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레이먼드 무디 지음, 배효진 옮김 / 서스테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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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와 사후 체험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경험이 그들에게 다시 주어진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계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종교의 발생 원인이 일정 부분 죽음에 대한, 엄밀히 말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이행일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한 것 만으로도 삶은 충만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직접 임사 체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일 학년 겨울 방학, 고향과 먼 이역만리 전남 광양 제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당 2만원에 생명수당 3천원. 생명수당은 고압전선 설치와 고공 위험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50미터 이상 수직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 크기의 배전관 안에서 전선을 당겨 올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잠시 스쳐갔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몸은 추락했는데 나는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누운 자세로 깃털이 산들바람에 가벼이 날아오르듯 몸은 둥실둥실 떠올랐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눈부시게 하얀 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전선에 팔과 다리가 걸린 내 몸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살짝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하늘로 올라갔는데 지금껏 그런 평화롭고 아늑한 기분은 처음인 듯 했다. 먼 곳에서도 나처럼 올라오는 하얀 빛 덩어리들이 보였다. 그때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낯익은 소리였다. 어, 저건 내 이름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아래로 순식간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고 번쩍 눈이 떠지며 갑자기 주의가 어두워지고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전선에 걸쳐진 다리가 풀리며 몸이 미끄러지는 찰나 전선을 움켜 잡았다. 이름을 부르며 올라와 등을 받친 친구의 눈은 눈물 범벅이었다. 이 오래된 기억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때 가벼이 올라가던 깃털 같은 순간의 묘한 평화로움과 아늑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임사와 사후 체험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못한 것은 그것이 희박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이 환각이나 망상 ,심지어 정신병과도 같은 병리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만난 체험자들은 그들과 유사한 경험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체험의 양태는 인종,지역,시대,성별을 막론하고 거의 유사성을 보인다. 온전한 평온함, 처음 듣는 이상하고 불편한 소리,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 몸과 영혼의 분리, 몸을 감싸는 의문의 하얀 빛... 내가 경험한 임사의 경우 소리와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경험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그 동안의 영화나 책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학습화된 어떤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삶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공간이 실재하기에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기에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죽음 역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험에 기인한다. '우리가 살아있을 땐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수 없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역설은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임사,사후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했기에 그 죽음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영원한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이거나 더 높은 의식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오히려 삶보다 평화로왔던 그 경험에서 남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개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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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5-21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특별한 경험을 하셨네요.
크게 다치신 건 아니었는지요?
임사와 사후 체험이 사실 약간 믿기지 않아요. 무섭기도 하고요.

잉크냄새 2026-05-21 23:38   좋아요 2 | URL
아마 저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 책의 이야기들이 좀 허황되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와 그들 사이 경험의 유사성으로 인해 그때 제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임사 체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상상만으로는 무서운 이야긴데 제 경험상 아늑하고 포근했던 기억이 더 남아요. ^^

차트랑 2026-05-22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저의 절친 한 사람도 같은 종류의 경험을 했는데, 하필 저는 이를 옆에서 목격을 했습니다.
친구의 경험담도 잉크냄새님의 글과 거의 유사합니다.

저는 현대 의학의 도움을 많이 받아 연명을 해왔기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흥마로운 글이었습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26-05-22 21:27   좋아요 1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란 부분이 많은 이들의 체험의 유사성이었습니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떤 확신을 주기도 하지요.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그런 이미지가 왜곡된 기억의 잔상으로 남은 것이라는 일반적인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직접 경험했기에 전 사후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차트랑 2026-05-23 07:14   좋아요 0 | URL
이승과 저승은 서로 짝으로서
이승에 시공이 있는데 저승에는 없겠는가 싶은게 저의 무지한 생각입니다.
그쪽이라고 더 특별할 것도 없다는게 또한 저의 무지한 생각입니다.

염라대왕께서 저를 꼬나보고 계실지라도
전혀 겁이 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마 잉크냄새님께서도 그쪽이 두렵지는 않으실듯요~




감은빛 2026-05-23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신기한 경험이네요. 그리고 책에 유사한 경험담이 많다는 것도 신기하구요.

저는 오래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차에 부딪혀 튕겨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아주 짧은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다시 시야가 돌아오는 경험을 했었는데, 이게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아예 의식을 잃기도 하지만, 의식을 잃기 전 단계에서는 감각들을 하나씩 잃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그중 가장 확식한 감각상실이 바로 시각상실이라고 느꼈어요. 그후에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인지 아주 가끔 어지러움과 함께 시각을 상실하며 바닥에 주저앉게 되는 일들이 몇 차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