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BI 선발 기준중 하나로 5살 이전의 기억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5살 이전의 기억, 나에게도 단 하나의 그런 기억이 있다. 물론 그것이 5살 이전의 상황이었다는 것, 그 어렴풋한 기억이 실제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어릴적 나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 아래에 있었다. 그 언덕길에서 비탈길을 내려오면 우리집 옆으로 이어졌다. 어느날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비탈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에 비탈길로 달려간 나의 눈에 보인 것은 비탈길을 내려오던 하얀 천조각이었고 점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여 뒷통수를 맞은것처럼 꼼짝없이 하얀 세상속에 갇힌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던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우연히 그때의 기억을 말하게 되었고 온통 세상을 하얗게 감싸던 그 천이 할머니 관위에 놓여진 하얀 천임을, 바람에 나부끼던 하얀 천의 잔상이 내 머릿속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기억이 왜 그리도 강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 각인되어져있는 것일까?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부분이지만, 할머니께서는 다른 손자들보다 나를 특별히 귀여워하셨다고 한다. 마당의 포도며, 치마속에 감추신 주머니에 나에게 줄 몇푼의 동전을 항상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특별함이 기억의 상호연쇄작용으로 할머니에게, 그리고 나에게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