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대한 위선에 빠져있습니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바가지라도 동네 시장에 있는 할머니한테 사면 세상이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는지 아십니까? 할머니가 콩나물 판 돈으로 손녀에게 줄 공책을 한 권 사거든요. 공책 판 문방구 주인은 저녁에 두부 한 모 사러 시장에 나갑니다. 두부 장수는 두부 팔아서 통닭 한 마리 시켜 먹고, 통닭집 주인은 통닭 팔아서 옆에 있는 편의점 가서 콜라 하나 사 먹죠. 편의점 주인은 콜라 팔아서 우리 병원에 치료 받으러 와요. 우리 병원에 환자가 없다고 내가 아무리 외쳐봐야, 내가 마트 가서 콩나물 사는 이상 달라지는 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경제는 밑에서부터 위로 위로 사다리처럼 연결돼 있어요.
- 이마트 피자를 거부해야 모두가 산다, 박경철 / 42쪽
지하철을 내려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 오늘을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한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대개 7시에서 7시 반 사이. 집에 들어가서 겉옷을 벗고, 가방들을 치우고, 알림장을 확인해서 아이들이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대충 살펴보고 나면 어느새 8시가 넘는다. 그때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에는 대개 시간이 부족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보채기 시작하고, 나 역시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면 음식을 준비하다가도 갑자기 짜증이 난다.
그래서 자주 정크 푸드의 유혹에 빠진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떨다가 들어오면 라면 국물 생각이 간절하고, 큰 애가 좋아하는 쏘세지는 후라이 팬에 한번 살짝 데워주면 끝이니까 간편하다. 슈퍼에 가면 3분이면 된다는 각종 즉석 요리들이 즐비하다. 캔에 들어있는 참치를 비롯해서 다양한 통조림들에도 자꾸만 눈이 간다.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날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뭐라도 해서 밥을 먹이지만, 정말 손하나 꼼짝하기 싫은 날들도 있다. 그런 날에는 은근슬쩍 아이에게 묻는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피자나 통닭 같은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몇 해전 부천에 살때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동시장'과 '중동시장'이 길게 뻗어 있었다. 굉장히 길다. 온갖 먹거리와 잡다한 생필품들이 다 있다! 없는 게 없다. 그때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까지 2개 정도의 음식을 정해놓고 빠르게 발을 놀려 장을 본다. 양파를 사고, 버섯을 사고, 두부를 사고, 당근을 사고, 감자를 산다. 아이를 데리고(그때는 큰 애만 있었다.) 돌아와서 서둘러 감자 껍질을 벗기고 총총 썰어서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룬다. 당근을 썰어서 감자와 함께 팬에 올리고, 이번에는 두부를 알맞게 썰어놓는다.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를 여러개 넣고, 두부를 넣는다. 조선간장으로 적당히 간을 맞추고 끓기를 기다린다. 버섯을 씻어서 물기를 털어서 썰고, 양파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냄비와 프라이 팬에 적당히 나눠 넣는다. 프라이 팬에 소금을 치고, 후추를 살짝 치고 맨 마지막에 깨소금을 조금 뿌리면 야채볶음 완성, 두부국에는 된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맑은 국을 끓이기로 한다. 앗차! 푸른 잎 야채를 넣으면 맛도 색도 좋은데, 깜빡했네. 국이 끓어오르면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다 끓으면 불을 끄고 참기름을 한방울 떨어뜨린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아서 금방 야채볶음과 두부국을 만들어서 아이와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고 적은 양도 쉽게 살 수 있다. 지금은 그렇게 큰 시장이 없는게 무척 아쉽다. 슈퍼에 놓여있는 야채들은 일단 싱싱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가격도 결코 싸지 않다.
어쨌거나 박경철 선생의 말대로라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물론 녹색당의 당원이 되어서 위와 같은 실천을 서로 권하면 더 빨리 바꿀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트 따위엔 별 관심이 없지만(가끔 와인이 먹고 싶을 때는 마트외에는 방법이 없긴하다.) 지금 이 동네에선 뭔가 좀 아쉽다. 여기에도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면 훨씬 더 좋을텐데. 그렇지만 오늘도 부지런히 동네 슈퍼를 다녀와야겠다. 무얼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돈으로 슈퍼 아줌마가 파마 하는데 조금이라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