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기분이 째진다. 이런 기분에 관세음보살들 얘기나 좀 해야 겠다. 누가 보살 아니랴마는 생각나는 대로 우선 세 분만.
먼저 선방의 입승보살님. 연세가 86세 정도 되셨는데 선방을 열어 참선을 하신 지 3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선방엔 할머니들로 가득 차 있다. 5,60대면 젊은 보살이고, 나는 애기 보살이다. 재가자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선방 중에 제일 규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전에 가도 되고, 오후에 가도 되고, 하루 종일 해도 되고...자기가 정해 놓고 하면 된다. 대신 그 덕에 연세 드신 분들이 무리하지 않으시고 할 수 있고, 나 같은 약골도 참여할 수 있다. 저 보살님이 행여 세상을 떠나시면 이 선방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보살님은 그런 걱정 안 한다고 하신다. 또 누가 나타나서 잘 해 나갈 거라고. 화요일에 절에 가서 뵈었다. 오랜만이라고 반가워하시면 볼 좀 만져보자고 하시며 쓰다듬으신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항상 도반이라고 말을 높이셨는데 왠일인지 "아이고, 성정각 왔네. 오랜만이다. 얼굴 좋아졌네" 하신다. 손녀가 된 것 같다. 한 사람의 재가자가 크게 스님들의 도움 없이 이렇게 몇 십년을 선방을 꾸려 오신 공덕이 얼마나 큰 지 모른다. 지금도 결제 기간엔 3,40명의 보살님들이 수행하신다. 이 달 16일은 동안거 결제일이다. 거의 매일 만나 뵐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수녀님. 학원에 몇 달 다닐 일이 있을 때 만난 분인데 학원에서 늘 짝으로 앉아 공부하는 단짝 친구였다. 수녀님은 10년 정도를 중앙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셨는데 한국엔 잠시 들어오신 거다. 불교적 색채가 물씬 풍겨나는 이 수녀님의 어머니는 매일 천 배를 할 정도로 열심인 불자였는데, 수녀님께서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한 집안에 수행자 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셨다고. 수녀님을 만나는 내내 종교적 어려움은 없었다. 아마도 카톨릭이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태도를 누그러뜨릴 결과가 아닐까 싶다. 수녀님께 "수녀님처럼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라고 했더니, 수녀님께선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은 성직자들도 너무 영성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요. 봉사 같은 것도 좋지만 자기 영성을 개발하는 것 역시 자신과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선방에서 공부하는 게 더 부러워요" 하신다. 수녀님이 때때로 얘기해 주시는 중앙아프리카는 좀 무섭다. 다행히 지금은 내전이 끝난 상태라고 하지만 전쟁의 위협과 배고픔은 여전하다. 수녀님은 이달 말에 중앙아프리카로 돌아가신다. 수녀님도 건강이 썩 좋은 편도 아닌데 들어가신다니 마음이 짠하다. 아마도 다음 주 화요일에 한번 뵐 것 같다. 수녀님은 내게 중앙아프리카라는 낯선 나라를 선물하셨다. 근데 그 나라, 좀 무겁다.
세 번째 보살님! 추나 선생님이다. 사실 난 방금 추나를 받고 왔다. 으흐, 하하, 음하하...마구 기분이 좋다. 받으러 가기 전부터 기분이 좋다. 새소리 들리고, 나무들 단풍 들었다. 오래 전부터 굽은 등과 어깨를 펴려고 애썼지만 성과가 없었는데 우연히 시댁 쪽 먼 친척분인 이 아지매에게 추나를 받았는데 아! 놀라워라 였다. 더 신기한 것은 마음이 밝아진다는 점이다. 마음이 부드러우면 몸이 부드러워지고, 몸이 부드러워지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듯 몸이 바르게 되니 마음이 바르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사실 어느 분보다 이 분에게 어울린다. 관세음보살이라는 호칭. 일일이 말할 순 없지만 그분의 인생은 덕을 베푸는 삶 그 자체였다. 지금도 그러시지만. 오늘 추나를 받으며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나요" 했더니 "자네가 기도하고 지냈다며? 다 자네 인연이고, 자네 복이지. 내가 하는 건 없어" 하신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추나를 받은 사람들은 기운이 솟는다. 얼굴이 밝아진다. 내게 어디 가서 기도할 것 없이 소박하고 작은 마음으로 덕을 베풀고, 바르게 살라고 하신다. 그러면 사람은 몰라도 하늘은 안다고 하시면서. 으흐, 당분간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뵐 것이다.
에..또..그리고...하하 오늘은 세 분만 하자. 째지는 이 기분을 몰아 몰아...밥 먹고, 할 일 하자!
*삶으로써 가르침을 주시는 이 세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나도 이 분들처럼 삶과 기쁨을 나누는 사람 되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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