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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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에 유독 지성인들이 많다. 유대인의 공부법, 부와 성공이 출판계 키워드가 된 걸 보면 똑똑하긴 한 모양인데 또 한 명의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역사학자가 나타났다. 『사피엔스』는 사실 진화론을 쭉 읽어온 독자에게라면 그다지 감명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들었다). 진화론에 해박하지 않지만 특별히 어렵거나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 아는 당연한 역사를 전혀 새로운 이론처럼 다시 쓰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이클 센델이 초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사용한 멋진 정리법이 생각나는 인류학적 통사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문자사용/선사시대.. 연도와 시대는 물론 인류진화 순서를 얼마나 힘들게 달달 외웠는데 이들이 한때 공존한 각기 다른 호모종이라는 건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등 여섯 종이 지구에 살았단다. 내가 외운 이름들이 진화한 순서가 아니라 각기 다른 호모 종이었다니, 한때는 죽어라 싸우고 경쟁하다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데 그 살아남은 조상이 내 조상이라니 아니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니. 현생 인류의 조상과 네안데르탈인의 이종 교배는 여러 번 일어난 흔적이 있고, 그렇다면 지금 어딘가 이종 교배로 태어난 종의 후손이 살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이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증거는 또 어디에. 꼬리를 물고 거듭되는 물음과 해소되지 않는 갈증의 연속이다.

 

50명 정도의 무리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수립이 수렵채집인이자 단일계로 살던 인류를 처음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다. 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헌터>에서 보니 몸집이 작고 힘 약한 종은 거의 언제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더라.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사자나 호랑이는 늘 사슴이나 토끼를 이길 것 같지만 싸우는 구도가 1:수십마리이면 사자나 호랑이도 지치거나 포기한다. 그러면 사슴이나 토끼가 살아남을 확률이 커진다. 사슴이나 토끼가 잡아먹힐 확률이 그 반대보다 월등한 건 사실이지만 사자나 호랑이를 만났다고 해서 언제나 희생되는 게 아니다. 위험한 숲에서 사자나 호랑이 그리고 약하고 작은 종이 공존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까닭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유독 뼈가 굵고 힘이 세며 뇌용량이 큰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종도 무리의 습격에는 꼼짝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이후 다른 종을 사라지게 만든 건 직접적인 충돌에의 희생보다는 가혹한 기후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언어, 문화, 국가, 종교, 과학이라는 비가시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특히 종교와 과학은 중세를 거쳐 오늘날까지, 먼 미래까지 인류를 지배하는 방식의 메커니즘일 확률이 높다. 같은 민족, 같은 종교, 같은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허울 아래 모든 개체를 하나로 묶는 힘, 사피엔스만의 특출난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의 말처럼 정말 자연발생설에서 유래한 운좋은 돌연변이의 탄생 혹은 정신병 때문이었을까.

 

과거를 거쳐 현재를 조명하고 곧 닥칠지 모를 비극적 미래까지 나아간다. 유발 하라리가 보여주는 게 사피엔스종의 비극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분명한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사피엔스종이 사피엔스종보다 더 나은 종을 만들어내지 말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언어와 무리생활과 도구 사용 그리고 과학기술은 널리 언급되는 데 반해 종교의 의미를 인류와 연결시키는 건 그가 과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이자 인문학자라는 데서 기인한다. 지리상이든 기후상이든 다른 종들의 도전을 모두 물리치고 살아남은 게 내 조상이라니 경이로운 자부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사피엔스종이 원한 게 더 나아지려는 거라면 너무 멀리 왔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선택이 아니라 우연이었다면, 능력이 아니라 자연적이었다면 사피엔스의 운명 역시 과신하지 못한다. 실제로 과학혁명 이후 인류의 가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중세 과학혁명은 단지 부재하는 신을 물리치고 부당한 대우에 시름하는 이들을 구하기 위한 작업의 시작이자 잃어버린 합리성을 되찾는 일이었다면, 이제 과학이 시도하는 많은 업적들-유전 공학과 생명 공학-의 무궁한 발전은 우리의 질서와 가치 그리고 의미와 목숨을 위협한다. 곧 땀 흘려 일하고 일한 만큼 먹을 수 있었던 공평한 시대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긴 시간 속에서 길을 잃기 쉽지만 『사피엔스』에서 주목할 사실은 과거에 우리(사피엔스)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넘어 여전히 살아남을 것인가의 중대기로에 선 인류의 현상황이다. 사피엔스가 멸종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멸종을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뭘까. 곧 다가올 재앙, 자연발생을 불사의 능력이라 믿는 인류의 오만함이 미래를 망치고 있다. 더 대단한 종이 있다면 언제까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는 사피엔스를 두고볼 지 모를 일이다.

 

진화론은 자주 인류가 이룩한 성과를 간과하거나 과찬한다. 고작해야 현재를 과신하고 과거를 둘러보며 미래를 예견할 수 있을 뿐인 위치에서 과학을 전지전능함으로 치부한 탓에 나무인 채로 숲을 들여다보려 한다. 나무가 숲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후반부는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 반신반의하면서도 너무 재미있다. 낙관과 비관의 의미를 모두 남겨놓는 저자의 통찰과 예견은 역사학자 혹은 인문학자에게서 나오는 신중함이다. 인간은 자주 너무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유발 하라리가 자기 소속감을 내려놓고 냉철하게 구사하는 종교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특히 인상 깊은데, 적어도 학자로서의 그는 사피엔스라는, 유대계라는 기존 이론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걸로 보인다. 아니면 사피엔스는 과학의 모든 장점을 장착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뱀파이어처럼 피를 마시며 평생을 사는 불사신으로, 어쩌면 하나의 더 높은 종에게 사로잡혀 제2의 종으로 반식민적인 삶을 살 수도. 잘 몰라서 누리는 특권인가, 온갖 상상이 가능한 미래를 즐기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서재에서 다시 한 달을 사라지는, 공백 갖는 사피엔스다, 포스트사피엔스가 되고 싶은, 독서를 멈출 수 없는 사피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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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1 0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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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1 1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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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찰스 디킨스 지음, 김미란 옮김 / B612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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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불 곁에서 살아온 어떤 이에게 불은 이러한 존재다. '내 인생 전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은 뭘했을까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밤.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읽으며 연말연시를 흘려보냈다. 매일 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인데 찰스 디킨스라고 별다를 게 있을 리 없다. 영화 몇 편쯤 보고 싶어 목록을 정해뒀다. 이건 늘 하는 일이고, 지금 내 상태는 독서에 최적화 되어있다. 대신 다른 걸 했다. 밀린 빨간책방을 좀 듣고 밀린 애인있어요를 좀 보고 뭐 이것저것 신경 안 써도 될 것들을 신경썼다. 계획대로라면 크리스마스에 끝냈어야 했다. 성냥팔이 소녀 다음으로 크리스마스에 가장 어울리는 소녀 넬(넬리)의 파란만장史.

"불은 내게 책과 같단다." 그가 말했다. "읽는 법을 배운 유일한 책. 불은 내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또 그것은 음악이기도 한단다. 나는 어떤 소음 속에서도 불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 타오르는 불은 자신의 함성 속에 또 다른 목소리를 지녔지. 불은 자신의 초상화도 지녔단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석탄에 얼마나 많은 낯선 얼굴과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는지 너는 모를 거다. 불은 나의 추억이기도 하단다. 불은 내 인생 전체를 보여 주거든." (442)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하층민으로 대표되는) 빈곤과 가난, 악의와 선의, 순수와 타락의 대비를 융단처럼 부드러운 질감으로 읽는다. 꽤 두꺼운데 무겁기까지 해서 얼른 끝내고 싶었는데 의외로 놀랍도록 술술 읽힌다. 넬의 생사를 묻는 뉴욕 부둣가 얘기가 책 뒷표지에 실려있는데, 정말 그랬다. 유일하게 해리 포터를 떠올리게 하는 겨울 주인공. 소녀는 따뜻한 이불 속 부모 품 안의 행운을 누리지 못했지만 순수와 타락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는 어른들에게 큰 빛을 주고 갔을 것이다. 주요배경일 줄 알았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 아주 잠깐 등장하고, 넬과 할아버지의 떠돌이 생활 중 만나는 모든 인물은 삶의 다양한 인간군상의 소재로 변신한다. 인형극단, 밀랍 인형 전시 마차의 부인, 도시 속의 화부, 선원, 작은 시골 마을의 교장. 만남과 헤어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인연들. 영영 날이 밝아오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인간에게 주어진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순수한 키트(의 가족들)와 넬로 대표되는 선한 사람들/ 퀼프처럼 뼛속까지 악당인 사람/ 프레드와 스위블러처럼 힘겨운 삶에 적응하려다 실패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 디킨스다운 인간군상이라 비교적 쉽게 선악이 구별된다. 아이라서 순수한 게 아니라 무언가 지켜낼 것이 있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는 법이다. 지키고 싶은 것이 간절했던 할아버지가 실수를 하는 것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키트가 끝내 쉬운 길(악의 무리)과 타협하지 않는 것도 다 거룩한 동시에 마음이 아리다.

가족 간의 사랑과 애정이 고귀한 것이라면 가난 속에서도 그러한지 잠시 이곳에 머물며 살펴보기로 하자. 부자와 잘난 사람들의 유대는 세상이 만들어 주지만 가난한 자와 초라한 가정의 유대는 진실의 고리와 하늘이 맺어 준다. 아마도 좋은 가문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권력의 노획품과도 같은 주택과 토지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들에 대한 그의 연계는 자부심, 부, 승리의 연계인 반면, 가난한 사람이 과거에도 누군가가 살았고 내일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살게 될 공동주택에 갖는 애착은 그저 순수한 땅이라는 것에 더 깊은 뿌리를 둔다. 그의 가재도구는 은이나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피와 살 같은 것이고, 재산은 없지만 그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해진 옷을 입고 고된 노역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빈약한 식사와 초라한 바닥과 벽을 감내한다면, 그는 신으로부터 받은 집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로써 보잘것없는 집은 신성한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 (378-379)

 

왜 그렇게 밤 거리를 걷는 게 좋았을까. 캄캄한 방에 북라이트 불빛 하나 밝힌 이불 속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찰스 디킨스를 읽는 일은 19세기 어둑어둑한 거리를 정처없이 무작정 걸어다니는 일과 같았다. 길을 잃은 상태에서 시간조차 어림짐작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앞도뒤도 캄캄한 그 거리를 말도 못하게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인생의 마지막에나 겨우 맛볼 수 있을 열매를 한꺼번에 먹어버리는. 넬의 짧은 인생이 그토록 풍부했던 것도 작은 숙녀가 가진 무한한 긍정 에너지와 넘칠 만큼 가졌던 순수의 샘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홀로 빛나던 찬란한 마음과 눈동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한 해 마지막날이 되어서도 결코 갖지 못한. 넬과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극중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 이 아름다운 비극의 도시를 걷고 있었다.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 사는 넬이 심부름 갔다 길을 잃고 도움을 청해올 때, 그는 다만 밤과 산책과 도심의 불빛을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다. 돋보기를 가져다대고 보는 일과 멀리서 보는 일 중에 무엇이 더 옳고 어느 편이 더 아름다운지를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밤은 산책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여름이면 나는 이른 아침에 외출해서 온종일 들판과 시골 길을 거닐기도 하고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집을 떠나 있기도 한다. 하지만 시골에 머물 때를 제외하면 어두워지기 전에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늘에 감사할 일이지만, 나는 도심의 불빛과 거리에 쏟아지는 그 빛의 경쾌함을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랑한다.

 

건강에도 좋은 뿐만 아니라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성격과 직업을 마음껏 추측할 수 있어서 밤 산책은 어느새 내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대낮의 눈부심과 분주함은 나처럼 빈둥거리기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햇빛에 훤히 드러나는 얼굴보다는 가로등이나 상점 불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행인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면 편이 내 목적에 알맞다. 그리고 솔직히 상상의 세계가 완성되려는 순간에 여지없이 그것을 무너뜨려버리는 낮보다는 밤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12)

 

독서의 양보다는 질이라고 늘 말하면서 독서 계획 어딘가에 꼭 붙잡고 놓지 못하던 다독이라는 결심은 디킨스의 글 앞에서 아름다운 몽상 따위로 행해봐야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다. 좋지 않은 시대에 사는 삶은 온몸으로 부딪쳐도 겨우 돌멩이 하나를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2016년 첫 책은 시작이라는 거룩한 단어 앞에서만 의미가 있다. 매일 눈을 뜨며 시작이란 걸 하는 이에게는 실제로 아무 의미가 없다. 무지개 스펙트럼 사이에 가시적 경계가 없듯 그날 밤 열두시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하루를 더 살고 밥을 한 그릇 더 먹고 읽은 책이 더 늘어나고 그리고. 한참 걷던 빅토리아 시대 런던과 지방 도시들, 거기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에 감사한다. 써먹을 수 있는 지혜가 하나 더 생겼겠지. 버릴 수 없는/오래된 습관 같았던 책으로 걷기는 이제 책에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시간을 내어주는 상태라고 말해도 좋다. 시간을 내어주는 데 무척 인색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게 별 거 아니듯. 다시 한번, 내가 책을 읽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얼 하고 있을까. 크리스마스에 닫아야 할 문을 이제서야 닫게 된다. 새해 첫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직 닫지 못한 문과 보내지 못한 손님. 되도록이면 모두 비우고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 나는 끝내 이 애처로움과 안쓰러움, 먹먹함을 내려놓지 못하고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나선다.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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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6-01-0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넬이 할아버지와 여기저기 다닌다는 말을 보니 <집 없는 소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만화영화로 봐서 다 생각나지 않지만,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거기에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에는 괜찮아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군요 예전에 한 만화영화(원작은 소설일지도 모르겠지만)에 슬픈 것도 있네요 어쩌면 비슷한 시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여서 순수한 게 아니다, 가진 게 없고 어려도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잘 알았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키트도... 힘들게 산다 해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때는 더 많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왤까요 자기 욕심만 생각하는 나쁜 사람도 있었겠지만...

책으로 걷기, 어쩐지 멋진 말입니다 여기 조금 쓴 책 속 글을 보니 이 책은 천천히 걷듯이 봐야 할 듯하네요 넬과 할아버지를 따라서...


희선

아이리시스 2016-01-06 19:32   좋아요 0 | URL
희선님은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이 책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 그때도 그랬고 이 댓글도 그렇고 정말이에요. 아마 제 글을 꼼꼼히 읽어주셨고 또 원래 배경지식이 있었기 때문일테죠,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벌써 새해도 한 주가 지나가는데 계획같은 건 더이상 세밀하게 세우지 않지만 몇 가지가 있는데 하루하루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게 무언가를 하는 거예요. 데일리 다이어리에 한줄 쓰면 적을 게 없는 그런 거 말고. 아님 일기라도 써서 채우기로..( ˝) 체력이 약해서 빨리 심하게 지치는데 그래서 잠도 많이 자거든요. 잠도 좀 줄이고 책을 더 읽어도 좋고 전문분야 다큐를 좀 더 많이 보고 에세이를 써보고 또 정리 잘하고 버릴 건 미련없이 버리는 거. 새해에 비싼 향초를 샀어요. 원래 여기엔 돈을 안 썼을텐데, 꾀임에 넘어갔습니다-_-

매일 밤 켜고 은은한 불빛과 진한(!) 향을 느끼는데 독서할 정도로 밝은 빛은 못 되고요(다섯 개 정도 켜면 모를까@.@), 스탠드나 라이트를 따로 켜지만 세상이 더 고요하고 정적인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거기도 춥나요? 날이 며칠 째 되게 춥네요. 이것도 느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

cyrus 2016-01-0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서 한때 이 책을 꼭 구하고 싶었어요. 알라딘 중고매장에 이 책이 있는 걸 알고 당장 가게로 갔는데, 다른 손님이 먼저 구입하는 바람에 허탕 친 적도 있어요. 이 책이 다시 나와서 다행이네요. 세련된 표지가 마음에 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아이리시스 2016-01-06 19:36   좋아요 0 | URL
중고매장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이 생각외로 빨리 팔리는 싸이클을 가진 것 같아요. 저는 몇 년 째 보지 않은 책이라 몇 주 전에 팔러 갔는데 제가 그날 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대부분의 책이 팔린 것 같더라고요. 초신간은 아니지만 몇 년 내에 나온 책이었으니 당연한 거였을까요? 중고매장에 오래된 책들도 많으니까요. 저는 오프 매장에서 책을 사보지는 않았는데 그러고보니 책을 잘 안 사는 요즘 온라인 중고도 마찬가지네요. 어제 <히틀러1> 문자오던데 그걸 사고 싶어서 등록할 때와 지금의 마음이 참 다른 거 같아요. cyrus님도 곧 읽으시면 될테고, 저도 인사 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지금처럼 자주 좋은 글 올려주시고, 건강하세요. 올해도 지금까지처럼 잘 지내요~^^

kgn0122 2016-01-09 14:04   좋아요 1 | URL
오해가 있으실 것 같아 답글 남깁니다. cyrus님께서 보신 책은 아마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골동품 가게 이야기>일 겁니다. 그 책은 100페이지 남짓한 이 책(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다이제스트판을 번역해 놓은 책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히 다른 책이죠. 내용도 맞지 않고.

cyrus 2016-01-09 16:29   좋아요 0 | URL
To. kgn0122 // 그렇군요. 제가 말한 절판본은 완역이 아니었군요. 실물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을 샀으면 낭패였군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016-01-07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7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7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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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가, 결정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로레트? 얇디얇은 층이 쌓이고, 매달 원자 수천 개가 쌓이지. 차곡차곡. 천년이 흐르고 또 천년이 흐르지.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것도 마찬가지야. 오래된 돌들엔 하나같이 이야기가 쌓인단다.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그 작은 돌멩이는 알라리크가 로마를 점령하는 걸 봤을지도 몰라. 그 돌멩이는 파라오의 눈 속에서 반짝였을지도 몰라. 스키타이의 여왕들이 그 돌멩이를 몸에 달고 밤새도록 춤을 췄는지도 모르지. 그 돌을 차지하려고 전쟁이 몇 번이나 일어났을지도 모르고." (1권, p86)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은 배워야만 경험가능한 극한의 세계다. 겪지 않고도 알 수 있거나 안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느 정도는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겪지 않고 전쟁에 대해 대체 뭘 알 수 있을까. 베르너와 마리로르는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딱 한번 만난다. 하지만 하루가 영원이 되었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내내 같이 있는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예상도 한계도 뛰어넘는다. 소설의 배경은 넓게 보면 2차대전 중이고 193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다룬다. 공간은 사실 큰 의미없다. 어디에나 폭격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숨고 도망치기 때문이다. 뒤죽박죽인 챕터 연도가 혼란스럽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의미없는 이유도 전쟁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의 이유-원인과 결과를 넘어서는 장엄한 서사. 이후 1970년대 한번, 2014년이 한번 나온다. 작가로서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20세기 최대 전쟁을 고작 스물도 되기 전에 겪고 한 세기 가까이 고향이나 고향을 떠나 살아남은 이들의 지금을 조명하는 건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쟁을 사는 사람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또 무엇이 될 수가 있나.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 프랑스에 사는 마리는 유전병으로 여섯살부터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하다가 열여섯살 전쟁 즈음해서는 완전히 시력을 잃는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파리 박물관에서 자물쇠 보관 담당으로 일하며 딸에게 점자책을 사주기 위해 착실히 돈을 모은다. 아무도 더 큰 것을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지도 욕심내지도 않는다. 그러는 통에 전쟁은 소리 없이 그들 곁을 맴돌며 일상과 시간을 갉아먹고 파괴하기 시작한다. 일단 시작된 이상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공간. 앞을 보지 못하는 딸을 업고 이 시국을 견뎌나가야 하는 마리의 아버지는 전쟁이 심해지자 관장의 명령을 받고 네 개의 다이아몬드(진짜는 단 하나이며 누구에게 할당된지 모름) 중 하나를 들고 무작정 피난하지만 계획된 안전에 닿지 못한 채 작은 섬으로 이뤄진 성벽도시 생말로에 있는 마리의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의 집에 머물게 된다. 누가 알았을까. 이토록 긴 시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줄. 다시는 평범한 삶을 가질 수 없음을.

 

독일에 사는 베르너는 유타라는 귀엽고 영특한 여동생과 고아원에 산다. 전쟁으로 고아가 됐는지 원래부터 고아였는지 중요하지 않지만 잘 모르겠다(나왔었나). 이 독일 소년의 취미이자 특기는 고장난 라디오 수리로, 나중에 이 재능 때문에 여러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베르너와 유타는 매일밤 우연히 갖은 허름한 라디오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숨죽인 세월을 견딘다. 둘은 둘만이 그런 게 아님을 알고,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옥탑방, 지하실, 2층 침대. 삶은 늘 가장 아래 아니면 맨 밑에서 이루어진다. 베르너가 히틀러 유겐트가 되어 국가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남매의 삶은 부모 없음만 빼놓고 다른 아이들과 비슷했다. 이즈음 연합군에게 밀리고 있던 독일은 타국 전파를 자국민이 듣지 못하게 강력단속하고 지레 겁먹은 베르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유타는 지금 조국이 국민에게 알리는 소식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다름을 안다. 몰래 듣는 프랑스 전파가 흘려준 목소리가 지금 독일이 일방적으로 프랑스를 침공중이라 전했기 때문이다. 베르너는 다른 남자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히틀러 유겐트로 차출된다. 고아라서 더 쉽기도 했을 것이다. 전쟁 중 국가의 부름을 받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자 성공의 가도를 희망할 수도 있는 일이라, 사랑스런 동생 유타와의 이별을 감수하면서 호기로운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다. 하지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이를 먹는다. 마치 성실히 갖지 못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그렇게. 

 

1권 내내 눈먼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은 단 한번도 만나지 않는다. 소녀와 소년의 일상과 전쟁을 숨가쁨을 급박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서서히 그리고 제대로 전쟁 안으로 끌어들인다. 전쟁을 사는 삶이 아니다, 삶 그자체가 바로 전쟁이다. 평상시에도 어려운 전시를 앞을 보지 못하는 채 보내야 하는 긴장 못지않게 고아로 살아가는 일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베르너와 마리로르여야 했을 것이다. 아직 여물지 못한 꿈꾸는 10대에 전쟁의 한복판에 서있는 일. 그때 소설은 정확하고 유려하게 소설의 의미와 가치만을 다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지식을 활용하거나 지루하게 늘어놓지도 않으며 프랑스-독일-영국 등 참가국에 대한 판단 역시 보류한다. 퓰리처라는 명망있는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여전히 전쟁을 몸소 겪지는 못한 1970년대생 소설가인 앤서니 도어에게 중요한 건 전쟁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전쟁 속에 살던 한 소녀와 소년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세계다. 작은 소년 소녀에게도 가족과 친구, 꿈과 미래 등 잃으면 안될 것들이 많으니. 마리의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과  전부인 아버지와 유모같은 마네크 부인 또 이웃들, 베르너의 '아이들의 집' 친구들과 원장과 입대해서 만난 프레데리크, 막스와 폴크하이머 등의 친구들 그리고 동생 유타의 다양한 삶들도 엿보는 세계다. 누가 터널을 통과했는지 또 나오지 못했는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한껏 움츠려 인생의 한 시절을 통과했는지, 전쟁이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어리석음인지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그때 그곳으로 인도하는 급행열차. 그리고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빛.

 

베르너는 프레데리크가 보는 것을 보려고 애쓴다. 사진이, 쌍안경이 등장하기 전 시대를. 그리고 여기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찬 미개지 속으로 주저하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그림을 그려 가지고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 책은 새들로 가득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푸른 날개를 단 덧없는 신비로 가득하다. (2권, p15)

 

오히려 담담해서 더욱 서글픈 상황이 숨막히는 문장으로 여기저기서 팔딱거린다. 글로 읽는 피는 실제의 피보다 더욱 진하기도 더욱 묽기도 하다. 더 새빨갛기도 하고 덜 빨갛기도 하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 눈앞에 있다가 금세 저 바깥에 있다. 폭탄처럼 찢어발기는 희망 없고 변하지 않는 시간이 베르너와 마리로르를 통과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간다. 소설은 한번도 극적인 순간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모든 순간이 극적이고 눈부시고 뜨거웠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했다. 죽음이나 죄책감으로 시간을 통과하는 게 전부였다. 빛도 사람도 사랑도 시간도 송두리째 어떤 삶을 휩쓸었다. 통과한 사람들은 다시 통과하기 전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사람이 만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진실 한 줄기를 손안에 꼬옥 쥐고 회상과 추억 속에 사는 두사람.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하고 내 소중한 누군가의 마지막을 또다른 누군가 기억하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후회하고 아프고 절망하고 다시 희망하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 올해 읽는 가장 대단한 문학작품은 아니다(내가 뭐라고). 정말이다, 이보다 나은 문학을 올해만 다섯 손가락 넘게 만났다. 올해를 한 달 남겨두고 이 리뷰여야 하는 까닭은 눈을 감아도 떠도 사라지지 않는 영롱하다못해 슬픈 어떤 빛 때문이다. 실패일지 몰라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을 작가의 한 줄기 빛. 베르너와 마리가 만남으로써 만들어진 하나의 운명. 폐허 위에 다시 피어나는 한 송이 꽃. 그리고 살아있는(보는) 우리. 직선과 직선이, 면과 면이, 가로와 세로가 만나 비로소 생긴 점 하나 위 우리. 인간이라는 거룩하지만 종종 파묻히는 종족. 살리고 죽이고 살고 죽는, 그래야 백 년이 고작인 운명의 숨이 끝내 놓쳐지지 않아 읽기 시작한지 넉 달만에 그들을 소환한다. 지구상에는 얼마나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나 시간이 돌이 되어야 하는지, 소년과 소녀가 어른이 되지 못하면 저 세상에서는 무엇이 되는지, 이루어지지 못한 꿈과 소원과 만나지 못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는 것과 보이는 것, 볼 수 없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사이에 뭐가 더 있는지 나는 알고 싶다. 보이는데 못 보는지, 보이지 않는데 보는 척 하는지. 모든 게 사람이었다, 그리고 숨이다. 살아있으니 뭐가 돼도 되었다. 살았으니 허락된 듯했다. 하나의 점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진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되기 전의 돌이었다. 그렇게 인생이 고달프고 이다지도 짧아서 아무도 아무도 그 누구도 끝내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었다. 삶이자 시간이고, 하늘 아래 존재하는 우주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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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8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8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11-28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을려고 무엇엔가 홀린것처럼 들어왔나봐요.
제가 올해 읽은 리뷰중에 가장 황홀하지만 영롱한 리뷰예요.
아~, 좋다.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5-11-29 17:27   좋아요 0 | URL
책이 좋아야 하는데 간혹 책보다 리뷰가 더 좋은 건 책이 사람에게 말하고 싶게 하기 때문이에요.
양철나무꾼님이 잘 읽으셨다고 말씀하시니 정말 좋아요, 정말이에요. 우왕♥

주말이 가고 있어 슬프지만, 아까워하면서 흘려보내지 말고 맛있는 거 먹어야겠어요. 굳이브닝^^

stella.K 2015-11-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거의 혹평을 하다시피 했는데...
저는 요즘 소설을 점점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아는 전쟁소설은 스펙타클한 서사의 복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선 그런 게 거의 없고 감성만 있어서
별로였거든요. 이런 소설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생각 보다 너무 좋게 알려진 게 좀 화가나더라구요.
뭐 그냥 나 같은 재수없는 독자 만나 이 책이 고생한다 그럴 것 같아요.ㅋㅋ

아이리시스 2015-11-30 13:39   좋아요 0 | URL
저는 스텔라님 리뷰를 못 읽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로는 못 볼 내용이죠, 만들면 제가 개인적으로 애정한 몇몇 인물 빼고는 지루하겠죠. 저는 그부분이 문학의 역할이라 여겼고 스텔라님은 전쟁 서사로 스펙타클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고. 그런데 저도 스텔라님 의견에 동의하거든요^^ 읽는 중에도 힘들고 진도 안나가는 건 서사의 힘이 부족해서라고. 이런 소설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답인 것 같아요. :)

stella.K 2015-11-30 13:35   좋아요 0 | URL
제가 알고 있기론 영화로 만들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또 이런 소설이 영화로 만들면 기가막히게 잘 만들기도 하잖아요.
감독이 꼭 원작을 살릴 필요없이 얼마든지 해석과 상상력이 가능하거든요.ㅋ

아이리시스 2015-11-30 13:45   좋아요 0 | URL
간만에 위에 댓글 오타를 고쳤는데 여전하네요, 시간이 바뀌어버리는..(히히)

오오, 영화로 만들어요? 이 마케팅하기 좋은 작품을 안 만드는 것도 이상하죠, 원작에 충실 안하면 되는데(큭큭). 제 영화 스타일이 스릴러라서 대부분의 영화를 시시해하고, 스릴러나 스펙타클이나 무협일 때 영화가 가장 빛나는 것 같아요.하하.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아직 [사도]입니다 흙흙(극장에 못갔어..)

루쉰P 2015-12-02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책보다 좋은 리뷰를 올리시는군요 ㅋ 리뷰보다가 이 책 읽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잖아요! 하지만 읽지 않을거에요 전 이 리뷰면 제 마음에 영롱하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ㅋ 공부 잘 되시나요? 전 여전히 공부 중입니다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5-12-03 18:23   좋아요 0 | URL
욕망이 올라오다니ㅎㅎ 날이 추워요, 잘 지내요? 저는 공부라기보다는 공부해야지 생각만..( ˝) 뭐 이것저것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라서 일을 벌이기도 그렇고 아니기도 그렇고, 정말 하고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 루쉰님. 책보다 좋은 리뷰는 늘 책이 있어서 가능한 거니까 오래 생각을 곱씹을 만한 글을 쓰게 해주는 책은 좋든 나쁘든 다 좋은 거예요. 그쵸? 감기 조심하세요^^
 
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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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책』을 눈앞에 두고도 정체를 모르다가 한 챕터가 끝나고서야 안다. 아, 이 책, 이토록 신비로운 독특함. 여행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생각과도 다르고 기대와도 다르다. 여행을 (본인이) 닿을 수 있는 삶의 모든 가치와 견주어 보는 습관이 있을 정도로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나)에게는 필연적인 책. 하지만 물리적 이동보다 공간의 변화 없이도 원하는 세상을 얻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도 다가가기 좋을 책. 여행의 설렘으로 누구에게나 조금 소중할 책. 궁극적으로 여행 책은 모두 이 우주를 듬뿍 담고 있으니. 이 책은 여행과 여행자에 대한 거대한 아포리즘이다. 시중에서 번역본으로 딱 한 권 구할 수 있는 폴 서루의 유명한 저작 『아프리카 방랑』을 읽은 적 있기에 나와 작가의 거리는 비교적 가깝다. 단편소설을 많이 쓴 책에 일가견 있는 '도서관'의 작가 보르헤스의 『픽션들』 이나 『알레프』를 펼쳤다가 소설이 아니라 철학 에세이였구나, 감탄으로 끝내본 독서경험이 있듯, 『아프리카 방랑』 역시 여행 작가가 쓴 기행서라기보다 『슬픈 열대』로 유명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레비-스트로스의 글에서 인류학적인 연구 부분을 빼고 여행 부분만을 떼어놓고 읽을 때 얘기지만.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_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여행기, 1869』

 

폴 서루는 『바다에 면한 왕국』에 이렇게 쓴다.

 

여행은 많은 경우에 시간에 대한 실험이다. 제3세계 나라들에서 나는 내가 과거로 떨어진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든 결코 무시간성이라는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특별한 연도들을 갖고 있다. 터키에서는 1952년, 말레이시아에서는 1937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10년, 볼리비아에서는 1949년이었다. 소련에서는 20년 전이었고, 노르웨이에서는 10년 전, 프랑스에서는 5년 전이었다. 호주에서는 늘 작년이었고 일본에서는 다음 주였다. 영국과 미국은 현재였다. 그러나 현재는 미래를 포함한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을 읽으면서야 나는 그가 여행을 시간 여행에 빗댄 완전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차여행에 관한 문장들을 지나 헨리 필딩(1707~1754)의 말을 만난다. 이 책에 밑줄을 그으면 몇 문장이면 될지 모르지만 포스트잇을 붙이면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관습과 풍속이 모든 곳에서 똑같다면, 언덕과 계곡과 강이 다르다고 해도, 여행만큼 따분한 일은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지구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점들은 여행자에게 그의 노동에 걸맞는 만족을 거의 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고전 작가들의 여행기는 대체 언제, 얼마만큼의 여행한 후에야 쓰여졌을까. 이 대단한 작가들은 여행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무엇보다 궁금한 건 시대도 장소도  제각각 다른 유명인들의 여행 가방에 무엇이 들었을까 싶은 것. 이에 대한 정보는 유명 작가의 경우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역시 흥미로운 구절들이 많이 있다.  잭 런던은 젊은 시절부터 알코올 중독과 콩팥 질병, 위장 문제가 있었다. 여행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렸는데, 40세에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그레이엄 그린은 광적인 우울, 거미에 대한 공포, 새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가 있었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는 지속적인 변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년기 내내 유럽의 여러 온천을 찾아다녔고, 에벌린 워는 스리랑카로 가는 항해 도중 편집증과 피해망상증이 일어났으며, 이 증상은 『길버트 핀폴드의 시련』이라는 작품을 낳았다.

 

사실 여행의 기간과 장소 그리고 날짜는 여행을 관통하는 중요한 정보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가 궁금한 건 글로 이름을 떨친 유명 작가들이 정작 누구와 여행했는가 이다. 그중에 블륜 커플도 있었을지, 모험이나 미스터리 장르로 환원될 만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친구들과 케이프 코드를 횡단했고, 56세의 앙드레 지드는 26세의 연인과 함께 콩고와 차드를 여행했다. 브루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와 『송라인』을 쓰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친구, 안내자와 여행을 갔다고 했지만 실은 동성의 연인이나 아내와 함께 갔다. 키플링 역시 그의 많은 여행에 아내가 함께 했으며, D.H 로렌스와 존 스타인벡, 레비-스트로스도 아내와, 서머싯 몸은 연인과 함께였다.

 

 

처음 듣는 얘기지만 일반적으로 영국인 여행의 역사는 햇빛을 찾아 떠난 여행의 역사와 같다고 한다. 영국의 날씨가 대체로 우중충해서 기후 탓이 크다고 하는데, 이 말에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D.H. 로렌스와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은 이 말에 크개 동의했던 것 같다. 여행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행하는 법을 모른다면 걸으면 해결된다. 하지만 평생 여행 한번 하지 않고도 그것을 미덕으로 만든 자들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80년에 이르는 생애 동안 그의 탄생지인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로부터 160킬로미터 이상 여행한 일이 없었고, 필립 라킨은 영국 해안의 헐에 있는 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에드거 앨런 포는 영국에서 짧게 젊은 시절을 보냈을 뿐이고, 소로는 결코 미국을 떠나지 않았으며, 에밀리 디킨슨도 거의 집에 매여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국에 대한 훌륭한 글을 썼다. "집에 머무는 것, 내부에 머무는 것,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관습적인 여행의 방식에 길들여진 정신을 자극할 수 있다"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All or Nothing을 모토로 사는, 여행애호가인 나도 충분히 동의할 만한 말이다. 위스망스의 『거꾸로』 에 나오는 주인공은 런던을 여행하기 위해 공들여 계획하지만 나태에 압도되어 파리에 있는 영국풍 술집의 디킨스적인 분위기에 만족한다. 영국 해협을 건너는 지루함에 대해 생각한 그는 여행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

 

또 한 편의 아름답고 아련한 작품에 대해 오마주할 생각이다. 여행은 상상에서조차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는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상상력은 여행에 대한 상상력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설이 '상상 여행' 범주에 포함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화자는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들려주는 마르코 폴로이지만 작가의 상상 안에 존재하는 실제의 마르코 폴로와는 다른(변형된) 인물이다. 그리고 음식! 여행지에서의 음식 맛은 절대 잊혀지는 종류의 감각이 아니다. 여행의 유일한 즐거움 중 하나지만 여기 나오는 고슴도치, 고양이, 낙타, 여우, 올빼미 고기와 원숭이의 눈, 코끼리의 코, 원숭이 스튜, 튀긴 사고 딱정벌레, 아시아의 개고기에서 포기, 이만 다음 챕터로.

 

 

여행자에게는 자유와 지혜, 규칙이 모두 요구된다. 그리고 어느 기준도 없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앞서 말한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여행을 위해 여행한 게 아니었다. 그는 신화연구자와 인류학자로서 여행했지만 역사에 남아있는 그의 글은 여행을 말할 때 종종 인용된다. 그는 브라질에서 여행을 시작해 인도와 파키스탄을 여행했고,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이었고, 백 살이 넘게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슬픈 열대』에는 여행 문학으로도 전혀 손색 없는 구절이 있다.

 

여행은 보통 공간의 이동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부적절한 개념이다. 여행은 공간, 시간, 사회 계층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각각의 인상은 이 세 개의 축에 공동으로 연관될 때에만 규정될 수 있다. 그리고 공간은 본질적으로 3차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여행에 대해 적절한 묘사를 하려면 다섯 개의 축이 필요하다.

 

여행자가 여행을 통해 자신의 문명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문명과 접촉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러한 예는 점점 줄어들었다. 현대의 여행자는 인도를 방문하든 미국을 방문하든, 생각보다 덜 놀란다.

 

아마도 그때의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막보다는 내 마음의 사막에 대한 탐험이었다. _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스스로 여행에 대해 가진 로망과 환상을 많이 걷어내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어쩌면 여행을 환상으로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여행의 본질인지도.

 

왜 어떤 장소는 추앙하고 왜 어떤 장소는 홀대하는지, 가보지 않고도 그곳에 대해 훌륭하게 쓴 작가들의 비결이 뭔지 궁금해하다가 여행 고전들을 더 읽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폴 서루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느 책에서 만나든 여행에 관련된 문장은 그저 훑고 지나쳤을 게 분명하지만, 이제 좀 더 주시하게 되겠지. 그것만으로도 굿.

 

『파타고니아』와 『송라인』, 『토성의 고리』, 『슬픈 열대』, 『맨더빌 여행기』를 비롯해 유명 작가들의 여행기를 찾아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펼쳤다가 낯선 이질감에 도로 덮고 나오던 책이 어디 한둘인가만, 『맨더빌 여행기』는 유독 표지까지 기억난다. 그러면 이제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여행지를 결정해야 하나. 어떤 장소의 이름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 여행자를 매혹한다. 어떤 이름은 이유없이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못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이름을 예로 든다. 바그다드, 만달레이, 타히티, 마르세유, 과테말라시티, 알렉산드리아, 상파울루, 비아리츠.. 왠지 모르게 위험하고 아찔하고 오묘하고 이상할 것 같은 도시들이다. "여행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이라고 알베르 카뮈는 썼다. 하지만 정작 자동차 공포증이 있던 카뮈는 멀리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여행하는 조건은 각자 다른 법이고, 말했듯 자유가 가장 우선이다. 폴 서루가 쓴 『여행자의 책』에서 여행은 이렇게 끝난다. 여행의 규칙 혹은 의미 열 가지. 다 나열하진 않겠다. 생각은 각자 다른 법이니. 여행은 몇 가지 깨달음과 통찰을 남기고, 좁은 세상을 달라지게 하고 심지어 변하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영영 끝나지 않는다. 끝났을 때조차도. 물론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과 돌아갈 곳을 알고 있을 때만. 일기를 쓰고 친구를 사귀고 추억을 샀다. 내 여행은 매번 그렇게 끝났다. 사진으로 남기고 기억으로 붙들어 글로 옮겼지만 소용 없었다. 나는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어디에도 어느 한 순간도. 여행에서 머무는 건 내가 아니라 시간일 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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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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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고기를 먹어본 적이 손에 꼽힌다. 많아야 일주일에 두 번, 어릴 때 식탐이 있었다면 커서는 덜 먹어야 속이 편하다는 걸 알아도 남은 음식을 두고 보지 못해 최대한 먹었고 지금은 체하고 배탈나고 어지러운 것보단 살짝 포만감이 느껴지는 상태에서 멈추는 게 편하니까 의식적으로 덜 먹으려 한다. 치킨에 관한 책을 읽고 고기에 대한 취향으로 리뷰를 시작하는 건 이 책이 결국 이 시대 대한민국의 먹을거리에 대한 현황과 유행과 가치를 반영하며 그로인해 과거와 현재를 둘러보고 문화현상으로까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매끼 고기를 먹거나 냉동실에 항상 고기를 쟁여두는 집이 더 신기하다. 어쩌면 식성과 음식 문화는 단순히 매끼를 먹는 것 이상으로 복잡다단한 취향과 성향과 기호를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정반대 정치성향을 지닌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걸 상상해볼 때처럼 식성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 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이 같거나 말거나 그저 상대가 먹는 걸 먹어주는 무던함과 무난함으로 괜찮을. 

 

한국음식은 두 번의 큰 충격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 하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어난 음식의 혼성이고, 또 하나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를 통해서 밀려든 밀가루와 설탕이었다. 그러나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또 하나의 충격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다. 미국산 대두는 한국 음식문화의 근간을 뒤집어놓았다. 본래 콩을 많이 먹던 민족이긴 하지만 우리는 장을 담가 먹거나 두부로 만들어 먹었다. 그 콩이 식용유로 바뀌면서 식생활은 혁명 수준으로 변화했다. 콩은 기름이었고 사료였다. 콩으로 닭을 키웠고, 그 닭을 콩기름으로 튀겨먹었으니 식용유가 곧 치킨이다. (p.251)

 

먹는 건 곧 본능이다. 먹는 걸 저지당하거나 신경쓰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정치 얘기를 공통화제에서 배제하는 걸로 괜찮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으로부터 촉발되는 사고의 방향과 취향과 생활습관, 가치관이 다른 것까지도 괜찮을까. 그럴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죽고 못 살던 사람과도 언젠가 헤어지는데 평생을 걸고 살다보면 정치성향 좀 안 맞고 생활습관 좀 다르고 사고의 방향이 약간 틀어진들 뭐가 대수일까. 어차피 나는 나고 너는 넌데. 하지만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통할 수 있는 한계치, 육아의 문제나 양가에 대처하는 방식은 또 다를 것이다. 이해와 인내, 노력이 계속되다 보면 언젠가 습득, 나아가 습관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함께 살면서 다를 수는 있어도 이해나 공감 없이, 닮거나 융화될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불행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불행하겠지만 반드시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니 역시 괜찮다고 생각한다. 취향과 기호는 쉽게 받아들이거나 어렵게 변할 수 있는 반면 너무나 빠르게 회귀할 수 있는 성질을 가졌으니. 함께 삼십 년을 산 사람들의 식습관은 서로 닮는 법이니 우리 식구들이 육식에 대한 식성이 남달리 강한 편은 아니라는 결론.

 

나는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으면 세 번 중 한 번은 어김없이 소화불량이나 체끼와 배탈에 시달린다. 고기의 경우 더 심하지만 체질적으로 먹는 일에 최적화된 거뜬한 사람으로 태어나질 않았다. 삼겹살(+소주), 스테이크(+와인), 치킨(+맥주), 족발보쌈, 찜닭, 백숙, 갈비찜 등등 일단 먹고 나면 고기 종류 가리지 않고 적어도 나흘 이상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포만감은 잠시, 입에 넣고 삼킬 때까지만 좋았던 어이없는 기억도 많다. 치킨 신드롬과 사육되는 닭과 대기업과 농가의 커넥션에 불만도 많기 때문에 다만 나라도 적게 먹자는 생각을 갖고는 있다. 왜 하필 치킨(피자나 족발은 어떤가)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책을 미룬 데 비해 한큐에 읽혔고 메시지도 명확하게 읽었다. 치킨은 후라이드, 양념, 간장, 파닭, 오븐구이, 닭강정, 양파치킨, 불닭 등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외식 메뉴 1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고 한다. (육계)시장을 제외하고도 순수하게 치킨시장의 규모만 연간 3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고 현재 한국 치킨점 수는 35000에서 5만여 곳으로 추정된다.

 

 

라면과 믹스커피 그리고 치킨이야말로 한국의 지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음식일 것이다. 그 음식이 닿아 있는 사회의 접촉면이 워낙 다양하고 그 자체로 근대의 음식 형성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세 음식이 한국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해방 이후 원조경제에 힘입은 바 크다. 밀가루와 식용유의 조합 없이 불가능한 것이 치킨과 라면이고, 믹스커피 또한 다국적 기업의 값싼 커피 원료와 프리마가 없었다면 생성 불가능한 음식이다. 한국 사람들이 지난 30~40년 동안 줄창 먹어댄 덕분에 가장 민감해진 혓바닥은 저 세 음식에 특화되어 있다. (p.74)

 

이 책은 치킨 신드롬이 일어나기 시작한 2002년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떤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자영업 대표로 일컬어지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탄생했는지 밝힌다. 수없이 많은 치킨 브랜드의 양, 구성, 맛, 성분을 평가하는 블로거나 치믈리에(소믈리에를 비튼 말)를 조명하고, BBQ, 파파이스, 교촌, 굽네치킨 등 브랜드의 성공과 그림자를 들춰본다. 치킨의 양대산맥으로 한때 큰 시장을 형성했던 찜닭과 대구에 본사를 둔 호식이두마리치킨, 부산에 본점을 둔 무봤나촌닭처럼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 시작해 쑥쑥 성장하는 중인 브랜드의 명암, 성장, 개발의 뒷얘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국 마케팅의 승패로 이어지기 쉬운 피터지는 치킨 브랜드 전쟁이지만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원칙 아래, 여전히 소스와 염지, 건강과 칼로리를 중점에 둔 메뉴개발을 지속적 성장의 키워드로 꼽는 재량도 보인다.

 

나아가 자녀의 대학진학, 취업전쟁으로 목돈이 필요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아버지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붙잡은 유일한 구세주-닭 튀기기-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어느 동네든 한 집 걸러 치킨을 팔고, 아무리 차별화 한다해도 소비자 입맛에는 비슷비슷하게 느껴질 뿐이다. 대기업의 독점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는 자영업이 완전히 몰락하고 골목상권을 붕괴시키는 계기로 작용했고, 납세의무자와 담세자가 다른 세금처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게 일반적이 됐다. 적절하게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수익을 내는 데 골몰한 거대자본이 기술전수와 마케팅이란 이름으로 창업주에게 전가시키는 수천의 명목금, 장사를 하면 할수록 병아리를 키우면 키울수록 손해라는 농가의 인터뷰를 듣고 있으면 이 모든 게 좁은 공간에서 정해진 궤도만 돌고 있는 쳇바퀴처럼 답답하다. 치킨이 잘 팔리는 한, 닭은 비정상적으로 사육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사료와 기타 환경에 대해 들이는 비용은 갑인 본사보다는 을인 개인에게 전가될 확율이 커지며, 파이가 작고 하찮아도 괜찮을 것들이 커질 때 발생하는 온갖 문제점들이 오래 순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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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9-3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어느 브랜드가 제일 맛있답니까...는 농담이구요. 아무래도 그런 얘기를 하는 책은 아닌 듯 하군요. 그래도 조금 놀랍기는 합니다. 치느님 앞에서 이렇게 쿨해질 수 있다니. 저는 뭐 일단 치느님이 앞에 있으면 이런 거 생각하지말고 일단 먹고보자는 생각이....

아무튼 치킨은 그래도 가장 만만한 외식음식이자, 서민음식인 것 같아요.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기름기 좀 섭취하고 싶을 때 제일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제 치킨 가격도 슬슬 올라, 점점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은 음식이 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요. 어쩌면 정부에서 뭔가 손을 쓸 수도..이 정부가 없는 사람들 주머니 털어가는 데에는 점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시다시피 아무튼 저도 기름기 좋아하는 초딩입맛이라 치킨도 끊기는 끊어야 하는데 끊을 수가 없어요. 특히 교X에 계시는 치느님은...아무튼 그래서 어디가 제일 맛있데요? 저도 교X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아이리시스 2014-10-01 10:03   좋아요 0 | URL
진짜 많이 먹긴 해요. 그냥 뭐 저는 동물애호가니까 생명있는 동물이 태어난 이상 잘 살면 좋겠는데 먹히기 위해 태어나니까 너무 슬퍼요. 그것뿐. 생각해보니까 고등학교때 마치면 거의 매일 파파이스 치킨을 사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잘 안됐나 봐요. 지점도 최소로 줄었고 커서는 거의 안 갔으니까. 치킨책 읽으며 치킨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야자할 시간에 몰려서 너무 놀러다녀서 공부는 못했지만 추억은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히힝. 교복 입은 여고생의 패스트푸드점, 노래방, 카페, 담배연기 이런 거 떠올리니까 뭔가 좀 인생무상같아요. 그때 꿈꾸던 어른은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니었는데..

저도 집에 초딩입맛 동생 키우고 있어서 잘 알아요. 얘는 먹는 게 거의 초인수준. 그래서 제가 계속 느끼한 것만 먹고 사는 이탈리아, 웬만하면 유럽쪽으로 이민가라고(ㅋㅋ) 설득한지 오래됐어요. 제가 유럽에서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 먹고 싶다고 전화하면 부럽다고 놀리고 그랬는데. 얘는 매끼는 아니고 아마도 매일 고기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가족중 그런 사람 아무도 없는데.. 교X은 광고모델도 좋잖아요. 맛있어요. 우리 동네도 제일 자리 좋은 곳에 있는데. 아참, 어디가 맛있는지는 안 가르쳐줬어요. 닭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 한 마리를 튀겨내기 위해 한 마리 반이 필요하다, 이런 건 나왔었는데..

암튼 많이 먹고 부자됩시다, 맥거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