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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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가가 되었다. 기억해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여기고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 그가 1987년 어느 날 자살을 했다. 그리고 10년 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는 토리노로 향했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 그의 사상,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와 좌절의 시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디아스포라인 레비의 삶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저자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했고 유대인이란 그저 사라져가는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했다. 2차 대전 초기에도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유대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저 주근깨가 있고 없고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인종법 반포 후 교수와 학우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공동체라는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불순물처럼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찌와 인종법은 그렇게 유대인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주근깨'가 있고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믿고 있었다. - <주기율표> p379 - 


아우슈비치는 그에게서 이름을 박탈했다. 이름의 박탈은 인간이 아닌 사물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그런 지옥에서 그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체험하고 이겨낸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의지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그가 인간으로 살아온 문명의 형식을 전부는 아니라도, 잔해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단테의 <신곡>을 외우고, 동료가 된 프랑스인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문명의 틀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노예로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박해를 받으며 분명 죽음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에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의를 거부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물론 비누가 없고 물이 더럽더라도 세수를 하고 겉옷으로 닦아야만 한다. -p152-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그는 증언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장 아메리'의 비극적인 자살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뮐러'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레비가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한 그는 화학자인 레비가 그의 전공으로 말미암아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인이었다. (문득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영화의 레싱 박사가 떠올랐다. 귀도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그저 수수께끼에 불과했으니까.) '뮐러'는 나찌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독일인의 집단적 책임이 아닌 나찌라는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이제 원한이 아닌 공생을 말할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며 관용을 이야기했다. 참혹한 진실은 세월 앞에 무뎌져 갔다. 피해자가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과 싸워야 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귀,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p221-


1987년 그는 자살했다. 유서가 없음으로 그 죽음의 의미는 유추될 수 밖에 없다. '장 아메리'처럼 과거의 추악한 기억에 무너진 것인지, '뮐러'로 대변되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한 가해자에 대한 절망인지,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즘 유대인에게서 또 다른 나찌의 잔영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증인으로써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잔혹했던 야만의 시대를 생존으로 증언했다면 망언과 비양심으로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를 죽음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p285- 어느 수용소 인골이 쌓인 영묘의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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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9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서경식 작가는 프리모 레비 빠였던 듯합니다~ 책3권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되더라구요..^^;;

잉크냄새 2026-01-29 20:25   좋아요 0 | URL
아마도 디아스포라라는 공통 분모가 두 분을 엮은 듯 합니다. 덕분에 저도 서경식 교수와 쁘리모 레비의 책을 다수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감은빛 2026-01-3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대에 입대하면서 속으로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만약 내가 인간인데도, 지금 이런 부당한 상황을 하루종일 겪어야 한다면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군대에 있는 동안 내 인권은 끊임없이 제한당하는 처지에 처해도 인간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니 정말 버틸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저를 엄청 괴롭혔던 고참이 제대하면서 저에게 가볍게 사과를 했는데,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뭔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어떤 생각이 갑자기 달라지면 정신이 입은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