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촌지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촌지를 정당화한 어느 교사의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007 작전을 방불케한 촌지 수사가 이루어졌다. 촌지 교사 김봉두의 행동이 그냥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이미 선을 넘어서고 만 느낌이다.

국민학교 4학년때 담임은 체육선생님이었는데 그 당시로 보아도 유독 부유한 집안의 학부모들과 교류가 잦았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넘어온 것을 직감한 것은 어느날부터 시작된 체벌때문이었다. 반장이라는 이유로 매를 들었고 체벌의 끝에는 항상 부모님의 방문을 단서로 달았다. 촌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불손한 기운은 감지하였던지 난 끝끝내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은 체벌로 교실에서 집으로 내몰린 어느날, 언덕에 핀 강아지풀을 애끚게 쥐어뜯으며 걷던 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먹먹함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다소 힘들었나보다. 그 길이 왜 그리도 서럽던지. 한낮의 그 길이 왜 그리도 어둡던지. 언덕길에서 바라본 덕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냥 돌아섰다.

침묵과 맷집, 내가 선택한 반항이었다. 4학년의 반항치고는 꽤 표독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년정도가 지난후 반장을 그만두면서 그나마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해방감과 안도감이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누군가 어린시절의 상처가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는걸 우연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똑같은 기억도 누군가에게는 한낱 추억으로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와 비슷한 경험인데 나에게는 추억이었고 그에게는 상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기억따위 낄낄거리며 떠들어대는 어리숙함과 뒤돌아서면 까먹는 무심함과 쉽게 상처받지 않는 단세포적인 사고에 깊이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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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5-04-2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국민학교 5학년 때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이전의 푸근하고 넉넉했던 선생님들과는 달리 도시에서 온 멋쟁이 여선생이었는데,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지가 않더군요. 반장노릇과 가난의 공존이 힘들다는 걸 그때 어렴풋 느끼고 참 씁쓸했지요. 뭐, 작은 시골학교에 어울리지 않는 건 그 선생님이었으니 상처는 아니네요. ^^

Laika 2005-04-2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때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성적이 잘 나온 즈음에 담임이 엄마에게 괜히 감투를 씌우고 싶으신지..엄마를 보고 싶다고 담임 수업시간에 면담에 오실수 있는지 전화해 보라며 시간을 내주더군요...그래서 일층에 가서 학교 한바퀴 돌고는 전화 안받으신다고 말했죠.. 그 다음부터는 조용하더군요..

2005-04-20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4-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저는...저기...그러니까,..부반장도 한 번 못하고 조장만 한 번 해봐서 그런가 촌지랑은 거리가 영 멀었어요^^;;

2005-04-20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4-21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상처들 하나씩 가지고 살지 않나요? 저도 공포스런 담임을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님, 전 여기서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바꾸고 있어요. 알라딘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은 다들 참 훌륭하신데... 제게 영향을 준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실망스러웠을까요? 딱 한 사람 담임도 아니었던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은 나중에 사회에 나와 딱 마주쳤어요. 해직 교사가 되어 농성중이시더군요...
그런데 다행이군요. 님께는 상처라기보다는 추억이라 하시니... ^^

잉크냄새 2005-04-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촌지가 떠들썩하게 이슈가 될때마다 단순히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될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파란여우 2005-04-2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촌지얘기가 아무리 이 페이퍼의 주제라고해도 추천은 저 혼자만 했습니다. 으히히^^

미네르바 2005-04-27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촌지를 갖다 준 적도 한 번도 없고, 받아 본 적도 없으니 촌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나 상처도 없는 사람이 되었네요^^

잉크냄새 2005-04-2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의 추천에 감사드리고 미네르바님의 말씀에 역시 훌륭한 선생님이시구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