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 / 꾸리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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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가 직접 쓴 글을 번역한 책은 아니다. 올해 6월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갔을 때 지젝의 강연과 대담 등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지젝에 대한 입문서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추천을 받고 읽었다. 지젝의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왠지 그의 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잘 읽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을 떠올렸다. 지젝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고, ‘환경의 위기’, ‘지적재산권 문제’, ‘생명공학의 문제’ 등을 여러 번 지적할 때마다 계속 김종철 선생이 생각났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접하거나, 직접 강연을 통해 들은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도 대개는 비슷한 내용이었다. 일찍부터 “난파 직전의 배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진단에는 환경의 위기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문제가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지젝과 김종철 선생의 생각이 완벽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이해한 바로는 매우 비슷한 면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지젝은 주로 일상생활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면들은 김종철 선생도 종종 지적했던 부분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이 우리에게 작동하는 지점들을 짚어주곤 했다. 지젝이 ‘스타벅스’를 강조했다면, 김종철 선생은 ‘학교 교육’을 강조하곤 했다.

 

지젝이 임박한 파국에 맞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은 주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를 설명했지만 그 중에서도 ‘믿지 않지만, 마치 믿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간다. 예로 든 것이 ‘건물에 13층이 없는 것’이나 ‘산타클로스’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4층이 없거나, 13층이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특히 산타클로스에 대한 부분은 나도 평소에 참 우습다고 여겼던 점이라 특히 공감이 간다. 빨간 옷을 입고, 길고 흰 수염을 붙인 가짜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설정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산타라는 거짓 이미지를 강요할까? 동심을 지켜야한다는 말로 그런 우스운 연출을 정당화하는 현실이 한편의 거대한 코미디 같다. 어차피 아이들은 곧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하지만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맞춰 아이도 속아주는 것처럼 연극을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이며, 바로 어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싶다. 이해할 수도 없고 믿는 것도 아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또 행동하는 많은 일들이 바로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부분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빌어 설명한 철학적 명제이다. 약간 표현이 다르지만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나열해보자. 하나, 우리가 (무언가를)알고 있고,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둘, 우리가 모르지만, 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있다. 셋, 우리가 모르고, 그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마지막이 럼즈펠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그리고 지젝은 여기서 럼즈펠드가 누락시킨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 바로 네 번째 명제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책을 추천해준 이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지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앞으로 지젝의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그의 세계를 탐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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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2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저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읽고 있는데, 지젝 인터뷰를 실은 거랍니다. 쇼킹한 부분이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있어요. (나중에 페이퍼로 올릴 예정이에요.)

반 정도 읽은 책이 네 권인데, 이번 해에 다 끝내고 싶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시간은 빠르게 달려 가는 것만 같습니다. 계획 실천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하고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감은빛 2012-12-27 16:01   좋아요 0 | URL
쇼킹한 부분이 뭔지 궁금하네요.
방금 다녀왔는데 아직은 안 올리셨네요.
어서 올려주시와요! ^^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기록적인 폭설 때를 제외하면 눈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군대에서 평생 본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단 몇 시간 만에 치우면서, 정말 고향이 그리웠다. 그리고 철없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따위를 동경하곤 했던 시절을 후회했다. 눈이란 정말 보는 것만 좋을 뿐, 생활인들에겐 치가 떨리도록 싫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서울에 산지 이제 제법 되었건만, 해마다 겨울 추위는 적응되지 않는다. 고향에선 분명 추위에 강한 편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듣는 이들은 나이 때문이라고, 이제 너도 그런 때가 된 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갓 서울에 올라온 아직 젊었을 당시에도 난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다.

 

 

 

2010년 1월 첫 출근날(아마 4일이었던가?)의 폭설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집도 경사가 급한 언덕길 위쪽에 있었고, 일터도 역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게다가 둘 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 안에 있었다. 눈이 한번 내리면 큰길의 눈은 곧 치워지고 또 녹아 없어지지만, 그런 골목길은 금세 빙판길이 되어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얼음이 녹지 않는다. 연탄재를 뿌리고, 흙을 갖다 뿌려도 미끄러운 길을 걸어 오르거나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때 가파른 빙판길을 기어서 오르내리다가(심지어 기어 다녔음에도) 여러 차례 미끄러져 넘어졌다. 허리와 엉덩이에 멍이 들었고, 발목을 다쳐서 한동안 쩔뚝이며 걸어야 했다. 점심시간에 한의원에서 침 맞고, 저주파와 찜질 치료를 받고 나면 막상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쩔뚝쩔뚝 걸으며 김밥을 씹기도 했다. 

 

 

지금 우리 집은 당시보다는 조금 더 언덕 아래쪽으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누군가는 낭만적인 데이트를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눈 내리는 풍경이 멋있다고 감탄하고, 누군가는 술친구를 불러내겠지만, 나는 제일 먼저 걱정부터 하게 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빙판길에 넘어질까 봐 겁난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는 그 길이 두렵다.

 

 

 

어제 나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아내는 갑자기 약속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큰아이는 생협 소모임에 나가고 싶어 했다. 아내가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큰아이를 소모임 장소에 데려다 주면, 거기서 나는 작은아이를 맡아서 글쓰기 강의를 갈 생각이었다. 큰아이가 모임을 하는 동안 나는 작은아이와 강의를 듣다가 시간 맞춰 다시 큰아이를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 7시가 조금 넘어 아내와 만나면 되겠다고 예상했다. 그때까지 나는 일터에서 좀 더 일을 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 연락을 주겠다던 아내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나는 7시 반쯤 일터에서 출발했다. 이미 글쓰기 강의는 시작되었을 시간이다. 큰아이의 소모임 장소는 집과 글쓰기 강의가 있는 장소 사이에 거의 중간쯤 되는 위치다. 거기 도착해서 전화했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출발은 했으나, 버스도 안 오고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8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다. 집 앞 도로 상황이 어떨지는 뻔히 그려졌다. 평소에도 잘 안 오는 택시가 이런 날 거기까지 들어올 리는 없을 테고, 버스 역시 얼어붙은 도로 사정으로 늦을 게 뻔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8시 반이 넘어서야 버스에서 내렸다고 전화가 왔다.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 손을 잡은 아내가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아이를 넘겨받고 큰아이는 소모임 장소로 보냈다. 아내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글쓰기 강의는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마칠 것이다. 지금 가도 이미 늦었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큰아이의 소모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것이다. 나는 아직 저녁도 못 먹었기 때문에 근처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 배를 채웠다.

 

 

 

큰아이가 모임을 마치고 나와서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작은아이를 안은 팔이 무겁다. 녀석 그새 또 많이 자란 모양이다. 인도에 쌓였던 눈이 녹다가 얼어붙어서 아주 미끄러운 상태였다. 한쪽 팔에 아이를 안고, 다른 쪽에 아이 손을 붙잡고 조심조심 천천히 걸었다. 간신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마주 오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꽈당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아주 크게 찧었다. 옆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계속 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큰아이를 학교로 데려가는 골목길도 완전 빙판길이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으나, 아이도 나도 여러 번 미끄러져 균형을 잃었다. 거의 학교에 다 왔을 무렵 결국 아이가 미끄러지며 무릎을 찧었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이를 잡은 손을 끌어올려 넘어지지 않도록 했건만, 이미 아이가 무릎을 찧은 후였다. 우는 녀석을 간신히 달래어 학교로 들여보내고 나서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3배는 더 걸렸다. 저 골목길 얼음이 금방 녹을 일은 없을 테니, 내일부터는 훨씬 더 빨리 집에서 나서야겠다. 이게 다 눈 때문이다! 나는 눈이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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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2-0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첫 출근날 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말 상당했죠.

감은빛 2012-12-07 15:32   좋아요 0 | URL
그날 정말 대단했죠!
하필 그날 저는 파주로 외근을 꼭 나가야 할 상황이라 고생을 좀 했어요.
파주는 서울보다 더 많은 눈이 쌓였더라구요. ㅠ.ㅠ

한숨에 2012-12-07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고난의 행군이었군요..저도요..눈이 싫어요...눈이 싫다는 건 나이를 좀 먹은 거라고들 하던데...

감은빛 2012-12-07 15: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군대 있을때부터 눈을 싫어했어요.
보통 이 땅의 남성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싶은대요. ^^

oren 2012-12-0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첫 출근하던 날 폭설은 대단했죠. 그 당시 일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일산에 사는 제 친구는 주말을 맞아 근무지(영월, 동강시스타)에서 일산으로 올라왔다가, 새해 첫 출근하던 날 새벽 일찍 일산을 나섰는데, 얼마 못가 폭설을 만났고 별의별 '위험한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간신히 저녁 늦게 영월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지금 바그다드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의 눈'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폭설이 내리면 제게 떠오르는 영화가 '투모로우'인데,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 애미 로섬이 뉴욕의 도서관에 갇혀 맹추위에 떨면서도 '니체의 책'은 차마 불태울 수 없겠다는 '개념있는 대사'를 내놓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ㅎㅎ

감은빛 2012-12-07 15:40   좋아요 0 | URL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에 닿으셨군요!
정말 별의별 고비를 숱하게 넘기셨겠어요.
그때 고생한 일화들이 상당히 많죠.
전철 중앙선에서는 역과 역 사이가 상당히 멀잖아요.
하필 딱 중간쯤에서 전철 차량 이상으로 승객들을 전부 내려서,
다들 눈 쌓인 벌판을 헤치며 걸었다는 일화도 있더라구요.

저도 [투모루우]에서 말씀하신 그 장면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추워도 책을 태울 수는 없죠! 그럼요! ^^

blanca 2012-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참석할 수 있는 생협 소모임도 있군요! 고군분투하시는 감은빛님 정경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는 다행히도 아이 유치원이 바로 집 앞에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저대로 또 미끄러질려다 전신주 잡고 버티고 그랫습니다.^^; 다음에는 글쓰기 강의를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12-12-13 14:56   좋아요 0 | URL
방송댄스 소모임이라고 TV에 자주 나오는 댄스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소모임이예요.
생협에서 크고작은 행사가 있을때 공연을 하곤 했는데,
우리 큰아이는 초기멤버였고, 벌써 3차례나 공연을 했어요.
어린이가 4명, 어른들이 너댓명 정도 되는 듯 해요.

어젠 글쓰기 강의를 무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였어요.)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게리 콕스 지음, 지여울 옮김 / 황소걸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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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달쯤 전 일이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뒤이어 들어온 젊은 남자 둘이 내 옆 탁자에 앉았다. 둘이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데, 바로 옆이다 보니 듣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들렸다. 밥 먹기에 집중해보기도 하고, 딴생각을 열심히 해보기도 했는데, 그들의 대화는 자꾸만 내 공상을 비집고 들어왔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 같았다. 한쪽은 20대 중후반, 한쪽은 20대 초반 같았다. 나이 차가 별로 안나 보이는데, 어린 쪽이 다른 쪽을 굉장히 깍듯하게 대했다. 좀 더 나이 많은 쪽이 이런저런 경험담과 조언을 들려주는 듯했다.

 

 

 

그러다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 왔다.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가 공부보다는 음악을 선택하려 한다고 말했을 때, 선배로 보이는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후배가 이 어렵고, 배고픈 길을 선택한 것이 안타까운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확실한 각오를 하고 시작하길 바라는 것일까? 표현은 달랐지만, 가끔 후배 활동가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나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 네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길로 가라!" 그리고 내 경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생이 된 후, 선후배들의 요청에도 나는 학생회 활동을 중단했다. 운동권 집단 내부의 권력싸움, 패거리 문화 등이 지긋지긋했다. 그러자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늘 선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는데, 이제 혼자 있는 때가 많아졌다. 읽고 싶었던 책들도 찾아 읽고, 공부도 많이 해야지 결의를 다졌다.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어려운 철학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유독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만은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냥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당시에 내가 생각한 실존주의는 그런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강에 집어 던지려고 집어든 돌멩이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 것처럼, 자연의 모든 구성원은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거기에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인공물로 채워가는 행위가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경운동을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활동가가 되었다.

 

 

 

과연 나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을까? 한때 내게 상담을 요청하곤 했던 후배 활동가들은 과연 이런저런 갈등과 고민들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가족의 반대와 경제적인 어려움, 단체나 조직 내에서의 갈등,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개인이나 단체의 전망에 대한 생각들 등등 수많은 고민거리가 쉴 새 없이 던져졌다.

 

 

 

결국, 나는 직업활동가를 그만두고 직장인이 되는 선택을 했지만, 활동가의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활동했던 단체에 대해서는 후회와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활동가를 그만둔 것도 사실 결혼이나 육아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의 개인적인 사정이 아닌 단체 활동에서 전망을 찾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야기가 좀 많이 옆으로 새버렸는데, 저 위에서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라는 질문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을 무렵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실존주의 철학 안내서이자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계발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기존의 딱딱한 철학책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저자의 발랄하면서도 당돌한 어투는(이 책은 저자가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철학이라는 학문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쉽게 읽을 수 있다.

 

 

 

실존주의라는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어려운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기존 철학책들처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또 다른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의 예를 들어가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물론 아무리 쉬운 설명이라 해도, 그 설명을 제대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긴 하다.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실존주의에 대한 내 오랜 관심과 열정을 다시 한번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대학 후배가 서울로 찾아왔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우린 그닥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는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나 역시 몇 가지 어려운 상황과 고민으로 맘이 편치 않았다. 헤어질 때 후배 녀석이 말했다.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소. 힘내이소!" 애써 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녀석에게 나도 비슷한 말을 돌려줬다.

 

 

 

실존주의는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지독할 정도로 솔직한 철학이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이 말인 듯하다. 실존주의자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허무주의자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반허무주의자이기도 하다. 나 역시 실존주의자로서 어렵고 힘든 상황에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더 힘들어하고 또 괴로워하지만,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 힘든 시기에 좋은 책 한 권을 만난 것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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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8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8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8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8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2-11-2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궁금합니다. 과연 식사는 제대로 하셨을지요. 식사중이셨으니까요.

감은빛 2012-11-28 19:01   좋아요 0 | URL
아, 시간이 좀 지나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좀 불편하게 먹었던 것 같아요.

제 식사를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비로그인 2012-11-2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점점 느끼게 되는거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2-11-28 19:0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제법 이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2012-11-29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11-2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져요...
그 말을 했던 사람에게요. ^^

당연히 후회하고 반성하고 발전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은 모험이 없는 삶인거 같고.
실존주의.... 현재를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네 저도 실존주의자인지라.

감은빛 2012-11-29 12:43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후회라는 단어에 대한 체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결의를 갖고 시작해야 된다고 받아들였어요.
나중에 결국 후회할 날이 있을지라도 시작할 때만큼은,
그런 일은 없을거야 라는 각오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달여우님도 실존주의자였군요.
언제 한 잔 기울이면서 실존주의에 대해 논해볼까요? ^^

마태우스 2012-12-0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 얘기를 하시니 제 얘기가 하고 싶어지네요. 저는 기생충학을 택할 때 별다른 고민없이 선택을 했어요. 임상을 택한 친구들에 비하면 그리 넉넉한 삶을 살지 못할 거였지만, 그래도 기생충이 좋았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네요 벌써... 그간 한번도 후회를 안했다면 거짓말 같지만, 진짜로 전 후회를 안했지요. 친구들보다 금전적으론 넉넉치 못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그 넉넉치 못하단 것도 우리 사회 기준으로 보면 상위에 있을 것 같아서 후회를 안한 측면도 있지요. 음악과 비교하기엔 적절치 않았네요 그러고보니깐.

감은빛 2012-12-04 11:25   좋아요 0 | URL
네, 마태우스님께서는 정말 후회 안하셨을 것 같아요.
음악, 미술, 체육 이런 쪽은 이 나라에서 정말 먹고 살기 힘들죠.
글쟁이도 그 못지않게 배고픈 쪽이구요.
저는 그보다 더 배고픈 사회운동 쪽에 있었구요. -_-;;

그치만 그런 비교보다는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선택.
그 얘길 하고 싶었던 것이니
마태우스님의 말씀이 적절치 않은 것은 아니예요.
저는 마태우스님 이야기를 알게되어 좋네요! ^^

마태우스 2012-12-04 12:14   좋아요 0 | URL
직업활동가 정말 힘들죠. 일은 많고,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요즘같은 시대에 그 바쁨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다보면 중간에 회의도 들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꾸준히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거죠.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페크pek0501 2012-12-0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제부터인가 헛된 희망을 품지 않게 돼 버렸는데,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삶이란 그저 그런 시시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일상을 반복하다가 죽는 거죠.ㅋㅋ
그냥 인간이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
- 이 말이 꽂히는군요. 요즘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

저, 첫 방문이어요!!!!!!!!

페크pek0501 2012-12-04 16:59   좋아요 0 | URL
아니, 첫 방문이 아니라 첫 댓글이어요.ㅋ

감은빛 2012-12-05 13: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첫 댓글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억해두겠습니다! ^^

'삶의 의미'에 대해 어려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삶은 그냥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죠.
그것만 알게 되어도 큰 깨달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페크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분이신 듯 해요! ^^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손자병법에 나오는 '배수의 진'에 대해 읽었다. 그 후 '배수의 진'은 내 생활태도 중 하나로 굳어졌다. 예전 글(http://blog.aladin.co.kr/idolovepink/4433998)에서도 짧게 쓴 적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나는 중요한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시작하곤 했다. 특히 시험공부를 그렇게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늘 '배수의 진'을 들먹이며, 그래서 오히려 성적이 더 좋다고 떠벌리곤 했다. 뒤는 강이고, 앞과 좌우는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더는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낸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멋져 보였다. 그리고 평소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대학 때는 심지어 시험기간에조차 공부를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회 가느라 수업도 자주 빠졌으면서, 시험기간에는 또 술집이 한가롭고 조용해서 술 마시기 딱 좋다고 남들 도서관에 있을 때 나는 술집에 있었다. 그러면서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치는 거라고, 시험 치기 1시간 전에 딱 핵심내용만 훑어볼 거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일하면서도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때에도 미리 쓰지 않고, 늘 마감까지 미뤄뒀다가 막판에 집중해서 처리하곤 했다. 원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건 인쇄물로 남는 거라서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많고, 늘 보내놓고 나면 아쉬워하는 처지라서, 원고만큼은 '배수의 진' 전법을 쓰고 싶지 않은데, 달마다 마감일이 닥쳐서야 원고를 쓰기 시작하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번 굳어진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어제 원고 마감을 두 개나 해야 했다. 하나는 어제까지였고, 또 하나는 벌써 마감이 지난 원고였다. 둘 다 대략 주제와 소재를 정해두긴 했지만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그 전날 저녁에 고민을 많이 했다. 약속을 취소하고 글을 쓸 것인가. 약속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밤 새 글을 쓸 것인가. 그런데 결국 둘 다 이뤄지지 못했다. 약속을 갔다가 갑자기 다른 술자리로 이동했고, 거기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도저히 글을 쓸 상태가 아니어서 그냥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마음이 엄청 급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글을 써야 했다. 점심 먹은 후에 짬을 내어 하나를 완성하고, 퇴근 전에 시간을 내어 다른 하나를 완성했다. 두 글 모두 한 번 더 살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시간은 없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무척 힘들었다. 어쨌거나 해냈다는 성취감과 조금 더 잘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다음 달에는 꼭 미리 써놓고, 충분히 다시 살펴보고 보내야지 마음먹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

 

※ 주말엔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 하루종일 읽고 싶었던 소설책들 쌓아놓고 읽었으면 좋겠다!(그러나 집안 일들도 해야하고, 애들과도 놀아줘야하고, 나가야 할 일정도 있고......)

 

 

 

 

 요건 다락방님을 비롯한 몇몇 알라디너들의 글을 읽고 구매했는데,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과연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이것도 재밌다고 소문난 책이었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언제 읽을까?

 

 

 

 

 

 

 

 

흐 집에가서 책장을  살펴보면 읽고 싶어서 사모은, 그러나 아직 첫 장을 펼치지도 못한 소설들이 잔뜩 있을텐데, 겁이 나서 살펴볼 엄두가 안난다. 하나씩 천천히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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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11-2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배수'의 진 보다 더 독하게 정신 차려야 한다는 '백수'의 진이 있더군요. 제 주변에는 이제 지쳐서 배수의 진은 커녕 아무런 진세도 안 펼치는 구직자도 있지만요.

감은빛 2012-11-23 17:37   좋아요 0 | URL
'백수의 진'이라!
그거 정말 비장함이 느껴지는 단어군요! ^^
저는 가끔 백수가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되겠지요. -_-;;

다락방 2012-11-2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번 주말에는 작정하고 책을 좀 읽어야지 너무 안읽은 책들이 쌓여서 안되겠어요. 그런데 집에서 읽으면 전 자꾸 잠이 와요. 스르륵~

감은빛 2012-11-23 17:3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안 읽은 책이 정말정말 많답니다!
이젠 책 사놓고 한 두달 구석에 쳐박아 놓아도 죄책감도 별로 안듭니다. ㅠ.ㅠ

다락방 2012-11-23 17:3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저는 몇 년 된것도 많아요. ㅠㅠ
결국 못읽고 팔아먹은 책도 많답니다. ㅠㅠ

기억의집 2012-11-23 19: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요^^

감은빛 2012-11-26 13:2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기억의집님.
저도 당연히 몇 년 지난 책들도 많습니다!
안 읽은 책들이 자꾸만 쌓이니까요.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책들을 다시 펼치기가 어렵더라구요.
이젠 책장 정리가 두려워진답니다.

기억의집 2012-11-2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고 하시는 글들이 있으신가봐요. 감은빛님 서재엔 좋은 글이 많아 고민 그닥 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감은빛님~ 이상하게 애들이 크면 시간이 남아 더 읽을 줄 알았는데, 진짜 못 읽어요. 애들이 어려도 같이 있어줘야하지만 커서도 같이 있어주어야 해서 애들이랑 거실에 같이 앉아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저는 애들이 크면 지 방에서 안 나온다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애들이 성장할수록 밥 달란 말을 너무 자주 해서 전 거의 주방에서 밥 하다 시간 다 보내는 것 같아요. 흐흐.

감은빛 2012-11-26 13:27   좋아요 0 | URL
감사하게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 글을 받아주는 곳이 두 곳 있어서요.
감사한 마음으로 잘 써야지 하면서도
늘 마감때가 되면 급하게 쓴 형편없는 글을 보내게 되네요.

기억의집님, 애들과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시다니!
제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인데요!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혼자 골방에서 책읽고 글쓰고 싶은데,
그게 언제쯤이나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네요.

루쉰P 2012-11-2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배수의 진, 백수의 진 등 흥미진진한 전략이군여 ㅋ 저도 백수의 진을 치고 정관정요를 읽은 적이 있었지요 ㅋ 저도 감은빛님처럼 막판에 몰아치는 습관이 있어요 책은 무지하게 쌓여 있구여 ㅋ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뭔가 전우애를 느끼는 페이퍼 였습니다 ㅋ

감은빛 2012-11-26 13:30   좋아요 0 | URL
루쉰님의 독서는 정말 대단해요!
그래서 그렇게 긴 글이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거겠죠?

우리 교주님께서 전우애를 느끼셨다니,
열심히 성지순례를 했던 일개 평신도는 감격스럽나이다! ^^
 

최근 상태가 많이 안좋다.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속출하고 있는데,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리고 다양한 활동공간들에서도.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린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그런 적은 절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려운 일 하나를 풀어내는데에도 끙끙거려야 할 판에, 몇 가지 문제가 동시에 겹쳐서 오니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방법일까? 그래서 최근 정신 나간 놈처럼 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나름 잘난 놈이라고,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잘난 척 하면서 살아왔는데, 한순간 나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놈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어제 밤 아이들을 재우고, 설겆이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악몽일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면 잊혀질 그런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나는 예전처럼 목에 힘주고 잘난 척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설겆이를 마치고 잠들었다.

 

아침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딱딱한 목과 어깨 근육을 주무르면서 나비는 결코 장자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구나. 당연한 생각을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깨닫는다.

 

 

**********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책 정보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이 책 뒷부분에 있는 우리나라 사례들은 내가 쓴 글이다. 존경하는 선배님께 부탁받았기 때문에 잘 쓰려고 했지만, 자료도 부족했고, 시간도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그래도 지금 읽어보니, 좀 더 시간을 갖고, 더 자료를 찾고, 더 글을 다듬었다해도 이거보다 더 잘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 아마도 나의 역량이 이정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여러모로 나의 모자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맨 뒤에 포함된 내 글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값진 책이다. "말은 그만! 이제 나무를 심자!"라는 이 아이들의 직접행동은 말만 번지르르한 나 같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이들에게 권하기에도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지구를 구하는 길은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한 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고민과 토론과 논의 보다는 묵묵히 행하는 간단한 행위 하나가 답일 수도 있겠다 싶다.

 

 

 

 

 

 

 

 

 

 

 

 

 

 

 

 

※ 좀 전에 출판사로부터 실수로 내 이름이 빠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1쇄가 모두 판매되면 2쇄를 찍을 때 이름을 추가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음,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신 걸까?

이름이 빠진 건 별로 상관없는데, 책이 어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많이 알려지는만큼,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테니.

(2012-11-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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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1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또 여러 문제가 겹칠 때면 한 가지가 실마리가 보이면 나머지도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더군요(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가장 쉬운 문제부터 풀어라,는 수능문제 풀 때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내시고 문제들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은빛 2012-11-15 15:22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뭐가 가장 쉬운 문제인지 판단조차 어렵네요.
세상 돌아가는 문제, 이 사회의 문제점과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뭐가 가장 중요하고 또 뭐가 가장 쉬운 문제인지 잘 알 수 있을 듯한데,
정작 제게 닥쳐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판단이 되지 않네요.
그저 눈 앞에 닥친 문제들을 고민하고 속을 썩이기만 할 뿐이예요.

맥거핀님의 응원 덕분에 조금은 힘이 납니다!
힘 내보겠습니다! ^^

숲노래 2012-11-1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면 '나무심기'란 어른들이 만든 어떤 제도권과 같아요. 예부터 '나무를 심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언제나 씨앗을 받아 나무를 키웠지, '나무를 심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나무심기 행동을 한다 할 적에도 '나무를 심는 일'이 무엇인지를 슬기롭게 깨닫도록 돕는 책이기를 빌어요.

감은빛 2012-11-15 15:25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가치는 거기에 있는 듯 해요.
이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켜서 나무를 심지 않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말로만 떠들고, 싸우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 직접 행동하는 것.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루쉰P 2012-11-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은빛님 글이 책에 실렸군요. ^^ 왕가리 마타이라는 흑인 여성이 생각이 나네요. 아프리카에서 나무를 심으며 대 격투를 벌이던 여성이었는데 요근래에 자서전도 나온 듯 싶더라구요.
이 책에 감은빛님의 글이 실렸다면 안 살 수가 없죠. ㅋㅋ
저는 항상 여러 문제와 싸우고 있어요. '영원의 도읍'에서 주인공이 한 말인데요.
'항상 위기에 싸우고 있는 사람은 더 문제가 발생해도 담담하다.'란 그런 류의 말이었던 것 같아요. 인생은 고뇌나 문제가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도 제 인생관이었는 데 20살 넘어 사회를 나오면 바뀌었어요.
인생은 고뇌나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죠. 없는 게 이상하다고 ㅋ 인정하고 들어가니 좀 맘은 편하더라구요. 대신 그런 것들에 휩쓸리지 말자. 마음 먹었는 데 이런 10년 수양 도로아미타불 이라구. 집착어린 사랑에 빠져 완전 맛이 갔네요 -.-
요즘은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내 마음은 태평양 미사일 수백만 발이 떨어져도 다 받아들이는 태평양이라고 외치며 집을 나서고 있어요. 풉!
암튼 감은빛님의 성지 순례 덕에 리뷰 하나 올렸습니다. ㅎㅎㅎㅎ 역시나 순례객의 발걸음이 무서워요. ㅋ 와 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감은빛 2012-11-20 13:20   좋아요 0 | URL
루쉰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맹렬히 환영합니다! ^^

이 책 맨 끝에 조금 포함된 건 제가 쓰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 글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자료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 책에 어울리는 말투로 정보를 전달한 것 뿐이예요.

게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모자란 글이예요.
책에 제 이름도 안 나와있고 해서,
여기에 밝힐 생각이 없었는데, 책 소개를 하다보니 그냥 말하고 말았네요.

루쉰님 서평 기대됩니다.
지금은 여유가 없고, 이따가 꼭 찾아 읽을 게요! ^^

2012-11-21 0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