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고치기

예전에 출판사에 있을 때, 잠시 편집자로 살았었다. 나는 잡지 구독자 관리 업무와 잡지 영업, 단행본 영업을 주 업무로 맡았었는데, 욕심이 많았던 터라 잡지에 글을 쓰기도 하고 취재를 다니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편집 업무를 배워 영업자와 취재기자와 편집자 이렇게 세 가지 일을 했었다. 물론 주업무가 영업이었으니, 편집 업무는 속도도 느렸고, 서투르기도 했다. 오탈자를 잡아내거나, 띄워쓰기를 고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아서 늘 실수가 많았다. 그런 내가 자신 있는 일은 문장을 다듬는 것이었다. 보다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배치를 바꾸고, 단어를 수정하는 일에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새로운 단행본 맡을 담당자를 정하기 위해 대표님이 나와 베테랑 편집자 한 명에게 책 한 권을 주고 3일 안에 교정교열을 시켰다. 나는 이제 막 편집자로 첫 걸음을 내디딘 초짜이고, 그는 10년 이상 경력인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경쟁에서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 해보자고 마음 먹고 열심히 했다. 마감 기한이 되어 그와 나는 교정 본 책을 제출했고, 대표님은 다음날 우리를 불렀다. 결과는? 대표님은 오탈자와 띄워쓰기 오류를 잡아내는 능력은 그 베테랑 편집자가 월등히 낫다고 했다. 그런데 문장을 다듬는 능력은 내가 훨씬 나았다고 했다. 그는 문장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았는데, 오탈자는 거의 다 잡아냈고, 나는 오탈자는 많이 놓쳤지만, 조금이라도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있으면 고쳤는데, 그 고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새 책, 당시 이 출판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분기점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책을 나에게 맡겼다. 이유는 오탈자 찾아내는 기능은 연습하다보면 더 잘 할 수 있지만, 문장을 고치는 능력은 쉽게 키우기 어려운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후로 나는 책 여러 권을 맡았지만, 교정 부분에서 그러니까 오탈자 찾아내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못했다. 낮에는 영업을 다니고, 남들 다 퇴근할 저녁부터 책상에 앉아 편집 업무를 하느라 늘 시간에 쫓겼다. 교정 능력을 키우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도 하고, 연습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유독 실수가 많아서 내가 책임 편집을 맡았던 책에서는 끝내 잡아내지 못한 오탈자가 늘 있었다. 심지어 발행일을 잘못 적어놓고 최종 교정때까지 몰라서 미래에서 온 책을 펴내기도 했다. 스티커 작업 할 돈도 아깝다며, 대표님이 그냥 두라고 하셨다. 거기서 좀 더 버티며 편집 일을 계속 했다면, 나도 조금은 더 실력이 늘었겠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오탈자를 잡아내는 영역의 일은 좀 서툴렀지만, 글을 만지는 일은 그래도 자신있었다. 작은 출판사이다보니 첫 책을 내는 작가들이나 번역자들이 많았다. 대학에 몸담은 박사님들이나 번역 경험이 많지 않은 번역자들의 글은 비문이 많았고, 그 특유의 번역 어투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라는 사람은 그런 번역어투가 읽기 쉬운 글보다 더 잘 쓴 글이라고 믿었다. 그런 글을 만나면 나는 아예 내가 다시 글을 썼다. 어떤 저자는 단어 하나 바꾸는 것에도 난리를 치기도 했는데, 내가 아예 새로 글을 쓴 것은 모른척 하더라. 본인도 부끄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설마 내가 아예 새로 쓴 부분을 본인이 쓴 원문 그대로라 생각하고 못 알아본 것은 아니겠지. 어떤 번역자는 내용에 오류가 많고 인명이나 지명 등을 엉뚱하게 잘 못 써놓기도 해서 아예 원서와 사전을 옆에 끼고 하나하나 내가 다시 번역해가며 글을 고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젊은 시간을 갈아넣어가며, 매일 밤을 새워가며 글을 고쳐도 내게 남는 것은 없었다. 책에는 그저 판권 페이지에 편집자로 이름 하나 들어갈 뿐이다. 그 책의 절반 이상을 내가 새로 고쳐 썼어도 저자는 그 사람이고 나는 아무도 아니다. 그 책의 절반 이상을 내가 다시 번역했어도 결국 번역자는 그 사람이고 나는 표지나 책 날개에 이름을 넣을 수 없는 편집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낮에는 영업자로, 가끔은 취재기자로 살았고 밤에는 편집자로 살았지만, 급여는 그대로였다. 나와 친했던 영업자 동료들은 내게 돈도 못 받는데, 왜 잠도 못 자면서 편집 일을 하냐고 뭐라하곤 했다. 나는 늘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일 욕심은 많으나 내 실속은 잘 찾지 못하는 미숙한 인간이라 그랬다.

내가 이 출판사에 처음 들어왔을때 여기는 영업이란 걸 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적자였던 출판사를 흑자로 돌리고, 첫해와 둘째해에 영업이익을 크게 증대시켰다. 대표님은 나를 엄청 존중했고, 그렇게 계속 잘 될줄 알았지만, 다시 해가 갈수록 영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점점 줄었다. 이건 당연한 일인데, 아무런 시스템도 없는 곳에 내가 영업 망을 구축하기 시작해서 처음엔 크 폭의 매출 상승이 이뤄지지만, 점점 망이 완성될수록 매출은 안정권에 접어 들면서 상승 폭은 낮아진다. 내가 잘 구촉해놓은 영업망은 이제 관리를 잘 해야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당시 대표님은 그 관리라는 영역을 과소평가했다. 내가 이미 시스템을 잘 만들어두었으니, 이제 내가 없어도 이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고 믿었을 것이다. 나는 개국공신과 같은 대접을 받다가 한순간에 잘렸다. 그 후로 몇 건 알바로 교정 일을 맡은 적은 있지만, 제대로 배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시민신문의 편집위원 역할을 몇 년간 맡았었다. 당연히 무급이었다. 신문 마감 기간에는 낮에 일터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신문사로 가서 새벽까지 편집 일을 했다. 편집장과 기자가 기사를 완성하면 내가 교정교열을 보고, 그걸 편집장이 다시 확인 한 후에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작은 규모라 취재기자도 부족한데 편집기자를 둘 여력은 당연히 없었고, 나는 아무런 댓가없이 매달 며칠씩 새벽 늦은 시간까지 교정을 봤다. 문제는 신입으로 들어온 기자가 기사를 쓸 줄 몰랐다는 것. 글쓰기 기본도 모르는 사람을 덜컥 기자로 뽑아놓고 기사를 쓰라고 하니 정말 엉망인 쓰레기를 쓰고 있었다. 매번 편집장은 그 기자의 기사 같지도 않은 결과물 때문에 어쩔줄을 몰라했고, 늘 그 기자의 엉망인 원고들은 내게 맡겨졌다. 이건 고칠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기사를 새로 써야했다. 게다가 표현이 엉망이라도 내용이라도 충실하면 그걸로 새로 글을 쓰면 되는데 내용도 부실했다. 중언부언. 딱 그 표현 그대로였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결국 같은 것인데 그 엉망인 표현만 다르게 붙여놓았다. 그래서 그 기사는 아예 내가 내용을 찾아서 다시 썼다. 즉, 취재도 내가 다시 하고 기사도 내가 다시 썼다. 그런데 결국 발행하는 신문에 내 이름은 없었다. 편집장과 기자 이름은 들어가도 편집위원 이름은 아주 작게, 독자들이 어디 있는지 알기도 어려운 구석에, 자세히 들여다보조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크기로 적혀있었다. 나는 편집장에게 이 기사만큼은 내 이름과 그 기자 이름을 공동으로 넣어달라고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그 기자는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나도 언제까지 계속 새벽까지 잠 못자고 거기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서서히 시민신문에 투여하는 시간을 줄여나갔고, 나중에는 딱 마감을 치는 날 하루만 가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그 기자의 기사인데, 본인이 좀 고쳐보려고 했지만, 손을 대지 못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일이 몰려 늦게까지 일하다 잠든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무척 피곤했다. 내일 보면 안 되냐고 했더니, 일정상 오늘 밤안에 꼭 끝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결국 그 새벽에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열었다. 아! 이건 진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다시 누웠다. 엄청 피곤했는데도 잠이 오지는 않았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남의 글을 고치는 일은 참 고역이다. 예전에 편집자였던 시절에는 그게 재미있었는데, 이제 아니었다. 이 짓도 이제 못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결국 그 기사를 다시 써서 보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시민신문에서 몇 가지 문제가 불거지며 나는 편집위원을 그만두었다. 편집장도 그만두었다. 기사를 잘 쓰지 못했던 그때의 그 기자는 지금도 기자로 남아있고, 여전히 기사를 잘 쓰지는 못한다. 물론 그때보다는 훨씬 나아져서 그래도 기사 비스무리한 것처럼 읽히기는 한다.

오늘 갑자기 이렇게 편집 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아까 어느 연대단위에서 급하게 성명서를 함께 만들어달라고 초안을 공유문서로 보내왔던 일 때문이다. 그 문서를 딱 열었는데, 제목부터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총체적으로 엉망이었다. 나도 한때 성명서를 많이 썼었고, 최근에도 몸담고 있는 지역정당에서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앞뒤가 안 맞고 내용도 부실한 성명서는 본 적이 없었다. 이걸 초안이라고 공유한다고? 처음엔 제목도 수정 제안하고 앞부분 문장들을 고쳤다. 한 서너문장이 중언부언 같은 내용을 반복하길래, 싹 지우고 그 내용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래 본론으로 내려왔는데. 하! 이건 진짜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예 새로 써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이 공유문서라는 틀에서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글에 손대기 시작하면 실시간으로 자꾸 글이 바뀌는데, 내용이 계속 달라지니 새로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이래저래 좀 해보다가 포기하고 그냥 창을 닫았다. 내가 창을 닫는 순간에도 두세 사람이 실시간으로 글을 고치고 있었다. 이건 처음부터 초안이 너무 부실해서 공유문서로 수정할 수 없는 건이었다. 초안을 쓴 사람이 다시 제대로 쓰던가, 다른 사람이 초안을 다시 쓰던가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 연대단위의 다른 분과 상황을 공유해보니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도 나도 이 상황을 수습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들어가보니 제목은 내 제안대로 바뀌었고, 앞부분 내가 고친 것도 그대로였는데 뒷부분은 계속 실시간으로 고쳐지는 중이었다. 여전히 상황은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다시 포기하고 창을 닫았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글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가끔 머리 속에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동안 깜빡이는 빈 커서만 쳐다보고 있기도 한다. 언제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참 부족하구나. 나는 여전히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글도 이렇게 엉망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글을 고치나. 글 좀 봐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비문을 문장의 형태를 갖추도록 수정 제안하거나,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바꿔 제안하는 것은 가능하긴 한데, 딱 거기까지라고 스스로 한계를 그어준다. 글쓴이도 다 의도가 있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한 발 물러나곤 한다. 내 글이라면 처음부터 내가 다시 써도 상관없지만, 남의 글은 내가 그럴 수 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그 옛날 출판사 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 박사나 전문가가 쓴 비문과 어색한 번역 어투 투성이의 엉망인 원고를 하나도 안 고치고 오탈자만 좀 찾아낸 후에 그대로 출판할 것이다. 물론 교차 교정 단계에서 다른 편집자나 대표님이 바로 잡으면 나를 욕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저자한테 어이없는 소리 들을 일은 없고, 독자들이 이 저자는 이 정도로 글을 쓰는 구나 하고 정확하게 알테니. 이 저자는 이런 나쁜 버릇이 있구나. 이 저자는 이 단어와 저 표현을 너무 자주 쓰는구나. 이런 것들을 편집자인 나만 알면 너무 불공평하고 억울한 것 아닌가! 저 번역자는 사람 이름이나 지명도 똑바로 안 찾아봤구나. 저 번역가는 번역을 왜 이렇게 엉터리로 했을까. 이런 사실들을 독자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독자들이 비싼 책 값을 내고 책을 살 필요가 없겠지. 편집자라는 존재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출판사로 들어오는 초고가 모두 매끈하게 훌륭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런 경우는 무척 드물다. 사람마다 출판사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책임 편집을 맡은 책을 적어도 10번 이상 보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쳤다. 이 책을 사는 독자에게 내가 예전에 엉망인 책을 읽고 느꼈던 그런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다시 말하지만, 남의 글을 고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나는 사실 내글을 쓰거나 고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러니 이제 남의 글은 그만 고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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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26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집자의 지분이 이 정도 일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비문학권의 학자나 지식인들의 글이 워낙 수려한 경우가 많아서 똑똑한 사람은 글도 잘 쓰는 줄 알았더니...ㅎㅎ 글쓰기도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지는 분야였던 거군요.

감은빛 2025-03-05 20:07   좋아요 0 | URL
문학으로 가면 편집자의 역할이 좀 바뀝니다. 문학에서는 편집자가 막 글을 고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교양서 혹은 전문서 편집자였기 때문에 전문 지식은 가졌으나 글은 좀 부족한 저자를 도와 글을 고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가끔 잉크냄새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식도 많고 글도 잘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대체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바람돌이 2025-02-26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알고 있었지만 진짜 능력자세요. 남의 글 고치는거 얼마나 어려운데요. 저는 애들 자소서나 대회 제출용 글이나 봐주는데도 진짜 진땀을 빼는데 말이죠.
저는 책을 읽다보면 잘 된 책에서는 편집자를 안 찾게 되더라구요. 근데 책이 사실에 안 맞는 내용이나 오탈자가 많거나 문장이 이상하면 편집자 탓을 하게 되더라는.... 아 진짜 편집자는 이거 안봐주고 뭐했어 이러식으로요. 그런데 그러면 안될거 같아요. 당연하게 편집자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글이 엉망인 경우도 얼마나 많겠어요.
남의 글 그만 고치시고 감은빛님의 글을 쓰실 날을 기다립니다. 화이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