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BI 선발 기준중 하나로 5살 이전의 기억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5살 이전의 기억, 나에게도 단 하나의 그런 기억이 있다. 물론 그것이 5살 이전의 상황이었다는 것, 그 어렴풋한 기억이 실제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어릴적 나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 아래에 있었다. 그 언덕길에서 비탈길을 내려오면 우리집 옆으로 이어졌다. 어느날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비탈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에 비탈길로 달려간 나의 눈에 보인 것은 비탈길을 내려오던 하얀 천조각이었고 점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여 뒷통수를 맞은것처럼 꼼짝없이 하얀 세상속에 갇힌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던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우연히 그때의 기억을 말하게 되었고 온통 세상을 하얗게 감싸던 그 천이 할머니 관위에 놓여진 하얀 천임을, 바람에 나부끼던 하얀 천의 잔상이 내 머릿속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기억이 왜 그리도 강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 각인되어져있는 것일까?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부분이지만, 할머니께서는 다른 손자들보다 나를 특별히 귀여워하셨다고 한다. 마당의 포도며, 치마속에 감추신 주머니에 나에게 줄 몇푼의 동전을 항상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특별함이 기억의 상호연쇄작용으로 할머니에게, 그리고 나에게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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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4-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FBI에선 5살 이전의 기억 한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예전에 한 후배가, 자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을 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을 때 얼마나 웃었던지...믿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했었답니다. 전 7살 이전의 기억은 없습니다.
잉크님 혹시 그 할머님께 맏손주가 되진 않았는지요? 보통 어르신들은 맏손주를 끔찍하게 여기시더라구요.

갈대 2004-04-1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사진을 보면 그 시절의 일들이 실제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통해 과거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직 확실한 기억은(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으므로) 동네의 언덕길을 씽씽(퀵보드)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다가 나자빠져서 무릎이 완전히 나갔던 사건이 있네요.

비로그인 2004-04-1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릴적 기억이,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군요. 아무래도 할머니 돌아가신게, 잉크냄새님 마음에 뭔가 큰 영향을 줬나봐요. 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기억이 몇개 있긴 한데, 5살 이전의 기억이라...FBI는 절대 못될거 같네요. ^^

비로그인 2004-04-19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뭐라 해야 되나...
정말 묘한 여운이 남는군요. 하늘에 펄럭이는 흰 천의 자락과...그것이 자아내는 시공간 속에 붙박혀 서 있는 아이....마치 흰 천 자락만 휘날릴 뿐, 그 이외 일체의 것은 다 정지해 버린 듯한......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빛 바랜 기억 속에 흰 천이...........

잉크냄새 2004-04-1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BI 문제는 멀더나 스컬리 요원과 상담후에 알려드리도록 하죠...^^;
진짜 그런 여운이 남아서일까요? 아직도 저에게 흰색이 주는 이미지는 빛 바랜 기억속에 휘날리던 흰 천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