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회사 남자 후배가 한명 있다. 입사초부터 불철주야 끌고 다니며 술을 먹여서인지 아직도 형! 형! 하며 잘 따른다. 지금은 팀이 달라져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속깊은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쁘다. 이 녀석은 겉으로 보기에 다소 거칠고 냉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속은 상처받기 쉬운 가슴을 가지고 사는것 같다. 그냥 툭 털어버릴 일에도 상처받는것, 혹자들은 소심하다고도 표현하지만 난 인간적이라 말해주곤 한다.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술마시다 갑자기 시집 한권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자칭 문학소년이었다나..
후배 : 형! 내가 그래도 문학소년이었잖아. 고등학교까지 문예창작반이었고 군대에서 소설써서 군단 표창으로 휴가 나온 사람이야. 그 뭐더라....앙드레 지드의 <죄와 벌> ?? 엄청 좋아하지.
나 : 쪽팔린다. 목소리 낮춰라.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어설픈,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진 자칭 문학청년이 읽을만한 시집 한권 추천해주세요.
둘.
우리 회사 여직원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여사원들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입사할 즈음에 깻잎머리를 하고 입사한 그녀들이, 이십대 중반이 훨씬 넘어선 그녀들이 아직도 동생같고 애들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녀들에서 받은 첫인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까닭일 것이다. 이번에 입사초에 같이 일하던 여직원이 진급이 누락되었다. 대부분이 남자인 이곳에서 남자들의 진급 누락이야 수도 없이 봐왔고 술 한잔 마시고 잊어버린다지만, 어리고 여려보이는 여사원이 다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괜히 더 안쓰럽다. 말이란 불완전하기에 어설픈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럽다. 스물 여덟이니 스스로 맘을 추스릴 나이이지만 그래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깻잎머리 소녀의 여린 모습이다.
깻잎머리 소녀가 다소 심란한 맘을 달래며 읽을만한 시집 한권 추천해주세요.
셋
갑자기 불쑥 나타나 그냥 추천만 해달라니 염치가 없네요. 이벤트는 아니지만 좋은 시집 추천해주신 두분께 책 선물해 드리고 싶네요. 참, 과장 진급했습니다. 축하해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