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억강남>과 <오서곡>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풍교야박枫桥夜泊>이란 시이다. 


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

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

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 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 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 


<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


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 


<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풍교야박>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풍교야박>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 뱃전 여기저기서 <풍교야박>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 '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풍교야박>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


<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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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5-08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없던 종이 산사에 생겨나고, 치지 않은 종이 밤에 울리는 것은 시에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분위기상 필요하다면 오후 5시에도 소쩍새가 울어줄 필요가 있듯이 말입니다^^ 님아, 또 가시려거든 그땐 혼자일랑 가지를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