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절판


"그래도…… 어떻게 좀 잘 설명드릴 수 없겠냐?"
"설명? 어떻게? 호루모 규칙이라도 조목조목 친절하게 해설해드리랴? '양 팀에서 귀신을 천 마리씩 끌고 나와서 교토 시내에서 전쟁놀이를 하는 거예요. 교토대학 청룡회, 리쓰 메이칸대학 백호대, 교토산업대학 현무파, 류코쿠대학 피닉스에서 각각 500대 회원들이 겨루죠.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경기지만 귀신이 전멸해 버리면 조금 곤란한 일이 벌어져요.' 이렇게? 아서라, 얘기해봐야 공연히 불안감만 부채질하지. 애당초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귀신이 보이지도 않잖아. 인간은 결국 제 눈으로 본 것만 믿게 돼 있어. 네가 호루모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봐. 내가 너한테 '동아리에서 이런 걸 합니다' 하면서 불쑥 호루모를 설명하면, 너라면 믿겠냐?"-14~5쪽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쯤 모짱은 내 하숙방에 불쑥 찾아왔다. 모짱 같은 개성 넘치는 친구가 왜 나처럼 사교성 없고 문학이나 음악도 모르는 재미없는 인간을 만나러 오는지 이해되지 않아서 한번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모짱은 냉큼 대답했다.
"아베는 강하거든."
이어서 맥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약해."
"강해? 내가? 어디가?"
"아베는 빈말로라도 얼굴이 잘생겼다고 할 수 없지. 애인도 없고 돈도 없고 머리도 그저 그렇고. 어딜 보나 나처럼 모자란 것뿐이지만 늘 낙천적이거든. 나는 그런 점을 정말 존경해."-153쪽

모짱은 산조, 시조, 가와라마치 외곽 지리에 이상할 만큼 밝았다. 모짱이 열렬한 '골목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종횡무진으로 얽히고설킨 갈림길들을 지나다가 낯선 골목을 발견하면 모짱은 망설이지 않고 발을 들여놓았다. 내가 잘 따라오는지 살피지도 않고 "이쪽이야, 이쪽" 하며 등을 구부리고 정신없이 걸어갔다. 이렇게 골목을 지날 때 전혀 모르는 동네가 나오지는 않을까, 상상하는 순간이 못 견디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실제로 좁은 골목 끝에 난데없이 음식점 문살문이 나타나거나 더 안쪽으로 골목이 또 이어지거나 지장보살 사당이 조용히 서서 기다리는 둥 교토의 골목은 신비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럴 때 나는 모짱이 품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대로 계속 가다가 원래 장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더 컸다. 아마 그런 불안마저도 모짱에게는 흥분의 소재일 것이다. 모짱은 '여기에는 없는 분위기'나 '여기에는 없는 느낌' 같은 것을 아주 좋아했다. 평소 익히 보던 것이 전혀 다른 무언가로 느껴지는 순간을 그 좁은 눈으로 열심히 찾았다. -162~3쪽

모짱이 여성의 얼굴 가운데 '이마'에 꽂히듯 실은 나에게도 나도 모르게 주목하고 마는 얼굴 부위가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불가항력이고 인간의 이성과 역사를 초월하는 숙명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습성이다, 라고 하면 너무 요란할까? 여하튼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그 존재가 놀랍게도 책 차례에 한 글자의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167쪽

물론 녀석의 애인 이야기는 딱 질색이었다. 질투니 뭐니 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애인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는 모순된 마음은 한구석에는 있었다. 방심해서 애인 이야기를 꺼낸 그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이런 이상한 기분, 이건 또 뭘까?-2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