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오늘
북플의 지난 오늘 게시판은 가끔 북플에 접속할 때마다 가장 먼저 보는 곳이고, 이때 글이 적으면 다 읽는 편이고, 글이 좀 많으면 최근 글들과 가장 오래 전에 쓴 글을 중심으로 읽는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알라딘에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니라 대개 글이 적고, 아예 없는 날들도 제법 있다. 오히려 오늘처럼 글이 여러 개인 날이 드물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페이스북에도 잠시 들어갔었는데, 여기에도 과거 오늘 작성한 글들을 보여주는 메뉴가 있다. 아마 페이스북이 먼저였고, 그 뒤에 북플에도 이 기능이 나왔었다. 페이스북에 뭔가를 쓰지 않은 지는 벌써 5년도 넘었다. 가끔 접속해 지인들의 소식과 에너지 전문가들이 공유해주는 소식들을 알아보려고 남겨뒀을 뿐. 그런데 과거에도 아주 적극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짧은 소식들을 공유하긴 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13년 전 그러니까 2012년 오늘 나는 아이들과 애들 엄마를 처가에 데려다주고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책읽기 모임을 하러 갔었다. 그 시기에 내가 참여했던 책 모임은 주로 생태운동을 했던 구성원들이 매달 모였던 모임으로 제법 역사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제주로 내려가셨지만, 당시 성균관대학교 앞의 유명한 풀무질 책방 지기인 은종복 형님도 그 모임에 계셨고, 과거 초록정치연대 회원이었거나, 녹색연합 회원, 녹색평론 읽기 모임 분들이 중심이었다. 또 기억나는 중심 인물이 배다리에서 긴 시간 헌책방을 운영했던 분이셨다. 이날 모임 장소는 그 헌책방이었다. 그 장소는 내가 출판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던 곳이었고, 출판계에 들어와서는 거래처로서 더 의미가 컸던 곳이기도 했다. 이 당시는 녹색당 활동을 활발하게 하느라 인천 녹색당에도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그 분들과도 함께 어울렸던 날로 기억한다. 워낙 거리가 먼 곳이라 그날 책 모임을 마치고 길게 뒤풀이를 가졌고, 그곳에서 잠도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2월 말이라 제법 추웠는데, 헌책방 2층을 게스트하우스 처럼 운영할 예정이라며 우리가 일종의 시범 운영 고객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저런 독서모임을 많이 나갔었고, 꾸준히 나간 곳과 금방 그만둬버린 곳들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여기 독서모임이 가장 재미있고 좋았으며 그래서 가장 오래 열심히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당시 구성원들 중 몇몇 사람들의 얼굴과 말투가 기억난다. 12년 전이면 30대 후반이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거의 막내였다. 환경운동가의 경험과 책을 많이 읽었던 이력 덕분에 형님들, 언니들에게 과하게 애정을 받았던 것 같다.
이렇게 페이스북 과거 소식 하나로 긴 시간 추억에 잠기는 나를 보면 확실히 나는 늙었다. 앞을 보고 살아야 할텐데, 자꾸만 뒤를 보고 있으니. 물론 일을 중심으로 어떤 측면들에서는 분명히 앞을 보는 지점들이 있는데,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그저 아무생각없이 현재를 살 뿐, 그다지 앞 날에 대한 계획이 없다. 무계획도 계획이라는 말을 가끔 생각하곤 하는데, 그건 계획이 아니라 태도라고 봐야 하겠지.
튿어진 옷
지난 주말에 일정들이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저녁에 돌아와 옷을 벗는데, 두터운 겨울 솜잠바가 튿어져 있었다.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바늘질 일부가 튿어져 안에 하얀 솜이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렇게 옷이 튿어질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 칠팔년 전쯤에 사서 매년 겨울 잘 입었던 옷으로 안감이 부들부들해서 입었을때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옷이라 좋아하는 옷이기도 했다. 저렴하게 구매했는데, 훨씬 비싼 오리털 파카 같은 옷들보다 이 옷이 더 좋다고 느꼈던 옷이다. 작년 겨울에는 오른쪽 옆 주머니 안감이 터져서 속에 솜이 보이긴 했는데, 어차피 주머니 안감이라 밖에서는 안 보이기도 하고, 주머니에 손이나 물건을 넣고 빼는 동작만 좀 조심하면 문제가 없어서 꿰매지도 않고 그냥 입고 지냈었다. 이번에 팔 연결 부위가 튿어져, 뒤에서 사람들이 보면 흰 솜이 삐져나온 것이 보일 것 같아서 도저히 그냥은 입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 친한 지인이 재봉틀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나서 전화를 걸었다. 재봉틀은 작업실에 있는데, 본인은 지금 감기몸살에 심하게 걸려서 당분간 작업실을 못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재봉틀 보다는 손바느질로 꿰매는 것이 더 낫다고 나중에 본인이 꿰매주겠다고 당분간만 다른 옷을 입고 다니라고 했다. 앞으로도 매년 겨울을 이 옷으로 버틸 생각이었는데, 적어도 10년은 더 입을 생각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데. 옷장에 누군가 옷이 너무 커서 못 입는다고 준 오리털 잠바가 있고, 작년 겨울 아버지가 본인이 받았는데 흰 옷이라 못 입겠다고 주신 롱패딩이 있다. 둘 다 따뜻하기는 하지만, 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훨씬 가볍고 간편한 저 옷을 늘 입었던 것이다. 어쩔수 없이 옷을 수선할 때까지 둘 중 하나를 입어아겠지.
옷을 오래 입는 편이어서 낡은 옷들이 많다. 10년 넘은 옷들도 제법 있고, 20년 넘게 입고 있는 옷들도 있다. 나는 낡은 옷을 입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하긴 장발에 수염에 낡은 옷까지. 어디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하겠다. 그것도 흰머리와 흰 수염이라니. 아, 흰 머리에 흰 수염에 흰 롱패딩은 또 나름 괜찮은 조합이 될 수 있겠다. 롱패딩이 불편해서 안 입고 다녔는데, 또 흰 색이라 막 입기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당분간은 어쩔 수 없겠네. 잘 부탁한다. 롱패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