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절판


그에게 있어 용기나 영웅적인 삶은 현실적인 게 아니었다. 그는 이 방에 있는 형사 모두가 숱한 현장에서 용기 있고 영웅적인 행동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용기라는 것은 순간적인 필요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확실한 죽음과 직면하여 이 친구들이 불가능한 도박을 기꺼이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목숨과 카렐라의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카렐라의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비인간적이라고? 아마도. 그러나 목숨이라는 것은 다 썼거나 닳았다고 해서 잡화점에 가서 다시 하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목숨은 끈질기게 고수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카렐라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말은 번스 같은 사람이 하기 힘든 말이지만) 카렐라를 사랑하기까지 하는 번스 역시 자신과 카렐라의 목숨을 놓고 '선택'이라는 물음에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두려웠다. -45~6쪽

참을성이란 보답이 따르는 미덕일지도 모른다.
참을성은 관용과 일맥상통한다. 참을성이 강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분노는 반드시 어딘가로 분출시켜야만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육체가 그것을 분출시키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리라. -70~1쪽

그에게 87분서는 낯선 구역이었고, 낯선 수사반이었다. 87분서로 전근을 오게 되었을 때, 그는 이곳에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빈민가와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있었고, 이 형사실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있었다. 그들을 만나기도 전에 환멸만 주는 냉소적인 사람들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는 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매우 빨리 알게 되었다.
빈민가에서 사는 사람들도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와 똑같은 기쁨으로 즐거워했고, 그가 겪어본 적도 없는 불행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과 존경을 원했고, 공동주택의 벽이 동물 우리의 철창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87분서 수사반 형사들에게서 이런 것들을 배웠다. 모든 형사들과 형사 개개인의 행동을 통해서 배웠다. 자신들의 관할 구역에 장밋빛 환상을 품지 않았고, 범죄 발생률 역시 낮았다. 형사들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도둑을 때려눕히고 나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범죄는 범죄였고, 범죄의 악을 합리화하려는 87분서 형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124~5쪽

호스는 87분서 형사들이 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데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는 어떤 개념을 고수하는 것에 놀랐다. 그 어떤 개념은 공정성이었다. 이러한 개념 안에서 형사들은 폭력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를 알았다. 그들은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범죄자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도둑은 도둑이었으나 사람은 또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공정성이었다. 폭력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도 이해했다. -125쪽

도시는 여자다. 밤의 쾌락을 위하여 치장을 시작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새틴 옷에 연붉은빛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별처럼 빛나는 보석을 두른다. 밤을 지새우는 직사각형의 사무실이 스카이라인 너머 대기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처럼 어둠에 저항하듯 눈을 깜빡인다.-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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