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삶 그리고 사회

추운 날

 

"아 뚜" 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쌩! 아가는 금방 얼굴을 찡그리며 '아 뚜'를 연발한다. "우리 예쁜이가 추워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답한다. 비탈길을 내려간다. 아가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다시 한번 "아 뚜"하고 소리를 낸다. 아가의 소리에 대답하듯 나도 "아이 추워!"하고 과장이 섞인 말투로 따라한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 어린이 집에 도착할 때쯤되면 아가의 뺨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다. 희고 차가운 뺨에 살짝 입술을 대고 "호~" 하고 입김을 불어준다. 아가는 장난치는 줄 알고 까르르 웃는다.

 

"뚜" 아가가 좋아하는 노래는 '곰 세마리' 앞 부분은 발음이 불분명하게 따라하다가도 '아빠공(곰), 엄마공(곰), 애기공(곰)' 이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부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 '우쭈 우쭈 자란다(으쓱 으쓱 잘한다)' 여기도 잘 따라 부른다. 따뜻한 어린이집에 있다가 밖으로 데려나오면 아가는 금방 짜증부터 낸다. 녀석. 하루종일 떨어져 있던 아빠를 좀 웃으면서 반겨주면 안되겠니? 짜증이 난 아가를 달래기 위해 아가가 좋아하는 '곰 세마리'를 부르면서 큰 녀석을 데리러 간다. 왼팔에 아기를 안고, 오른손에는 아가의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날씨가 추우니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노래를 겨우 부르고 나면 녀석은 "뚜!" 하고 외친다. 또 한번 더 부르라는 얘기다. 옆을 스쳐지나가는 한 여학생이 웃는다. 큰 녀석이 있는 피아노학원까지 가려면 노래를 한 서너번은 더 불러야 한다.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는데 팔에 안긴 쪼그만 녀석은 계속 '뚜!'를 외친다. 금방 다시 안불러주면 "뚜우우우우!"하고 짜증을 낸다. 다시 노래를 부르면 금새 표정이 밝아지며 뭐라고 중얼중얼 따라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 '아빠공(곰), 엄마공(곰), 애기공(곰)'에 이르면 어느새 목소리가 커지고 발음이 분명해진다. 노래가 끝나면 역시 "뚜!"를 외친다. 나는 딴청을 부리듯 "추워요? 우리 얘쁜이가 춥지요?"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뚜!"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 아기의 "뚜"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춥다는 뜻이고, 하나는 또 하라는 뜻이다. 신기하다. '추워'와 '또'가 동음이의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몸 이야기

 

아이를 둘 키우면서 새삼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사람의 정상 체온은 얼마이고 열이 어느정도까지 올라가면 위험한 것인지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기가 누워있다가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고, 앉고, 걸음마를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빨은 어떤 것부터 나기 시작해서 몇 개월까지 나는지. 분유를 먹고 나면 왜 트림을 시켜야 하는지. 등등 평소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궁금해본 적도 없는 사람의 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 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다. 술에 쩔은 내 몸은 과연 어떤 상태일까? 아내는 가끔 나는 죽어서도 부패하지 않을꺼라고 놀리곤 한다. 알코올에 푹 담긴 내장들이 어떻게 썩을 수가 있겠냐고! 지금은 내 몸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지만, 한때는 나도 관심이 많았다. 역시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몸매보고 결혼했다'고 장담할만큼 예전에는 몸에 자신이 있었다. 물론 지금 말하는 건 단순히 보기 좋은 외모를 가꾸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약간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왜 나는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걸까? 답은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개라고 본다. 도시 생활과 임금 노동.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땅을 일구어 생명을 심고, 가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과 자연에 관심을 두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삶이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나서서 저녁까지(혹은 야근을 하게된다면 밤까지) 하루종일 일에 매달려 살아가게 만드는 현재의 임금 노동(자본주의)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한 먹거리보다는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정크푸드에 손이 먼저 가고, 허리와 목에 부담이 가는 자세로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으며, 눈이 뻑뻑해지도록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달달한 믹스커피에,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점심 식사에 익숙해지고, 저녁이되면 어김없이 고기와 소주를 뱃속에 채운다. 짧은 거리도 자동차로 움직이고,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길담서원에서 진행되는 인문학교실의 강좌 중에서 '몸'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필진 중에 이유명호, 전희식, 변혜정 같은 평소에 좋아하는 분들이 계셔서 더 관심이 간다. 서문을 읽어보다가 아래 문단에 완전 꽂혔다.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은 그동안 길, 일, 돈, 몸, 밥, 집에 대해 진행했고, 지금은 품에 대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땅, 불, 물, 똥, 힘, 꿈, 숨, 말, 눈, 앎, 삶 등등 수많은 주제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글자 인문학교실이 끝나면 사랑, 평화, 철학, 역사, 인간, 종교, 공부, 등 두 글자 주제. 세글자 주제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갑자기 청소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서 이 재밌는 주제들로 나누게 될 온갖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부럽다! 이십년만 늦게 태어날걸! 

 

나는 사람들이 좀 여유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일하다 말고 딴 생각도 좀 하고 일찍 퇴근해서 동료들과 혹은 가족들과 (정치나 티비 얘기 말고)다양한 삶의 영역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자신의 몸과 건강 그리고 자연에 대해 알아가면서 살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면 서로 함께 공부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당장 오늘부터 아이의 얘기를 좀 더 잘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수다쟁이 큰 녀석이 무슨 얘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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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몸과 삶 그리고 사회
    from 가보지 못한 길 2013-03-06 15:33 
    며칠 전 친한 선배네 돌잔치에 다녀왔다. 막내아들의 돌이었다. 위로 딸이 둘 있고 아들이 셋째다. 덩치 큰 선배가 한복을 입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돌잔치를 치르는 아빠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실제로 나이가 많긴 하다. 40대 초반이니까 아마 우리 아버지 세대였다면 벌써 큰 애가 대학을 갔을 수도 있는 시기다. 실제로 예전에 나를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셨던 형님은 40대 초반에 큰딸이 대학생이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