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60명 가량의 신입사원 충원에 9000명 지원.
150:1의 경쟁자중 인사팀 1차 서류 면접 결과 250명 합격.
250명의 합격자중 우리팀 충원 예정 인원 2명.
2명의 팀원을 뽑기위한 우리팀 서류 면접 합격 인원 18명.
18명중 최종 면접일날 모습을 드러낸 인원 2명.
경영진 최종 검토결과 우리팀 미충원 결정.  

얼마전 내가 신입사원 서류 면접을 진행한 결과이다. 원래는 팀장님들이 각팀 서류 면접을 진행하기도 되어있으나 긴급사항의 발생으로 서류 면접을 대신하게 되었다. 팀장의 지시는 출신학교,성별,학점,토익...위주로 선별해 놓으라는 것이었으나 아직 앳된 증명사진이 선명한 사회 초년생들의 입사지원서를 받아보니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택의 고통이 뒤따랐다. 1시간 정도 배정된 시간을 초과하여 4시간 가량을 그들의 면면을 파악하는데 보냈다.

최종 18명 합격 처리. 일단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서류 작성의 성실성이었다. 물론 해당업무와 관련된 전공이 먼저 고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자기 소개서, 지원 사유, 향후 방향... 이 고리타분한 카테고리는 10년전 내가 입사할때나 변하지 않는구만. 이 지겨운 카테고리는 군대 훈련소에서도 사용했으니 범국민적이라 할만하다. 예전에는 글씨체만 보고도 그 서류의 성실성을 대략 판단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지원이 대세인지라 내용 전체를 읽어보아야한다. 물론 붙여넣기 기능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글들도 있어서 글씨체의 역활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글의 진실성을 파악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들 가치의 기준이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가치의 기준과 엇비슷해야한다는 논리는 얼마나 위험하고 건방진 일인가. 차라리 수치화되고 정형화된 팀장들의 선정 기준을 따를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여간 글의 진실성에 최대한 중점을 두고 18명의 인원을 선발하였다. 

마지막 면접실을 나오다 뒤돌아서 내가 책상위에 올려놓은 자료에게 한번더 애정어린 눈길을 주고 나왔는데 최종 면접일 결과는 2명 지원이라니...어떤 선별기준으로 뽑았냐는 팀장의 답변에 진실성이니 성실성이니 하고 답변하기가 참 궁색했다. 요즘같은 시대에 다중지원이 당연지사지만 허전한 마음이 드는것 또한 인지상정이리라. 어찌되었든 9000명, 특히 내가 서류를 만지작거린 18명의 인원은 어디에서든 잘 되길 바래본다.

p.s)각 팀별 최종 인원의 면면을 살펴보다 발견한 한가지 사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여기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서울대,카이스트,포항공대등의 지원서류는 특정 연구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출신학교 부분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구태여 이유를 달지 않더라도 그들이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편견과 우리 회사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곳에 들어갈것이라는 편견...여러가지 일반화된 편견이 작용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편견은 어차피 쌍방향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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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2-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허탈하시겠다... 그럼 아예 충원 안 하시는건가요?
붙여넣기 기능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글들은 과거 글씨체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는군요.

잉크냄새 2007-02-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젊은피의 수혈이 이루어지지 않는거지요. ㅠㅠ 붙여넣기가 뭔 잘못이 있겠습니까마는 선택의 문제앞에서는 그 성실성과 진실성에 다소 영향을 미치는 면도 있는듯 합니다.

이잘코군 2007-02-1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허탈하네요 저도. 미충원. 9000명이 다 날아갔네요. -_-
님의 진실성과 성실성 판단 잣대가 아무리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객관적 수치들보다.

은비뫼 2007-02-1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또 그것을 상대가 느끼는 것 또한 각자의 몫이겠죠. 잉크냄새님은 주관적으로 판단
하시겠지만 그것이 제가 보기에 진정 객관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 점이라 생각됩
니다. 바쁜 날이셨네요. 편안한 저녁 되시길. ^^

날개 2007-02-1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지원의 폐해이기도 해요..
갈수 있든 없든 일단 지원해두고 보는거죠...
예전처럼 직접 회사에 찾아가서 서류 접수하고 그런거였다면 저렇게 허탈한 결과는 안나왔을 거여요~ 아마도..

춤추는인생. 2007-02-1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질지 몰라서 복수지원하는 응시자맘을 이해하지 못하는것 아니지만서도.9000명중에 2명이라..
서류보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잉크냄새님도 많이 상심하셨겠어요.
편안한밤 보내시고 힘내세요 님..


내가없는 이 안 2007-02-1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겨운 카테고리, 맞네요. 그 고리타분한 정형성을 벗어나서는 도저히 판단하기가 힘들까요? 요즘은 이력서도 수십 장(수백 장이던가?)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말이죠.

잉크냄새 2007-02-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9000명이 다 날라간건 아니고요. 저도 그렇게 믿고는 싶어요. 수치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분명히 있다고요.
은비뫼님 / 그렇죠.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일, 그 글에서 상대방을 읽어내는 일, 두가지 모두 쉬운 일이 아니죠.
날개님 / 인터넷지원...정보화시대의 장점이지만 남발하게 되니 진정성을 가진 지원자들도 묻혀버린다는게 문제인것 같군요.
춤추는인생님 / 상심까지야 하겠습니까. 그냥 간절함을 간직한 다른 사람들의 기회가 사라진게 좀 아쉽죠.
이안님 / 이안님도 저 카테고리를 작성했군요.^^ 이안님 리뷰처럼 작성했다면 그냥 덜커덕 합격이었을것 같네요.ㅎㅎ
 



 < 조순호의 나무>

 

여백

- 도종환 -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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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7-01-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이 많은 사람에게 끌리면서도 내여백은 슬쩍 감추고 싶은 아이러니.

은비뫼 2007-01-3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여백...아름다운 풍경은 가득 찬 것만이 아님을 느끼게 하네요. ^^

내가없는 이 안 2007-02-01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비어 있는 사람인데요. ^^

水巖 2007-02-0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시도 전부 좋군요. 퍼 갑니다.

춤추는인생. 2007-02-0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여백에 등을 기대고 쉬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7-02-1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부족하고 빈곳이 많은 것이 어디 님만의 일이겠습니까. 대지에 발디디고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죠. 그것을 부족함이 아닌 여백으로 느끼면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싶군요.
우몽님 / 그 아이러니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하지만 님의 서재에서 님의 여백이 슬며시 비추어진다는 사실!!
은비뫼님 / 비어있지도 넘치지도 않는 어느 공간의 사이, 그곳이 여백이 아닌가 싶네요.
이안님 / 그거야 뭐,,,저도 마찬가지랍니다.ㅎㅎ
수암님 / 수암님의 서재에서 느끼는 삶의 여유로움과 여백,,,그것에 어울렸으면 좋겠네요.
인생님 / 나무들이 만들어가는 여백,,,그곳에서 님의 안식처를 발견하시길...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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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실종시켜 버릴것만 같은 선전 문구와는 다르게 그닥 폭소를 자아내는 소설은 아니지만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과 이라부의 치료과정의 전개상황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나오기는 한다. 유아기적 행동을 벗지 못하는 이라부, 환자에 무관심한 마유미짱, 책상 모서리만 보고도 벌벌 떠는 선단공포증 야쿠자, 더 이상 공중그네를 탈수 없는 곡예사, 권위있는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전도유망한 의사, 1루로 송구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3루수, 새로운 소설속의 등장인물이 이전 소설에 등장한 인물이라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작가. 이들이 펼치는 상처의 치유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가슴속에 상처 하나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라부와 환자들이 펼쳐가는 치유의 과정은 힘겹고 고단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조금씩 대면해가는 유쾌한 과정이다. 어린아이 같은 이라부의 행동 자체가 상처를 내면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부위를 째고 고름을 짜고 햇볕에 잘 말리는 과정이다.

우리는 가슴속에 무의식의 어린 아이를 품고 있다. 어느 순간의 상처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스스로를 결박한 어린 아이,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 속에 저 멀리 뒤쳐져 어기적 어기적 더욱 멀어지는 어린 아이. 이라부는 바로 등장인물들의 가슴속에 방치된 어린 아이이다. 유치 찬란하고 뻔뻔하고 당돌한 이라부를 대하면서 환자들은 은연중 자신속에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상처입고 방치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보듬어 저 아래에 홀로 남겨진 상처입은 영혼을 현재 나의 모습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앞의 글에서 치유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치유보다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것 같다.왠지 극복이라는 단어가 더 주체적이랄까.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어느 책에서인지, 알라딘의 어느 서재에서인지 본 기억이 나는데, 이 소설의 카피 문구로 딱 어울릴것 같다. 결국 상처는 온전히 자신의 몫일테니까.

p.s) 배우 김수로의 코믹연기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웃음코드가 존재하지만 인디아나 존스, 소설가 박민규, 배우 설경구, 송강호식 코믹연기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별로 웃음을 선사하지는 못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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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1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복이란 말이 치유보다는 훨씬 적극적이네요. 좀 전투적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전 치유라는 말이 더 좋은 걸요. 내 안의 어린아이, 누구든 한 부분은
가지고 있을 거에요. 그부분을 안아주는 사람이라면 인연이겠죠.^^

겨울 2007-01-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엔, 이 소설을 시작으로 쏟아지는 일본소설의 홍수에 빠진 듯 해요.
올해는 좀 자중하기로... 그래도 이 작가의 <남쪽으로 튀어>는 꽤 기억에 남아요.

icaru 2007-01-1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라부의 코믹함을 김수로에 빗대시고, 오오 그럴법하네요~
오늘도 저는 내 속의 어린아이의 땡깡을 가까스로 달랬습니다.
회사가 가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혼났어요.

잉크냄새 2007-01-1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극복이라는 말이 좀 거칠고 투박한 면이 있지만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자신속에서 먼저 상처에 대한 극복이 선행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몽님 / 아, 전 일본식 유머가 거의 통하지 않나봐요. 그럴싸한 일본 소설 있으면 하나 추천해주세요. <남쪽으로 튀어>는 평은 좋은데 2권짜리라 선뜻 손이 안가네요.^^
이카루님 / 결국은 달래셨군요. 전 가끔 못달래고 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님은 이제 어린아이가 둘이니...ㅋㅋ

내가없는 이 안 2007-01-1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끄트머리 글이 너무 재밌는데요. 요즘 같아선 김수로씨한테 제일 마음이 가요. 설경구씨는 왠지 부담스럽고, 송강호씨는 자꾸 틀을 만들어내는 것 같고, 박민규씨는 고글이 괜히 마음에 안 들고... 그렇담 공중그네의 코드에 맞는 건가요? ^^

잉크냄새 2007-01-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전 김수로식 코믹이 별로라서 별 3개를 줬지요. 음, 코드가 맞을라나...아직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가 남아있으니 무효....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내가 버림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당신이 그랬다. 당신은 그 게임에 모든 것을 몰입하느라 전날 무슨 일을 했는지 뒤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 당신은 그를 ' 한번 더 보려고' 가 아닌 당신의 '확고한 열정을 자랑하기 위해' 그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그 끝지점을 확인하는 순간 큰 눈처럼 닥쳐올 현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이병률의 <끌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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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1-15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여행집이죠? 이거 퍼갈게요. :)

춤추는인생. 2007-01-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는것 같아요.. 결국은 그사람이 아니라. 자기 집착인것 같아요.
어느날. 돌아봤을때 다가오는건 돌이킬수 없는 허무함뿐이겠지요.
저도 이책 볼래요..^^

잉크냄새 2007-01-1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 이병률의 여행집이죠. 얼마전 이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이라는 시집을 샀는데, 이 책도 눈에 쏙 들어오더군요.
춤추는인생님 / 와르륵 와르륵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죠. 내가 느끼던 가치가 결국 저런 것이었구나 싶은 묘한 상실감/배신감....와장창 우당탕 쿵탕~~~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1-1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집도 읽어보고 싶네요. 얼마전에 친구가 시집은 너무 싸, 너무 싸서 안타까워, 그랬는데. 그렇게 싼 시집도 자주 못사 보는 것 같아서, 오늘은 시집 한 권 사러 갈려고요.:)

잉크냄새 2007-01-2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 요즘 나온 시집중 가장 평이 괜찮은것 같아요. 원래 평에 신경쓰지 않지만, 알라딘 리뷰에 올라온 극찬에는 맘이 움직이더군요.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수없는 풍경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한한 풍경 가운데의 어느 한 순간의 풍경이 느닷없이 어느 순간의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명승지에서 오히려 풍경을 만나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일반적인 아름다운 경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경치들은 나의 시각을 자극했지만 그것들은 그냥 흘러가버렸다. 내가 이름 없는 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풍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어느 순간의 나를 주박하고 마는 것이다."

허만하 시인의 이 글귀가 떠올랐다. 십대 후반에 알래스카의 사진 한 장에 사로잡혀 사십대에 불곰의 습격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알래스카의 바람이, 전설이 되어버린 호시노 미치오의 삶을 바라본다. 아, 그의 사진이 그토록 편안하게 느껴진 것은 피사체와 작가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고 자연이었던 이유인가보다. 그가 알래스카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 아니라 알래스카의 자연이 그를 풍경속에 담아둔 것이리라. 그러기에 빙설을 걸어가는 북극곰의 등짝에서 묻어나는 한없는 고독이 작가의 그것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래, 인간의 삶도 풍경이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무한한 자연속 한부분으로서의 삶이 아닌 지배하고 소유하여야할 대상으로서 자연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풍경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바람에게서 그 길을 찾고자 하지 못하는 삶은 풍경밖의 삶이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삶의 시각은 협소할수 밖에 없다. 그 협소한 시각이 결국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열등감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풍경속의 삶이라지만 살갗이 스치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빠지면 뭔가 허전하다. 실제 그는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구문명과 접한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그러하듯 알래스카 또한 소유냐 존재냐로 대변되는 가치관의 혼란속을 나아가고 있다. 작가처럼 알래스카의 풍경속으로 걸어들어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치관의 충돌속에 폭발하듯 풍경 밖으로 튕겨져 나온 원주민이 있다. 젊은이들의 높은 자살율, 유전으로 하나씩 파괴되는 삶의 터전...어쩌면 제목에서 말하는 바람은 알래스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일수도 있다. 베링해를 건너간 원시의 어느 시대부터 불어닥친 바람이 알래스카에서 생을 마친 작가를 거쳐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는 누군가에게 전해질지. 그 바람이 전하는 풍경과 진실앞에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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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2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미치오의 이 책 보고 싶어집니다. 표지의 시퍼런 색깔이 인상적이네요.
여행하는 나무,보다 나아보여요.

2006-12-21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겠어요. :)

잉크냄새 2006-12-2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그렇죠. 책 표지부터 맘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는데...호시노 미치오라는 사람, 사진뿐 아니라 튀지 않는 담담한 글이 사진만큼이나 담백합니다. <여행하는 나무>도 그의 책인가요. 한번 봐야겠어요.
속삭님 / 이거,이거 이게 얼마만인가요. 이미지가 예전의 신비스런 모습으로 바뀌었네요.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네요.^^
사람님 / 네, 한번쯤 누군가에게 읽기를 권장해도 전혀 손색없는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그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세요.^^

icaru 2006-12-2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 않아선지,,, 알래스카의 바람 같은 이야기에 '바람'은 알래스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 또한 담겨 있다는 것은 몰랐네요... 흠...
리뷰가 참 좋네요. 이래저래...꼭 한번 읽고 싶은 책이라는..

파란여우 2006-12-2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책 잉크님이 선물해줘요. 쓸쓸한 성탄인데...(동정심에 호소하며 삥뜯기!)

잉크냄새 2006-12-2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바람은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것 같네요. 산들바람일지, 칼바람일지...읽어보세요. 괜찮은 책입니다.
여우님 / 뭐, 여기저기서 많이 받으시더만요....각계각층 연예인들이 축전을 보내면서 이 책을 안보냈단 말인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