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책상앞에 놓인 탁상 달력의 한 날짜가 자꾸 눈에 박힌다. '도대체 무슨 날인데 자꾸 머릿속을 맴돌까?' 한참을 흩어진 기억속을 헤매다가 서글픈 기억 한 조각을 찾고야 말았다. ' 그래 그 녀석의 기일이구나!' 참 무심하게도 살아왔고 세월도 무심하게도 흘러갔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친구들의 곁을 허망하게 떠나간 녀석...아마 그날이 체육대회 다음날이었지...체육대회가 끝나고 나에게 '몸이 좀 아파서 내일 병원 간다' 고 한 말이 마지막 대화였지...병원 입구에서 쓰러져 영영 못일어난 녀석...교과서 글씨와 똑같이 쓸 정도로 글씨 잘쓰던 녀석...등대밑 허술한 집에서 바다를 보면 크게 웃던 녀석...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아마 지금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수 있다고 해야겠다) 병원 영안실에서 염을 할 당시 밖으로 삐져나온 녀석의 손을 잡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한기에 움찔 놀라 손을 놓아버린 내가 싫어 밖으로 뛰어나와 ' 아~ 죽는다는게 이렇게 차가운 거구나' 하면서 흘리던 눈물... 마지막으로 학교 교정을 돌때 쓰러지신 어머님 대신 형의 영정을 들고 나온 동생 녀석이 눈물샘을 자극하더니 학교생 전원이 소리 높여 부르는 마지막 그의 이름에 '아~ 죽는다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는 거구나' 하며 오열하다 기절해버린 기억...
화장한 녀석의 재는 등대밑 바다에 뿌려졌다. 해가 질때까지 울먹이다 돌아선 그 자리에 대학교 시절에는 집에 갈때마다, 녀석의 기일마다 들러서 담배 한개비와 소주 한병을 부어주고 돌아서곤 했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다녀간 녀석들의 흔적도 보이곤 했는데...회사에 입사하면서 희미해져간 녀석의 기억이 오늘 갑자기 달력속의 날짜로 나의 가슴에 떠오른다.
올해는 한번 다녀와야겠다. 담배 한개비와 소주 한병 뿌려주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