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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먹지 마세요! ㅣ 두레아이들 생태 읽기 3
루비 로스 글.그림, 천샘 옮김 / 두레아이들 / 2011년 12월
평점 :
몇 해 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닭을 잔뜩 싣고 가는 닭장차를 만났다. 아내와 큰아이는 좁은 철창에 갇힌 수많은 닭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정말 좁디좁은 철창 속에 갇힌 닭들은 숨 쉴 틈조차 없어 보였다. 채식을 하는 아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를 공략했다. 저기 좁은 곳에 갇혀서 팔려가는 닭들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가공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설명했다. 아이는 금방 “닭이 너무 불쌍하다!”는 감상을 내놓고, “이제부터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불쌍한 닭의 상황을 알게 되어 더 이상 닭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아이의 반응은 솔직하고 당연한 것이다.
아이가 닭고기를 안 먹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로 곤란해진 것은 나였다. 아내는 약 10여 년 전부터 유제품만 먹는 락토 채식을 하고 있다. 나와 아이들이 육류나 생선을 먹는 것을 이해하지만, 함께 채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아이의 반응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나는 평소 밖에서 먹고 싶은 것을 충분히 먹는 편이지만, 간혹 아내가 늦게 들어오는 저녁에 꼬마 녀석을 데리고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동네에 새로 치킨집이 생겼는데,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맛있었다. 아마도 신선한 기름에 튀기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집은 맥주도 무척 맛있었다. 덕분에 꼬마 녀석과 나는 이 집의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돌연 녀석의 선언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그 치킨 집을 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은 있었다. 아이가 그 집 치킨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 선언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의 고집은 완고했다. 먹고 싶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는 녀석을 보면서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이는 닭고기는 안 먹지만 치킨은 먹겠다(아마도 삶은 고기는 먹지 않고, 튀긴 고기는 먹겠다는 뜻인 듯)고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아이(당시 5살)가 단 한번 닭장차에 실려 가는 닭들을 본 충격이 제법 컸기 때문에 그만큼 오래 약속을 지킨 듯하다.
어렸을 때의 습관이나 생각은 어른이 되어도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가끔 티비에서 비만에 걸린 아이들을 언급하면서 햄버거, 피자, 치킨 등의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하곤 한다. 한번 그런 음식에 맛을 들이면 다 큰 어른들도 쉽게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지 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축산 농장과 식품산업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라도 되도록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육식을 줄이거나 중단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작년의 구제역 파동과 최근 소 사료값 인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더더욱 채식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만약 아이들에게 공장식 축산농장과 식품가공산업과 패스트푸드 산업의 문제점 등을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아이들도 채식의 가치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큰아이가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제법 오래 실천을 했듯이 이 설명을 잘 알아들은 아이들은 대다수가 채식을 실천하게 되리라 예상된다. 또한 나중에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환경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꼭 필요한 책이고, 훌륭한 교재이다. 루비 로스의 동물 그림은 독특하고 재밌다. 아이들이 금방 관심을 가질 만큼 귀엽다. 하지만 그 귀여운 동물들이 좁은 철창에 갇혀 고통 받고 있다는 내용은 적절한 자극을 줄 것이다. 이 책은 당위의 논리를 펴는 것이 아니라 각 개별 동물들에 대해 관심 가지도록 권하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오로지 (인간을 위한)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각 동물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제인 구달 역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책 뒤에는 여러 유명인들의 추천사가 들어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동물보호단체 <카라>(www.ekara.org)의 추천이 눈에 띈다. 게다가 이 책의 수익의 일부는 <카라>에 기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옮긴이는 <풀꽃평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책인 만큼, 많은 어린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