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이문재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뜨거운 국수의 김이 안개처럼 엄습해오던 비 내리던 저녁 나절,
가슴 한켠을 치달아 올라오는 뜨거운 그리움을 뜨거운 국수발로 가라앉히던 시절에 아련히 떠오르던 얼굴 하나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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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0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점심으로 차가운 국수발 먹었슴다^^

비로그인 2007-08-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 오늘 읽은 것, 이병률님의 끌림 중에서요 :)
구질구질한 댓글보단, 이런 인용이 나을 거 같네요. 잉과장님.

잉크냄새 2007-08-0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 차가운 국수발로 누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체셔냥 / 이거 왠지 동병상련의 회초리 같은 느낌인데요.

플레져 2007-08-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안녕하시지요? ^^
오랜만에 들른 (아, 네, 제 서재는 매일 들르지만 아직 습관이 안되서 브리핑 안보고 훌쩍~ 나가버리곤 해요. 흐흐) 서재에서 찰떡처럼 달라붙는 시를 만났습니다. 문득, 국수는 왜 먹고 싶은건지... 양념같은 원망도 조금 뿌려놓고 갑니다 ^^!

잉크냄새 2007-08-09 09:55   좋아요 0 | URL
플레져님, 오랫만이네요. 문득 생각이 날때는 울컥울컥 국수를 먹어주는 겁니다.ㅎㅎ

2007-08-10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0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0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7-08-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시인데 오랫만에 웹에서 만나니 새롭네요.
음악은 이 시와 함께 올리신거죠?
국수 먹고싶어졌어요~.
책임지시라고...ㅋ

은비뫼 2007-08-1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시 너무 간만에 읽어요. 그때도 읽고 나서 내 맘과 같아라...했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다시 읽어봅니다. 감사해요,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 2007-08-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 음악은 다른 분에 올려주신 페이퍼에서 흘러나오는 거랍니다. 국수는,,, 이 시는 사실 국수랑 무관하기에 제가 어찌해드릴수가 없나이다...ㅎㅎ

은비뫼님 / 어느날, 어느 시가 가슴에 콕 박히는 날이 있죠. 저도 오래전부터 보던 시인데 얼마전 가슴에 슬며시 자리하더군요.

가시장미 2007-08-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윽, 시선이 한참을 머물었드래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제 종소리, 세상에서 제일 크게 울려퍼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아파서 저 죽으면 어쩌죠? _-_)~ 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인데.
행복만큼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사랑하면 다 줄 수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깟 자존심도 때로는 버릴 수도 있는건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늘 말로만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아프면, 알 수 있겠죠?
제가 아직 사랑을 잘 모르나봐요. 으흐

잉크님. 가슴을 울리는 시 감사해요.
오늘 휴일인데...평온하신 하루 되시길 바래요..

잉크냄새 2007-08-20 12:3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랑이 그리 어려운가 봅니다. 어디 아프지 않은 가슴이 있겠나요.^^

순오기 2007-08-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문재, 전 '노독'이 참 좋더군요.
제 서재에 잉크를 흘려주셔서 따라 왔어요. 축하 댓글도 감사하고요!
어떤 것으로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죠! ^*^

잉크냄새 2007-08-29 12:47   좋아요 0 | URL
님의 소개로 "노독"을 찾아서 읽어보았어요.
좋은 시 소개, 감사드려요.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적극적인 생태주의자도 환경론자도 아니다. 다만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모든 영혼이 깃든 사물들의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 여기고 있다. 그런 삶의 실천적 인물이었던 니어링 부부의 "덜 갖되 충실한 삶" 혹은 "조화로운 삶"을 나름 삶의 모토로 삼고자 한다. 물론 실천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생태주의자라 말한다.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과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이 은연중에 잃어버리는 삶의 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낙오자로 낙인 찍히는 세태 속에서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 미학의 중심에 자연이 있다.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남겨져야 할 자연이 있다.

인간이 걷는 속도는 시속 4키로이다. 봄꽃들이 북상하는 속도도, 가을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도 인간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대지를 버티고 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걸어본 이는 느낄수 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이라는 한 영혼이 소유할 수 있는 삶의 무게와 범위와 속도를 느낄 수 있다. 무한 질주의 도로 위에서 영혼은 풍경속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오직 길 위에서만, 자연이 허락한 그 속도에서만, 주어진 삶의 무게만큼 짊어질 때에만 인간의 삶도 풍경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수많은 잃어버린 것들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발효의 시간"이다. 발효는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머리에 이르는 가장 먼 거리, 편지의 봉합과 개봉 사이에 깃든 손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그 사이사이에 깃든 숨 막히는 감정의 떨림과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발효의 시간"이다.

올 가을에는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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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시 2007-07-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이 책 관심은 많았는데, 아직까지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리뷰 보니까, 갈팡질팡하게되네요^^

비로그인 2007-07-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의 시간, 멋지네요...
발효와 부패의 미묘한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갑니다.
과연 그 양자를 어떻게 구별해낼 것인가를...

잉크냄새 2007-07-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탈이님 / 반가워요. 이 책을 구매하기까지 발효의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가을쯤에 읽으셔도 좋으실듯...^^

체셔냥 / 발효란 더도 덜도 아닌 어느 정도의 적당함이라면 부패는 발효의 신뢰구간을 넘어서는 기각역에 존재한다고 해야할까요?ㅎㅎ

춤추는인생. 2007-07-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 일으켜지는 고요한 바람 같은 떨림. 그 잔잔한 진동에
기대어 걷고 싶어져요. 가슴속에 하나하나 새겨지는 저마다 다른 촉감들을 몸으로 느껴가면서요.... 오늘은 어떤무늬가 우리곁에 다가와. 발효의 시간들을 통과해나갈지.
가만 가만 기다려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상이 제 속도를 따랐으면 좋겠어요. 제가 같이 하기엔 너무 빨라요, 요놈의 세상!

잉크냄새 2007-07-2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사람마다 지닌 파문이 잔잔히 흘러 물결치듯 만나는 지점, 그곳이 떨림의 시간인가 보네요. 저도 가만가만 기다려봅니다.^^

마음님 / 세상은 세월과 같아서 그리 녹녹히 따라주지 않나 봅니다. 그저 자신의 가슴에 길 하나 품고 살아가는수 밖에요.^^

2007-07-22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3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미워요. 나 춤인생님 아닌데 흥흥흥-_-

잉크냄새 2007-07-23 12:48   좋아요 0 | URL
엇, 이런 실수를...관찰력이 대단하세요...ㅎㅎ

은비뫼 2007-07-2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
가을에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걷는 이를 보면 잉크냄새님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가시장미 2007-08-0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의 시간이라.. 멋진 말이네요. ^-^
제가 잠수 탄 시간도 발효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랜만에 들렸는데도, 잉크 냄새가 향으로 음악으로 전해져..귀까지 즐겁습니다.
저도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에 대해 알고싶어요.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왔거든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지도, 그렇게 믿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왜 그래야만 하는지...
궁금해져서. 잠시 쉬었다 가려합니다. 잉크님.. 잘 지내시나요?

잉크냄새 2007-08-0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뫼님 / 오래전부터 생각하곤 했는데, 아직 걸어보지 못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이라는 말만 자꾸 되뇌이네요.

가시장미님 / 앗, 오랫만이네요. 오랜 시간 님 스스로를 더 숙성시키시고 오신 느낌이네요.그러한 삶의 미학들은 누군가 알려줄수도 없는것이고 배울수도 없는것 같네요. 스스로 살며 느끼며 몸으로 체화될때가 있겠죠.^^

2007-08-0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8-0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1님 / 네, 님 서재로 슝~~
속삭2님 / 가을은 많은 면을 가지고 있는 계절인듯 합니다. 그래서 어떤 속도로 걸어도 멋진 계절인가 봅니다.

프레이야 2007-08-2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어느새 가을단풍이 그리워지는 리뷰에요^^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잉크냄새 2007-08-20 18:07   좋아요 0 | URL
이제 그 속도를 몸이 느끼도록 슬슬 걸어야하나 봅니다. 날이 좀 서늘해지면요.ㅎㅎ

여울 2010-07-2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쓰는 말들이 겹쳐 친근합니다. ㅎㅎ 팔랑팔랑 왔다가 취해서 돌아갈 것 같군요. ㅎㅎ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가끔 마실 나올께요. ㅎㅎ

잉크냄새 2010-07-26 17:07   좋아요 0 | URL
네, 김치나 된장이 아닌 삶의 발효는 가슴에 어떤 향을 남길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도 가끔 마실 다닐께요.
 

나, 땅(진창)에 무수히 넘어졌지만, 그 땅(진창)을 짚고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서려 하기는커녕, 넘어졌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넘어졌다는 사실은 인정했을 때는, 나를 넘어지게 한 원인을 밖에서 찾고, 그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에 바빴다. 내가 진창에서 일어서는 동안,적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내 몸에 묻은 진창 때문에 지저분해졌다. 진창에 넘어져 있는 동안, 나는 없었다. 나는 넘어지기 이전, 또는 다시 일어선 이후에만 있었다.

이문재 <이문재 산문집>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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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7-1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요?

도종환의 시가 생각나네요
아! 저도 모르게 자꾸 부인하고 싶었는지. 페이퍼 보는동안 뜨끔했어요;;


비로그인 2007-07-1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드팩도 할 겸 진창에 계속 넘어져 있어야겠다~

얄랄라~~~(파란여우님 전용 의성어 도용)

3=3=3=3=3=3=3

은비뫼 2007-07-1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창, 진창, 진창.... 숙연해집니다.

잉크냄새 2007-07-1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제가 걸어온, 걸어갈 길... 길을 지우며 길을 걷고 싶어도 어쩔수 없는건가 봅니다. 그것이 길의 속성인가 봅니다.
체셔냥 / 보령으로 고고 하셔야겠네요. 보령 머드 축제가 한창이라는데...
은비뫼님 / 진창에 넘어지기전, 넘어져 나뒹글때, 그리고 잔뜩 묻어 일어날때조차 오롯이 자신이어야 하나 봅니다.
 

넓은 밭이, 자그마한 숲이 집앞에 있는 탓일까, 유독 집안에 보금자리를 트는 곤충들이 많다. 끈적거리를 피부를 가진 양서류와 파충류를 제외한 모든 생물을 좋아하는지라 그들이 내 옆에 튼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왠만해서는 건들지 않는다. "넌 어떤 인연이기에 여기 나의 삶 곁으로 다가온 것이냐" 하고 지켜볼 따름이다.

매미

여름이면 어김없이 베란다 한구석에 둥지를 튼다. 한여름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그의 울음은 소음이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생명이 그를 그토록 울다 텅 비어 세상을 떠나게 만드나보다. 텅 비어 바스락거리는 그의 몸을 땅 한켠에 묻어주는, 혹은 어느 나무 등결에 살며시 얹어주는 장례식은 다소 서글프다.

너무나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허물은
-바쇼-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쓰라려,쓰라려
-이싸-

여름 매미,
나무를 꼭 껴안으며
마지막 울음을 운다
-이싸-

매미 한마리 우는데
다른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이 늦은 가을
-이싸-

가을에 우는 매미 소리
그 목소리에
죽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소세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 드는
매미 소리
-바쇼- 

귀뚜라미

그녀는 세들어 사는 삶이 약간은 쑥스러운것일까. 집주인의 기분을 상하게 않으려는지 내가 움직이는 시간대에는 고요하다. 책을 읽던지, 잠이 들던지 한동안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면 살며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딜까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그녀를 찾으면 또 고요히 숨어버린다. 그녀와의 숨바꼭질은 늦가을 서리가 내릴때까지 계속된다. 그녀의 장례식은 보통 한참이 지난후이다. 죽음마저도 나에게 알리지 않는다. 고독한가보다.

우리가 기르던 개를 묻은
뜰 한구석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시키-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이싸-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소세키-

돌아 눕고 싶으니
자리좀 비켜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죽어가는 귀뚜라미
얼마나 삶으로 충만한가
그의 노래는
-바쇼-

거미

내 집에 재건축을 하는 녀석이다. 그의 집에 아침이슬이 송송 맺히는 그림같은 장면을 기대하지만 보통 하루살이들로 대신한다. 내가 다니는 길목만 아니면 강제철거 시키지는 않는다. 어느날 일언반구 말도 없이 떠나는 냉정함이 엿보인다. 집을 가진 자의 당당함이려나.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잘 안하니까
-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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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7-0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쇼의 하이쿠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딱인거 같아요.
저도 요즘 읽고 있는데 일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어요.^^

춤추는인생. 2007-07-0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자연속에서 살고 계시는군요.
그나저나 왜 귀뚜라미는 그렇게 찾으셨나요?ㅎㅎ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넣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같은밤. 이시의 제목 기억하세요?
이야기좀 할수 있을까요? 그러셨나요^^

잉크냄새 2007-07-0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 하이쿠 = 촌철살인 이군요. 류시화 시인의 "한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그 여백만으로 충분하기에 한줄도 너무 긴가 봅니다.

춤인생님 / 야심한 밤, 방안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저뿐 아니라 누구든 방바닥을 기며 그 노래의 주인공을 찾으려 들겁니다. 인사말은,,,글쎄요 직접 만나봐야 할듯...
아, 그리고 위에 소개한 밤에 셔츠 빠는 시 좀 올려주세요.^^
 

회사일로 미국 비자를 신청할 일이 생겼다. 여권 만기가 6개월 미만이지라 갱신하려면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 여권 발급 조건이 까다로와졌는지 여권 사진 또한 흰색 배경이 필요하다. 삼십대 초반 찍어놓은 사진은 푸른색 배경이라 무용지물이다. 사진을 찍으러 들른 사진관에서 사진사의 요구에 이리 저리 몸을 돌린다. 이 어색함. 이 부자연스러움. 문득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것이 언제이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앨범을 떠올려봐도 기억나는 것은 최소한 3~4년전의 모습이다. 최근 3~4년 동안 사진을 찍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 가끔 디카로 찍은 기억은 나지만 왜 디카의 기억은 이리도 엷고 가벼운 것인가. 그 3~4년의 간극이 왠지 단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여기 저기를 찾아보면 분명 그림 파일로 몇장의 사진을 남아있을텐데, 그것은 내 안의 기억이나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냥 즉흥적인 크로키일뿐.얼마전까지만 해도 디카은 생소한 단어였다.그러나 불과 몇년사이 핸드폰이 우리의 기억을 잠식해버리듯 디카는 필름의 풍경을 잠식해버렸다. 인스턴트 시대의 대변인인듯 하다. 

디카는 그 즉흥성과 스피드로 구형 필름의 시대를 잠식해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바로 기록할수 있고 DEL키 한방으로 빠른 취사선택을 할수 있다는 것이 그 장점이라 할수 있다. 순간 포착이 아닌 취사선택의 문제. 내가 나의 모습과 풍경을 편집할수 있다는 것이 그 매력이라 한다면 그 뒤에 남는 이 허전함은 뭘까. 그리움, 기다림...다소 진부한 이런 단어들이 아닐까 싶다. 사진을 찍고 필름이 현상되기 전까지의 설레임과 기다림의 시간들. 다소 빛바랜 흑백 사진만이 가질수 있는 묘한 그리움의 여운들. 디지털의 시대가 가지지 못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은 아닐런지. 왠지 책상위, 서랍속의 낡은 사진과 그 속의 편집하지 못하는 그 어느날 한순간의 표정이 문득 그리워지고 흐뭇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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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28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는 찍어서 맘에 안 들면 그자리에서 삭제도 가능하니 아무래도 아날로그 카메라보다
찍을때의 마음부터 달라요. 대상이나 풍경을 마음에 담는 자세부터 인스턴트적이에요.
전 아날로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의 그 소리가 참 좋아요. 아직 찍을 줄은 잘 모르
지만 가끔 옆지기의 그것을 눌러보면 펑~하고 공기를 터뜨리는 것 같은 그 가볍지 않은
소리요.. 님, 비상으로 바쁘시군요. 그리고 미국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paviana 2007-06-2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사진은 여간해서는 인화도 안하게 되는거 같아요.그냥 메모리째 이동해서 컴에 저장시켜 놓게 되니까요. 인화되서 내 손에 있는 사진이 주는 그 매력이 분명 있어요.

비로그인 2007-06-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끼발동 체셔냥이는 그냥 이렇게 말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올려달라! 올려달라!

3=3=3=3=3=3

icaru 2007-06-2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달라! 올려달라!

잉크냄새 2007-06-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바로 혜경님의 부군이 찍으시는 풍경이죠. 뷰파인더에 담아내시는 풍경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아, 셔터 누르는 소리는 다시 들어봐야겠어요.

파비아나님 / 인화하고 기다리는 시간, 잊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 필름위에 인화매수를 하나하나 적는 조심스러움. 그 매력은 너무 많죠.

체셔님,이카루님 / 그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춤추는인생. 2007-06-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하지 못하는 한순간의 표정과 함께 꼭 우연찮게 찍혀진 사람들이 함께 있었드랬죠. 준비되지 않는 그허망한 눈동자들 ..
USA가신다구요? ㅎㅎ
알리바마주에 가실것 같은 예감이.^^

울보 2007-06-2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는 우리 옆지기는 그래서 필름카마라를 아주 애지중지 하는데 저는 디카로 찍어도 절대 손대지 않아요 그냥 그모습대로 현상해서 앨범속에 담아두지요,,,,
우리옆지기 필름카메라는 손으로 감는 카메라라 참 멋드러지는 느낌이 들때가 많던데,,
갑자기 오늘은 비오는 풍경을 그 사진기로 찍어보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7-06-2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그 허망한 눈동자가 사진을 더 의미있게 만들기도 하지요. 미국은...알리바마가 아니라 디트로이트가 될것 같네요.

울보님 / 손으로 감는 카메라. 참 오랫동안 보지 못했네요. 알라딘에는 필름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군요.

춤추는인생. 2007-07-0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인가요 알리바마주에 현대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다는 소식이 들은적이 있어서요.
혹시 알리바마 주에 가시는지 했드랬죠^^

잉크냄새 2007-06-29 17:36   좋아요 0 | URL
자동차 관련업계의 저보다 많이 아시네요. 전 A/BAG 관련된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요. 갈지 안갈지는 아직 미지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