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 시간은 생쥐처럼 달려 빅 클락의 낡고 천천히 움직이는 추 위로 오른다. 커다란 시곗바늘을 건너 종종걸음 치다가, 옆길로 새어 안으로 들어가 복잡한 톱니바퀴와 기계장치 속 천칭과 용수철을 누비고 다닌다. 진짜 출구와 진정한 보상을 찾아, 가짜 출구와 막다른 골목, 경사가 가파른 길로 구성된 거미줄이 쳐진 미로 사이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24쪽
물론 빅 클락은 시대를 구분해 낼 줄 알았고, 이 때문에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었다. 조지아가 숨쉬는 공기, 조젯의 기력, 내 몸 속 계기판의 눈금이 떨리는 모습 등등. 질서를 잡고 혼돈 속에서 패턴을 만들어 내는 이 거대한 시계는 이제껏 아무 것도 바꾼 적이 없었고,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24쪽
우리들이 이 방에서 결정하는 기사는 앞으로 석 달 후에 시민들이 읽게 되고, 그들은 자신들이 읽은 내용을 최종 결론으로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리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우리가 내릴 결정에 짧게 이의를 제기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제시한 추론을 따르고, 기사 속의 구절과 권위를 갖춘 논조를 기억하며, 종국에는 우리가 제시한 대로 확고하게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 자신의 논리가 어디서 비롯되는가는 물론 다른 문제였다. 거대한 시계가 대중을 향하게 되면, 그들은 단순히 충동적으로 그 시계를 보고 기준이 되는 시간을 맞출 뿐이었다. 그 거대한 시계가 수없이 많은 인생을 형성하고, 인도하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은 때때로 우리에게 이상한 망상을 선사했다. -39~40쪽
월요일 아침에 느끼는 끔찍함은 만국의 공통분모이다. 백만장자에서부터 막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최악의 상황은 없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었다. -113쪽
나 역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에는 수많은 영토가 존재했다. 국가 안에 또 국가가 있는 셈이었다. 만일 내가 이 일에 알맞은 부하들을 선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지점에서 조사 결과를 왜곡하며, 그래야 하는 지점에서 훼방을 놓고, 안전한 지점에서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그들이 조지 스트라우드를 발견하기까지는 아주,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123쪽
회사와 경찰, 이렇게 양쪽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는 조사는 펜치의 양쪽 턱처럼 착실하게 한곳으로 조여들고 있었다. 양쪽이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든 경찰이든 거대 조직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고 그런 조직은 장님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러나 나는 그 치명적인 무게와 힘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미친 짓이었다. 그런 거대 조직에는 저항할 수 없다. 양쪽 모두 빙하와도 같은 냉정한 비인간성으로 창조와 말살을 수행한다. 돈을 세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계량하며, 나무의 성장과 모기의 수명을 한 기준에 놓고 비교하며, 도덕 역시 시간의 흐름에 결부시켜 파악하는 것이다. 빅 클락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시간을, 정확한 하루하루를 새겨 나간다. 빅 클락이 한 인간을 옳다고 판정하면 그 인간은 옳은 것이고, 그가 옳지 않다고 선언하면 항소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그의 인생은 끝나 버린다. 빅 클락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들리지도 않는 것이다. -200~1쪽
이런 말을 해 봐야 우는 소리밖에는 안 되겠지만, 나는 지구상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이 갈기갈기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무언의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이 재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뛰어들었다가 지고 만 커다란 도박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란 분명 거짓말이거나 신화일 뿐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26쪽
빅 클락은 어디에서든 작동한다. 빅 클락은 아무도 간과하지 않고, 아무도 빠뜨리지 않고,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말을 더하고 싶었지만, 그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빅 클락은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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