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치마 저고리 입고 달에게 무엇을 빌었는가

여장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행하여진 풍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것으로 보아 우리 고향에만 내려온 풍습일지도 모른다. 년령대를 보면 보통 국민학교를 졸업하기전까지의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보름날 달이 뜨기 전, 어머니의 한복을 몰래 꺼내들고 바닷가로 집결했다.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수평선에서 떠오른 보름달이 바다위에서 출렁이기 시작하면 급하게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후 일렬로 늘어서서 한해의 소원을 빌며 절을 하곤 했다. 족히 십여명이 넘는 숫자였다. 그때 빌었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종교의식처럼 경건한 무엇인가가 가슴속에 살며시 자리잡았던 느낌은 아직도 남아있다.

2. 휘엄청 밝은 달빛 아래 각설이 타령은 울려퍼지고

여장을 하고 치루어진 의식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세숫대야를 들고 모였다. 동네를 돌며 밥을 얻어먹는 의식이 남은 것이다. 세숫대야의 종류는 보통 두가지로 구분되었다. 깨끗한 세숫대야는 밥과 나물이 담기는 것이요, 지저분한 세숫대야는 각설이 타령의 장단을 맞추는 꽹과리와 징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동네 집들을 모두 돌며 구성진 각설이 타령 한방이면 보통 밥과 나물이 나오곤 했다. 가끔 물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각설이의 집요함에 당해낼 재간은 없었던지 결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밥과 나물이 한 세숫대야 그득해질때까지 돌아다닌후 휘엉청 밝은 달빛 아래서 즉석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온갖 종류의 밥과 나물, 그리고 각 집마다의 고유의 특유한 음식맛을 한방에 해결하곤 했다.

3. 달에게 던진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표준말로는 쥐불놀이인 놀이를 고향에서는 '망우리'라고 불렀다. 보통 남양분유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고 철사로 손잡이를 만들어 윙윙 소리나도록 돌리곤 했다.  고향에는 하천이 있다. 그 하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 마을은 언덕배기 고수라든지 해변가 고수를 명목으로 전쟁놀이가 한창이었다. 그러다 보름이 다가오면 정전협정이라도 맺은듯이 조용히 망우리 놀이를 준비했다. 여장과 세숫대야 의식이 끝난후 하천 주변 언덕으로 모였다. 어느 한사람이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하천 양쪽 언덕에서 불길이 솟는다. 시리도록 밝은 보름달이 토해낸 선혈들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동안 준비한 나뭇가지가 다 타고 보름달이 하천 중간 정도에 이르면 어디선가 하나의 망우리가 달을 향해 치솟는다. 그리고 양쪽 언덕에서 돌아가던 망우리들이 일제히 달을 향해 마지막 힘을 토해낸후 달빛 아래 하천 위로 조용히 사그러들었다. 마지막으로 달을 한번 흘낏 쳐다보고 돌아서던 가슴속이 알수없는 희열로 충만하곤 했다.

망우리를 마지막으로 돌려본것은 20대 초반이다. 당시 꽤나 힘든 시기를 보낼적이었다. 고향의 언덕길을 거닐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몇 안되는 꼬마들이 돌리던 망우리였다. 어둠이 어스름 내리기 시작한 강가에서 돌아가는 불의 향연을 바라보면서 주요한의 < 불놀이 >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아마 그처럼 < 불꽃의 고통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 > 는 열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망우리 하나에 1000원을 흥정하는 꼬마에게 받은 망우리를 돌리며 " 안녕 " 이라고 소리치며 달을 향해 던져올렸다. 나의 고뇌와 아픔이 담겨 던져올려진 마지막 망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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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2-2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을 한다는 말과 세숫대야에 밥을 얻어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예요! 신기하군요^^(물론 세수대야는 깨끗이 씻었겠죠?)
쥐불놀이는 저도 방학 때 시골가서 해 본 것 같아요. 빙빙 놀리면 불꽃이 발갛게 살아나던......불놀이 해도 어른들이 말리지 않고 밤새 즐겁게 놀았던 기억나요^^

호밀밭 2005-02-2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은 저도 처음 들어보네요. 대보름이 예전에는 놀이 중심이었을 텐데 지금은 음식 중심으로 남은 듯해요. 저한테는 그래요. 나물 먹는 날로만 기억되거든요. 대보름에 대한 추억이 있는 님이 부럽네요. 마지막 망우리에 대한 부분 마음에 남아요. 오늘 달을 한 번 보아야겠어요. 멋진 글 잘 읽었어요.

겨울 2005-02-2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산나무에 새끼줄을 걸고, 의식처럼 집집마다 가장의 이름을 부르며 소지를 태우고, 아이들은 길게 줄을 서서 백설기를 얻어먹고, 청년들은 꽹가리와 장구, 징을 치며 동네를 한바뀌 돌고, 쥐불놀이에도 지친 이슥한 밤에는 바가지와 양동이를 동원하여 밥과 나물을 얻어다가 정체불명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아스라한 기억..... 그립네요.

icaru 2005-02-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어데서 구하셨대요...?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립니다~ 님은 참 유년 시절 여러 가지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계시네요...
저는 쥐불놀이는 직접 해보지 않고, 구경만 했었거든요...실제로 해보기엔...헉..좀 무서워보이기도 하고 그랬어요.
작년 이맘 때 쯤에 님께 귀밝이술 드셨냐고 물었던 게 생각나네요...우아..벌써 일년이 지난 거 있죠~

파란여우 2005-02-23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서범의 '불놀이야'를 떠올리는 저와 주요한의 불놀이야를 떠올리는 님은 확실히 정서의 차이가 나는군요.마지막 망우리에 오늘은 무엇을 올려 보내셨을까나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2-2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보름이 언제지, 하면서 지나갔군요. 잉크냄새님, 유년시절에 관한 소설 쓰시면 멋진 거 하나 나올 듯해요. 전 아스팔트 위에서만 살아와서 이런 이야기 나오면 무조건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꼬마 셈이 빠른걸요. 하나에 천 원을 흥정하다니, 예전의 님이라면 그냥 돌리세요, 그러셨을 듯한데. ^^

잉크냄새 2005-02-2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 역시 여장은 저의 동네에서 잠시동안 행해졌던 행위였나 보군요. 대보름날은 밤새워 놀다 들어가곤 했죠. 그때는 전기가 별로 보급되지 않아서 보름달빛이 정말 대낮같다는 생각을 했었죠.
호밀밭님 / 보름에 먹거리를 빼면 좀 썰렁하죠. 오곡밥, 나물...그저 두가지 만으로도 풍족한 하루였죠.
우울과 몽상님 / 님은 분명 그런 추억을 간직하신 분일거라는 생각을 진작부터 해오고 있었죠. 정체불명의 비빔밥...그립네요.
복순이언니님 / 저도 그 코멘트가 기억나네요. 벌써 일년이라니. 세월 빠르네요. 이 페이퍼의 세번째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두번 울궈먹다 딱 걸렸네요. 아~ 기억력 좋아요.
여우님 / 때가 때인만큼 주요한의 불놀이가 떠올랐죠. 보통때라면 어리버리 홍서범쪽으로 기울었을겁니다.
이안님 / 글 솜씨가 있다면 좀더 눈에 잡힐듯이 쓸텐데 말그대로 주절주절 넋두리랍니다. 제가 소재 제공하고 이안님이 쓰시는 것을 어떨런지요.^^아, 그리고 그 꼬마, 그당시는 얼마나 얄밉던지...ㅎ^^

미네르바 2005-0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뭔 정신으로 사나 싶어요. 대보름도 이렇게 지나가 버렸네요. 오곡밥도 못 먹고, 나물도 못 먹고... 제가 사는 동네도 지금이야 신도시가 되었지만 제 어린 시절은 시골이어서 쥐불놀이도 하고, 밤에는 커다란 양푼에다(결코 세숫대야가 아님-아무리 깨끗한 것이라도^^)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와서 비벼서 먹었죠. 아~ 그 맛이란... 동네 꼬마들 모두 모여 밤새고 먹으며 놀며 했는데... 너무 아득한 시간이에요. 요즘도 시골에서 그런 것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아이들이 이런 맛도 모르고 지내니, 아이들이 불쌍해요^^ 기껏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사니...

잉크냄새 2005-02-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저도 양푼이었나? 아리송하네요. 하여간 양푼은 크기가 작아서 왠지 환영받지 못했을것 같아요. 머스마 열명 정도면 세숫대야 정도는 되야죠. 지금은 이런 놀이들이 모두 사라졌죠. 어차피 시대따라 변하는 거지만 나중에 추억으로 말할수 있는 꺼리는 옛날이 훨씬 풍요로왔던것 같아요.

Laika 2005-02-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게 어린시절의 활기찬 추억을 잘 표현하셔서 읽는 저도 얼굴에 희미한 미소와 함께 옛추억이 떠올라요.. 참, 더위는 파셨나요? 전 그날 새벽에 큰언니에게 전화로 모닝콜해주면서 팔았다죠...^^

잉크냄새 2005-02-2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 제 더위 사세요. 시간이 좀 지났어도 사실꺼죠?^^
 

졸업

김민수 글, 곡

그런 날이 또 올까 사랑하고 방황하고
졸음 쏟아지던 도서관도 이젠 그리워질까
바람따라 타오르고 바람따라 흔들리던
그 시절 지나 이제는 어디로든 가야하지

사람들속에 이름도 없이 묻히진 않을까
세월따라 꿈도 잊고 그렇게 나이들진 말아야지
내 인생이 이대로 정해진 건 아니지
언젠가 나도 갈림길을 만날테고
그 때도 기억해야지 내 젊은 시절 높은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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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2-1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을 나와서 먹는데...오늘 따라 유난히..음식점 골목에 젊은 사람들이 왁자~ 하네요... 인근 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하네요...

Laika 2005-02-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나이들진 말아야지" ..."그렇게 나이들진 말아야지" .."그렇게 나이들진 말아야지" - 이 부분만 크게 들리는게 마치 절 꾸짖는 것 같아요...ㅠ.ㅠ

비로그인 2005-02-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 속의 졸업식은 늘 흐릿하고 비가 흩뿌려지는 이미지예요. 오늘도 간간이 비가 내리고 흐릿한 게 꼭 졸업식 모드의 날씨같네요,^^ 노래 좋습니다...

파란여우 2005-02-1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도...도서관....졸업할 때 그곳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후회했다죠....

마늘빵 2005-02-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업하셨나요? ㅡㅡa

미네르바 2005-02-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내 젊은 시절 높은 꿈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지금 세월따라 꿈도 잊고 그렇게 나이들어 가고 있네요. 그 도서관... 졸음도 왔지만, 그래도 꿈을 키워가던 그 도서관... 지금은 그저 추억속의 장소일 뿐이군요. 그 사실이 참 많이 슬퍼지는 밤이네요.

진주 2005-02-1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졸업을 못했습니다^^
세월따라 꿈도 잊고 그렇게 나이들진 말아야겠습니다.. 흐흐
아직도 도서관에서 졸 수 있음이 참 행복합니다 그려.

털짱 2005-02-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갑자기 전람회의 '첫사랑'이라는 곡이 생각났어요. 이 페이퍼의 느낌이 꼭 그런 분위기인지라.. 좀 생뚱맞지요? ^^

잉크냄새 2005-02-2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 졸업시즌이군요.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그래서 더 그리운...^^
라이카님 / 저도 그 구절이 바늘로 쿡 찌르는 것처럼 아련하더군요.^^
나니님 / 맞아요. 소풍, 졸업식은 항상 비가 오고 춥고 그랬어요. 요즘은 일기예보가 잘 맞아서 아마 그런 일도 드물것 같네요.
파란여우님 / 도서관, 저도 이마에 엘리트 영한사전이니 점보 지우개가 판박이되도록 엎드려 잔 기억이 더 나네요.
아프락사스님 / 반가워요.^^ 만약 지금 졸업한다면 얼마나 좋은 나이일까요. 졸업한지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미네르바님 / 세월따라 꿈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의 새로이 변형된 형태로 다가오는 것일수도 있겠죠. 다만 그 꿈의 순수를 간직한다면 그것으로도 행복할거라 생각합니다.
찬미님 / 아직 도서관에 다니시네요. 부럽습니다. 전 몇년전 자격증 시험때 다니고는 아직 발걸음하지 못했네요.
털짱님 / 오랫만이네요. 전람회의 " 첫사랑" ... 기억이 날것 같으면서도 가물가물거리기만 하네요. ^^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이런 사진이 나왔다고 합니다.

출처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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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2-1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채기를 하지 않더라고 가끔 술을 진탕 마시면 저렇게 보이곤 했다.^^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미네르바 2005-02-1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지금 시도해봐야겠어요. 어떻게 저런 음표가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의 작품이 되었군요. 그런데, 아무나 저렇게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얼른 해 봐야지^^)

갈대 2005-02-1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일부러 하기는 무진장 어렵겠는걸요. 백 번쯤은 해야 한 번 제대로 나올 것 같아요. 아무튼 아름답네요^^

파란여우 2005-02-16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도주 마시러 가야겠어요. 빠른 실행이 중요합니다.^^

비로그인 2005-02-17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쁘네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말을 하는 순간 머리 위로 말풍선이 생겨나 하는 말들이 그대로 적혀진다면 재밌을 거야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서 눈부시게 쏟아져나오는 음표들이 있다면 정말 재밌을 거야 하구요..^^

하얀마녀 2005-02-17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놀랍습니다

ceylontea 2005-02-17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채기 한다해도 저런 예쁜 음표가 나올까요?? 음음..

내가없는 이 안 2005-02-17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을 마셔도 저런 음표는 안 보이던데... 잉크냄새님은 아무래도 음주가무(무는 아직 모르겠고 ^^)에 능한 분이 아닐까 싶어요. ^^ 다시 보니 '진탕'이란 말이 있군요. 그게 중요할지도. ^^

잉크냄새 2005-02-17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성공하면 사진 올려주세요.^^
갈대님 / 제가 볼때 맨정신으로는 백번도 부족할것 같아요. 약간의 알콜기운이 동반되어야 성공할것 같습니다.
파란여우님 / 포도주 마시면 포도송이 비슷하게 나올걸요?
나니님 / 저도 가끔 그런 말풍선을 생각하곤 합니다. 가끔 어떤 사람의 생각이 머리위에 두둥실 떠오르면 재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얀마녀님 / 오랫만이네요. 놀라운건 님의 서재에 더 많죠.^^
실론티님 / 순간과 우연이 만들어낸 미라고나 할까요.^^
이안님 / 진탕의 단계는 가무가 아니고 헤롱헤롱 단계입니다.^^ ㅎㅎ
올리브님 / 님의 상상력에 숙연해집니다. 침이 저리 정확하게 콩나물을 그리리라고는 좀....ㅎㅎ

icaru 2005-02-1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분음표 형식의 제채기....
문득 삶이 경쾌해집니다...!

잉크냄새 2005-02-18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 님의 댓글은 항상 경쾌하답니다.^^

Laika 2005-02-1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밤 디카 들고 나가서 재채기 해볼까요? 에취~ 에취~

진주 2005-02-1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아무리 고해라곤 하지만,
저렇게 예고없이 찾아오는 순간의 기쁨이 우릴 견디게 해요.
그 기쁨이 비록 재채기 만큼 순간적으로 왔다가 사라진다고 해도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갖가지 고민과 허탈함과, 고통들의 바다를 허우적이며
지나는 우릴 웃게 만드네요.

잉크냄새 2005-02-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 근사한 사진이 나올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두번 재채기면 16음표...
찬미님 / 저 작은 그림에서도 이리 커다란 삶의 의미를 잡아내시다니요...존경...^^

털짱 2005-02-2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멋지지만 윗분들의 댓글이 더 예술적입니다.^^

잉크냄새 2005-02-2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 님의 서재리뷰가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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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를 트루니에가 완전히 뒤집어서 새롭게 썼다는 소개글을 읽으면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유럽으로 대표되던 서구문명이 동양문명과 제3세계의 문명을 선도한다는 지극히 서구적이고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쟁반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흑인 소년들을 서양인들이 포크를 들고 입맛을 다시는 삽화가 함께 삽입된 글이었다. 그런 선입견으로 이 책은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입장을 역전시킴으로써 그러한 사고자체를 반전시키려는 글, 반대를 위한 반론의 글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반론을 위한 글이 아니다. 황폐해진 문명 자체에 던지는 메세지이며 인간 본연의 회귀를 위한 메세지이다. 철학적 소양이 심오한 트루니에가 로빈슨의 사고의 변화를 통하여 문명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메세지를 소설 곳곳에 심어놓고 있다. 특히 로빈슨의 독백처럼 서술된 항해일지는 인간존재와 관계에 대한 혼돈과 변화를 들려주는 짧은 철학적 글이라고도 할수 있다.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로빈슨은 탈출호의 실패후에 극심하게 좌절하나 무인도에 <스페란차(희망)> 란 이름을 붙이며 헌장과 형법을 만들고 스스로 섬의 총독이 되어 서구 문명,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다. 타자 부재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던 그가 동굴속의 구멍으로 들어감으로써 자신속의 또 다른 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더 깊고 본질적인 관계의 인식이 단순히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 자아의 인식속에도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방드르디( 금요일 )의 등장은 새로운 사고의 전환점이다. 방드르디의 실수로 동굴이 폭발하고 다시 무인도의 초기 상태로 돌아간 섬에서 로빈슨은 방드르디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무질서에 극심한 혼돈을 겪으면서도 차츰 그에게 동화된다. 오히려 잘 짜여진 문명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연속에서 참다운 질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 28년 2개월후 나타난 구조선 화이트버드호에서 인간의 탐욕과 무질서에 혐오를 느낀 로빈슨은 남고 방드르디는 떠난다. 그의 옆에는 또 다른 불완전한 인간, 죄디(목요일)가 남는다..

로빈슨이 겪는 사고의 전환시점마다 등장하는 것이 물시계가 멈추는 것이다. 시간은 방향성을 가진다. 시계 바늘은 12시를 기점으로 미래를 향하여 움직이나 결국 다시 과거로부터 등장한다고 할수 있다.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지향, 두가지 성향을 모두 지니고 있다. 로빈슨은 과거회귀도 미래지향도 아닌 정지된 현재속에서 사고의 전환을 맞는다. 적어도 현재의 나의 모습에 대한 폭넓은 통찰속에서 새로운 시각이 눈뜬다고 할수도 있겠다. 나도 시계를 멈추어볼까? 결국 지각만이 존재할 것이기에 잠시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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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2-1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드르디, 죄디에 빠져 있다가...지각이 나오는 순간, 여긴 무인도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란 걸...알아버렸어요.

icaru 2005-02-1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셀 투르니에를 마왕을 읽겠다고 덤볐던 게 딱 1년전이에요...
제겐 좀 낯설고도 어렵더라구요...좌절하고 싹 포기했습죠...
이것도 미셸 투르니에네요...헐...

호밀밭 2005-02-1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이군요. 저도 이 작가의 작품을 온전하게 접하지 못했네요. 다 게으른 탓이지만요. 님의 리뷰 중 <오히려 잘 짜여진 문명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연속에서 참다운 질서의 의미를 깨닫는다.>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가끔 무인도에 남겨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제가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도 해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미네르바 2005-02-1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에 이 책도 샀는데, 아직 안 읽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에 살 걸... 땡스투 누르게요..^^ 그런데, 책 제목을 보고서도, 더군다나 저자가 미셀 투르니에인데도 방드르디를 금요일이란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불어인데.. 슬슬 무식한 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님 리뷰 보니 어서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전 리뷰는 쓰지 못할 것 같네요. 비교 될 것 아니에요^^ 미셀 투르니에의 마왕도 지금 벼르고 있는데, 복순이 언니님 글을 보니 조금 엄두가 안나네요. 저도<오히려 잘 짜여진 문명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연속에서 참다운 질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라는 부분이 참 맘에 들어요.(호밀밭님 찌찌뽕~) 인간 대 자연의 모습을 비교해 주는 것 같아요. 지금 읽는 책 끝내면 얼른 이 책부터 읽어야겠네요.

잉크냄새 2005-02-1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번 잡은 책은 어떻게든 읽고 마는 성격인지라 낯설어도 그냥 읽었답니다. 미셀 트루니에가 철학자여서 그런지 소설의 많은 부분을 그런 쪽으로 할애한것 같습니다. 아마 님들의 리뷰가 저자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하실겁니다.

파란여우 2005-02-2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에 남겨진다면 전, 알라딘을 통째로 갖고 갈 예정입니다.(가져가 질까요? 근데?^^)=허무맹랑한 파란여우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역시나 간결하면서 명징한 리뷰였습니다.

잉크냄새 2005-02-2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에는 유쾌,상쾌,통쾌한 인터넷이 안되는 걸로 보고된바 있습니다.
그리고 리뷰여왕 여우님의 응원앞에 그저 글이 부끄러워질 뿐이군요.

2005-09-0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9-1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저 물시계를 주목하긴 했는데, 전 일종의 휴식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음..잉크냄새님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까, 아..정확히 이해가 가네요. 마지막 문단이 핵심을 요약한 듯한 파이널 총정리편이군요. 흐응~

잉크냄새 2005-09-23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그날의 땡스투가 님이셨군요.^^
복돌님 / 단순히 야생이 문명을 극복한 사실보다도 그 이후 환상을 찾아 떠나 방군(?)의 뒷이야기를 유추해내시는 님의 안목, 존경스럽더이다.
 
 전출처 : 진주 > 불 밝히는 오누이

개구장이 우리 영이를 꼭 닮은 인형입니다. 우리집엔 인형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얘들이 오고나서 집 분위기가 환해 진 것 같아요.^^

신랑신부가 가는 앞날을 밝혀 주는 청사초롱을 든 아해들의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우리 가는 날들 동안, 슬프거나 힘들고 괴로운 날이 올리지라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며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맹세하던 그 날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살아봐야겠습니다.두 주먹 불끈!^^ 고마워요. 잉크냄새님.

2005. 1. 잉크님의 이벤트에서.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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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2-14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경과 인형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네요. 그래서 인형의 미소가 더 포근한것 같습니다.

icaru 2005-02-14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부부...참 후덕해보여요 ^^

stella.K 2005-02-14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잉크님. 명절 잘 보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건강하게 복귀하신 것 같아 반갑네요.^^

잉크냄새 2005-02-1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 부부가 아니라 오누이라고 하던데요...^^
스텔라님 / 연휴가 긴~~~ 이유로 늦게 복귀했답니다.^^

2005-02-14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2-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뒤에 기린초가 어여삐 피었군요. 어쩌면 저리 배경하고 잘 어울린대요?이뻐요^^

잉크냄새 2005-02-15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멋집니다.^^
파란여우님 / 기린초가 실제 기린과 흡사하네요. 역시 알라딘 야생화협회 협회장다우십니다. 그리고 배경과의 조화가 대단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