그렇지 않은 부분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고려나 조선전기에는 태종, 세조 같은 찬탈로 왕이 된 이들의 궁궐 내 싸움이었고, 왕권이 그때만큼 강하지 않은 조선후기에는 측근세력들이 활기친다. 오로지 권력과 힘. 두 가지를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지리하다. 효종과 현종 때에는 그나마 덜했다 볼 수 있다. 청과의 싸움에 온 나라가 목매고 있었으니 주전론과 주화론(북학론과 북벌론의 대립)이 팽배했을지언정 내부적 다툼은 덜할 수밖에 없었다. 집밖에 나가 싸워 이기려면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수 밖에 없다. 붕당정치가 시작된 시기는 임진왜란 즈음 선조나 양난 이후 광해군 시점부터지만 당시에는 안팎으로 흉흉했기에 당파들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좀 흘러 인조,효종,현종 때에는 비교적 다양한 세력이 공존할 수 있었다. 북벌 다툼은 있었으나 그 바람은 안이 아니라 바깥을 향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향한 구밀복검(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속에는 칼을 차고 있음)을 알아챌 수 없었다.    

 

 

 

 

 

 

 

 

 

앞서 선조 때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에 대한 개혁문제로 소극적 기성사림과 적극적 신진사림의 갈등이 발발한다. 훗날 이조전랑직을 계기로 김효원을 주축으로 하는 신진사림(동인)과 심의겸을 주축으로 하는 기성사림(서인)으로 나뉜다. 또한 정여립 모반사건과 정철의 건저의 문제 등으로 동인이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분리된다.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또 편먹기는 얼마나 쉬운지 오늘날에 견주어볼 때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참 대단했구나 싶다. 현종 때에는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에 대한 복상 기간과 궁중의례 적용문제로 서인과 남인의 입장차가 생기는데 1차는 서인이 이기고 2차는 남인이 이긴다. 이를 예송논쟁이라 한다. 예송논쟁 후 잠시 남인이 실권을 잡게 된다. 이후 왕권이 바뀌어 숙종이 오를 때까지 북인과 동인,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집권하며 꽤 균형적인 붕당정치가 운영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숙종 때 경신환국을 계기로 판세는 뒤집힌다. 왕위에 오른 숙종이 당시 집권세력인 남인을 신뢰하지 못해 다시 서인을 불러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숙종 때 집권하게 된 서인은 왕위계승 문제로 다투다 다시 (보수)노론과 (진보)소론으로 갈라진다. 기사환국(경종의 왕위계승 문제)으로 잠시 남인에게 실권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장희빈 소생의 경종 다음으로 경종의 배다른 동생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오래도록 집권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평균수명에 비해 유난히 수명이 길었던 영조 재위기간이 50년 이상이었으니 거의 일당독재화 되었던 셈이다. 영조와 노론의 입장이 늘 같았는지는 모르지만 노론의 입김이 워낙 세서 영조 또한 노론의 눈치를 살피는 현실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소생인 영조가 재위기간 내내 왕좌에서 쫓겨날까 불안해한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노론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소론과 남인의 편에 섰던 사도세자는 늘 노론의 음해에 시달렸다. 사도세자가 왕좌를 노리기 위해 그랬는지, 정말로 옳은 소리를 내기 위해 그랬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의 뉘앙스는 후자 쪽이다. 사도세자는 철저히 피해자로만 그려진다.  

또한 사도세자는 아내 혜경궁 홍씨가 서인 집안이었기에 장인 홍봉한을 주축으로 한 세력에 늘 견제당했다. 혜경궁 홍씨 또한 지아비가 아닌 가문의 편을 들면서 사도세자는 늘 외로운 싸움을 강행했다. 언제나 가지지 못한 쪽은, 간절한 쪽은 소수인 적이 많다. 영조 또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픈 의지와 욕망이 강한 임금이었기에 노론 못지않게 사도세자의 속마음을 의심했다. 아버지로서의 영조와 이 나라 최고 통치권자의 영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숙종 때 명분 뿐인 탕평책을 시행하면서 다음 왕인 영조도 이어갔지만 서인 중 노론이 거의 모든 정치를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공평하게 힘을 실어주는 붕당정치는 어려웠다.   

 

 

 

 

 

 

 

 

 

사도세자는 그 싸움중 음해와 시기 속에 희생되었다. 사도세자가 소론과 남인의 손을 들 때마다 눈엣가시로 여겼던 현 실세 노론은 강경하게 대처했고 하다못해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비행과 정신병에 대한 거짓 상고를 올리기까지 한다. 물론 실제 사도세자가 그랬을 수도 있다. 역사의 진실을 100% 알 수는 없지만, 사도세자의 삶이 한 나라의 세자로 위엄있게 살아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왕의 아들이었던 셈. 게다가 아내 혜경궁 홍씨 또한 사도세자의 편이 아니었으므로 일평생 어깨에 짐이 두 개 얹혀진 것처럼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 또한 사도세자의 비행과 정신병이 진짜였다고 보면 논할 의미가 상실되는 게 사실이다. 여하간 세상은 노론의 천하일색이었을 것이다. 견제세력 없는 집권세력의 횡포와 만행쯤이야 쉽게 짐작되고도 남는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 후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정조가 되면서, 노론 강경파 대신 소론과 남인을 등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연민과 노론세력에 대한 견제가 그의 정치 원동력이었다. 어느 정도 붕당교체가 일어나면서 새바람이 불어온다. 이때 등장한 남인 중에 정약용과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같은 인물들이 있다. 정조는 양반 뿐 아니라 그동안 세력에서 배제되어 있던 서얼 출신도 과감히 등용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발굴했다. 정조 집권기에는 비교적 영조 때와 비슷하게 어느 정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고, 정당 또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애썼으며, 보잘 것 없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화성으로 이전하는 등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조의 최대 딜레마는 아버지를 따르면 어머니가 울고, 어머니를 따르면 아버지가 운다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고민과 시름이 얼마나 크고 깊었던 것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다.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차차 바로잡아가면서도, 어머니의 가문에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하지 않는다. 그는 연산군은 물론이고 광해군과도 달랐다. 지금도 정조는 조선후기를 통틀어 가장 어진 왕으로 평가된다.(세종대왕도 계시긴 하지만 아버지가 태종인데다 수양대군(세조) 같은 아들을 남겼으니 업적을 벗어나서 보면 돌연변이 왕 같다)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 벽파를 배제하고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던 시파와 남인에게 대거 기회를 주었으므로 정조 집권기에는 노론이 칼을 갈고 있었다. 정조의 죽음 후 할아버지 영조의 계비이자 자신의 할머니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정약용 등 관련 인물들은 대부분 유배를 당하면서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몰아친다. 조선후기의 역사는 이와 같이 당파싸움을 빼고나면 남는 게 없다. 외부침입으로 인한 전쟁 같은 걸로 힘빼지 않아도 됐으니 왕위계승다툼 대신 백성들과 국가를 위해 에너지를 썼다면 조선사와 근대사는 물론 현대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배경과 붕당정치의 숲을 생생하게 살려놓은 것이 특징이다. 비교적 사도세자의 편에서 서술했고, 뒤주에서 죽었다는 사도세자의 숨겨진 인생을 되살렸다. 내내 생각했다.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영조는 정확히 51년 8개월을 왕위에 있었다. 본인의 컴플렉스로 인한 불안과 자체 욕망도 컸지만, 때문에 더 큰 그림을 볼 줄 모르고 자식을 희생시킨 잘못이 크다. 형이었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의심과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실망이 그의 재위기간 중 업적을 많이 가리는 것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어진 사람이라도 직접 자리에 앉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하물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일이 잘나고 어진 왕 하나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백성이 되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모두가 '예스'라고 외칠 때 '노'라고 말하는 왕이었으니 적어도 욕망으로 꽉 찬 탐욕스런 왕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가설이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왕이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나서도 맘 편할 수 없는 배경들이 많다. 영조의 생명줄이 이토록 길었다면 살아생전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했을지 모르겠다. 당시 노론세력이 굉장했고, 세손 이산이 아버지와 뜻을 같이했다면 설사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고 해도 그는 물론 세손 또한 안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도세자와 정조가 당시 노론세력을 완전히 잡고 진정한 탕평책을 공고히 한 채로 역사가 흘렀다면 조선후기의 왕조사는 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조가 죽자마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세도정치로 인해 흉흉해진 세상에 흥선대원군이 힘을 행사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문' 보다 '무', '글' 보다 '칼'의 성향을 지녔다는 사도세자니까 조선은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지만, 그럴 수 있어서 나는 참 재미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봤으면 싶기도 하고, 권력이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 수 있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조선시대 당쟁사>는 한국사 수업을 듣던 교수의 조선후기 당쟁을 공부하기 위한 추천도서,  오세영의 <북벌>은 내 관심도서, 읽은 책은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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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 개의 별_카오스와 코스모스
    from 너의 의미 2013-06-27 07:03 
    18세기 조선을, 사화와 붕당을, 숙종과 영조와 정조를, 연암과 다산을 좋아한다. 아마 조선을 통틀어 많은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대목일 것이다. 그 복잡한 붕당의 흐름과 권력암투을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있어서는 안될, 없어도 좋을 당파싸움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현대와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지 또 융합되지 못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무엇보다 이 시대 얘기들은 무궁무진하고 권력구도와 학문, 사상적 일대기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사
 
 
2011-09-12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3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9-1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가설이라고 하지만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은 그리 나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이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하는 사람이 간신배들에게 쉽게 모략에 빠지고 죽어 나간다는 사실이죠. 독해야 살아 남으니 말이에요.
지금도 정치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도덕성이라는 뒤주에 갇혀 죽이고 또 다시 세를 나뉘어 너가 옳다 내가 옳다하며 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10.2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곽노현 교육감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발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꼼수도 보이니 말입니다. 조선의 당쟁사처럼 권력에 대한 다툼만 있고 민생에 대한 선의 경쟁 따위는 없어진지가 오래죠. 이렇게 쓰다 보니 슬슬 열 받는 것은 사실이네요. ^^ 인간의 권력욕 그 무한한 욕망의 끝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추석 때 정신 없으실 텐데 이런 학구적인 책도 보시고 욕심쟁이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9-14 12:45   좋아요 0 | URL
히히. 루쉰님, 좀 쉬었어요? 수고했어요.^^ 저도 학구적인 사람이 되고싶어요. 방대하고 해박한 예술,문화,역사 블로그 개척이 사실 꿈인데..^^ 저는 천성적으로 루쉰님을 존경하는 루쉰님같지 못해요.ㅠㅠ 그런데 스마트폰 엄청 힘드네요.흑흑. 사도세자는 이름만으로도 아파요. 저는 요즘 네이버블로그해요. 서양미술사 포스팅하는 지인 동생이 있는데 읽고 소화하느라 숙제같아요.ㅋㅋㅋ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경제방송 보고. 가끔 루쉰님 뭐하고 계실까 생각해요. 난 더 학구적인 여자가 될게요. 루쉰님은 자주 오기나 해요! 문제집 리뷰 다음으로 하루키를 보여줄게요.ㅋㅋㅋ 부활은 너무 아까워서 성경처럼 읽고있어요. 혹시 모를까봐서요.^^ 헤브 어 나이스 데이!!!^^
 

 

 

중학교 때다. 조별로 돌아가며 하는 발표수업. 전지에 시해석을 해서 조장이 발표하는 국어시간. 그날 발표자는 나였다. 남 앞에서 떠드는 건 딱 질색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조장이 되었고 반드시 발표를 해야 했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또 막상 닥치면 떨지는 않는 편이라서 좋든 싫든 멍석 깔아주면 곧잘 했는데 그날은 선생님께 된통 혼이 났다. 읽지 말고 다 알아듣도록 설명하듯이 하란 말이야. 나는 다시 했다. 거기부터 다시. 나는 또다시 했다. 몇번 실랑이가 반복된 끝에 짜증이 났다. 그러자, 아아, 안 되겠다. 다음 시간까지 더 보충하고 연습해서 다시 하자. 에잇, 그럴꺼면 자기가 하든지. 내가 선생이야? 짜증이 왈칵 솟고 쪽팔림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그냥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는 [청포도]였다.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지금은 배경지식이 널널하니까 이 시에 대해 혼자서 세 시간도 떠들 수 있지만 중3 때는 그렇지 않았다. 거기다 내용보다 발표력에 더 문제가 있었으니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읽고 또 읽고, 설명하고 또 설명하면서 다음 국어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발표를 끝냈을 때, 선생님이 꿈이 뭐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선생님 해도 잘 하겠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흠, 그렇게 잘 했나?ㅋㅋㅋ 앞시간의 쪽팔림을 만회한 건 뛸듯이 기뻤지만 선생님이라니 세상에, 나는 전혀, 네버!!! 선생님 할 생각이 없다고!!! 쳇!!! 흥!!!  

하지만 나는 종종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의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낭송을 하지는 못했다. 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슴 뛰는 일이었다. 시대를 빼고도 흰색과 푸른색의 시각적 대비, 알알이 열린 청포도 같은 행의 풍성함이 청량하고 따뜻한 기운을 주는 시다. 예쁘고 아름답다. 청포도라니, 청포도. 꺄악!!! 3=3=3=3=3=3 나는 청포도맛 사탕을 엄청 좋아한다.

 

 

그것도 최근엔 영 드문드문, 잊고 있었던 이 시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준 건 어제 방영한 김동완이 이육사 역할로 열연한 광복절 특집 드라마 [절정].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그가 이토록 격렬한 독립운동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인은 책상에서 글만 다루는 줄 알았지 총을 들고 싸우기도 하고, 옥중에서 고문을 감내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 역사 속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글과 시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시대였음에도 내게는 무지한 면이 있었다. 

드라마를 첨부터 본 건 아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유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안락함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의 절절한 고민과 방황이 드러났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지만 자식의 죽음소식 앞에서도 울음과 함께 밥을 삼키고 하나밖에 없는 여인을 두고 떠날 때에도 뼈저리는 눈물을 참을 줄 알았다.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지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고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의 목숨과 미래를 부지할 수 있음을 알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뒤에서 눈물을 삼킬지언정 앞에서는 당당하고 진중한 남자로 남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훌륭한 독립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자신의 목숨과 피와 눈물을 조국 앞에 바쳤다. 

자신들을 좇는 친일파 일당을 쏠 기회가 있었건만 그는 한 번 망설이고 두 번 망설이다 목숨보다 소중했던 동지를 잃는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오래도록 시를 쓰자 했고 누군가는 폐병을 앓는 자신에게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 소리쳤지만 그는 순응하지 않았다. 후반 그의 인생은 늘 쫓고 쫓기고 잡혀가고 고문 당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로인해 얻은 폐병은 동지들에게조차 버림받을 위기에 처하고 스스로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자신의 꿈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핍박받던 시절, 한순간 사랑해주고 일평생 떠나버리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란 어떨까. 여인에게도 분노와 열정은 있는 법. 그녀에게도 세상은 바꾸고 싶은 대상이었고, 그녀 안에도 자유를 갖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을 것이란 점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하지만 여인이란 어떤 존재던가. 남자의 기둥, 남자의 쉼터, 남자의 보금자리 아니던가. 여자는 오래도록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떠나버린 남자의 빈자리를 지키며 그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혼자 그의 아이를 낳고, 투정부리는 아이 입안에 밥을 넣어주고, 아프면 들쳐업고 한달음에 의원으로 뛰어가 동동거린다. 그렇게 한순간의 폭풍같은 일상이 지나면 기약없던 남자가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온다. 새처럼 자유로운 비상을 시도했다 절망과 체념의 상처로 지쳐 돌아온 남자에게 그녀는 그까짓 일상의 고단함을 단 한톨도 토로할 수가 없다. 없어서 또다시 검은 울음을 삼킨다. 붉은 투지를 불태운다. 살아야 한다고.

이번에는 오래일까 기대와 불안에 휩싸이면 남자는 다시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인사만 없는 게 아니라 기약도 없다. 떠남을 알지만 기약이 없어 붙잡지도 애원하지도 못한다. 잠든 척 울먹인다. 애원할 때도 있었다. 고문을 견뎌내고 석방돼 돌아온 남편을 잠시나마 돌보는 것이 그녀에게 허락된 그와의 시간 전부였다. 조심스럽게 둘의 미래를 꿈꾸자면 남자는 제 작은 가슴 안의 터질 듯한 열망으로 미쳐버릴 듯하다. 그녀와 같은 행복을 꿈꾸지만 조국의 독립이라는 자유에 대한 열망 또한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열병으로 아이를 잃고나도 남자는 멈출 줄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원동력이 된다. 그는 피와 울음으로 꾸역꾸역 밥을 삼킬 뿐이다. 여자는 안다. 남편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떠나는 발걸음은 물론이고 그의 안에 든 열망과 분노, 욕망 또한 자신이 붙잡아 매어둘 수 없다는 것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 그는 북경에 있는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죽을 때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발설하길 거부했고 죽기 직전 옥중에서 피로 시를 썼다. 인생 대부분이 그랬듯 완강하고 고고하게.  

 

시를 읽는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 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맞다. 이 때에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온다는 초인을 기다렸었다. 목놓아 부르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나는 기다렸다, 오랫동안, 간절하게. 산맥과 산맥을 넘어 들판에서 들판으로 또 하늘로 세상으로 막 날아오르는 듯한 이 시가 나는 좋았다. 씩씩해서 좋았다. 울컥해서 좋았다. 기다림이 즐거울 것 같았다. 씨를 뿌리고 싶었다. 그랬었다. 하지만 정말 좋았던 시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바로 이 시다.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하는 행에선 특히 손에 잡힐 듯한 절묘한 묘사력에 전율이 일어난다. 그의 절정도 이 시를 쓸 때였을까. 그렇다면 무엇의 절정이었을까. 이 시에는 분노와 절망으로 얼룩진 패배감에 몸서리치는 남자의 모습이 절절하기만 한데. 물론 모든 것을 간단히 눌러버리는 불타는 투지도 함께 읽힌다. 우리가 절정이라 부르는 것들은 보통 아주아주 행복할 때가 아니던가. 그에게 있어 절정이란 분노와 슬픔의 최고조였단 말인가. 아아, 다 이해할 수 없겠다. 다 이해할 수 없다고만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이렇게 말해도 내가 뭘 얼마나 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슬픔, 분노, 절망, 패배, 아픔, 가슴벅참, 미래, 희망, 꿈에 대해서.  

어제는 66주년 광복절이었다, 교과과정에 버젓이 한국사가 있음에도 삼일운동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데 광복절 또한 어린 세대에게 그저 그런 쉬는 날 이상은 아닐 듯. 또한 광복은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의 식민지였다 풀려난 날을 66주년이나 기념한다니, 썩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잊을 수도 없다.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어떻게 얻어냈는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칭찬 일색, 내용 또한 흠잡을 데 없다. 나는 기념일 특집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지만(진부하다고 생각함) [절정]의 몰입도는 최고였다. 엄마가 거실 컴퓨터로 조용필 노래를 듣고 맞고를 치는 와중에도 나는 꿋꿋이 볼륨을 높여가며 봤다.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가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고민했고 그의 결단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는 그가 사랑한 단 한 명의 여인처럼 기다렸다. 그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때에 나는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그의 고통에는 함께 아팠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리의 자랑스런 독립투사들은 역사 속에 셀 수 없을만큼 많다. 그중엔 잊혀진 이도 있고 기억되는 이도 있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그들의 지난하고 붉었던 삶을 기억해줘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누구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이다. 운좋게 그들이 꾸려놓은 세상에 들어와 내가 만든 세상인양 잘 살고 있지만 조금만 빗나갔으면 내가 겪을 수도 있었던 내 인생이다. 소리내어 그의 시를 읽는다. 절정에서 꽃은 꺾인다는 진리를 곱씹으면서.  

 

 

 

 

 

 

 

 

 

+ 김동완은 더 멋있어졌다. 에릭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이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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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8-1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내내 생리통으로 뒹구느라 TV를 못 봤는데, '절정'... VOD가 올라오면 꼭 봐야겠어요. 그런데 김동완이라면... 예전에 아이돌 그룹 가수였죠? 요새는 연기를 하나 보네요?

아이리시스 2011-08-16 12:23   좋아요 0 | URL
제가 TV를 보면서 썼더니 오타에 비문장 천지인데 조선인님이 계셨군요. 되는데로 고쳤어요. 드라마 괜찮았어요. 김동완은 예전에도 연기를 했었는데 크게 빛을 보진 못했죠. 키가 좀 컸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좀 아쉬워요. 어제보니 연기는 물이 오른 것 같았는데, 전역하고 처음이니까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1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봤어야 했어요.
그 끈적끈적 비오는 캠핑장에 있지 말고..ㅠㅠ
저 잘 다녀왔어요. 정말 이제는 노는거 끝이예요. 여행다니는게 이렇게 지겨웠던 적이 없네요.
집에 돌아와보니 일년에 한 번 있는 광복절날 태극기도 안 달고 놀러갔었다는게 좀 기분 안좋았어요.
애국자는 아니지만...ㅎㅎ
다시보기로 봐야겠네요.

아이리시스 2011-08-16 13:03   좋아요 0 | URL
저는 [절정] 보지말고 그 캠핑장에 있어야 했어요.ㅠㅠ 재밌었죠? 말은 이렇게 하셔도 완전 즐거우셨을 거예요. 하하하하. 저희집엔 태극기도 없어요. 국경일 올때마다 태극기 제대로 그릴 수 있나 그려보거든요. 정말 맨날 헷갈려요. 이거 좋아요. 저는 몰입이 잘됐어요. 그런데 다른 분도 아니고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특집드라마가 신기하긴 했어요~ 사진 보여주세요, 사진. 얼마나 즐거웠는지 구경하게요.ㅋㅋㅋ

stella.K 2011-08-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괜찮았나요?
예전에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을 드라마로 했다 말아 먹은 걸 봐서
아예 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
저 청포도 시 보니까, 저는 얼마 전 이정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청포도 사랑>이나 생각하구...ㅜ
캬~! 전 이렇게 문학적 소양이 없으니 뭐에다 써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엉엉~

아이리시스 2011-08-16 15:39   좋아요 0 | URL
기대를 안하고 봐서인지 더 좋았어요. 제가 김동완을 원래 좀 좋아하고, 아마 [청포도]에 관한 추억이 있어서였을 거예요. 이육사 드라마라기에 더 집중하고 봤거든요. 언론기사에서도 좋은 평 받는 걸 보면 무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무난했어요. 이미륵은 누구예요? 아아, 스텔라님이 문학적 소양이 없다고 하시면 저는 어쩌라구요. 저는 전공도 이쪽인데, 엉엉엉.

마녀고양이 2011-08-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페이퍼 너무 좋아요..
이육사 님은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예요 (하기사 싫어하는 시인이 있긴 할까요? ^^)..
저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에서 시작하여 '하얀 모시수건'까지 몽롱하게 읽곤 해요.
가장 중요한 해방에 대한 염원이 가득한 시들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향에 대한 꿈 같아서 좋아해요.

하지만..... 그 시절에 살았던 분들, 참 서글퍼요. 그죠?
자의가 아닌 타의와 시대에 의해서 인생을 선택해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서글프고 속상해요.
어제 드라마 <공주의 남자> 연속 방송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ㅡㅡ;;

아이리시스 2011-08-17 00:17   좋아요 0 | URL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을 수록 우리 시인, 우리 작가들이 좋아져요. 지금이야말로 한국문학전집을 빠뜨림 없이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해요. [무진기행]이랑 [광장], [무정]은 정말 좋아하는데 이제 다른 작품을 발굴할 때!

참, 저도 그래요. 이상향에 대한.. 시대와 연관짓지 않아도 시가 굉장히 멋져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그러면서도 또 신비롭고.

저는 이상하게 [공주의 남자]도 그렇고 [무사 백동수]도 그렇고 요즘 사극이 왜 이렇게 뻔한가 싶어요. 사도세자는 이제야 뭘 좀 할 줄 알았는데 뒤주에서 도망치다 칼에 맞아죽고, 계유정난은 싱겁더라구요. 애들 말투가 어색해서 몰입도 잘 안돼요.ㅠㅠ 그 조신하고 예뻐보이던 문채원이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역사를 살아낸다는 자체가 원래 슬프고 서글프고 속상한 건가 봐요, 마고님.

비로그인 2011-08-1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드라마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놓쳤네요 ㅠㅠ
저는 서정주의 시를 더 좋아했지만 가끔가다 이육사 시를 읽으면 번쩍하니 번개 맞은 듯한 기분이 들곤 해요. 시에 담긴 결연한 정신이 체감되는 그런 느낌이요. 저는 예고편 보면서 신성록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8-17 00:20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 님은 전공차원에서 드라마 보시면 좋을 듯. 서정주도 좋죠. 이상화도 좋고. 저는 서정시인도 좋지만 저항시인도 좋아요. 어릴 때는 전투적이고 강한 시들을 쓰는 시인들이 별로였는데 크면서 오히려 그런 걸 쓰는 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니 그런가 봐요. 시대를 넘어 전해오는 열망과 의지가 멋져요. 물론 그들이 멋져 보이려고 쓴 시들은 아니지만..

예고편 볼 때 김동완이 신성록처럼 보였나 봐요. 아님 나왔는 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1부 초중반은 거의 못본 것 같은데.. VOD 다시 한 번 돌려보려구요.

blanca 2011-08-1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드라마 칭찬이 많더라고요. 꼭 보고 싶었는데 아이리시스님 페이퍼 읽으니 어떻게든 봐야 겠습니다. 뭉클하네요. 이육사 시 너무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1-08-17 00:31   좋아요 0 | URL
제가 유독 이육사 시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들자 어제 그 드라마 하는 줄도 몰랐는데 우연히 틀어서 보는 내내 이 페이퍼를 써야지 하고 맘 먹었답니다. 블랑카님도 꼭 보세요. 시를 자막으로 처리해줬음 좋았을텐데 내내 낭독만 하더라구요. 그게 좀 아쉬웠답니다.

cyrus 2011-08-1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봤어요. 전 왠만해서 기념일 특집극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아무래도 너무나 유명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라 안 볼 수가 없었어요. 이육사 평전도 있었네요. 시인의 삶이 더 알고 싶어졌는데 읽어봐야겠어요 ^^

아이리시스 2011-08-17 00:32   좋아요 0 | URL
평전 재밌겠죠? 시루스님이랑 딱 어울리는 책이에요. 드라마 봤으니 이제는 평전?ㅎㅎ

꿈꾸는섬 2011-08-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드라마 봤어요. 예고하는 것 보고 시간 기억해두었다가 보았죠. 아이들 점심 주는 시간에 2부가 시작되어 앞부분 약간 놓쳤지만 감동 그 자체였어요. 제가 막 울었더니 우리 현수가 엄마 눈물을 닦아주더라구요. 드라마보며 감정이입해서 눈물이 주르륵~~~

아이리시스 2011-08-18 10:44   좋아요 0 | URL
우와, 현수가 귀엽군요. 그 모습이 더 가슴 찡하네요. 드라마도 뭔가가 철렁하면서 가슴이 찡하던데, 아이들 보여주며 역사공부 시켜도 참 좋았겠더라구요. 저는 어릴 때 이런 드라마 싫었는데, 시대상 다루고 인물 일대기 다루는 거요. 위인전도 최고로 싫어하고. 그런데 엄마가 잘 인도해주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텍스트가 워낙 많아서 금방 이해하고 배울 것 같아요. 김동완이 더 좋아졌어요. 어쩌면 좋아요?ㅎㅎ

블루데이지 2011-08-1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이리시스님...처음인사드려요~
안그래도 못봐서 후회하던 드라마였는데...아이리시스님께서 쓰신 페이퍼를 읽게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되네요!
오랜만에 이육사님의 시도 읽고...보기만 해도 가슴따끔따끔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청포도맛 사탕 좋아해요~~ㅋㅋ**

아이리시스 2011-08-18 10:55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안녕하세요? 이름이 정말 예뻐요. 요즘 컨텐츠는 다 돈을 담보로 하니 저는 다운 받아놨는데 다시 볼 시간이 없네요. VOD도 좀 있음 결제 풀리겠지만.. 시도 좋고, 드라마도 감동이고, 혼자만의 감동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들 공감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예요. 모처럼 청포도맛 사탕 사먹으러 가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블루데이지님.
 

 

 

어제 저녁 내 눈에 들어온 책은 에세이 두 권.  

하나는 프랑스 여자들을 말하고, 또 하나는 동유럽 여행기인데 둘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동시에 읽어줘야 하는 의무감을 갖게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유와 구속이 공존하고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손꼽는 1순위 대륙 유럽. 중에서도 동유럽. 더불어 문화, 예술, 자유를 표방하는 파리지앵의 도시 파리는 참기 힘든 궁합이 분명하다. 둘은 서로에게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지만 정작 제3자인 나는 둘 사이에서 널을 뛰는 멜로의 여주인공 즉, 양다리의 여왕이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은 어젯밤 모래 한 줌을 억지로 움켜쥐고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안쓰러운 나를 다독여주었다. 동유럽으로의 여행과 프랑스 여자들과의 만남이라니. 죽기 전 마지막으로 빌어도 좋을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곧 죽어도 좋았다.

 

 

 

 

카미유 클로델의 비극적 외사랑과 천재적인 예술적 소양 그리고 로댕으로부터 배신당한 후 억눌린 재능으로부터 나온 광기가 다시 태어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라면, 작가이자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자유와 살아있는 나비의 대명사였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로망이다.   

[슬픔이여 안녕]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는 것보다 그녀에게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녀를 동경해서라기 보다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자유로움 그 자체를 동경해서인 것 같다. 열아홉에 쓴 단 하나의 소설로 일약 스타작가가 된 그녀는 어린나이에 모든 고독과 영광을 경험해서인지 죽을 때까지 마약과 도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담배 한 개비 피워보지 못하는 나와는 정반대라야 정반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클로델이 동경이라면 사강은 더 동경이고, 영부인의 자리를 버리고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 날아간 세실리아는 더더 동경이다. 손아귀 권력과 타인의 동경을 위해 불행마저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과감히 내려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평생 알 수도 없겠지. 나는 영부인이 아닐 테니까. 에잇.   

 

 

 (프랑수아즈 사강 作)

 

 

하지만 더 대박은 세실리아의 자리에 이탈리아 최고의 패션 모델이자 가수인 카를라 브루니가 왔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지금도 뉴스에서 간혹 사르코지 대통령 옆 또는 한걸음 뒤에 조신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여자가 평생 사회생활을 안 해도 먹고 살 만큼의 경제력을 갖춘 부모 아래 유명세를 노린 테러를 피해 프랑스에서 명문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어서 잠시 팽하다 말았다. 윌리엄 왕자의 케이트 미들턴처럼 신데렐라는 아니었구나. 언젠가 조지 부시는 사르코지 부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브루니를 본 순간 사르코지가 왜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데,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시작은 누구나 그렇다지요. 사르코지 대통령도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데 그들의 마지막은 과연 처음보다 아름다울까요? 저의 밤이 당신의 낮보다 아름다운 것처럼.

또한 이자벨 아자니. 난 줄리엣 비노쉬를 더 좋아하기에 가볍게 패스하려 했지만 워낙 대단한 이 여자의 필모그래피가 한 줄로라도 그녀를 저장하고 싶게 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리. 워낙 유명한 영화들이니 존재만으로도 장악의 기운이 뻗치는 듯. 개인적으로 [여왕 마고]는 거의 10년을 벼르던 거라 다음 기회에. 응? [카미유 클로델]은 정말 좋았어. 그래, 좋았지. 자자, 다들 영화 보세요. 

특히 빅토르 위고의 숨겨진 둘째 딸 아델의 일대기를 다룬 [아델 H 이야기]는 줄거리만으로도 사로잡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너무 잘난 부모를 둔 자식은 많은 걸 누리는 것과는 반대로 본인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진다. 아버지의 명성을 넘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을 아델이 오늘날 부모의 영광 아래 덕 보려는 자식들이나 부모 등골 빼먹는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여배우가 몇 나오고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를 썩 즐기지는 않는 관계로 여기까지. 차라리 목숨 걸고 투쟁하다 죽어간 잔다르크 페이지가 난 훨씬 맘에 든다. 아름답자고 만들어져 카메라 앞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을 혁명가와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는 법. 그 외에도 보부아르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무엇보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 따로 평가받기를 바라지만 여자로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동맹자적인 관계와 사랑을 빼먹을 수 없다.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고 소유하고 나면 갖고 싶어지고 가졌다 싶으면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이들은 남과 여, 음과 양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재로서 진정 이해받고 이해했으니 죽어서도 부러울 게 없을 듯. 커플이라는 건 한 사람만 변해도 깨지기 마련인데. 이 커플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부럽다, 부러워.

 

애초에 제자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로댕은 그녀의 개성과 뛰어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제자를 받아들인다. 카미유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존경심과 더불어 사랑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하던 카미유는 스물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로댕에게서 아버지 같은 강력한 존재감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로댕에게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며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로즈 뵈레라는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먼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후 10년 동안 열렬한 사랑을 하는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다. 카미유는 그의 제자였지만 협력자였고 동시에 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였다. 이때 그녀를 모델로 한 많은 작품과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pp.34-35)

 

나도 누군가에게 뮤즈가 되고 싶다. 이제보니 로댕은 주몽 다음으로 여자 등쳐먹어 성공한 남자 되시겠다. 물론 자신의 성공이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은 누군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 못한다. 그 절반의 성공은 오로지 카미유의 희생과 눈물과 외로움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정신병원 감금 30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어쨌거나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겠다고 약속하는 남자의 마음은 거짓이라는 걸. 물론 로댕은 카미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도 없다. 그에게 카미유는 특별하긴 했어도 그저 그의 곁에 있는 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여자들은 남자를 믿지 말아야 한다. 믿었으면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카미유가 고독과 광기에 몸부림 치다 가족들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감금돼 생을 마감한 것처럼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만 남자에게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해야 한다. 남자는 자기가 가진 그 무엇과도 여자를 바꾸지 않는다. 그의 곁에 남는 사람이 내가 되면 좋겠지만 대부분이 그 반대인 것 같아 슬프다.  

이렇게 쓰는 지금 나는 또 하나 알겠다. 남자에게 예술은 여자보다 강하다는 걸. 아니, 예술가에게 예술은 여자보다 강하다고 해야 말이 맞나. 

 

 

 

 

이건 현재 첫 번째 챕터 [프라하] 편만 읽었다. 유럽여행 당시 나는 프라하에 대한 다분한 갈망이 있었고 비엔나에서 프라하까지 버스로 다섯 시간이 채 안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도 있었지만 체코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국가라 과감히 패스했다. 동유럽권은 솔직히 두렵고 겁도 났다. 왠지는 모르겠다. 프라하는 슬펐다. 먼 훗날 그곳에 가면 카를교에 서야 할 텐데 뛰어들어 죽고 싶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 차라리 안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슈타트와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는 아쉬웠지만. 그런데 바로 첫 챕터에서 프라하를 온통 훑어준다. 앗싸, 프라하 갈 필요 없네.  

난 그냥 프라하 성을 상상하다 시간이 되면 카프카와 흐라발을 읽어주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 장은 크로아티아인데 기대된다. 이상하게 동유럽은 슬프다. 역사를 많이 알지도 못하고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그나마도 온전히 마음으로 전해지니 이상한 일이다. 기운이 다르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어딘지 모르게 고독의 향기가 묻어있는 지명의 도시들 아닌가. [굴라쉬 브런치]는 워낙 유명했어서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에세이지만 동유럽에 관한 일기라는 점에서 이곳저곳 섞인 발랄한 여행일기보다는 애틋하다.  

 

 

 (흐라발 作)   

 

 

 

 (카프카 作)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나처럼 쿤데라가 최고.  

 

 

 (쿤데라 作) 

  

 

예술은 넓고 읽을 책은 많고 볼 영화도 많다. 그보다 더 많은 게 할 일이고 그보다 더 하고 싶은 게 글쓰는 일이고 그보다 더더 하고 싶은 게 뭘까. 우선 책을 쌓았다. 높을 수록 좋았다. 배가 고팠다. 읽어 치운다. 내 안에 쌓이는 건 분명 양식인데 그보다 먼저 위안을 얻는다. 정체모를 것들을 자꾸 배워간다.  

책을 읽으면 배가 든든해지진 않지만 세상이 자꾸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특히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쓴 글들이 좋다. 그들은 내가 겪는 감정들을 다 겪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위로다. 책을 몇 박스 사고나면 해소되는 지랄맞은 물욕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치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장바구니를 한가득 채워둔 걸 보면.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꿈꿨던 프랑스 여자들에게는 있고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없는 것. 자의식. 너무 강해도 본인을 망가뜨리고 약해도 본인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것. 실체없는 그것을 향해 똑바로 서서 배워야 할 것이다. 어째서 프랑스 여자라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말하려면. 말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너무 모른다. 일도 사랑도 투쟁도 가정도 모두 같은 농도로 필요한데 그걸 체득하고 지킬 줄 모른다. 그걸 찾아가는 법을 동유럽으로 떠난 한국 여자에게서 배웠다. 멋진 번역가를 꿈꾸는 그녀에게서 엿봤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그리고 오늘은 또 지나가고 있다. 바싹한 토스트에 싱싱한 방울 토마토와 시원한 우유를 곁들여 먹는 것 말고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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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5-1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올해의 여름휴가는 한 달동안 유럽으로 가려구요.
 라고 - 아주 태연하게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택도 없지요. 헤에.
 프랑스 소설은 별로이지만 사강은 좋아요, 영화도 무척 좋아해요.
 연휴 내내 프랑스 영화만을 보기도 했는걸요. 그런데 난, 외국배우의 얼굴을 분별해 낼 수가 없어요.
 그 배우가 그 배우같아요. 그래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배우가 있는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나쁜 피의 남자 주인공이예요. 아아, 그러니까 그의 얼굴은 수 천가지의 표정이 존재해요.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든 그를 기억해낼 수 있어요. 이름 대신에 그의 얼굴을 난 아주 잘 외울 수 있어요.
 그리고 벨벳 골드마인은 정말 최고였어요. 아직 보시지 않았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성이 짙고 드라마틱도 하거든요.
 남자 주인공은 너무 멋지구요. 락앤롤은 매춘이라는 그 대사는 정말 최고였어요!
 

June* 2011-05-18 17:48   좋아요 0 | URL
 
 몰락의 에티카는 아직 읽지 못했어요.
 여기저기 괜찮다고, 좋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느낌의 공동체 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
 

아이리시스 2011-05-18 17:55   좋아요 0 | URL
알았어요, [나쁜피]랑 [벨벳 골드마인] 꼭 볼게요.
당분간은 여유가 없지만 예전부터 좋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실망하지 마요, 여름휴가를 한 달동안 유럽으로 가는 사람 몇 있겠어요?
꿈꾸다 보면 언젠가 가 있을 거예요. 그럴 거예요.

평론공부 하고 싶던 적 있어서 특히 영화평론집 보면 저는 너무 설레요.
근데 저는 많이 주관적이고 줏대가 없고 온정적이라서 직업으로 삼으면 못했을 거예요. 다행이죠.
이 담에 책 주문할 때 넣어야 겠어요. 좋다고 하니까.^^;;

June* 2011-05-19 11: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평론이라는 것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거지요 ?
 주관적이고 줏대가 없고 온정적이더라도 평론이 직업이 되어버리면
 아무렴, 달라지지 않겠어요 ? ^^
 
 여름 휴가는 전국일주로 정했어요. 아이리시스님이 머무는 곳은 빼놓구요.
 그곳엔, 시댁이 있거든요. 헤에.
 

아이리시스 2011-05-19 12:0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시댁이 있단 말이죠? 여기 부산에?
부산남자랑 서울여자랑 사는 거예요? 서울에서?^^

전국일주 멋지네요. 저도 꼭 해보고 싶은 건데, 특히 전라도와 강원도 그리고 섬마을에 가고 싶어요.
어제 문화기행을 떠나는 여행에세이를 발견했는데 꼭 들고 가고 싶은 책이었어요. 평소 생각한 여행지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저는 산으로 꽃보러 가는 거 그런 거 싱거워서 별로였는데, 나이가 들긴 들고 있어요. 산도 좋고 절도 좋아요. 지난 여름엔 하동으로 갔는데 올 여름에도 짧지만 다녀와야 겠어요.^-^

June* 2011-05-19 16:06   좋아요 0 | URL
 
 네, 서울에서요.
 부산 남자와 소박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도에서 살구요. 명절때마다 부산을 다녀오는데 기회가 되면 꼭,
 부산에서 살겠노라고 매번 다짐을 하고 올라와요.
  

아이리시스 2011-05-19 17:00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부산이 맘에 들어요? 저는 생의 전부를 여기서 살고 있어요. 좋거나 싫다고 말할 수가 없을 만큼 오래 살아서 별 감흥이 없어졌어요. 전에 책 받을 때 주소가 서울이어서 서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건 사무실 주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Forgettable. 2011-05-20 09:13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나쁜피]에 젊은 시절의 줄리엣 비노쉬 나와여 ㅋㅋㅋ 진짜 장난아니게 이쁨 ㅠㅠ 그리고 남자 배우는 드니 라방인데 최고에여. 하하

저 아직 파일 있는데 혹시 원하시면..... 메일로 쏴드릴까여? ㅎㅎ

아이리시스 2011-05-20 13:56   좋아요 0 | URL
뽀님. 우리 오랜만이죠?
아참, 맥북이 말썽이예요. 메일에 저장해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가지 않나요?
제가 구해보고 없으면 말씀드릴게요, 그때 보내주세요.^^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다고 들어서 당시 손꼽아둔 것 같긴 해요. 그렇게 예뻐요?
꼭 봐야겠군요, 히히히히히.

잘잘라 2011-05-1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병원 감금 30년!!!
할 말을 잃어요.
ㅜㅜ

아이리시스 2011-05-19 12:13   좋아요 0 | URL
로댕의 냉대에 실망해서 혼자 서보려 했지만 여자라 잘 안됐대요. 로댕과도 싸우고 사회의 편견과도 맞서야 했다나봐요. 여자가 나체조각을 한다는 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웃긴다, 여자 나체가 없으면 자기들이 어떻게 종족번식을 할 거라고. 체쳇.

그러면서 서서히 미쳐갔어요. 로댕이 그녀를 사랑하고 감싸줬으면 그녀는 괜찮기도 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무너져가는 걸 가족들이 못 봐서 정신병원으로 보냈대요. 아참, 카미유는 아들을 지독히 편애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대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육시킨 건 아버지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결핍과 로댕의 사랑결핍에 늘 힘들었을 거예요. 로댕과 카미유는 정말로 유명한데 1:100에서 문제로 나왔을 때 한 개그맨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해서 충격 받았어요.

음.. 모를 수도 있죠. 저는 야구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걸요. 이런 것도 어찌 보면 오만이예요. 내가 아는 걸 남이 모르면 무식한 거고 남이 아는 걸 내가 모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요. 반성중이었어요..

pjy 2011-05-1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아, 가고싶군요~

아이리시스 2011-05-19 16:45   좋아요 0 | URL
저두요. 유럽 도시들을 밤새도록 줄줄이 비엔나로 댈 수 있어요. 아이슬란드랑 아일랜드가 요즘은 좋아요. 참, 친구가 아일랜드에 갔는데 엽서를 보내주기로 했어요. 공부하러 간 거라 바쁠텐데 제가 생떼를 썼어요. 이주나 걸린다니까 한참 후가 되겠지만요. 그 엽서에 유럽공기가 묻어오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이지만 생소한 일이라 그애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애가 미니홈피에서 쪽지로 [난 지금 원스의 나라 아일랜드에 와 있어.]라고 했는데 막 두근두근 했어요.^^

pjy 2011-05-20 01:13   좋아요 0 | URL
영화취향도 편협하고 음악도 별루라 원스는 잉? 이러지만 아일랜드라~ 성질 좀 드러운 다혈질사람 많은 곳? 이러구 있습니다ㅋ 유럽공기라......아........

아이리시스 2011-05-20 13:44   좋아요 0 | URL
아일랜드에 승질 드러운 사람들이 사나요? 저는 그저 풍광만 떠올렸을 뿐이랍니다.. 아무렴 어떻고, 어디면 어때요, 흐흐흐, 갈 수만 있어도 좋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놀다올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5-2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홋, 프랑스 여자처럼 말이죠
느낌이 우아하고 날씬한 프랑스 여자처럼 되고 싶어서 샀다가
20페이지 읽고 때려치웠다는거 아녜요. 그렇게 못 될거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여행 가고 시퍼요. 저도 런던 관련 여행 에세이 읽다 말다 하는 중인데. ㅠㅠ

저는 프랑스 문학이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네들은 한마디로 할 수 있는 문구를 10페이지로 꼬아놓을 수 있는 섬세함(재주)를 가졌다 싶기 때문이구요, 또 하나는 그렇게 말 많이 다다다다~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사벨 아자니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정말 멋져요.

음, 그런데 케이트 미들턴이 신데렐라인가요? 엄청 부자 집안이던데, 다만 귀족 작위만 없구요.
저는...... 누군가의 뮤즈가 되기를 절대 거부합니다! ㅋㅋ, 그건 하나의 책임 같잖아요~

아이리시스 2011-05-20 13:53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구나. 귀족 작위가 없어서 그 여자를 신데렐라라고 난리를 피운 거예요? 하긴 설마 나처럼 서민이기나 할라구, 라고 생각하긴 했었어요. 근데 브루니가 더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대단한 집 딸인지 몰랐어요. 대단하다기보다는 돈 많은. 그래서 이 책에 브루니와 사르코지는 순진한 커플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만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너무 잘 안다,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하더니 브루니 임신했다잖아요. 적어도 임기 후 헤어지진 않겠어요! 성폭행 미수 저지른 IMF 총재가 다음 대권에 나갈 후보였다는데 까였으니 한 번 더 사르코지에게 기회가 갈 지도 모르구요. 프랑스 여자들처럼 못될 것 같다에 저도 동감.

프랑스 문학과 영화에 대한 마고님 생각에 저도 동의하는 것 같아요. 너무 재밌다면서 본 건 아니지만 할리우드의 속행이나 한국의 통속성과는 차별화 된다고 생각하며 저는 본 것 같아요. 저도 다다다다 거리는 어감의 불어 싫어해요.

뮤즈는 책임이기도 하군요, 전 그저 팜므파탈이고 싶단 얘기였는데~ 역시 마고님의 시야란 역시^^

cyrus 2011-05-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요즘 영국 여자들의 글에 푹 빠져 있어요, 최근에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재미있게 읽었구요,
지금 읽고 있는게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집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영국이라는 나라가 습한 기후라서 그런지
이 두 작가의 글에도 영국적인 색채가 강하더라구요,, 오늘과 같이 비가 오면서 습한 기운이라고 해야되나요? ^^

아이리시스 2011-05-26 18:2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제인 에어>에 빠져있는 글 읽었는데 좋아요. 버지니아 울프는 나도 전에 [자기만의 방] 샀어요. 에세이집도 보고 싶어요. 영국적인 색채 그거 좋네요. 저는 정원 펼쳐져 있고 팔랑거리는 치마, 그런 거 떠올라요. 근데 대체 그런 건 어디있는 거예요? 영화가 학습시킨 것 같아요.ㅋㅋㅋ 그러니까 [제인 에어] 읽고 싶어요. [테스]도 읽고 싶고. 그냥 책 펴서 읽으면 되는 거죠, 참?ㅎㅎ

버지니아 울프가요.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완전한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당신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믿어주시겠죠. 하지만 나는 이걸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나는 당신의 삶을 소모시키고 있어요. 이 광기가 말이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병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완벽하게 행복했다는 거예요. 모두 당신 덕이에요. 아무도 당신만큼 잘해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맨 처음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에요."]

라고 쓴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네요. 방금 검색했다가.. 되게 예쁜 마지막 사랑이예요. 그죠?

루쉰P 2011-06-2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서 검색이 돼서 이렇게 글을 뒤늦게 찾아서 봅니다. ^^ 당선되신 것 축하드려요. ㅋ

로댕과 카미유의 얘기는 여기서 보고 알았어요. 카미유의 인생이 너무나 처연해 비 오는 이 날 왜 마음이 애잔한지를 모르겠어요. 아이리시스님의 남자에 대한 분석이 어찌 보면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은 버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배신하는 남자라..좀 밥 맛 없어요. 아 물론 저도 남자지만 말이죠. 저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여성도 없어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말이죠. ㅋ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것도 알아 가는 것도 너무 힘든데, 제발 원하는 것은 사랑 때문에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아요. 그리고 차라리 사랑을 한다면 상처를 받아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에 제가 상처 줬던 사람으로 안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소원이에요.

사실 프랑스와주 사강과 다른 프랑스 배우도 그렇고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무식의 극치죠. ^^ 체코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전 여행은 항상 용기도 없고, 겁이 많아서 가지를 못해요. 우리 동네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센스를 자랑하죠. 그래서 경기도 북부의 이 위성도시에서 산지 무려 27년을 살았지만 동네를 잘 몰라요. -.-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곳에 대해 생의 전부를 사신 아이리시스님의 말씀에는 저 역시 똑같아요. 다만 편한거죠. 이곳이 익숙하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여행을 참으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 부러워요. 그런 활달함이요.

아이리시스님과 팜므파탈이라 어울려요. 크흑!! 근데 글을 쓰시는 걸 무척 좋아하시는 아이리시스님이 꼭 자신이 원하시는 것을 쓰쎴으면 좋겠어요. ^^

쿤데라는 저도 읽었으면 하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존재의 밑바닥까지 쓴 글이 좋으시다는 말이 제 감슴에 확 와 닿아요. 전 인간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글을 좋아하거든요. 자신이 자신을 모를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1-08-13 15:05   좋아요 0 | URL
루쉰님, 이 때 댓글 쓴 줄 알았는데 일부러 빼놓은 건 아닐 거예요. 당시 컴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나 봐요. 예전 글 다시 가끔 보는데 이달의 당선작인 거 읽다가 발견했어요. 카미유 클로델과 사강은 꼭 알고 넘어갈 만한 여류 예술가인 것 같아요. 저도 작품구경이나 작품읽기는 거의 못했지만 저도 여자인 만큼 그런 삶들이 동경스러운 것도 사실이예요. 루쉰님은 지금도 충분히 멋진 글을 쓰시잖아요. 진심 부러워요. 우리 더 힘내요~^^
 

 

 

 

  

   
  "이 귀여운 바보 같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요. 내 약속하지만 아무것도 걱정할 거 없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척할 게 틀림없어.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증명하기가 무척 어려운 법이니까. 그가 당신에게 푹 빠져 있다니까 하는 말인데, 그는 당신을 놓치기 싫은 건지도 몰라. 내 맹세하지만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도 그것만큼은 용납하기 어려울 거요." (p.82)  
   

사랑을 나눌 때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정작 상대에게서 모든 것을 얻었다 싶을 때 가차없이 내버리는 것 또는, 나몰라라 하는 것. 남의 것일 때 자기 것인양 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자기 것이 되겠다 하면 저 멀리 달아나 버리는 관계. 임자있는 남자에게 임자있는 여자란 그런 존재. 거기다 이 작품은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여자의 방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 직후, 문 손잡이 소리에 남편이 돌아온 줄 알고 예민해 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어린 아이같이 달래는 불륜남. 그녀, 그러니까 여주인공 키티에 의하면 모든 것을 갖춘 따도남으로 소개되는 찰스를 벌써부터 세글자로 매도할 생각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자꾸 그런 걸 보면 분명히 나쁜놈.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키티가 남편에게서 버려져 자기에게로 해바라기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내 눈엔 다 보여. 에잇, 나쁜놈. 암만 멋있어도 이런 놈은 사양해야 되는데 여자들이 가끔 정신줄을 놔버리는 게 문제야. 쳇, 대체 수컷들에게(더불어 암컷들에게) 사랑이란 뭐란 말인가. 

자기를 엄청 사랑해주는 남편 월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 되려 들켜서 그에게 쫓겨났으면 하고 바라는 키티. 아까 말한 그 문고리 돌리는 소리는 기우가 아니라 사실이었고, 균열은 차차 드러난다. 견디지 못한 건 월터가 아니라 그녀쪽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그가 말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pp.96~97)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런 남자에게 왜 이런 짓. ㅠㅠ 그치만 이해한다. 헌신적인 남자에게 사랑받는 일도 좋지만 나를 미치게 만드는 남자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일도 그 못지 않은 거니까, 키티처럼. 그녀가 월터와 결혼한 건 애초 동생보다 먼저, 더 나이들기 전에, 엄마의 잔소리를 벗어나기 위해서였으니까.  

여기서 싸움의 기술, 말을 많이 하거나 먼저 분노하면 지는 법. 본성이 조신하지 못하고 흥분 잘하는 키티는 조근조근 그리고 또박또박 냉소를 날리며 내뱉는 남편에게 절대로 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00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그들의 싸움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나는 할 일을 해야 했다. 거기다 나는 환상성이 강했다. 미혼이고, 달리 사랑과 결혼을 꿈꾸지도 않았다. 굳이 선택하라면 연애나 동거 쪽이 재미있겠다 생각하는 편. 평생 함께 알콩달콩도 좋지만 약간의 불확실성을 안고, 내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오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쪽. 물론 아슬아슬하게 저울질 할 때가 가장 클라이맥스. 철없는 나는 여전히 남편이 있는 여자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현실은 그와 달라야겠지만 결혼이 주는 책임감을, 기혼의 여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니까. 사실 <인생의 베일>은 인생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직은 삼각관계(그것도 무지 어설픈) 뿐이라서, 역시 읽어야 아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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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3-0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이 글을 읽는데 첫사랑이 생각났어요. ㅠ.ㅠ 나쁜놈!!!

아이리시스 2011-03-05 12:40   좋아요 0 | URL
에잇, 나쁜놈들! 쳇쳇, 퉷퉷!!
기다려, 걱정하지마, 사랑해 하다가 뒤통수치는 이런 나쁜,, ㅠㅠ
그러니까요,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해요, 그죠? 설령 사랑한다 해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관계나 아무 것도 남을 일 없는 관계는 열정을 지펴주는 동기와는 반대로 백해무익한 사랑인 것 같아요. 점점 사랑에 환상이 사라지지만 그래도 찰스같은 놈이라면 제대로 복수해야 하는데. 참, 몇 장 더 읽으니까요, 본색을 드러냈어요. 자기 꽁무니 내빼기에 바빠요, 사랑이고 뭐고 없어요, 나쁜남자가 아니라 또라이 남자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요. 나쁜남자는 멋있기라도 하죠, 아하하하하하하.

점심시간이고 주말이예요, 점심 맛나게 드세요.^^

양철나무꾼 2011-03-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옛날에 페인티드베일이랑 이 책 묶어서 페이퍼 썼던게 있는데 말이에요.
미혼의 발언은 이렇게 도발적일 수 있는 거군요~

아하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에 매료되어 저 아직 점심 못먹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3-05 14:07   좋아요 0 | URL
저는 먹었어요, 어서 점심 드세요.^^
근데, 저는 왜 아직도 알라딘에..............죽치고 있는지 몰라요, 흑흑, 날씨도 좋은데,ㅠㅠ
나무꾼님 페이퍼 보러 갔었어요, 영화 못봐서 완전 기대하고 있는데 장가계였군요. 아직 콜레라 그곳까지는 가는 도중이고, 이제 막 짐 푼 다음이라서, 계속 읽고픈데 빠져드니까 공부에 집중이 안돼서 중간에 끊느라 고생했어요. <싸인>도 계속 뒷부분이 궁금한데 이리 방황할거면, 차라리 확 보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싶네요, 크크.

참, 놀란 건, 그러니까 우리 밑줄그은 문장이 같은 거군요, 하핫. 심지어 나무꾼님은 이달의 당선작이시고~ 그러고보니까 예전에 페이퍼 읽은 기억이 났어요, 희미하게.

실제의 저는 별로 도발적인 사람이 아니예요, 생각이라도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죠. 결혼한 여자가 일탈,, 멍석 깔아줘도 못할 타입이예요, 저희 엄마가 장가계 다녀와서 풍광이 좋다고 늘 자랑했는데 중국이 좋아봤자~ 라면서 심드렁했던 제가 좀 부끄럽겠군요, 영화 보면서.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잘잘라 2011-03-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다하면 정으로 산다,라고.. 어른들 말씀이죠.
사랑이 다하면 의리로 산다,는 우리 언니 말이구요.
사랑이 다할때까지 살아봐라 어디,라고 하던 저는 이러다 말것만같아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3-05 22:03   좋아요 0 | URL
아닐걸요, 포핀스님은 완전 사랑스럽고 애교넘치는 말괄량이처럼 예쁜데 설마 이러다 말겠어요?ㅎㅎ
정으로 사는 건 잘 모르겠고, 의리로 산다는 건 맘에 안들긴 하지만 수용이 되요. 저는 사랑에도 의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도 책임감과 의리가 필요한데, 하물며 사랑이라면요. 그런데 질척되는 관계는 사양이구요, 쉽게 기분에 따라 변하진 말자는 의미에서 의리는 좋은 말 같아요.^^

2011-03-05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5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5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거운 불을 품어 눈이 먼다면 그깟 뜨거운 불 안 품고 말겠어요..ㅋㅋㅋㅋㅋ
근데 뭐 내가 마음 먹는다고 그렇게 되는건 아니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뜨거운게 훅~하고 지나가는거니까.

전 재작년까지도 어떤 그런 사랑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것도 도발적인건가요?
뭐..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현실적이지 않은 TV에 나오는 배우들이나 가수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 짓지만요.ㅋㅋ
근데 이젠 좀 귀찮아요. 늙었나봐요.

아이리시스 2011-03-05 22: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요, 뭐하러 눈이 멀 정도로 불을 품어요? 미련하게, 푸하하하.
오늘 그런 상상을 했어요. 혼자 여행을 떠나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뻔하디 뻔한 레파토리를 또 떠올렸는데요. 늘상 그렇지만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예요.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현빈은 다정하고 멋지지만 3일만에 사랑에 빠질 타입은 아니다, 라고 했잖아요. 저는 사랑이란 게 3일만에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걸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타입 같아요. 사랑이라고 착각할 만한 감정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한정된 시간과 어쩔 수 없는 조건 아래 기분이 아주 좋거나 또는 그 반대이면 누군가에게 이유없이도, 친절만으로 끌릴 수 있어요. 그런 적 있거든요. 몸은 늙어가지만 상상이 귀찮진 않아요, 거기다 저는 아직 새록새록해야 하고~크크.^^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6 08:46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아이리시스님은 뭘 해도 용서가 되는(!!) 20대 꽃다운 아가씨잖아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3-06 15:0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게 올해로 끝~
아, 전 정말이지 '3'이 싫어요. 셋도 별로 안 좋아해요, 차라리 다섯이 낫지. 그렇다고 짝수가 더 좋은 건 아니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너무 멋없잖아요. 근데 왜 갑자기 홀수짝수 얘기를(!!!) 빅뱅 <투나잇> 듣고 있어요, 벅스가 제 카드로 제멋대로 연장결제한 걸 보름이나 모르고 있었지 뭐예요, 에잇, 쳇, 이건 사기라구요, 그래도 뭐!! 난 그런 거에 1초 정도 분노해요. 뮤비도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본 걸요, 아하하하하, 더 멋있어지고 있어요, 푸핫. 근데 빅뱅은 주로 밤을 좋아하나봐요, 빅뱅 노래들에서 밤향기가 나요, 폴폴폴. 어쩐지 봄에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사랑스런 현맘님, 좋은 주말~^^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6 16:52   좋아요 0 | URL
으...내년에 서른이 되는거예요?
전 서른 되었을 때 굉장히 우울해 했었어요.
정말 내 청춘 돌리도~ 이 심정..ㅋㅋㅋㅋㅋ
괜찮아요. 아이리시스님은 제가 보기엔 아주 중심 잘 잡힌 아가씨니까.
세월따위, 나이따위, 그런것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길 바래요!

빅뱅은요. 조그만 녀석들이 되게 쎈 척하긴 해요..ㅋㅋㅋ
아직 밤에 어울리는 녀석들이 아닌데. 좀 더 힘 빼야 하지 않을까요? ㅎㅎ
그래도 좋아요. 신나서 좋고 젊어서 좋고.
주말이 따듯해요. 아이들이랑 자전거 타고 올래요~

아이리시스 2011-03-07 01:25   좋아요 0 | URL
20대 초반으로는 안돌아가고 싶은데 중반으로는 다시 가면 좋겠다 싶어요. 몇 년 전으로만 시간을 돌리면 좋겠어요. 현맘님은 제가 더 어린 줄 아셨죠? 하하하. 저도 어리지 않죠?ㅠㅠ, 에잇, 갑자기 너무 어른이 된 것 같아요, 큭큭큭.

마녀고양이 2011-03-05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페인티드 베일> 영화 보셨어요?
인생의 베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인데, 안 보셨다면 완전 강추해요!
절대 어설픈 삼각 관계라 하기 어려운 영화인데,, 그래서 소설 읽으려고 사놓고 아직 못 읽었거든요.
여하간.... 소설이 맘에 안 드시더라도 영화는 진짜 맘에 드실거예요.
얼마나 마음 저리는지 몰라요.

2011-03-05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3-05 22:18   좋아요 0 | URL
아니요, 그렇잖아도 전에 마고님 페이퍼에서 한 번 보고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보진 못했는데 포스트는 백 번도 더 본 것 같아요. 어설픈 삼각관계가 제 착각이란 말이죠? 후훗, 더 기대된다,, 소설 읽어보세여, 저도 뭐 어제 그 자리에서 진도 못나갔지만 소설이 맘에 안드는 건 아니예요, 좀 설레기도 하고 이상하게 마음 저리기도 했거든요. 좀 구닥따리다 싶으면서도 드라마속 남녀관계의 닭살대사는 다 여기서 따온 것 같고 막. 저는 남녀가 사귀기 전이나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존댓말 쓰다가 사귀게 되거나 결혼하면서 자기 것인양 편안하게 말놓는 거, 그러니까 남자가 그렇게 해주는 거 너무 좋아요, 크크크. 이게.. 소개 읽어보니 키티의 성장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영화는 진짜 맘에 들 것 같아요. 추천 감사.^^

2011-03-05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7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7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7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7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3-0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무꾼님도 <인생의 베일>과 관련된 글 썼었는데,, 집에 이 소설 소장하고 있는데
아직 안 읽어봤어요. ^^;;

아이리시스 2011-03-07 01:26   좋아요 0 | URL
저도 나무꾼님 페이퍼 봤어요, 시루스님도 구입하셨군요, 저도 사둔 책 집어든 건데,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영화도 보고 싶고, 마고님이 추천해주셔서 무한기대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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