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시난테 > 김훈은 '난 아무 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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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2003)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김훈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한 비평가는 '그의 문체가 소설에 적합하겠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기자로서의 글쓰기와 소설가로서의 글쓰기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글쎄. 솔직히 난 김훈의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접한 김훈의 글은 <강산무진>이었다. 김훈의 몇몇 소설을 뒤적이고 또 이 책을 본 후에, 난 위의 비평가와는 전혀 반대의 의문을 가졌다. '이런 식의 사고와 문체로 과연 김훈이 기자적 글쓰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뒤늦게 읽은 김훈의 글에는 뭐랄까, 기자로서 요구되는 '벼린 이성'보다는 '축축한 감정'이 묻어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는 편집자와의 상의 끝에 원래 제목이었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를 수정한 제목이라고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곱씹을수록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제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걸 두고 제목에 '낚였다'라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 했다.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에서 스치듯 김훈의 과거사를 전해 듣고, 난 그가 궁금해졌다. 부끄러운 과거 덮기에 급급한 한국 지식인 지형에서 자신의 치부를 손수 밝히고자 했던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게다가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도발적 표제를 건, 김훈이 말하는 세설(世說)이라니. 알라딘으로부터 택배가 도착하기 전부터 난 조바심이 났다.  

그에게 붙은, 그를 가장 단선적으로 보여주는 수식어는 바로 ‘문장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간결한 문체와 그 사이에 드문드문 배치하는 만연체는 글의 전체 맥락 속에 적절히 혼용돼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책머리에>라는 책의 첫 장부터 그의 칼날 같은 문장이 나를 압도한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세설 중 가장 압권으로 문화일보가 소개한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일부를 보자. “내가 아들인 너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너는 결국 너의 그 별것도 아닌 평발 증세를 너의 어머니께 강조하면서 재심받을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와 너의 어머니는 다만 무력하게 한숨을 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너를 낳아서 청년이 되도록 길렀으며, 남자로 태어나 함께 병역의 의무를 진 내가 너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나라의 어느 아버지가 징집을 앞둔 아들에게 이 사태를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병역은 남자로 태어난 국민의 가장 신성하고 가장 도덕적인 의무라고 말한들 이미 더럽혀지고 허물어진 신성 앞에서 그 말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가. (중략)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pp.18-20) 

그러나 김훈의 미사여구에 갖혀 그의 문체에만 주목하는 것은 오랜 기간 기자로 재직하며 쌓았던 그의 내공을 폄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글 쓰는 재주야 하늘이 내려주신 선험적 재능이라 볼 수도 있어 그의 필력에만 평가가 집중하는 건 ‘주례사비평’스러운 경향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 실린 글은 세상살이에 대한 김훈의 사색을 훔쳐볼 수 있어 그의 내면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식 글쓰기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아날로그적 글쓰기'다.

그는 여지껏 컴퓨터 자판에 익숙치 않아, 400자 원고지에 연필로 꾸역꾸역 문장을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집필 공간엔 잔뜩 구겨진 원고지와 지우개 가루가 어지러히 널려 있다고 한다.

사실 글쓰기를 업으로 자임한 자가 만드는 문장 하나하나는 몇번을 고쳐쓰고 지워쓰는, 산고의 고통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란 본디 '볼펜'보다는 '연필'로, 좀 더 투쟁적으로는 '몽당연필'로 써야 맞다.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김훈의 대답은 자못 분명하다. ‘난 아무편도 아니다’가 그가 유일하게 밟고 있는 사유의 방향성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그는 그의 ‘계통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거니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그의 ‘아무편도 아님’은 쉽게 읽힌다.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 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은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p.78)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 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p.76) "나는 보편과 객관을 걷어치우고 집단의 정의를 조롱해 가면서 나 자신의 편애와 편견을 향하여 만신창이로 나아갈 것이다.”(p.76)  

그가 잣대로 삼는 유일한 사유의 기초는 바로 ‘삶의 구체성’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먹고 사는 일’을 고려하는 것부터 그의 사유가 전개된다. 예컨대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에서 아들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충고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p.13)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밥을 먹고 돈을 버는’ 인간의 기초 행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일자리를 잃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개혁’이란 말인가."(p.31) 그리고 그의 이러한 기본적 삶에 대한 집착은 곤궁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의 대한민국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듯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열차 지붕 위에 실려서 부산까지 내려갔던 세 살 먹은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 글을 쓴다. 피난지에서 자라난 유년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고 1년 내내 배가 고팠다.”(p.21) 혹은 오랜기간 기자 생활을 하며 부딪힌 사건들, 사람들의 양면성과 이면성을 몸으로 체득하며 얻은 심성일 수도 있겠다.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계를 강제로 편입시켜서 일사불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언론행위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p.92) 

난 김훈의 계통없음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대단히 용기 있는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중층적’이어서, 한 가지 틀로 명쾌히 설명하는 언설은 이제 흰소리로 느껴진다. 다만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잣대의 무의미함’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삶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는 ‘절대적 상대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언급해 둔다. 또한 지나친 허무주의로 인해 극단적 부정의 냉소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날의 말을 되돌아보는 두려움이 98년의 저물녘에 되살아난다. 말들은 허상 만들기로 싸우고 허상 위에서만 타협이 가능하다. 결국 당대의 현실은 당대에서 말하여지지 않는다. 들끓고 날뛰고 날아오르는 말들이 당대의 결핍이며 빈곤이다. 신기루는 점점 두꺼워진다.”(p.66) "어느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관리가 ‘그것(IMF)은 나의 책임이고,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책임을 자인하고 나섰다 한들 그 말이 그 말이다. ‘책임이 없다’는 말이나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나 그 말이 그 말인 것이고 하나마나한 소리이고 들으나마나한 소리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무내용하다. 왜냐하면 그가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책임을 질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p.35)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 나 ‘천국으로 가는 길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계통없음’을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지, 삶의 갖가지 핑계거리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초로(初老)라 부르지만, 이제 이순(耳順)에 가까워져 오는 그가 보여주는 ‘글’에 대한 집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닿을 때 그의 글을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p.203) 매일 이 핑계, 저 핑계에 절주, 금연 선언을 번복만 하기에 바쁜 나로썬 얼굴 홧홧 거리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난 몸을 부릴 대로 부려야 사유가 번뜩이는, 젓 비린내 여지껏 가시지 않은 20대가 아니던가. 이런 내가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지금부터 다시 금연이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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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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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의 서글픈 일이랍니다. 물질적인 삶의 질은 높지 않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삶이었지요. 어느 날 1)안개가 무지하게 끼고 비가 많이 내리는 마을에 사는 녀석이 2)동네 패싸움에 가담하는 길에 우리집 앞마당을 지나야 한다며 패싸움이 끝난후 마당은 물론 자기 땅이라 우기던 지역의 마당확장까지 협력해 준다는 조건으로 3)종이조각을 하나 들고 왔더군요. 뭐, 동네 패싸움에 관심도 없던지라 솔깃하여 싸인을 했죠. 좀더 검토하고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일수도 있지만 그들이 신의를 저버린건 더 큰 문제죠. 글쎄, 안개처럼 음습한 그넘들이 4)천년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양아치에게 5)이중계약을 한겁니다.  패싸움이 끝난후 양아치들은 동네 곳곳에 있던 떨거지들을 규합하며 우리 앞마당으로 들어오더군요. 6)몇몇 뜻있는 동네사람들과 힘을 합쳐 7)항의해 보았지만 원래 저속한 세상의 이치는 이면계약이 힘을 발휘하는지라 항의는 불발되었고, 탄력받은 양아치들은 8)자기 마당인양 줄을 긋고 억압을 하더군요. 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항의 당시 마당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마당에 들어올수가 없다나요. 더 억울한건 대문에 양아치들을 배치하여 마당으로의 진입 자체를 막더니 얼마간 마당에 들어오지 않는 마당의 소유권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네요. 이건 아니다 싶어 9)동네 전체 모임 안건에 의제를 제시했지만 대다수 선량한 동네 주민들의 뜻과는 다르게 양아치와 호형호제하는 10)조폭 출신들에게 가로막혀있는 상태입니다. 가끔 어린애들이 그 금을 지울라치면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대고 좀 철좀 들었다 싶은 청년들이 지울라치면 동네방네에 유언비어를 터트려 마치 자신의 것을 빼앗는 11)파렴치한으로 만들더군요. 아직 저희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어쩌면 희망도 사치일지는 모르지만 사랑방 한구석에서 정신분열에, 절망에 빠진 가족들을 다독여 그 금을 지우고 마당 한켠에 각종 꽃을 심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주석)
1) 영국
2) 1차 세계 대전
3) 후세인-맥마흔 서신
4) 유대인
5) 밸푸어 선언
6) 아랍국가
7) 1948 전쟁
8) 부재자 재산법
9) UN / 안전보장이사회
10) 미국
11) 테러범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의 희망과 절망과 자아상실과 자아분열에 대한 글입니다. 그들이 결코 그 끝자락을 놓을수 없는 판도라 상자속의 희망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절망과 상실을 품고 있나 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글에서 왜 그리 끝없는 절망과 처절한 상실감을 느껴야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마 절실한 희망은 절박한 절망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본 사진 한장이 생각나네요.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고사리 손에 든 조약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사진이죠.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겠죠. 어떤 꿈을 꿀까요. 아마 악몽이 아닐까 싶군요. 그 작고 따스한 고사리 손과 가슴을 향해 차가운 총탄을 퍼부은 이스라엘을 보면서 자라난 청년이 지금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속칭 테러군요. 물론 그 울분을 표현하는 방법의 정당성 측면에서 결코 자유로울수는 없겠지만 내던질 것이 목숨뿐이라는 사실에는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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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리뷰가 올라왔네요 :) 반갑게 잘 읽고 갑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한 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 연후에... 그때야 비로소 하느님이 움직인다고 말들 하더군요.
극과극은 통한다고,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지요.
죽음을 밟고 서있는 게 삶인 것처럼요...

춤추는인생. 2007-04-2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실한 희망을 절박한 절망에서 나온다는말은 아주 공감되는 표현이네요.
예전 낙안읍성의 글이였던가요? 땅콩사세요를 외치던 그 소녀에게 소녀여! 꿈을 꾸어요. 꿈을 잊지 말아요 라고 말씀하셨듯 . 저역시 어딘가에 있는 그 청년에게 아름다운 꿈을 놓치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잉크냄새님의 글속에 묻어나는 따뜻한 시선이 저는 참 좋아요.^^

은비뫼 2007-04-2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서평 읽으니 좋네요. ^^
내던질 것은 목숨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프레이야 2007-04-2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을 지우고 마당 한 켠에 꽃을 심는 기대, 그런 걸 희망이라고 부르겠지요.
님의 온기가 느껴지는 담담한 글이 참 좋습니다.^^

icaru 2007-04-2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다른 리뷰들과 어투가 달라서~ 좀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잘 읽었구요.
그들이 물질적인 삶의 질은 높지 않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그 삶을 어서 되찾기를 저 또한 희망합니다!

잉크냄새 2007-04-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진정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던가요. 가끔은 어설픈 희망이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가슴만큼은 그 희망함을 향하여 나아가야겠지요.
춤인생님 / 와, 그 옛날의 페이퍼를 찾아 읽어주시고 여기에 인용을 하시다니.아마 2004년 페이퍼 같은데요.^^ 감격입니다. 그래요, 절박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 행위가 때론 가진자의 위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엔 분명 희망이 보일겁니다.
은비뫼님 / 예전 예이츠의 하늘의 융단이라는 시에도 나오죠. "내 가난하여 가진것 오직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 깔았으니...." 그들이 가진것이 오직 목숨뿐이라...
배혜경님 / 우리가 희망이라 부르는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희망은 귀천이 없음을. 어느것 하나 무시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카루님 / 가끔 존대로 쓰기도 한다구요. 그들이 다른 누구의 모습도 아닌 그들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지켜나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모습을 바라듯이.

파란여우 2007-04-2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별일이야요. 잉끼냄새님이 이런 책을 다 읽으시다니!
난 또 서정적 시인의 발광체를 최대한 부풀린 요즘이신가 여기고 있었는데...

가난, 전쟁, 추방자, 이주 노동자... 다 열거 할 수 없는 고통이 지구에 있습니다.
제 팔이 아픈것도 고통스러워요.
언능 로또가 대박나야 할텐데....쯥!@.@

잉크냄새 2007-04-2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아시면서요. 전 잡다하게 읽는 습성이라는 것을. 다만 지식이 짧아 이런 류의 책 리뷰는 손이 잘 가지 않죠. 고통을 체화하지 않고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 좀 위험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었답니다.
 

무늬들

- 이병률 -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여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이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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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던가요.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지처럼 접을수 없었다는 시인이.
유리창의 오래된 물자국처럼, 무늬들처럼, 밀어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군요.
시간이 지나니 알겠네요.
그리우면 그냥 그리워하면 된다는 것을.
그냥 흔들리며 그리워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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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잉과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ㅜㅜ
누가 이렇게 심란한 페이퍼 올려달랬어요... 진짜 울고 싶잖아요...
어쨌거나 멋진 글이라 추천.

춤추는인생. 2007-04-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오늘 저랑 통하셨네요^^
이곳 서울은 비가와요. 아침에 빗방울맺힌 창문을 밀다 문득 이시가 생각나서
오전내내 읽고 또 읽었어요.
저도 오늘하루만큼은 마음껏 흔들리는 내자신을 그냥 그대로 봐줄참이예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까요.

잉크냄새 2007-04-2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심란하긴요, 그냥 읽던 시집에서 맘에 쏘옥 드는 시라서요.^^
춤인생님 / 그 페이퍼 저도 읽었어요. 봄비가 통하게 해주었나 보네요. 가끔은 그리 흔들려주는 것도 삶이 부러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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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친구 사이의 우정의 의미는 다소 과격한 분위기를 띄기 시작했다. 시골 다방의 통성냥을 잘근잘근 씹으며 롱코트 자락 휘날리며 쌍권총을 멋지게 쏘아대다 친구의 품안에서 죽어가는 홍콩 느와르와 조폭이 아니면 친구를 논하지 말아야할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연출한 조폭 영화 신드롬이 그것이다. 맹목적 헌신과 희생,  비극적 결말, 비참한 최후. 심하게 말하면 세기말적 관계가 친구의 전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인간관계의 밀도가 점점 약해져가는 분위기에서 한번쯤 상상해 봄직한 일이지만 그 진정성에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얼마전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에서 나이 든 사람들의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다. 딱 잘라 말하자면 그 이유는 오해라기 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철없는 시절의 만남은 이해 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만남이기에 그 순수성이 침해받을 일 자체가 없다.  나이 들어서의 만남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오해라기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해의 방향에 따라서 두가지 결론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기는 하지만) 오해는 풀어나갈 길이라도 보이지만 나와 상충되는 부분을 이해한 상태에서는 더 이상 만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서글프지만 머리를 주억거리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만남은 다소 맥빠진 만남일수도 있다. 극적인 사건도, 가슴시린 사랑도, 생과 죽음을 초월한 감동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함과 고즈넉함이랄까. 아무말 없이 바라보며 거문고 줄을 타는 이과 누군가 연주하는 거문고 자락에 담긴 의미를 가만가만 읊조리는 병풍속의 그림일수도 먼지 폴폴 나는 시골길 옆을 한자락씩 맡아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부분에서 만날듯한 어느 노부부의 그림일수도 있다. 거문고의 현은 서로 따로이 존재하지만 서로 공감할때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친구 사이의 우정도 그러한 것이라고 옛 선인들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한 대목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구절중의 하나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로 나온 목사가 살아 생전 결코 이해할수 없었던 아들을 추모하며 던진 한마디이다. "우리는 서로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수는 있습니다."  이 책도 조용히 그 구절을 거문고 자락에 태워 흘러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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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음.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
흐르는 강물처럼의 저 대사는 저도 무지 좋아라 한다는...

은비뫼 2007-04-1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베게에서 나온 책이군요. 궁금하네요. ^^
흐르는 강물처럼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07-04-1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저도 궁금해요. 그 페이퍼도 그 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황인숙 시인이 출연하여 그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은비뫼님 / 돌베개. 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권만으로도 그 출판사에 믿음이 가더군요. 좋은 책에게 햇살을 부여하는 출판사는 오아시스란 생각이 듭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나는 사과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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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띄워쓰기, 이렇게 보니 정말 중요하네요.^^

마노아 2007-04-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핫! 멋져요^^

비로그인 2007-04-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썩...!
낚였다고 생각되면서도 웃음이 나는 이유는?
잉과장님 재치 짱이십니다요 ^^

잉크냄새 2007-04-0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마노아님,고양이님/ 이런, 제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다른 싸이트에서 누군가 소개글에 써있길래 가져온것인데....흠, 이것도 출처를 밝혀야하나요? @,.@

비로그인 2007-04-0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그 정도면 출처 안 밝히셔도 될 거 같아요.
참 기발하고 좋은데요 :)

icaru 2007-04-1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써먹어야지!

잉크냄새 2007-04-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아하, 그렇군요. 누군지 기발하죠?
이카루님/어디에 써먹으려고 하시는지...ㅎㅎ

stella.K 2007-04-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또 어디서 퍼오셨나용? ㅎㅎㅎ

은비뫼 2007-04-1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핫. 저 사과나무란 동화책 얼마 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띄어쓰기 중요합니다. 흐흐흐. 잉크냄 새님. :)

잉크냄새 2007-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조~오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터넷 어느 분의 소개글에 있더군요.^^
은비뫼님 / 저의 아이디는 잉크 냄새 이렇게 띄워써주세요.

비로그인 2007-04-13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럼 저는 잉과장님이라고 부르면 실례되는 거였어요? ㅎㅎ

잉크냄새 2007-04-1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잉 띄우고 과장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