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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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평점 :
며칠 전 친한 선배네 돌잔치에 다녀왔다. 막내아들의 돌이었다. 위로 딸이 둘 있고 아들이 셋째다. 덩치 큰 선배가 한복을 입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돌잔치를 치르는 아빠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실제로 나이가 많긴 하다. 40대 초반이니까 아마 우리 아버지 세대였다면 벌써 큰 애가 대학을 갔을 수도 있는 시기다. 실제로 예전에 나를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셨던 형님은 40대 초반에 큰딸이 대학생이었다. 그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고 덕분에 그 형님은 40대 후반에 벌써 할아버지 소릴 들었다.
요즘 전반적으로 결혼과 출산의 시기가 너무 늦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일찍 결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늦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사회의 분위기가 일찍 결혼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이른바 ‘3포 세대’ 라는 말을 청년들이 많이 한다고 들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결혼과 출산은 뭐 개인의 선택에 따라 더 늦게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애마저 포기라니! 그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에 연애를 포기한다니! 게다가 연애를 포기하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니. 이 얼마나 서글픈 말인가.
게다가 대학과 대학원, 공무원 고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 및 취직 준비로 사회 진출 시기마저 점점 늦춰지고 있다. 최근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하려면 실제 나이에서 10살 정도 빼고 생각해야 적당하다고 했다. 확실히 요즘 서른 살 언저리의 후배들을 보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와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이 책에서 고미숙 선생은 [동의보감]을 인용하면서 “여성의 생체 주기는 7단위로 변화한다.”고 했다. 14세에 초경을 하고, 49세에 폐경이 된단다. 그리고 “남성은 8단위다.”라고 말하면서 16세부터 남자가 되고, 64세에 생식력이 그친단다. 그래서 여성은 14세, 남성은 16세부터 성인이라고 했다. ‘이팔청춘’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모두 이팔청춘에 혼례를 올렸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딱 그 나이 때 내가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만 갇혀서 어른들(부모와 교사들)이 바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무척 끔찍했다. 쓸데없는 죽은 지식을 외우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버리기보다는,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싶었고, 몸을 써서 일을 하고 싶었고, 맘껏 놀고 싶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빨리 진급하기 위해, 좀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집과 큰 차를 가지려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까? 이 끝없는 경쟁의 구조에서 한 발만 벗어나서 생각해본다면 이게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짓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십 대 후반이면 이미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분위기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관계없이 알아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더 이상의 헛된 교육과 쓸데없는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온 몸으로 삶에 부딪쳐나가면 그 뿐이다. 상처가 났다가 다시 아물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사는 것이 더 현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다 자란 청년이 아직도 덜 자란 어린이처럼 보호받고, 간섭받고, 스스로 인생을 결정하지 못하고, 서른 살이 넘어서야 사회 활동을 시작하고, 마흔이 다 되어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지금 현재의 모습은 참 비정상적이다. 이는 생태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낭비인 셈이다. 이렇게 이 사회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질서로 돌아가고 있지만, 대개는 그것을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몸이 다 자랐으면 성인으로 받아들여서 모든 결정권을 줘야 한다. 투표권도 주고, 직업도 갖게 하고, 결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이미 이 나이 때의 학생들은 이성교제도 하고, 알바도 뛰고 있고, 어른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줄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도 물론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경쟁과 입시만을 위한 방식이 아닌 정말로 살아가는 것, 즉 삶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이 책은 몸을 화두로 해서 내 삶과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우리가 몸에 대해 참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가 각 개인이 몸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가고 있다는 섬뜩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신문연재를 묶은 것이라 글 하나의 호흡이 짧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꺼내다 만 느낌이라 아쉽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곁가지가 좀 뻗었다가 돌아오고, 곧장 가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쉽다는 느낌이 남는다. 어쨌거나 고미숙이란 이름만으로 이미 그 내용이 보장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