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사기

쿠팡 물류센터 일이 안정적이지 못해 대안을 찾고 있다. 초기에 갔던 부천센터는 앱에서 단기직 업무 지원하면, 거의 매번 출근 확정 연락을 줬었다. 아마 업무량에 비해 사람이 부족해서 그랬겠지. 그땐 흔히 상하차 라고 부르는 좀 더 몸을 많이 쓰고 힘든 일을 하기도 했고, 쿠팡 프레쉬 새벽 배송을 위해 딱 새벽 2시 반까지만 일하는 중간조 였는데, 이게 시간이 참 애매하기도 하고, 일하는 시간 자체가 짧아서 일급이 적기도 했다. 제일 문제는 새벽 3시 반쯤 합정에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 집에서 가까운 고양센터를 나가게 되면서 다시 부천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문제는 고양센터는 이미 일할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한 열 번 업무 지원하면 세 번 정도 밖에 출근 확정 연락이 안 온다. 나머지는 이미 마감되었다고 다음에 다시 지원하라는 연락이다. 절반이 넘는 확률로 일을 못 가게된다. 부천에서는 초반에 그러니까 첫 출근해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기 전에만 그랬기 때문에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다시 불러주겠지 하고 계속 업무 지원을 넣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에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틀 연속 지원했다가 두 번 모두 마감되었다는 답을 받고 좀 허탈했다. 다른 평일은 몰라도 저 이틀은 꼭 불러줄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실망도 컸고, 충격도 컸다. 게다가 설 연휴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지정된 임시 공휴일이었던 월요일을 포함해 긴 연휴 내내 업무 지원을 넣어놓았었는데, 모두 마감이란 연락만 돌아왔다. 이 정도면 이 일을 바라고 지원을 넣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쿠팡이라는 유통업체는 문제가 많은 곳이다. 새벽 배송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노동 조건을 강요해왔고, 그래서 과로사나 자살 등의 사고도 많았다. 게다가 최저가 제공 업체에 기존 리뷰와 사진 등의 정보를 다 몰아주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거의 사기에 가까운 운영 방식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래저래 쿠팡을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입장에서 쿠팡 물류센터에 일을 하러 갔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업무 지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매일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주일에 두세번 혹은 서너번 각기 다른 요일에 불규칙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딱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일을 하기를 원했고, 쿠펀치 앱을 통해 매일 지원할 수 있는 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듯 느껴지는 급여는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단 돈을 벌 수 있었고, 일도 처음이라 재미있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다음 일터를 적극적으로 알아볼 여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한동안 쿠팡에서 일을 하면 괜찮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지는 몰랐다.

최근에 다른 구직 앱들을 깔고 이력서를 등록하고 희망 직종 등을 올렸다. 당근 앱에도 알바 메뉴가 있길래 거기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느 구인 공고를 보아도 나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적어도 서너달 동안은 이래저래 맡아버린 (무급) 역할들이 있어서 풀타임 정규직으로 취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불규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쿠팡 같은 곳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파트 타임을 알아보니, 대부분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이었는데, 여기는 또 일하는 시간이 적어서 일을 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너무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이 나이에 서빙을 하겠다고 지원해봐야 그쪽에서 나를 뽑아줄 확률도 낮다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굳이 나이 많은 사람을 뽑을 이유는 없겠지. 암튼 며칠에 걸쳐 많이 알아보고 많이 고민해서 한 두군데 지원을 하긴 했다. 그리고 전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어이가 없게도 내가 지원했던 곳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삼성생명 이름을 대면서 중소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정확히 어떤 업무인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하듯 하는 태도를 보아 이건 취업사기이거나, 정당한 일자리가 아닐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용공고문이 어디있는지 알려주면 살펴보겠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상시 채용이라 공고문이 따로 없다고 했다. 여기서 확신했다. 이건 사기일 확률이 매우 높을 거라고. 사실 아무리 작은 일터라도 사람을 뽑을 때는 거의 무조건 공고를 먼저 내도록 되어있다. 하물며 삼성생명에서 공고 없이 사람을 뽑는다는 건 무조건 거짓말이다. 나는 먼저 연락주셔서 고맙지만, 나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거절하고 끊었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곳에서 전화가 왔다. 여기도 정확하게 어떤 일이라고 딱 특정해서 말을 못 하는 느낌이었다. 조금 설명을 듣다가 또 거절하고 끊었다. 이게 다 구직앱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연락처를 남겨서 벌어진 일인데, 취업 사기와 거짓 정보들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렸다. 내 스스로 내 정보를 사기꾼들에게 내 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어제 뭔가 수상쩍은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분명 내가 관심 없다고 말했는데, 몇 시간 후에 또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더라. 어제 오후 늦게 내가 뭔가 일을 하느라 서너시간 폰을 다른 방에 두고 집중하고 있어서 한참 후에 확인했었다. 무시할까 하다가 그래도 두 번이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으니 확인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나는 문자를 남겼다. 일 때문에 연락을 못 받았다고 용건을 물었다. 상대는 한참 후에 답을 보냈는데, 자신이 연락을 했던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분명 휴대전화 번호였기에 문자를 남긴 것이고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통화도 했고, 몇 시간이나 지나서 다시 부재중 전화도 두 번이나 걸었던데, 자신이 연락하지는 않았다고. 이건 뭔가 같은 번호를 여러 명이 쓴다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다. 피싱이나 스미싱을 위한 조직에서 연락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시급한 사안이다. 당장 먹고 살 걱정에 얼마나 마음이 급할까! 그런 와중에 교묘하게 접근해 거짓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넘어갈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왜 다들 이렇게 남들을 속여가며 돈을 벌려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언제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검거해보니 알바로 채용되었는데, 시간 장소 알려주고 돈 받아오라 했다고 진술한 경우를 보았다. 제대로 된 멀쩡한 일터인줄 알고 지원했는데 사기 조직에 가담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에휴! 진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고 있어도 피해가기 쉽지 않다.

무기수 김신혜 씨의 불행

지난 달에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석방된 김신혜 씨 이야기가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에 방영되었길래 찾아보았다.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하나는 검찰이 항소를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신혜 씨가 심각한 망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신변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정신병원에 긴급 입원을 시켰다는 것이다. 25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다가 겨우 나왔는데, 이제는 다시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 한다니.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초기 수사 과정에서 담당 형사 둘이 저지른 폭언과 폭행 그리고 협박에 대해서도 다뤘다. 폭언과 폭행은 그렇다고 치고, 협박은 뭔가 궁금할 것이다. 형사 둘은 당시 어린 김신혜 씨의 남동생을 강압적으로 데리고 김씨의 서울 자치방을 뒤졌다.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남의 물건들을 함부로 가져왔었다. 이때 영장 없이 가져온 공책은 재심 때 제대로 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판명되어 김씨의 석방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암튼 형사들은 임의로 김씨의 물건들을 많이 가져왔는데, 그중에는 연극배우로 일했던 김신혜 씨의 세미누드 사진이 있었다고 했다. 형사들은 그 사진을 포함해 김씨의 사진들을 대부분 가져와 김씨 앞에서 다른 형사들과 함께 외모 평가하는 발언들을 하기도 했고, 특히 그 누드사진으로 자백하지 않으면 이 사진을 퍼뜨려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형사라는 것들이 성범죄자들이나 할 짓거리를 저질렀다는 뜻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의문이기도 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고모부라는 인간에 대해 이번 프로그램이 좀 밝혀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지난 2014년 당시의 발언을 다시 담고 있을 뿐, 추가로 의미있는 증언을 듣지는 못했다. 그는 25년이나 지나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 멀쩡한 아빠를 두 딸을 성폭행한 악마로 만들고, 거짓말로 속여서 조카를 존속살해범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이 인간이야말로 이 사건에서 가장 악독한 범죄자이고, 그 다음이 담당 형사 두 명이고, 그 다음이 아마 담당 검사와 그 직원들일텐데. 왜 법치국가라는 이 나라에서 이 범죄자들이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 것일까?

또 하나의 의문점은 왜 유독 이 건은 재심 절차가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하는 점이다. 2015년에 재심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고, 재심이 확정된 것이 2018년이라고 했다. 그리고 재심의 첫 판결이 지난 달인 2025년 1월에 나온 것이다.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안그래도 나는 이 재심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중간에 몇 번이나 검색해보곤 했었는데, 매번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김신혜 씨는 혹시나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록을 잃어버리거나 문제에 휘말릴까 두려워 독방을 고집했다고 했다. 그 긴 시간 홀로 독방에 갇혀있는 동안 마음의 병을 얻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추측했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박준영 변호사도 2015년 재심 시작 이후 대략 2018년 즈음부터 김씨에게 망상 증세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김신혜 씨가 자신의 남동생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하며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남동생이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지금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은 가짜 남동생이라고 믿고 있었다. 출소하면 남동생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남동생이 없다며 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방송에 그대로 나왔다. 이 안타까운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25년만에 기적적으로 육체는 자유를 되찾았는데 이제 정신이 마음의 감옥에 갇혀버렸으니. 방송 마지막에 진행자 김상중 씨는 김신혜 씨가 다시 건강을 되찾아 항소심에 정상적으로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연 그는 회복할 수 있을까? 항소심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 아무쪼록 억울함이 없는 판결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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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0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례 슈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년들>과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재심>과 같은 영화들 모두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형사들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죠. 아마 이 영화들은 그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우리 사회의 ‘참회‘와도 같은 것일텐데, 위 사건도 억울함 없이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