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로 시집을 영 덜 읽는다. 읽어도 건성건성 읽게 된다. 시가 짧아서 바쁠 때 읽기 좋다지만 시집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을 때라야 시에 집중이 된다. 산문은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읽을 수 있는데 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 덕분인지 그 탓인지 산문을 좀 더 읽게 되었다. 2학기에는 전일 등교를 한다는데 그때가 되면 한 번에 한 권의 시집을 읽는 사치를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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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색깔을 정말로 결정하려고 해 보라. 한 사람의 백인은 하얀색인가? 확실히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광대의 하얀색뿐인데, 머리에 분칠을 한 이 광대는 크고 빨간 코를 주요 속성으로 하는 동료 오귀스트에 비해 약간 어리석은 양식을 재현한다. 실제로 무한히 많은 등급을 거쳐 지나가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가상의 흑인보다 창백한 누군가를 '백인'이라고 부른다. 이때 몇몇 스웨덴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시아 사람들 몇몇을 거쳐서 모리타니 사람들을 살펴 보자. 다른 한편으로 어떤 타밀 사람은 분명 여러 '검은' 아프리카인보다 피부색이 짙지만, 이들을 흑인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많은 아프리카인의 피부색이 짙은 편이지만 검다고 말할 수 없고, 많은 유럽인이 백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저 노란색이라고만 간주되는 아시아인들(그런데 누구의 피부가 노란색인가? 간염 환자?)은 대체로 많은 수의 남유럽 사람들보다 밝은 피부색을 보이며, 검은 물감이나 석탄 조각과 비교할 경우 가장 피부색이 짙은 사람도 곧바로 검은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략-

인간 동물의 가장 객관적인 표시는 어떠한 색깔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인간 동물이 검은색일 수 없고, 정말로 검은색일 수 없는 만큼이나 흰색일 수도 없으며, 하물며 노란색이나 붉은색일 수 없다는 점이다.

 

-알랭 바디우, [검은색](민음사, 2020), pp.124-125.

 

 

주로 주체와 타자의 논리에서 이분법이 대등한 A와 B의 관계로 작동하는 경우는 없다.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이외의 나머지 세상만 묘사한다. 나는 백인 문화가 다른 인종을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은 색깔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유색 인종(color of people)'이라 부르는 것을 비판한다. 한편 구한말 조선 사람들도 갑자기 나타난 서양인을 보고 자신의 몸과 다른 점을 기준 삼아 '색목인(色目人)'이라고 불렀다. 검은 눈동자도 분명히 색깔이므로 이 단어는 인종 차별적이다. '유색 인종'과 '색목인'의 사회적, 언어적 지위는 같지 않지만 구성 원리는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의 지위는 언어가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언어가 정해지면, 자신과 외부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이분법은 무엇인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인식의 절차이자 과정이다.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교양인, 2016). p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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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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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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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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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1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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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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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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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누아 >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2005년에 쓴 리뷰-산에는 꽃이 피네

 

 

2005년이면 법정 스님이 살아계실 때고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다. 이제 이 세상에 계시던 스님은 안 계시고 없었던 아이들이 있다. 인생에 가장 격렬한 체험인 생과 사가 멀리서 보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지네, 또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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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늪으로, 사막으로 내 보내 죽음의 거머리와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기게 하는 것이다.

p.21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된 것들은 또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영원히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끝내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p.180 마음아, 이젠 좀 지치려무나. 칭얼대지 마라. 네 수레바퀴는 빠져버렸단다.

p.217 사라진 것들에 대한 사랑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사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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