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또는 지난 겨울.
추석쯤 상견례 하고 날 잡을 거야,
말했던 그녀는 그즈음 심심하면 거제로 내려갔다.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 따위는 아웃오브안중 되는 거 그거 여자라면 대부분 알 만큼 안다. 나도 당연히 안다. 맹세코 그래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당하는 기억과 상처주는 기억은 원체 다른 법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주말을 보내고 올라오는 낭만 데이트였다가 점점 부산 다녀왔어 할 정도가 되었고, 꼭 그래서는 아니라도 얼굴 못본 지 한참이나 되었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 나이 들면 저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무거워 친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종종 부족해진다. 우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서로 일으켜주며 평생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도 제 무게마저 감당못할 날들이 오겠지. 저마다의 행복 속에서 친구의 서글픔 따위 까맣게 잊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살아가는 일은 그런 거니까.
선착장에서 배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며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 대단한 정성이라며 나는 종종 비웃었고,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못 할 일이 없다며 되려 행복해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정도는 아니지만 아파하는 모습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말해주었다. 여기 공기 좋으니까 내려와, 거제일주 하자. J랑 같이 와도 좋아. / 됐거든.
당시 우린 밥먹듯 통화하며 서로의 일상을 보고하는 사이였는데 때로 떨어져 있어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이상한 사이이기도 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떡볶이에 맥주 마시다가 <귀여운 여인>과 <로마의 휴일> 보며 질질짜는 짓 따위는 안해도 되었다. 가끔은 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이었다. 내 생각에 그건 우리 청춘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아무리 사랑에 상처 받아도 로맨틱한 프로포즈 받고 예쁜 드레스 입고 멋진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바로 그 멋진 남자에게로 시집가고 싶었다. 그런 바람 때문에 여전히 두 영화가 적어도 내게 낭만적임 또는 로맨틱함의 절정으로 남아있는지도.(^^) 그녀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가 시집을 가거나 말거나, 다 잊고 시험에 몰두했는데 갑자기 기억난 건 이 사진 때문이다. 영화를 뒤적거리는데 사진이 나왔다. 얜 왜 예쁜 얼굴을 안 찍고 뒷모습을 찍은 걸까. 첨에 든 생각은 이거였고 이후 좀 더 농도 다른 생각이 몰려왔다. 이건 작년 사진도 아니고 아마도 더 이전 사진일텐데 그러니까 지금보다 몇 살 더 어렸을 때일텐데 나지만 전혀 나 같지가 않다. 팔다리 길고 손가락도 길고 볼륨 별로 없는 게 나 맞긴 맞는데 사진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2년 뒤 이런 생각을 할 거라 예상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 살 더 어릴 때가 예뻤구나. 온누리 여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 물론 과거의 나보다 지금이 더 나답구나 싶은 여자도 있고 과거따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지금이 예뻐. 라는 여자도 당연히 있겠지만. 나는 그때 참 예뻤구나. 더 어릴 때는 더 예뻤겠지. 어른들이 젊은 사람을 보면 내가 볼 때 별로 예쁘지도 않고 딱히 변함 없는데도 어째서 예쁘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나 요즘 그런 거 느끼는 스물아홉 증후군앓이 중. 이건 어쩌면 평생 직장 찾는 취업 스트레스 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몰라. 취업은 고작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일에 불과하지만(꿈도 사고) <그때 참 예뻤구나>의 문제는 존재 자체의 심오하고 찬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사진은 그녀가 찍어주었다. 몇 장은 찍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멍청한 표정으로도 찍혔다. 신나서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중이었지 싶은데 아마 나도 모르는 새 마네킹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디카가 내꺼였으므로 사진은 고스란히 내게 남아있다.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당장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지만 전화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지. 어쩌면 전화번호 바꿔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내일 전화해야지. 친구야, 시집 가도 안 미워할게. 사랑해줄게.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어느 남자에게나 넘칠 만큼 사랑받아도 괜찮을 만큼.
읽다 만 책 속에 보통이 있었다. 읽다 만 책이 너무 많아서 쌓고 또 쌓고 또 쌓여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몽땅 안 읽어본 책 취급하기로 맘먹는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안면 없는 책이 될 것도 같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재출간본. 제목을 왜 바꿨을까. 5초 정도 생각하다 패스한다. 배경 일일이 신경쓰는 타입 아니고, 어차피 읽지 않았고, 소장하지 않아서 문제될 게 없다. 오래 전에 받았고 그보다 덜 오래 전에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끝을 보지 못했다. 사랑에 시간을 비워두지 못할 만큼 늘 맘이 급하고 예민한 상태였기에 사랑노래가 자주 지겹고 애석하게 느껴졌다. 키스는 더 그랬다.
대학 때 참 예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이 있었다. 같은 과 재학중 수업이 같아 함께 구내식당과 매점, 캠퍼스와 도서관, 강의실을 누비며 그 아이는 말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여행을 가자는 바람에 레이스 달린 예쁘고 야한 속옷 세트를 샀어요. 당시 스물 둘. 자기와 나이 차가 좀 있는 남자여서 어린 애처럼 보이기 싫었다고 했다. 여자로 보이고 싶어 준비해갔지만 남자는 사랑을 나눌 생각이 없더라고도 했다. 지켜주고 싶다나 뭐라나.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 받았다고 했다. 정말 좋아했구나. 내가 말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키스만으로도 젖게 만드는 남자. 자기가 좋아하는 그 남자가 그만큼 키스를 잘한다는 얘기였겠지만 그건 굉장히 뭐랄까, 다른 사람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느낌을 느껴본 어린 여자가 말하는 거대한 고백처럼 여겨졌다. 나도 어렸는데 뭘 얼만큼 알 수 있었을까. 남자들에게 말해주어야 하나. 사랑하지 않으면 여자에게 키스를 해서는 안된다고. 그 키스 한 번이 당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폭풍같이 커다란 늪일 수도 있고, 그녀를 죽고 살릴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애는 죽고 싶어했다고.
물론 그애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키스만으로도 여자를 젖게 만드는 남자가 스물 두 살의 어린 여자애를 사랑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나누는 말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전혀 안나지만 키스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종종 그애 생각이 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여자애였다.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라 말은 안했어도 속으로 내가 내내 걱정했었다는 걸 그애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졸업식에서도 못 봤고 이후로도 연락을 못했다. 연락은 물론 인연도 끊어졌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보통씨, 그렇다면 나를 위해 쓴 책이란 말인데 주제가 점점 삼천포로 가고 있다는 생각 안들어요? 어쨌거나 읽지 않아도 모아온 당신이니까 이번에도 모아두고 나서 읽어볼게요. 고마워요. 나를 위해 종교를 말해주어서.( ")
어차피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한 거겠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이렇게 믿고 싶다. 특히 상대가 남자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