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 "내맘의 강물"이 말을 건넸다. 그는 아마 나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는 그 친구가 누구인지 모른다. 누군지 모를 이의 몇 마디에 지나간 날들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

내 마음의 강물 - 이수인 시,곡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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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랑 시에도 이런 비슷한 시가 있는 걸로 아는데..순수한 한글을 많이 사용했다는 공통점만 빼면 전혀 다른 어감, 다른 느낌이네요. 부러 가입을 하신 거 보니까 이누아님과 우정을 나누셨던 그리운 분인가봐요.

이누아 2005-10-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자신을 먼저 알려야 한다 주의자입니다. 말만 하면 제가 알아 볼 수 있을 줄 알았나 본데 그러지 못했네요. 그 친구도 섭섭하겠지만, 찾아 준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좀 섭섭해요...

내맘의 강물 2005-10-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땐 남들 앞에서 많은 노래를 아니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그 소리를 소중히 기억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같이 가요방을 가도 박수만 쳐야하니...나에게도 소중한 친구고 기억인데....그 기억이 이제사 떠올라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님이 리뷰에 달아 놓으신 글을 봤습니다. 브리핑에 대한 압박은 내려 놓으세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할 말이 많아서 페이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님이 말씀하신 그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들" 땜에 잠을 설칠 뻔 했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이란 말 속에 님이 말씀하신 연민이 내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어제(12시 넘어서 하니까 오늘인가요?) 시사 투나잇을 불끄고 눈감고 잠들다가 들어서 마을 이름은 정확히 못 들었지만 내용은 시각장애인들이 한 집을 임대해 그 마을에 들어오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큰 돌과 나무로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마을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그들이 무슨 강남 주민도 아니고, 권력기관도 아니고 제가 길가다 잠시 머물렀다면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로 여겼을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좀 그럴싸한 이유를 대주기를 바랬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오면 조용한 마을이 어지러워진다, 안마사를 해서 마을을 흐려놓을 것이다(실제로 안마사 경력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라는 이유들이었습니다. 차라리 땅값이 내린다든지 하는 이유라도 있었으면 싶지만 이 시골마을에 무슨 땅값 운운 하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병신이라서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물론 그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쫓겨서 그 마을에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면 그 마을은 돈 없고 힘 없는 우리는 장애인들하고 살아야 하나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별 겁니까?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갖는 이런 태도...마을 주민 중 한 분은 나라에서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하시지만, 또 그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뭐가 다릅니까? 힘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집에 기르는 개보다 못하게 대접하는 게 말입니다.

그 장애우들은 전세를 이미 낸 상태라 가진 돈도 없는데, 정당하게 임대계약을 마친 상탠데 그 집, 아니 그 마을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눈 먼 사람들이니 길에 장애물만 갖도 두어도 그들은 못 들어올텐데 마을 사람들은 밤에 보초까지 선다고 합니다. 누가 눈 먼 사람들인가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일반인이 이반인들에게 가하는 이 폭력적인 태도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간질 걸린 친구가 학교에 안 나오자 선생님이 우리 반 성적이 올라가겠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저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지 했던 생각이 납니다. 아픈 그 아이가 안 보이고 성적이 보이듯이 어른이 되면 눈이 그렇게 되어 버릴까봐 무서웠습니다. 마치 그때처럼 내 안에 그런 폭력성이 있을까봐, 혹은 제가 그 마을 안에 살까봐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뭐 잘해 주려고 애쓰는 것도 그렇고 그저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만이라도 해 줬으면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길가다 사고가 나면 우리도 장애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달라지겠지요. 왜 그전에는 안 될까요?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고, 그 마을분들이 유별하게 행동하시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이상해요.  마치 믿었던 이웃이 등을 돌린 그런 기분입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저 소시민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지금의 권력자보다 더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친구 어머니가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가난하다고 저를 무시하셨던 일, 목소리가 굵어서 놀림 당했던 일, 직장에서 내가 담당자라고 해도 남자 직원을 바꾸라고 하는 전화를 받던 일...이런 사소한 일들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사소한 놀림과 무시도 아직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저를 생각해 봅니다. 들어오지 말라는 고함 소리 속에, 가로막은 돌덩이 앞에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그런 기분이 됩니다. 알고보면 우리도 간혹 길가에 서 있는 시각장애인이 될 때가 있는데 쉽게 잊어 버리나 봅니다.  

아침에 알라딘에 잠깐 들어왔다 님이 말을 건네셨기에 저도 모르게 그 프로를 볼 때의 착찹한 심정이 되살아 나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 하다가 갑자기 오늘 하루 잘 보내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하고...그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점점 뻘쭘해지네요....그럼 인사나 하고 갈께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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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4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 님, 정말 그렇죠?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러나 생각들 대신 이런 상황을 타개할 단순한 행위가 우리 안에서 용솟음치기를!!

비로그인 2005-10-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그런 일들이..아니, 또가 아니라 계속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들이 또 하나의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들을 억압하다니요. 그 인식이 무섭고, 그 편견이 끔찍합니다.

어렸을 적, 저희집도 가난했는데 부잣집 옆집 동생이 저와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그 아이와 토끼에게 풀을 주고 있는데, 그 집 엄마가 쫓아와서 그 아이를 꾸지람하는 걸 봤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집도 가난한 얘랑은 놀지 말라구요..그리구 질질 손을 잡고 갔는데..그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얼굴만 다를 뿐 어디서나 마주치게 되더군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린다고 수업료를 자주 못내던 제 친구를 담임 선생님은 모욕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끝까지 그 친구의 이름을 헷갈려 하더라구요.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스스로조차 알지 못하는 새, 끔찍한 권력을 휘둘렀을 겁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이누아 2005-10-1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로 그게 두렵습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그런 폭력을 휘둘렀을까봐, 휘두르고 있을까봐, 앞으로 그럴까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을 안에 살고 있을까봐 두려워집니다. 반성하고 반성합니다.

2005-10-14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0-1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이누아님이나 복돌이님이 아침부터 반성하고 계신 모습 보니
거시기하네요.
물론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잠재된 성향에까지
미리 눈을 부라리시는 건 알겠는데요.ㅎㅎㅎ
소시민들이라고 뭐 모두 소박하고 다정하고 그러겠어요?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없는 사람에게 가하는 그런 모욕과 멸시는
또 고스란히 누군가에게서 받게 돼 있잖아요.
아무튼 아침부터 뭔가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두 분 글 잘 읽었습니다.^^

비로그인 2005-10-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나니..그래두 회개합니다..

이누아 2005-10-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는 고등학교 때 1년 반 동안 매주 2회 정도 청각장애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이 바로 사람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도 사기꾼도 있고, 선한 이도 있고...아,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람으로 대해야 겠구나, 장애우라는 이름도 거추장스럽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니 소시민이라고 다 소박하고 다정한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비슷한 아픔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복돌님, 저두요!

비로그인 2005-10-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누아님도 혹시 수화를 할 줄 아세요? 거참, 비슷한 시기에 이누아님도 청각장애우들을 만나셨군요. 저도 고딩 2학년 때 청각장애우들을 만나러 다녔었거든요. 근데 제시하신 것처럼 참 우습습니다. 장애우는 뭐고 비장애우는 뭐랍니까. 이 단어 정말 맘에 안 듭니다!! 이 어휘 또한 왠지 사람을 또 다른 뭔가로 분류시켜 놓는 듯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2005-10-15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수화할 줄 알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많이 잊어버렸어요. 길가다 보면 청각장애자라고 쓴 함을 들고 모금을 하는 아주머니가 계시잖아요(대구에만 있나요?) 한번 얘길 해 봤는데 반도 이해 못하겠더라구요. 어쩌면 멀리서 복돌님이 보이면 손짓으로 인사 나눌 수도 있겠네요.^^

비로그인 2005-10-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아니, 이런 귀한 인연이 있나요? 그랬었군요. 전 사실 사회복지사나 수화통역사가 되려고 했었어요. 아, 저두 물론 마찬가집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건 대충 기억이 나는데, 예전에 만났던 그 분들을 만나면 너무 손짓이 빨라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 '다시'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하다 그냥 되돌아서고 맙니다. 흐흐..멀리서 보이면 손짓으로! 그러게요. 핫. 금방 보셨어요? 저, 금방 이누아님께 감사합니다, 손짓을 했답니다.^^

2005-10-1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16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고맙습니다. 지질께요!!^^

2005-10-17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이 바남풍 해도 제가 바람풍이라고 알아 듣습니다.^^
 

왈로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댓글에 남긴 걸 보니 아버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어릴 적 아버지는 무서웠다. 목소리도 굵고, 크고, 남매 넷이 나란히 줄을 서서 인사를 하지 않으면 그날 저녁은 다 먹었다.

가끔씩 리더쉽 테스트 겸 상식 테스트가 있었다. 아버지는 주로 국사문제를 내시면 답을 아는 사람이 손을 들어 대답하는 식이었다. 정답이 많은 사람은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고, 손을 많이, 빨리 든 사람은 리더쉽이 있다고 인정되었다. 주로 손을 많이 들어야 했다. 아니면 심하게 실망하시니까...

아버지는 술을 조금 드시면 기분이 좋으시다. 노랫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조금 더 드시면 연설을 하신다. 주로 주제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이다.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지, 부모나 타인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니 열심히 하라는 것인데, 비슷한 내용을 매번 몇 시간씩 이야기하신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심하게 드셔서 인사불성 상태가 되면 "우리가 왜 사냐, 사는 게 뭐냐"하는 이야기를 아무도 안 붙잡고 혼자서 하신다.

언제나 민주주의식으로 가족회의를 하셨다. 그러나 의견을 말하는 데까지만 민주주의고, 결론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집을 새로 지을 때 집짓는 아저씨가 "이 집 주인아저씨는 왕이야, 왕. 아직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네"라고 할 정도로 독재가 심하셨다.

술도 자주 드시고, 나한테는 공부도 못하게 하시고 해서 사춘기 때는 아버지께 많이도 대들었다. 대학에 가서 아주 잠시 생활야학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노동자를 위한 연극 공연이 학교에서 있어서 보러 갔다. 현대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로 꾸민 것이었는데 난 깜짝 놀랐다. 거기 우리 아버지가 서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와서 큰 소리를 치면서 발 씻을 물을 떠오라고 소리치는 저 아저씨,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대문을 여는 저 아저씨...아버지의 삶은 그냥 노동자의 삶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배운 것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근근이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객관적으로 무대에 선 아버지는 약하고, 위로받아야 할 모습이었다. 아버지...

사실,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면 우리 아버지는 키도 크고, 잘 생기시고, 노래도 잘 하셨다. 특히나 독립심도 강해서 할아버지집을 나와서 고향 마을에서 처음으로 쌀 한 가마니를 주고 전세를 사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손엔 늘 책이 있었다. 그것이 족보책이든, 명심보감이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의 일기장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사촌 동생이 우리 아버지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표현하는 걸 들었다. 군대 가기 전엔 몰랐는데 군대 가서 우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었다고. 언니들에게 초록색 동화책을 사 주셨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좀 어려운 것이긴 했지만 영화관도 자주 함께 데리고 다니셨다.

그렇게 강하시던 분이 큰언니가 결혼했을 때 집에 와서 방문을 닫고 우셨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해주신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평생 세 번 우셨다고 한다. 큰아버지가 월남 가셨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큰 언니가 시집갈 때...

어쨌든 이렇게 얘기하니 아버지가 멋있는 사람 같다. 사실 아버지는 책임감 있고, 멋진 사람이었는데 그걸 아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와 부딪혔던 시간만 생각하곤 했었다. 그 공연을 보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내게 아버지는 항상 강한 존재였다. 강해서 내가 아무렇게나 해도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죄송한 일이 참 많았다. 

요즘은 이런 연습을 자주 한다. 엄마나 어머님을 볼 때 엄마나 어머님이 아닌 그 분들 자체로, 한 인간의 삶으로 좀 멀리서 쳐다보기를 해본다. 어떨 땐 내가 이대로 늙어 그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그분들께 바라는 것이 없어진다. 한 인간이 나에게 이토록 헌신적으로 무언가를 주기만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보면 고개가 수그러진다. 남은 생을 한 인간의 삶으로서 행복한 삶을 사시길 마음으로 빌고, 또 그렇게 하실 수 있게 도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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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29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버님 이야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호탕하고 매력적인 분이시네요. 특히 국사문제, 크하하하..이누아님은 괴로우셨을지 모르지만, 듣는 저로서는 무척 흥미로운 광경이네요. 저희 아바이는 늘 술에 젖어 계셔서 지금도 들큰한 술냄새가 풍기는 듯 해요. 한평생 막노동자로 사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후, 생각해보니 동네 개그맨이셨어요. 항상 유머를 잃지 않으셨고 맘이 따뜻하셨던 점이 장점이라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가족들에게 신뢰를 잃었던 점이 참..안타깝네요.

이누아님 부모님의 건강을 빕니다.

왈로 2005-09-2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난다. 그 연극 보고 한참을 얘기했었는데. 아마 심지하고 보고 왔었드랬지?
시간이 지나면 난도 너처럼 얘기할 수 있을까... 아버지에 대해... 애가 둘씩이나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구나.

로드무비 2005-09-3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의견을 말하는 데까지만 민주주의고 결론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무지 웃었습니다.
부모님도 한 인간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복돌이님, 아유, 님의 아버지 얘기도 잘 들었어요.
너무 멋진 분이셨네요.
이문구 소설 주인공 같아요.^^

이누아 2005-09-3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그러니까 복돌님의 개그는 아버님께로부터 온 것이군요. 님의 아버님은 우리 아버지랑 비슷한 느낌을 주는군요.저도 님의 어머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왈로야, 기억하는구나. 너는 안 봤구나. 그때 안*학이가 있어서 너도 함께 본 줄 알았는데...기억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다. 요즘도 반야심경 읽니? 이유도 없이, 무조건 읽기 전에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봐. 그냥 아버지가 건강하도록, 아버지가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아버지가 즐겁도록, 아버지가 사랑받기를 기원해봐. 이루어지든 말든, 마음이 내키든 안 내키든 그냥 쭉 해보라고 권하고 싶네. 사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병든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건 절반 정도가 할 수 있고, 건강하지만 나와 부담스러운 관계에 있는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건 잊어버리기 쉽거든. 한번 해봐. 한 석달 열흘만. 이유없이. 접수했나?

로드무비님, 이야기로 하자면 우리 가족들 이야기는 아직 한 꾸러미입니다. 요즘은 괜스레 아버지가 보고 싶고, 아버지 묘에도 다녀오고 싶어져요. 어쨌든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좋습니다.

니르바나 2005-10-0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살아계신 분처럼 아버님를 그리셨군요. 이누아님
하긴 육신의 끈만 놓으신 것이니 "나 여기있다"고 말씀하시는 아버님 목소리가
마음속에 살아남아 있는 이상 생의 이편 저편의 구분이 쓸모없는 셈이지요.
야반 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 말씀하신 경봉큰스님의 유언이 생각납니다.

이누아 2005-10-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알라딘의 다른 분에게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 가족은 여섯 명입니다. 이제 네 명이 되었지요. 배우자들도 생기고, 자식 있는 형제도 생겨 그 숫자를 넘기고도 남지만, 각자의 가족이 생겼지만 제 마음 속의 우리 가족은 여전히 여섯 명입니다. 그런 건 변하지 않더라구요.

icaru 2005-10-0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버지 생각도 나네요... 이누아 님의 아버지와 겹치는 실루엣도 있고요... 찡긋...

이누아 2005-10-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마도 겹치는 부분이 조금씩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복돌님의 "서울 이미지"(http://www.aladin.co.kr/blog/mypaper/744125)를 보면서 예전에 쓴 일기가 생각이 나서 꺼내 읽었다. 그 노트 앞에는 서울일기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거기에 있는 글을 보고 웃는다. 지금 읽어보면 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치지 않는다. 몇 개 중에 97년 3월 22일 토요일에 쓴 것을 옮겨본다. 재미로.

==============

이제는 알 듯

 

사람들, 사람들, 이 밤에도 마로니에 공원엔

아, 사람들. 들. 들, 사람의 들.

소주 반병을 만두 라면과 함께 마시고

혜화역에서 4호선을 타고

사당역에서 호흡을 삼킬 듯한 뜀박질로

마지막 2호선 전철, 밤 11시 45분 차

사람들 틈에서 탔지.

아, 그 틈. 틈, 들의 틈에서.

봉천(奉天)6동, 말끔히 씻고 방에 앉으니

죽은 내 아버지가 전화기를 쳐다 본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늦은 시간에도 전화를 하곤 했지

고향으로, 친구에게로

나 살아있다, 나 살아있다, 전하려는 듯

이제는 조금은 알 듯

알 듯

내 아버지의 늦은 통화

=============

목련꽃을 든 여자

 

목련꽃을 든 여자가 남자와 함께 낙성대역쪽으로 걸어간다

여자는 목련꽃의 향을 맡으려는 듯 코를 갖다 대고 있다

지금은 전철이 다 끊어진 시간

저들도 그것을 아는지 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비켜간다

저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꺾어진 목련은 어디에 향을 남길까

저 꽃잎은 내일도 저리 하얄까

저 여자는 내일도 꽃을 들고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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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27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누아님! 정녕 이 시가! 이 아름다운 시가, 오롯이 이누아님의 시란 말입니꽈? 오..'이제는 알 듯'이란 시, 넘 좋아요.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또 한편으론 현실적이고 때론 몽환적인..우오우오우오, 쫙쫙쫙!!

이누아 2005-09-27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전에 쓴 거죠? 시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냥 일기죠. 3월 22일 일기를 택한 이유는 그날 한 네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썼는데 그때 써놓고 오빠에게 읽어줬더니 전 "이제는 알 듯"이 좋은데 오빠는 "목련꽃을 든 여자"가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이 두 개를 골랐어요. 꿈보다 해몽이라고...님의 박수, 고맙습니다.

big_tree73 2005-09-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일기장에다 베껴 놔야지~~~~ 히히~ 안녕~ 이누아~

이누아 2005-09-2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나무야.

니르바나 2005-09-2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로 꺼내 읽은 이누아님 일기의 내용에 감동의 울림이 온몸으로 잔잔히 퍼져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왈로 2005-09-2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목련꽃에 한 표!
아직 내겐... 넘기 힘든 아버지라는 벽 때문에....
또... 아직도 난 불안한 젊음인것 같아서...

이누아 2005-09-29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올렸는데 올려놓고 보니 97년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년도 안 된 때네요. 제가 뭘 하기 전에 늘 먼저 와 앉아 계신 듯했지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왈로야, 학교 때 사형제도에 대해 위의 글처럼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너는 그게 내가 쓴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기억 안 나지? 기억나게 짜잔하고 그 글을 보여 주고 싶다만 아쉽게도 대학 때 썼던 글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어쨌든 그게 내가 쓴 글 중에 유일하게 뭘 주장하는 글이었는데...아마 그때 너는 의견이 분명한 걸 좋아했나봐. 오, 지금은?
 

[혜덕화님의 댓글]

똑같이 사람 몸 받았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님을 느낍니다. 차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쓰고 있는 마음의 안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에게 실현 가능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이 책에 그런 말이 자주 나오죠. 내 종교와 믿음을 강요하지 말라고. 그래서 저도, 말이 안통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저 사람과 나는 사는 차원이 다르구나-높고 낮음이 아닌 그저 다른- 하고 생각하고 맙니다. - 200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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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동네에 있던 성당에는 좀 젊은 신부님이 계셨어요. 그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경암송 대회랑 연극 등 행사가 있었는데 신부님이 술을 너무 드셔서 심사를 못 보셨지요. 성격도 한 성격하셔서 마을 사람들과 마찰도 있었구요. 그래서 제가 친정 오빠에게

저 신부님은 너무 모가 났어. 보통 신부님들은 덕스럽고 이해심도 많으신데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시고, 날카로워 보여.

그랬더니 오빠가

너는 정말 힘들거나, 화가 났거나, 아니면 잘 몰라서 허둥대던 그런 때가 없었니? 만약 그 기간에 너를 본 사람들은 말하겠지. 그 애는 참 참을성이 없구나, 그 애는 참 어리석구나 하고. 그러나 네가 평온할 때 너를 만난 사람은 그러겠지. 참 차분하구나, 지혜롭구나 하고. 니가 본 다른 신부님들도 저런 과정을 거쳤을지도 몰라. 이 한 시기가 너의 눈에 띄었을 뿐이지. 저 신부님은 아직 많이 젊으시잖아. 저 신부님의 50대를 상상해봐. 내 생각엔 덕이 철철 넘칠 것만 같아. 그러니 사람을 만나면 판단을 미루도록 해. 그 사람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만 갖고 있지는 않아.

오빠의 말은 옳았어요. 그 신부님이 다른 성당으로 가신 뒤에야 알게 되었지요. 신부님 나름대로 형식보다는 마음과 내용을 채워가려고 애쓰셨다는 걸. 다른 신부님이 오셔서 이 성당이 교무금도 적고, 헌금도 적고, 고백성사 때 격식도 잘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고 걱정하셨는데 그게 단점도 되지만 가난한 동네사람들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그랬던 거지요. 우리가 만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긴 시간 속에서 그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 것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야구를 계속하면 야구를 잘 하게 되듯 관심과 마음을 두는 곳이 달라 조금 다르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어떤 과정 속에 서 있고, 그런 면에서 모두 같지요. 님 말씀대로 안경의 차이겠죠?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존재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윤회의 긴 시간터널에서 인간의 몸을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런 일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적, 아주 어렸을 적은 아니고 아마도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생 때 "천사와도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기"를 기원한 적이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그래도 그런 기원을 한 걸 보면 그게 가능하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님과 자유롭고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때가 있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님이 언제나 수행하고, 타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한 꼭 그럴 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제가 요즘 말이 너무 많아져서. 그냥 글을 보면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주절거리고 마니. 핵심은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모두 같은 사람이며(어떨 땐 사람을 넘어설 수도 있겠지요), 님의 수행으로 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점만 달리하면 세상에 스승 아닌 사람이 없지요. 그러나 저는 아직 잘 안 됩니다. 감정적으로, 이성적으로도 안 될 때가 많습니다만.

평소 님을 스승이나 사형으로 여기고 있는 터라 님의 댓글에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적고 보니 혹시라도 무례하게 여기시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글이라는 것이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닌지라...귀엽게 봐 주십시오. 머리 숙여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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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이십대의 저, 혹은 삼십대의 저를 본 사람도 지금의 저를 본 것과는 다른 판단을 내리겠지요. 판단을 뒤로 미루는 일. 간단한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매사에 판단이 올라오려고 할때 그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이것이 아직은 뜻대로 안되니, 능엄주나 금강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른데로 돌릴 뿐입니다. _()()()_

비로그인 2005-09-2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말씀. 혜덕화님 말씀에 공감하면서 이누아님의 오빠분 말씀에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 멋지신 거 아녜요. 이 글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명징해져요. 넉넉해져요. 고맙습니다, 라마스테, 합장_()()()_

이누아 2005-09-2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때가 제가 중3때고 오빠가 고2 때였어요. 여전히 우리는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반이랍니다. 가족 중에 이런 도반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여하튼 두 분 다 횡설수설하는 제 이야기를 이해하시고 답글을 달아 주시니 감사^^

혜덕화 2005-09-21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의 글에 등장하는 오빠는 분명 전생에 닦은 분일거예요. 고 2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네요.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그런 생각조차도 없이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은데...... 좋은 도반을 가족으로 두어서 참 부럽습니다.

이누아 2005-09-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런 도반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