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마땅히 직업도 없는 내가 무슨 휴가가 필요하겠냐마는 나는 휴가를 정했다. 내 휴가는 차를 타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휴가라면 의례 여행을 생각하기 일수이지만 언제부턴지 내가 그리는 휴가는 한 곳에서 고요히 있는 것이다. 결혼 후 두 번째 휴가였다.
첫 번째 휴가는 해인사 근처 암자에서 지냈다. 1주일. 행복했다. 그때는 아파서 그곳에 간 것이지만-딱 한번, 아파서 어쩔 줄 모르긴 했지만- 대체로 아프지 않고,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은 아주 가까이에도 있다. 처음 선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언젠가는 잘 살았던 아이였구나 싶었다. 복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여기 고요히 앉을 수 있는가...행복이 아니라 희열에 가까웠다. 이래서 인연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숨통이 트이고, 세상이 밝아졌다.
이번 휴가는 2주간이었다. 첫 번째 휴가나 선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큼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한 때였다. 이번엔 "기억"이 하나의 테마가 되었다. 오늘 찾아온 친구에게 내가 대학 때 어떤 애였는지 기억하냐고 했더니 말해준다. 기억. 잘 생각이 안 난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내가 가슴 아프거나 부정적인 기억들을 없애가고 있구나.
기독교 방송에서 한 목사님이 치매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고 하셨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60세가 넘으면 그 추억으로 사는 거라고, 그 추억이 없는 사람이 걸리는 병이 치매라고.
그러나 내 생각엔 모든 기억 속에는 어둡고 아픈 기억이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섞여 있다. 어느 것이 내게 뿌리를 내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사라진 기억 속에 나는-그 친구 말에 따르면- 열정적으로 말하고, 비가 오면 튀어나가고, 시를 소리내어 읽고, 종교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언제나 곧 떠날 것처럼 보였다고.
그런데 지금 나는 천천히 말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눈으로 읽고, 가만히 앉아 말 없이 수행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우리 집에 온 친구도 말했다. 20대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나도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았나 보다. 가만히 생각하면 행복했던 기억이 넘친다. 작은 언니를 생각하며 요즘도 눈물 짓지만 처음엔 우울했던 기억뿐이었는데 지금은 언니가 나를 기쁘게 해줬던 감동적인 순간들이 떠오른다. 기억조차 행복해지려고만 한다. 가만히 두면 흘러가겠지, 약간의 불편도 함께 흘러가겠지.
다음 주부터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차를 타고 갈 만한 곳도 갈 것이고,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볼 일도 볼 것이다. 그리고 다음달 중순이면 동안거가 시작된다. 이번엔 산철결제가 없어서 3개월이나 선방에 가질 못했다. 게으르던 마음을 추스리고 조금씩 좌선을 하고 있다. 처음엔 수행이 깨달음이나 자비나 이런 단어들을 떠오르게 했다. 요즘의 나에게 수행은 자기조절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심신에 대한 조절, 자기에 대한 조절...그게 가능해야 자비고, 깨달음이고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내가 지금 수행이란 걸 하고 있거나 말거나...그래서 시원하거나 답답하거나, 조절이 되거나 말거나......쉽사리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게 수행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으로 느껴진다.
휴가의 마지막 날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