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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클락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11월
평점 :
거대한 출판그룹인 재노스 엔터프라이즈의 총수 얼 재노스는 우발적으로 애인 폴린 델로스를 살해한다. 워낙에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지만, 폴린의 집 앞에서 그녀와 헤어지던 남자가 혹시 자기를 보지 않았을까 마음에 걸린다. 당황한 그는 기업의 파트너이자 브레인인 스티브 헤이건에게 달려가 이 사태에 대해 의논하고, 사내의 월간지 <크라임웨이>의 편집주간인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다른 이유를 붙여 그 남자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조지는 이 같은 지시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 의문의 목격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업무 지시에 따라 자기 자신을 쫓을 수밖에 없게 된 조지. 회사와 경찰. 양쪽에서 각각 진행되는 조사는 점점 조지를 조여들기 시작한다.
3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얇은 분량이지만 <빅 클락>은 긴장감이 넘친다. 아니, 오히려 분량이 적기 때문에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하게 쳐냈고,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최대한의 긴장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신을 추적해야만 하는 조지. "이런 말을 해 봐야 우는 소리밖에는 안 되겠지만, 나는 지구상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이 갈기갈기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무언의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이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뛰어들었다가 지고 만 커다란 도박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란 분명 거짓말이거나 신화일 뿐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조지 외에도 조지의 부인 조젯, 조지를 잡으려는 얼과 스티브 등의 관점에서도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이 사건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고 각 이해관계자가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읽어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기 자신을 쫓는 컨셉 외에 또 하나 관심을 끈 것은 제목이기도 한 '빅 클락'의 존재다. 책 속에서는 빅 클락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이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빅 클락이 무엇인지 정의내리지는 않는다. 빅 클락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운명일 수도 있고, '빅 브라더'처럼 사회의 감시자일 수도 있으며, <모던 타임즈>의 시계 같이 시스템의 부속이 된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빅 클락은 어디에서든 작동한다. 빅 클락은 아무도 간과하지 않고, 아무도 빠뜨리지 않고,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말을 더하고 싶었지만, 그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빅 클락은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이나 "질서를 잡고 혼동 속에서 패턴을 만들어 내는 이 거대한 시계는 이제껏 아무것도 바꾼 적이 없었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빅 클락. 한 사람의 개인(조지)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는 이 시스템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빅 클락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 클락을 그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던지 간에 말이다.
아무튼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최대한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고전 스릴러. 케네스 피어링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어떤 기대치가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을 읽어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영화 <노 웨이 아웃>의 원작이라고도 하던데, 영화정보를 찾아보니 배경부터 세부적인 설정이 다른 것 같아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각색했을지 궁금해졌다. 자극적인 맛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어떤지 '필립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그림자도 엿보이는 꽤 괜찮은 심리 스릴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