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
이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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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는 대개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의 고전 문학이다. 어릴 때 읽었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따위의 ‘축약본’을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요약된 내용이나 독후감(혹은 서평)을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주 가끔은 읽으려고 손을 댔다가 도중에 포기해놓고, 다 읽었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않는 작가가 한 명 있는데, 그는 바로 도스또예프스키이다. 이 분의 작품은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조금씩 읽다가 그만두었는데, 워낙 심오하고 방대한 작품세계 덕분에 도저히 조금 읽다 말아놓고, 다 읽었다고 착각할 수는 없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들을 꼭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이정우의 <탐독>을 읽고 나서였다. 이정우는 이 책에서 제법 많은 지면을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나도 이번에는 꼭 완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결심은 쉽게 또 잊혀졌다. 새로운 일터에서 새로운 일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여유가 없어진 탓도 있었고, 나태한 성격 탓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간까지 흥미롭게 읽었던 <탐독> 조차 뒷부분을 다 읽지 못하고 내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다. 하지만 한번 갖게 된 관심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 법이다. 언제든 ‘도스또예프스키’라는 발음조차 어려운 그 이름을 보거나 듣게 되면 어김없이 꼭 읽으리라 맘먹었던 날의 기억은 다시 살아난다.

 

이 책은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그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스끄바에서 시작해서 뻬쩨르부르그, 옴스끄, 스따라야 루사에 이르기까지 직접 대작가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쓴 책이라는 것이 우선 흥미롭다. 가끔씩 등장하는 사진들 중에는 이미 시대가 많이 변한 탓에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도 있지만, 곳곳에 세워진 기념비나 복원해놓거나 보존해놓은 공간들을 보는 것은 대작가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도스또예프스키가 뻬쩨르부르그에서 계속 모퉁이 집에서 살았음을 보여주는 4장의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다! 저자가 스스로 쓴 것처럼 도스또예프스키가 줄곧 모퉁이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이런 흥미로운 사실은 단순히 평전을 읽어서는 알기 힘들 것이다.(물론 실제로 그의 평전을 읽어보지 않아서 장담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마치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도스또예프스키의 삶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그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참고한 회고록이나 편지글 등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묘사를 믿을 수 있기도 하고, 회고록이나 편지를 쓴 이의 생생한 목소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서문에서 저자가 쓴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대작가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니 한 층 더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사형집행을 당할 순간, 진짜 판결이 내려지면서 유배지로 떠난 사연이라던가, 그가 도박에 빠졌다는 사실이나 여러 차례의 유럽 여행 경험 등을 알게 되면서 대작가 도스또예프스키가 아닌 인간 도스또예프스키를 알게 되었다.

 

<탐독>을 읽으며 꼭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으리라고 생각했던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당장 가능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그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보리라. 하나씩 작품들을 찾아 읽는 도중에 이 책도 한 번씩 더 들춰보게 될 것이다. 또 한 번의 자극이 반갑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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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2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도 꽝이지만 문학에도 역시 꽝~!!
낡고 낡은 도스토또예프스키 전집을 내다 버린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요 ㅠ.ㅠ
내다 버리고 나서 알라딘을 검색하다가는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출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죠 이런..ㅠ.ㅠ
엘리베이터를 타도 달려갔더니
없어졌더구먼요 또 이런..ㅠ.ㅠ

그렇게 내다버린 책이 이뿐인가하면...
'여유당 전서'도 낡았다는 이유로 내다 버렸고 ㅠ.ㅠ
요즘 여유당께서 뜨십니다요 ㅠ.ㅠ

'무소유'를 내다 버리고 나니
법정스님게서 열반을 하시더군요 ㅠ.ㅠ
(책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거에요 분명 있었는데...)
이거야 원 ㅠ.ㅠ

그렇게 제게 커다란 교훈을 준 것은 바로 내다버린 책들입니다.
내다버린 책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후회가 물밀듯 한다는 ... ㅠ.ㅠ

알라딘은 정말 좋아요
깨달음이 먼데 있지 않은 것을요...

감은빛 2012-02-01 20:15   좋아요 0 | URL
계속 답글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훌륭한 책들을 많이 버리셨군요!
저는 책을 잘 안버리는 편이라서 아내에게 종종 잔소리를 듣습니다.

도스또예프스키 전집은 정말 안타깝네요!

oren 2012-01-2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교 졸업을 앞둔 긴긴 겨울에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작품이 도스토예프스키의『까라마조프 형제들』이었고, 그 뒤로도『죄와 벌』,『이중인격』등을 더 읽었었는데, 어느새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보지 못한지 거의 30년쯤 된 것 같군요. 감은빛님의 글을 읽어보니 가끔씩 다른 책에서 만나봤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절체절명의 순간'이 새삼 떠오릅니다.
* * *
<처형 직전>
'이토록 빨리, 또한 영원히 어둠 속으로 들어서야 할 찰나로구나.'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면, 내 삶은 갑작스럽게 무한하고 완전한 영원으로서 매 초가 한 세기를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쳐가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리라.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으리라.'

<4년간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이라는 새로운 선고를 듣고 나서>
그날 도스토예프스키는 담담한 어조로 동생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고,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 수도 있었던 것을!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감은빛 2012-02-01 20: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렌님.
도스또예프스키를 많이 읽으셨군요!
저도 이제 하나씩 찾아봐야겠어요.

다른 책에 나온 '절체절명의 순간'을 옮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를 먹지 마세요! 두레아이들 생태 읽기 3
루비 로스 글.그림, 천샘 옮김 / 두레아이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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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닭을 잔뜩 싣고 가는 닭장차를 만났다. 아내와 큰아이는 좁은 철창에 갇힌 수많은 닭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정말 좁디좁은 철창 속에 갇힌 닭들은 숨 쉴 틈조차 없어 보였다. 채식을 하는 아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를 공략했다. 저기 좁은 곳에 갇혀서 팔려가는 닭들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가공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설명했다. 아이는 금방 “닭이 너무 불쌍하다!”는 감상을 내놓고, “이제부터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불쌍한 닭의 상황을 알게 되어 더 이상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아이의 반응은 솔직하고 당연한 것이다.

 

아이가 닭고기를 안 먹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로 곤란해진 것은 나였다. 아내는 약 10여 년 전부터 유제품만 먹는 락토 채식을 하고 있다. 나와 아이들이 육류나 생선을 먹는 것을 이해하지만, 함께 채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아이의 반응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나는 평소 밖에서 먹고 싶은 것을 충분히 먹는 편이지만, 간혹 아내가 늦게 들어오는 저녁에 꼬마 녀석을 데리고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동네에 새로 치킨집이 생겼는데,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맛있었다. 아마도 신선한 기름에 튀기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집은 맥주도 무척 맛있었다. 덕분에 꼬마 녀석과 나는 이 집의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돌연 녀석의 선언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그 치킨 집을 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은 있었다. 아이가 그 집 치킨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 선언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의 고집은 완고했다. 먹고 싶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는 녀석을 보면서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이는 닭고기는 안 먹지만 치킨은 먹겠다(아마도 삶은 고기는 먹지 않고, 튀긴 고기는 먹겠다는 뜻인 듯)고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아이(당시 5살)가 단 한번 닭장차에 실려 가는 닭들을 본 충격이 제법 컸기 때문에 그만큼 오래 약속을 지킨 듯하다.

 

어렸을 때의 습관이나 생각은 어른이 되어도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가끔 티비에서 비만에 걸린 아이들을 언급하면서 햄버거, 피자, 치킨 등의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하곤 한다. 한번 그런 음식에 맛을 들이면 다 큰 어른들도 쉽게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지 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축산 농장과 식품산업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라도 되도록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육식을 줄이거나 중단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작년의 구제역 파동과 최근 소 사료값 인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더더욱 채식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만약 아이들에게 공장식 축산농장과 식품가공산업과 패스트푸드 산업의 문제점 등을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아이들도 채식의 가치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큰아이가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제법 오래 실천을 했듯이 이 설명을 잘 알아들은 아이들은 대다수가 채식을 실천하게 되리라 예상된다. 또한 나중에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환경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꼭 필요한 책이고, 훌륭한 교재이다. 루비 로스의 동물 그림은 독특하고 재밌다. 아이들이 금방 관심을 가질 만큼 귀엽다. 하지만 그 귀여운 동물들이 좁은 철창에 갇혀 고통 받고 있다는 내용은 적절한 자극을 줄 것이다. 이 책은 당위의 논리를 펴는 것이 아니라 각 개별 동물들에 대해 관심 가지도록 권하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오로지 (인간을 위한)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각 동물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제인 구달 역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책 뒤에는 여러 유명인들의 추천사가 들어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동물보호단체 <카라>(www.ekara.org)의 추천이 눈에 띈다. 게다가 이 책의 수익의 일부는 <카라>에 기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옮긴이는 <풀꽃평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책인 만큼, 많은 어린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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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1-19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조카도 가축으로 분류되는 동물을 먹는 행위에 대해 진진하게 생각하더라구요.
그래서 몇 가지 책들을 선물했는데 이 책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2-01-26 10:05   좋아요 0 | URL
댓글을 벌써 읽어놓고, 여유가 없어서 답이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조카분이 범상치 않군요.
어렵고 딱딱한 책들 보다는 이 책이 훨씬 더 감수성을 자극하는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2-01-19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튀김닭은
닭공장(닭 사육장)에서 오래 키우지 않은 작은 닭(으레 한 달 즈음 키운 녀석)을
몇 번 쓰지 않은 기름더미에서 튀기고
사람들 입에 잘 맞는 양념을 쓰면
다들 '맛있다'고 해요...

튀김닭으로 쓰는 닭이랑 백숙으로 쓰는 닭은
닭공장에서 키우는 기간이 달라요.

대기업 닭공장이든 시골 작은 닭공장이든
하루라도 더 살을 찌워 사료값 줄이려고
아주 빨리빨리 키워낸답니다.
(다 아는 이야기일까요?)
(닭공장 튀김닭은 한 달 남짓 키운 닭이기 일쑤예요. 알에서 깬 뒤부터.)

맥주 안주로 더 좋은 먹을거리도 많으니까
아이하고 함께할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보셔요~

감은빛 2012-01-26 10:10   좋아요 0 | URL
된장님. 안녕하세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맛있는 튀김닭집이 있는 동네에서 이사온지 몇년 지났어요.
그 이후로는 튀김닭을 자주 먹지는 않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할 좋은 먹을거리에 늘 고민이 많습니다.
그나마 생협에서 사먹는 것들이 도시에서는 가장 안전하고 괜찮다 생각합니다.

요즘 녹색당에서 술자리를 하다보면 채식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술안주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습니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분들은 그래도 함께 먹을 것들이 제법 있는데,
락토나 비건이라면 일반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먹을 게 거의 없더라구요.
이런 고민들을 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면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나 술집이 더 늘어나겠죠?

차트랑 2012-01-20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생활이 당사자들에게 그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나면
음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분명하게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페이퍼의 강력한 힘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ㅠ.ㅠ
이렇게 좋은 페이퍼들 덕분입니다.

좋은 페이퍼를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은빛님~

감은빛 2012-01-26 10: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공님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현대 식품산업의 문제와 먹거리의 위험성에 대해 눈을 뜬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일들이 몇 번 있었는데,
아무리 주변에 얘기해도 큰 반응과 실천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요즘 자주 나가는 녹색당에서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 많이 계십니다.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차트랑공님께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올레는 어디인가 - 길.사람.자연.역사에서 찾다
서승범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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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 고향,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자주 볼수 없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평생 살면서 보았던 눈 보다 더 많은 눈을 본 것은 군생활을 하면서였고, 그 이후로 눈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말부터 먼저 나왔지만, 그 날만은 눈을 보면서도 신비롭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나는 숲 속을 걷고 있었다. 등산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출근하는 중이었다.

 

당시 내 출근길은 주로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내려서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성균관대학교 후문에서 내린 다음 와룡공원 입구 직전에 산길로 접어들어, 숲을 지나서 서울 성곽길을 살짝 지나쳐서, 성북동 골목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걷는 시간으로 따지면 약 15분 거리. 빨리 뛰면 10분 안으로 돌파할 수도 있었다. 몇 분 안되는 거리지만, 나는 이 숲길을 걷는 것이 참 좋았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만 걷다가 포근한 흙을 밟으며 걸으면 발의 감각도 일단 좋고, 조용하고 차분한 숲의 분위기도 좋고, 왠지 출근길이 아닌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도 든다.

 

눈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달동네에 살고 있는 터라, 겨울에는 매일 등산화를 신고 다녔기에 그 걱정은 금방 털어버렸다. 우리 동네는 눈이 안와도 햇빛이 잘 안드는 골목길 구석에는 늘 얼음이 얼어있다. 자칫 미끄러지면 다치기 때문에 늘 등산화를 신고 다닌다. 성대 후문에서 버스를 내려서 빠르게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갔다. 와룡공원 입구 바로 아래에서 숲길로 접어들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렀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색이 다 흰 색이다. 길과 숲이 구분이 안갈 정도로 온통 새하얀 눈이 깔려있다. 누구 하나 밟은 적이 없는 흰 눈길을 뽀드득 뽀드득 밟는 기분이 야릇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새하얀 세상. 흰 눈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만이 홀로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눈오는 개심사를 찾는 까닭 - 서승범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마치 내가 화자가 되어 내 여행이야기를 펼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때가 종종 있었다. 세상을 향한 시선이 특히 그러하다. 한 편으로 냉소적이고 무심한 듯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따뜻하고 또 정겨운 시선이다. 홀로 떠나기를 좋아하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이름난 곳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시장통이나 뒷골목 따위를 돌아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읽다가 마침내 이 사진을 만났다. 나는 아직 개심사에 가본적은 없지만, 마치 내가 찍은 사진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눈을 맞으며 출근하던 길에 잠시 멈춰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그 짧은 숲길에서 눈을 맞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자가 왜 눈오는 날 개심사를 찾았을까? 그는 저 눈덮힌 산길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길은 사람이 만든다. 그 길은 누가 걷는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것이다. 제주 올레의 큰 성공 이후 전국 여기저기서 걷는 길이 만들어졌다. 울진의 금강소나무숲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부산 이기대 갈매길 등 걷는 길들은 멋진 풍경과 함께 사색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다.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의 갈피를 붙잡기도 하고, 잘 안풀리던 일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한동안 소원했던 누군가가 문득 그리워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던 어떤 장소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 책은 제목만 봐서는 제주 올레는 소개하거나, 좀 전에 언급한 걷는 길들을 다룬 책인 것 같지만, 실제로 차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저자는 제주 올레길과 북한산 우이령길 뿐만 아니라 서울성곽과 혜화동 낙산공원, 수원 화성과 팔달문시장, 전주 한옥마을, 강화도 전등사,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담양 소쇄원, 남한산성, 인천 자유공원 일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올레길을 찾고 있다. 여기서 올레길은 단순히 걷는 길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성찰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위로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사람내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비경 따윈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찌 없겠는가만, 보다 보면 오십 보 백 보일 테니, 그보단 자신에게 의미있는 나름의 '비경'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게다. '그 시절'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그 담벼락과 골목이, 이제는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인연이 만든 비경 첫 구절

 

 

 

 

나만의 추억이 깃든 길은 어디일까?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홀로 훌쩍 떠났던 몇몇 장소들도 떠오르고, 누군가와 함께 했던 어떤 기억들도 떠오른다. 그것은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날에는 몽골 사막에서 바라보았던 밤 하늘의 별이 생각날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여수 돌산 공원에서 내려다보았던 돌산대교가 생각날 것이고, 어느 날에는 설악산 아래 어느 민박집에서 혼자 소주잔을 비우던 밤이 생각날 것이다. 지금 나는 저 눈 내리는 숲의 모습이, 온통 흰 색으로 가득찬 숨막히는 풍경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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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0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좋은 길 이야기
하나하나 들려주셔요~

아마 그동안
수많은 좋은 길을 걸어 보셨겠지요~

감은빛 2012-01-10 16:18   좋아요 0 | URL
수많은 까지는 아니예요.
저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길들은 제법 있을 것 같네요.
기억의 저편을 좀 방황하면서 찾아봐야겠지만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2-01-09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오랜만에 댓글 남겨봅니다.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눈 쌓인 나무가 있는 사진이 정말 아름다워요. 눈 오는 겨울이라는 먼저 춥다는
생각 밖에 안 드는데 저 사진은 오히려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눈 덮인 산길도 사람 키만하게 안 쌓인다면 걷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제가 추억하는 눈 덮인 산길이라면 제 군대 시절 혹한기 훈련 밖에 없네요 ㅎㅎ
그닥 좋은 추억도 아니었고요.. ^^;;




감은빛 2012-01-10 16: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루스님.
저도 요즘 통 다른 분들 서재 방문을 못해요.
먼저 인사 건네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곧 답방 가겠습니다. ^^

제 혹한기 훈련도 그닥 좋은 추억은 아닙니다. ^^

차트랑 2012-01-1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에게 의미있는 나름의 '비경'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
이 대목에 정말 공감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2-01-17 13:01   좋아요 0 | URL
댓글을 보고서도 답글을 미처 달지 못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늘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 만이 진짜 감동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죠.
한눈에도 와! 하고 감탄할만한 멋진 풍경이야 없지 않겠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골목길이나 재래시장 같은 곳이
오히려 나만의 비경이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거대한 위선에 빠져있습니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바가지라도 동네 시장에 있는 할머니한테 사면 세상이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는지 아십니까? 할머니가 콩나물 판 돈으로 손녀에게 줄 공책을 한 권 사거든요. 공책 판 문방구 주인은 저녁에 두부 한 모 사러 시장에 나갑니다. 두부 장수는 두부 팔아서 통닭 한 마리 시켜 먹고, 통닭집 주인은 통닭 팔아서 옆에 있는 편의점 가서 콜라 하나 사 먹죠. 편의점 주인은 콜라 팔아서 우리 병원에 치료 받으러 와요. 우리 병원에 환자가 없다고 내가 아무리 외쳐봐야, 내가 마트 가서 콩나물 사는 이상 달라지는 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경제는 밑에서부터 위로 위로 사다리처럼 연결돼 있어요.

 

- 이마트 피자를 거부해야 모두가 산다, 박경철 / 42쪽

지하철을 내려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 오늘을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한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대개 7시에서 7시 반 사이. 집에 들어가서 겉옷을 벗고, 가방들을 치우고, 알림장을 확인해서 아이들이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대충 살펴보고 나면 어느새 8시가 넘는다. 그때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에는 대개 시간이 부족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보채기 시작하고, 나 역시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면 음식을 준비하다가도 갑자기 짜증이 난다.

 

그래서 자주 정크 푸드의 유혹에 빠진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떨다가 들어오면 라면 국물 생각이 간절하고, 큰 애가 좋아하는 쏘세지는 후라이 팬에 한번 살짝 데워주면 끝이니까 간편하다. 슈퍼에 가면 3분이면 된다는 각종 즉석 요리들이 즐비하다. 캔에 들어있는 참치를 비롯해서 다양한 통조림들에도 자꾸만 눈이 간다.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날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뭐라도 해서 밥을 먹이지만, 정말 손하나 꼼짝하기 싫은 날들도 있다. 그런 날에는 은근슬쩍 아이에게 묻는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피자나 통닭 같은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몇 해전 부천에 살때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동시장'과 '중동시장'이 길게 뻗어 있었다. 굉장히 길다. 온갖 먹거리와 잡다한 생필품들이 다 있다! 없는 게 없다. 그때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까지 2개 정도의 음식을 정해놓고 빠르게 발을 놀려 장을 본다. 양파를 사고, 버섯을 사고, 두부를 사고, 당근을 사고, 감자를 산다. 아이를 데리고(그때는 큰 애만 있었다.) 돌아와서 서둘러 감자 껍질을 벗기고 총총 썰어서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룬다. 당근을 썰어서 감자와 함께 팬에 올리고, 이번에는 두부를 알맞게 썰어놓는다.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를 여러개 넣고, 두부를 넣는다. 조선간장으로 적당히 간을 맞추고 끓기를 기다린다. 버섯을 씻어서 물기를 털어서 썰고, 양파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냄비와 프라이 팬에 적당히 나눠 넣는다. 프라이 팬에 소금을 치고, 후추를 살짝 치고 맨 마지막에 깨소금을 조금 뿌리면 야채볶음 완성, 두부국에는 된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맑은 국을 끓이기로 한다. 앗차! 푸른 잎 야채를 넣으면 맛도 색도 좋은데, 깜빡했네. 국이 끓어오르면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다 끓으면 불을 끄고 참기름을 한방울 떨어뜨린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아서 금방 야채볶음과 두부국을 만들어서 아이와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고 적은 양도 쉽게 살 수 있다. 지금은 그렇게 큰 시장이 없는게 무척 아쉽다. 슈퍼에 놓여있는 야채들은 일단 싱싱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가격도 결코 싸지 않다.

 

어쨌거나 박경철 선생의 말대로라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물론 녹색당의 당원이 되어서 위와 같은 실천을 서로 권하면 더 빨리 바꿀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트 따위엔 별 관심이 없지만(가끔 와인이 먹고 싶을 때는 마트외에는 방법이 없긴하다.) 지금 이 동네에선 뭔가 좀 아쉽다. 여기에도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면 훨씬 더 좋을텐데. 그렇지만 오늘도 부지런히 동네 슈퍼를 다녀와야겠다. 무얼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돈으로 슈퍼 아줌마가 파마 하는데 조금이라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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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12-29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감은빛님의 페이퍼가 하나같이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전 궁여지책으로 가래떡을 많이 뽑아 냉동시켜놓고 그때그때 밥통에 몇 개씩 넣어놓곤 했죠. 저녁 차리는 동안 저랑 애들 궁기를 채우려구요.
겨울엔 곰국을 한가득 끓여놓고 어떻게든 사는데, 날이 더워지면 인스턴트 음식의 유혹이 정말 크죠. ㅠ.ㅠ

감은빛 2011-12-30 11:00   좋아요 0 | URL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공감해주시는 조선인님! 고맙습니다!
가래떡을 넣어두는 방법 정말 좋네요. 저두 한번 해봐야겠어요.
겨울엔 곰국이라! 우리 큰애랑 저도 곰국은 좋아하는데,
아내가 채식을 하고, 고기냄새나 곰국냄새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요.

저도 밥준비하는동안 간단히 과일 같은 걸 먹이기도 하는데,
그러고나면 꼭 밥을 제대로 안먹고,
잠자기 직전에 또 먹을걸 달라고 졸라대서 큰일이예요.
차라리 냉정하게 굶기면, 밥을 열심히 먹긴 하더라구요. ^^

blanca 2011-12-29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계부를 막 쓰고 이 글을 읽으니 왜 이리 부끄러워질까요. 공감하고 반성합니다.

감은빛 2011-12-30 11:01   좋아요 0 | URL
가계부를 쓰시다니!
저는 몇 번이나 시도하다가 계속 실패했거든요.
아내도 저도 가계부를 쓸만큼 성실하지 못해서요.
저도 블랑카님처럼 반성할 일이 많습니다.
각자가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지요.

마녀고양이 2011-12-3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나도 리뷰 써야 하는뎅.
감은빛님, 내년에도 좋은 리뷰 잘 부탁드립니다... ^^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한 새해되시길.

감은빛 2012-01-03 18:1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새해 좋은 일, 즐거운 일만 잔뜩 생기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눈이 제법 왔어요.
눈길 조심해서 다니시고, 추운 날 몸 조심 하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2-01-0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삶이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감은빛 2012-01-03 18:15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일상의 정말 사소한 일 하나에도
생각이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면 행동도 달라지겠지요.

카스피 2012-01-0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2011년 서재의 달인 등극을 축하들려요.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감은빛 2012-01-03 18:1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오늘 밤에는 덕분에 꿈에 용 한마리 등장하겠네요.
진짜로 나오면 나중에 꿈 이야기 한번 올릴게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2년에 꼭 지키고자 마음 먹은 일들 중 하나가 식비 줄이기예요.
먹는걸 줄인다기보다는 들어가는 식재료를 알뜰하게 구매하고 (그러려면 마트 이용을 자제해야죠..) 버리는 것 없이 알뜰하게 사용하자...간식을 좀 줄이자..뭐 이런 단순한거죠.
그런데 참 지키기가 어려워요.
이틀째 되는 오늘, 온 가족이 밖에 나갔다가 시장통에서 파는 떡볶이와 순대의 유혹을 못이기고 결국 저녁을 해결하고 왔는데...좀 허무하네요..ㅎㅎㅎ

감은빛 2012-01-03 18:18   좋아요 0 | URL
저희 가족도 외식과 간식 비용이 좀 많습니다.
다른데 쓰는 돈이 별로 없어서 유난히 많이 쓰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도 천편일률적으로 마트가서 잔뜩 사와서,
커다란 냉장고에 박아두고 먹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동네 시장에 계신 아주머니, 할머니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잖아요!
현맘님, 새해 좋은 일이 많이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잘잘라 2012-01-0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기 시작했어요.
저는 마트를 자주 가는 편인데..음.. 감은빛님 글 읽었는데, 책 마저 다 읽고 나면 마트를 끊어야 할까요?^^;; 저는 생협도 자주 가는데 생협 매장은 아주 작지만, 느낌은 마트랑 별다르지 않아요. ㅠㅠ

감은빛 2012-01-06 18:24   좋아요 0 | URL
마트를 가는게 더 편하고, 거기서만 사야할 것이 있다면 가야죠.
문제는 한번 마트에 가서 쓸데없는 것들을 잔뜩 사다놓고,
평소에는 동네 가게들에서 아예 돈을 안쓴다면 그건 안좋아 보입니다.

생협이 마트랑 별로 다르지 않다면 분명히 ㅇㅇ쿱생협으로 보입니다만,
대개 생협매장은 동네 슈퍼와 비슷하죠.
그리고 아무리 ㅇㅇ쿱생협이라고 해도 운영원리는 마트랑은 완전 다릅니다.
마트 가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좋겠죠.
 
몸과 삶 그리고 사회

추운 날

 

"아 뚜" 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쌩! 아가는 금방 얼굴을 찡그리며 '아 뚜'를 연발한다. "우리 예쁜이가 추워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답한다. 비탈길을 내려간다. 아가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다시 한번 "아 뚜"하고 소리를 낸다. 아가의 소리에 대답하듯 나도 "아이 추워!"하고 과장이 섞인 말투로 따라한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 어린이 집에 도착할 때쯤되면 아가의 뺨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다. 희고 차가운 뺨에 살짝 입술을 대고 "호~" 하고 입김을 불어준다. 아가는 장난치는 줄 알고 까르르 웃는다.

 

"뚜" 아가가 좋아하는 노래는 '곰 세마리' 앞 부분은 발음이 불분명하게 따라하다가도 '아빠공(곰), 엄마공(곰), 애기공(곰)' 이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부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 '우쭈 우쭈 자란다(으쓱 으쓱 잘한다)' 여기도 잘 따라 부른다. 따뜻한 어린이집에 있다가 밖으로 데려나오면 아가는 금방 짜증부터 낸다. 녀석. 하루종일 떨어져 있던 아빠를 좀 웃으면서 반겨주면 안되겠니? 짜증이 난 아가를 달래기 위해 아가가 좋아하는 '곰 세마리'를 부르면서 큰 녀석을 데리러 간다. 왼팔에 아기를 안고, 오른손에는 아가의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날씨가 추우니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노래를 겨우 부르고 나면 녀석은 "뚜!" 하고 외친다. 또 한번 더 부르라는 얘기다. 옆을 스쳐지나가는 한 여학생이 웃는다. 큰 녀석이 있는 피아노학원까지 가려면 노래를 한 서너번은 더 불러야 한다.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는데 팔에 안긴 쪼그만 녀석은 계속 '뚜!'를 외친다. 금방 다시 안불러주면 "뚜우우우우!"하고 짜증을 낸다. 다시 노래를 부르면 금새 표정이 밝아지며 뭐라고 중얼중얼 따라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 '아빠공(곰), 엄마공(곰), 애기공(곰)'에 이르면 어느새 목소리가 커지고 발음이 분명해진다. 노래가 끝나면 역시 "뚜!"를 외친다. 나는 딴청을 부리듯 "추워요? 우리 얘쁜이가 춥지요?"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뚜!"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 아기의 "뚜"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춥다는 뜻이고, 하나는 또 하라는 뜻이다. 신기하다. '추워'와 '또'가 동음이의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몸 이야기

 

아이를 둘 키우면서 새삼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사람의 정상 체온은 얼마이고 열이 어느정도까지 올라가면 위험한 것인지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기가 누워있다가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고, 앉고, 걸음마를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빨은 어떤 것부터 나기 시작해서 몇 개월까지 나는지. 분유를 먹고 나면 왜 트림을 시켜야 하는지. 등등 평소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궁금해본 적도 없는 사람의 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 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다. 술에 쩔은 내 몸은 과연 어떤 상태일까? 아내는 가끔 나는 죽어서도 부패하지 않을꺼라고 놀리곤 한다. 알코올에 푹 담긴 내장들이 어떻게 썩을 수가 있겠냐고! 지금은 내 몸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지만, 한때는 나도 관심이 많았다. 역시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몸매보고 결혼했다'고 장담할만큼 예전에는 몸에 자신이 있었다. 물론 지금 말하는 건 단순히 보기 좋은 외모를 가꾸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약간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왜 나는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걸까? 답은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개라고 본다. 도시 생활과 임금 노동.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땅을 일구어 생명을 심고, 가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과 자연에 관심을 두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삶이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나서서 저녁까지(혹은 야근을 하게된다면 밤까지) 하루종일 일에 매달려 살아가게 만드는 현재의 임금 노동(자본주의)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한 먹거리보다는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정크푸드에 손이 먼저 가고, 허리와 목에 부담이 가는 자세로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으며, 눈이 뻑뻑해지도록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달달한 믹스커피에,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점심 식사에 익숙해지고, 저녁이되면 어김없이 고기와 소주를 뱃속에 채운다. 짧은 거리도 자동차로 움직이고,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길담서원에서 진행되는 인문학교실의 강좌 중에서 '몸'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필진 중에 이유명호, 전희식, 변혜정 같은 평소에 좋아하는 분들이 계셔서 더 관심이 간다. 서문을 읽어보다가 아래 문단에 완전 꽂혔다.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은 그동안 길, 일, 돈, 몸, 밥, 집에 대해 진행했고, 지금은 품에 대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땅, 불, 물, 똥, 힘, 꿈, 숨, 말, 눈, 앎, 삶 등등 수많은 주제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글자 인문학교실이 끝나면 사랑, 평화, 철학, 역사, 인간, 종교, 공부, 등 두 글자 주제. 세글자 주제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갑자기 청소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서 이 재밌는 주제들로 나누게 될 온갖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부럽다! 이십년만 늦게 태어날걸! 

 

나는 사람들이 좀 여유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일하다 말고 딴 생각도 좀 하고 일찍 퇴근해서 동료들과 혹은 가족들과 (정치나 티비 얘기 말고)다양한 삶의 영역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자신의 몸과 건강 그리고 자연에 대해 알아가면서 살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면 서로 함께 공부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당장 오늘부터 아이의 얘기를 좀 더 잘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수다쟁이 큰 녀석이 무슨 얘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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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몸과 삶 그리고 사회
    from 가보지 못한 길 2013-03-06 15:33 
    며칠 전 친한 선배네 돌잔치에 다녀왔다. 막내아들의 돌이었다. 위로 딸이 둘 있고 아들이 셋째다. 덩치 큰 선배가 한복을 입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돌잔치를 치르는 아빠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실제로 나이가 많긴 하다. 40대 초반이니까 아마 우리 아버지 세대였다면 벌써 큰 애가 대학을 갔을 수도 있는 시기다. 실제로 예전에 나를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셨던 형님은 40대 초반에 큰딸이 대학생이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