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A

_변희수

 

 

바닥에 떨어지면서 컵이 산산조각이 났다

 

배울 점이 있다

빙빙 돌려서 말하려다가 정면으로 부딪힐 때

입술을 열고 반짝이는 게 있다

 

남아서 계속 주의를 요하는 게 있다

컵보다 먼저 손목을, 어리석음을, 날카로움을

긋는다는 것

진심을 다해 무찌른다는 것

 

여기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컵이 있다

용기에 대해서 조각조각 설명해보려다 아악!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이 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

부정이 있다 긍정이 있다

 

그러니까 말하려는 바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다그치기도 전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사라진 컵이 있어서

이 근처는 뾰족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분명하고 투명하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른

 

-변희수,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시인동네, 2020)

 

 

한 서재지인의 글을 읽으며 이 시가 생각났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졌을 사람의 이야기. 몇 번이나 그 서재를 서성이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왔다. 내게도 할 말이 있어요. 나도 말하고 싶어요. 나는 끝내 말하지 못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담담히 말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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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_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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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학


근심을
잊자 했으니

나를 먼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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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露와 같이
-황지우


오 환생(幻生)을 꿈꾸며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엿듣는 풀의 누선(淚腺),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로다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상(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 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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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동정

-최영미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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