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
김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작가와 같은 연배의 남성 독자라면, 두루두루 공감은 못하더라도 감정 이입은 좀 될 법한 책인 거 같다.
역으로 말하면, 나는 감정 이입까지는 좀 그렇고, 뭐, 문학과 음악에 자칭 조예가 깊다는 어떤 아저씨의 개인 기록 노트를 훔쳐보았다는 느낌이다. ‘훔쳐보다’라는 표현은 여기서 썩 어울리지 않는다. 독자들 읽으라고 펴낸 책을 당당하게 본 것인데...무슨....하지만, 훔쳐본 느낌이 드는 까닭은.... 흡사 다른 이의 일기를 몰래 엿봤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받아서이다.

“좀 편벽된 나에게는 일없이 전화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단 한 명(‘소리의 황홀’의 윤광준)의 친구만을 만나면서 지내는 생활을 몇 년째 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갑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적잖이 섭했을 거 같다. 그렇게 단칼에 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꼭지꼭지마다 틈만 있으면 김갑수를 떠나간 옛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현재 의사 부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두었다는데,) 보통 그 옛날 죽고살자하던 과거지사 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후일담 형식으로 전해질 때는, 대개 “그땐 그랬지...”조로 덤덤하게 서술되던데, 김갑수 씨는 아직도 상처입은 사슴 모양새이다.
“베티는 죽었다. 그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한없이 캄캄한 베티. 그런데 정작 그녀는 귀국해서 아들 낳고 강남에서 잘 산다더라. 바보 같은 거지 같은 베티. 나 자신의 누추한 살아 있음이여.” ---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에고고...

그러나,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많이많이 울었다는 이 아저씨, 통속과 순수를 이제 양극단에 놓고 보지 않을 만큼의 나이를 먹은 사람의 이야기. 세월을 되돌이킬 수 없듯이 그렇게 마음이 낡아가는 쓸쓸함을 말하는 이 아저씨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마음에 착착 와닿는지....

“그렇다고 싸구려 인생론에 젖어들지는 말아야지. 어떤 삶을 지향할지, 어떤 자아와 스스로를 동일시할 것인지 쉽사리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말아야지. 결핍은 나의 힘!”

“고상과 우아를 견지하느라 애써 피하는 것이 신문, 텔레비전 저녁 약속 같은 것들이다. 끊임없이 알려 주는 신문, 사정없이 보여 주는 텔레비전, 한없이 불러내어 먹어대는 저녁 약속 같은 것에 휘둘리면 세월이야 잘도 가련만 허망함만이 남는다. 세상 돌아가는 걸 꼭 알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

맨 마지막에 ‘에필로그를 대신하여 클레식 음악 편지’라는 챕터가 있는데, 이 장이 그래도 제일 제목과도 맞고, 내용도 걸출하다. 그는 소나타 형식의 음악을 들을 때는 ‘주제의 제시부, 발전부(전개부) 따져 가면서 피곤하게 음악을 공부하며 들을 필요야 없겠지만, 작곡가나 연주가의 생애와 성향, 음악사적인 맥락 같은 인문적인 사항을 많이 읽고 친근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옳은 말씀인 것 같다. 물론 순서는 그 역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음악을 듣다보니, 자연 뮤지션에 관심이 가게 되고, 뮤지션의 생애라든가 음악 이야기를 찾아 읽게 되고, 그렇게 찾아 주워들은 지식 때문에 같은 곡인데도 배경을 몰랐을 때와는 또 달리 귀에 감겨 들리게 되는 것.

그의 인생에 여자들을 설명하는 챕터도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의 모든 여자는 정확히 두 종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일상의 여자. 물론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상파로 보인다고.... 그러면서 그는 영화 속의 여자들을 불러 모아 소개해 준다.
닥터지바고의 라라, 개선문의 조앙 마두, <겨울 나그네>의 여주인공 다혜, 베티블루 속 베티, 그렇게 많고 많은 속에서도 홀연 <조지아>속의 새디...를 말하는 부분에서 확 시선이 집중되었다. 욕망의 키에 미달하는 자신을 못 견디게 괴로워하는 한 자아의 몸부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조지아 동생 새디. 우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니에게 자신의 자아 정체감을 의탁해 놓은 미운 오리새끼.

나는 잠깐 착각했다. 김갑수는 새디라는 메타포를 통해 우리(김갑수거나 독자 나이거나)의 실체랄까 하는 것을 말하려고,  영화 <조지아>를 꺼냈다는... 이 책의 시작이든 중간이든 귀결이든 그 속엔 두루두루엔 ‘새디’로 통하는 길이 사방으로 있는 게 아닐까.

못 부르는 노래를 부르지만 않는다면 새디도 최소한 조롱은 면했을 것이다. 과연 새디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다른 일로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가령 착실한 직장인이 되었거나 얌전한 주부가 되었거나 그냥 부유한 언니집에 얹혀 잔일을 거들며 살았다면 새디는 불행을 모면할 수 있었을까.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짐작건대 새디는 어디서 무엇을 하건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자아 집중형 인물들의 공통점이 그것이다. 그들은 실패와 좌절 혹은 타인의 손가락질이라는 외형을 선택해 내면의 평온을 얻는 기이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겉은 불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내면에는 뜻밖의 충족감과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평온함이 있다. 좌절감, 열등감, 패배감의 외피 속으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정반대의 통로가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심리 세계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떤 깊숙한 자기 충족의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7-2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비교적 안쓰럽게 생각하는 여자들이군요. 하늘하늘한 쉬폰 소재의
여린 여자들..그러나 그런대로 잘 사는 여자들..남자들은 이런 여자들에게
관심이 가나봐요. 그렇다면 나도?..아서라. 생긴대로 살자꾸나....^^

비로그인 2005-07-2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리뷰가 정말 장난이 아닌데요. 뭐냐, 이거..절정을 맞은 듯 매우 단호해 보이구 강해진 듯한 이카루표 리이뷰우~
세상 속의 두 여자의 부류. 전 지금도 후자이고, 앞으로도 후자이고, 계속 후자처럼 살래요! 아, 글고 이 책, 쿠오레(로드무비님 서재)에서 봤어요.

2005-07-2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2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7-22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이안님의 페이퍼에서 <조지아>의 새디에 대한 부분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마지막 문단을 읽고보니 꼭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웃사이더라고도 할수 있을까요?

icaru 2005-07-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 님... ㅎㅎ.. 세상 모든 남자들의 선호도가 그렇지는 않겠지...라구 바랄 뿐인데... 타인의 취향을 가타부타 할 수도 없고 참...글쵸... 아서라...저두 생긴대로 갑니다~~

복돌 언니... 전 정말 님이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에고 띄워 주시기까지 하시고... 고마 어지럽소... !!

속삭이신 님 아!! 바로잡았습니다... 저는 또 이럴 때가 젤루 기쁩니다...
지적이 아니셨음... 저는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당 ^^

잉크냄새 님.... 아.. 저도 이안 님의 페이퍼 인상 깊게 보았었댔죠... 새디 역을 했던 제니퍼 제이슨 리를 예전에 아주 많이 좋아했었는데.... 글쎄....페이퍼를 읽어 보니, 이안 님도 그러셨더라구요.... 아 글고 그 영화, 기분 꿀꿀할 때는 피하세요... 자학용이니까요 ^^


로드무비 2005-07-2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남의 일기장을 훔쳐 읽는 듯 재밌었죠?
근사한 리뷰여요.^^

hanicare 2005-07-2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갑수씨도 이 리뷰를 보면 반가와하실 훌륭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볼지 안 볼지 모를 김갑수씨는 저기 밀어놓고 사실은 제가 좋은 리뷰보고 즐겁답니다. 바로 조 위의 로드무비여사서재에서 읽고는 장바구니에 넣었던 기억이 나요.후후...

2005-07-23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박과 마요네즈
나나난 키리코 지음, 문미영 옮김 / 하이북스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리뷰를 쓰기에 앞서... 알라딘에서만인 것 같지만 어쩌커나 많은 분들이 쓴 멋진 리뷰들이 수두룩한 판국에 별스럽지도 않은  리뷰  하나를  보태는 일이 적잖이 망설여진다. 하지만 음, 뭐...십인십색이라지 않더나.

배경도 없고 연고 없이 그렇게 조용히 맨땅에 헤딩하며 사는 미호와 세이.

미호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현재 남자 친구 세이. 과거만 먹고 산다고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헌데 음악을 만드는 일을 하고 또 좋아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돈이 되질 않는다고 어디서도 받아 주지 않는다. 같이 시작한 친구들은 돈이 되는 음악을 해서 그에게 뻐기는 소리나 한다. 금전적인 능력이 없는 연고로, 아아.... 나는 세이의 그 힘없이 처져 있는 어깨가 너무 슬퍼 보여 혼났다.

미호는 하필...
“넌 항상 사랑해 달라고만 해서, 옛날에 난 너랑 있어도 재밌지가 않았어.”
라고 말을 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비끄러매었었다. 이런 젠장... ! 바보 같은 미호, 왜 저런 따위를 좋아했니... !

“우리들의 이 흔해빠진 일상은 실은 아주 망가지기 쉬워서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기적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일상은 잘 돌아가고 있나 훅 뒤돌아봤다. 잘 돌아가고 말고가 어딨나.
뭐 대단한 인생 살았다고.... 그러나 죽은 모 시인의 말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게 꽤 기적처럼 여겨진다. 항상 어딘가에 나를 비끄러매어 놓기 위해 조바심쳐 오지 않았었나 싶다. 그리고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였지만, 내가 만들어놓은 좁은 행동 반경과 내 주변부로 돌아가는 세상이 크게 충돌해서 어느 것 하나가 피를 흘리고 죽어 없어지거나 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고....

지금 몇 자 적고 있는데,,,, 미호가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그림 컷과 베란다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는 옆모습 컷. 언뜻 호박과 마요네즈를 생각하면 떠올려지는 컷이 자꾸 눈앞에 삼삼히 떠오른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라겐 2005-07-2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이라서 구입할 수 없는 책이라 안타까웠는데...

파란여우 2005-07-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눈앞에 선해지는 리뷰입니다.
부서지기 쉬운 일상..알고보면 참 애틋한 거죠.

비로그인 2005-07-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치없어 보이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스스로 생각해도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정작 마음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이길 수 없는 내 마음..아, 그나저나 이카루님의 리뷰는 어째 더 반짝반짝해진 거 같아요. 더욱 강해진 내공, 짱이요!

비로그인 2005-07-2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쩌커나, 또 삼삼히 주겨요! 삼삼...삼삼...흐흐...@,.@ 여보야, 오늘 볼 살이 고저 삼삼하구만! 토까라, 토끼!=3=3=3

잉크냄새 2005-07-2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서지고 망가지기 쉬운 일상이라서....산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거군요....

hanicare 2005-07-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이에요. 우리는 잘 쓰기 위해 리뷰를 쓰는 게 아니라 자기 느낌을 표현하는 거니까요.그리고 그 리뷰에 주루룩 달린 리플을 캐먹는 재미는..이 세상에서 주파수 영역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무해한 소통일테니까요.

플레져 2005-07-2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서지고 망가진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humpty 2005-07-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다가 익숙하지 않은 만화컷이 등장해서 '이게 뭐지?'하면서 한참 들여다 본 장면들이 있었어요. 하릴없이 처진 채 앉아있는 다리 같아 보이는 그런, 영화 같은...
위에 분 말씀하신 마냥 이길 수 없는 내 마음, 아니란 거 번연히 알면서 움직이는 미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만 같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그러니 릴케에 의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해서, 먼저 나 스스로의 성숙한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안일주의에 빠져 어려운 것을 피하고 나의 '고유함'을 잃은 지 오래고, 남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기는커녕 여전히 옹졸한 마음으로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아가는 나는 어쩌면 사랑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는지 모른다.
-21쪽

간혹 이제 내 삶이 다하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내 생애 마지막 말, 즉 나의 유언이 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해 본다..... 말을 통한 자기 표현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의 유언은 무얼까.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본 적이 있다. 의식적으로 준비해 두었다 한 말인지 아니면 어쩌다가 마지막 말이 되었는지, 게다가 정말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는지, 여러 가지 의구심이 생기지만 그래도 통설로 알려진 바로 몇 개의 유명한 유언이 있다. 예컨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헤리엇 스토 부인은 자신을 돌봐주는 간호사들에게 "사랑합니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빨간 무공훈장을 쓴 스티븐 크레인은 자기 죽음의 순간을 마치 중계방송하듯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넘게 마련인 경계선에 도달했을 때,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다. 좀 졸리고, 그리고 모든 게 무관심해진다. 그냥 내가 지금 삶과 죽음 중 어느 세계에 있는가에 대한 몽롱한 의구심과 걱정, 그것뿐이다."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지금 들어가야 게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 말했고, 마찬가지로 19세기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임종시 이모가 "죽기 전에 하느님과 화해해라"라고 말하자 "내가 하느님과 언제 싸웠는데?" 하고 반문했다. 작가들의 유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은 괴테의 "좀더 빛을"이라는 말일 것이다.
-82~83쪽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
-85쪽

사전을 찾아 보면 '유머 감각'이란 '우습거나 재미있는 것을 감지하고 즐기고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유머 감각은 그보다 좀더 넓은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할 때 상황의 정곡을 찔러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대처한다는 것은 그의 날카로운 상황 판단력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근시안적 판단을 유보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좀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믿음에 관한 확신, 그리고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정직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22쪽

펄 벅은 한국의 고아를 포함, 국적이 다른 아홉 명의 고아들을 입양했지만, 그녀의 친자는 중증의 정신지체와 자폐증이 겹친 딸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어렵게 쓴 책’이라고 고백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장애 자녀를 낳아 길러 본 어머니로서의 체험을 마음으로 토로한 책이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행복감, 그러나 정신지체아로 일생 동안 자라지 않는 아이로 남게 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정말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할지 모릅니다.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내 딸아이가 지금 죽어 준다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의 기대와 실망, 끝없는 고통, 그러나 결국 그 딸에게서 배운 점을 담담하게 그러나 그녀의 고백대로 "마음속으로 피를 흘리며" 서술하고 있다.
"나는 그 누구에게든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딸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능만으로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음도 배웠습니다."


-129쪽

그러면서 얼룩빼기 말 홀스또메르의 대사를 생각했다.
"늙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라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늙고 병들고 불구자가 된 것이 내 허물은 아니잖나?"

-165쪽

따지고 보면 동화 속에서 '착한 일'이 보상 받는 길도 매우 '육체적'이다. 미운 오리새끼는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징그러운 두꺼비는 잘생긴 왕자님이 되고, 괴물같이 생긴 짐승은 멋진 왕이 되고, (...)
신체장애는 단지 의학적 케이스일 뿐, 악이든 선이든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다. 또한 인간 치유의 역할을 가진 문학이 한 집단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남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 장애이든, 인간 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만은 장애이든- 아무리 권력 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 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24~227쪽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맞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는 사람만이 절망이기도 하다.
-279쪽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05-07-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빨리 사야지

icaru 2005-07-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세요... 전 후배 꺼 빌려 읽었는데.. 저것 보세요...베껴놓느라구 손노동을 적잖이 했잖겠어요 ^^

잉크냄새 2005-07-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교수님의 체험이 녹아들어있는 부분을 발췌하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은 벌써 문학의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셨군요. 저도 이책 가지고 있는데 제가 보는 오솔길의 풍경은 어떨까 사뭇 기대됩니다. ^^

icaru 2005-07-1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리뷰로는 어떻게 써야 할지... 도통...
그래서... 밑줄 그었던 부분만 부랴부랴 옮겨 놨어요~
님 이 책 갖고 계시다고요~ 아하...좋은 책 갖고 계시네요 ^^

2005-07-18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1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잔잔해요. 어려운 책, 요즘 손에 잘 안 잡히는데 휴가철에 읽어야겠어요. 멋져요!

2005-07-1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7-1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잔잔해서 심심한 책이었는데 님은 좋으셨나봐요.
역쉬 우린 안맞는게여...그런거였으..흐흑..
아니, 저도 좋았지요 뭐. 심심한 거 빼고는..
그나저나 잉크님은 이 책 왜 읽지 않고 계십니까!!!!!

2005-07-19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벌써 주문했어요~ 죄송해요 ^^v

icaru 2005-07-1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 님... 소금이 필요하신 게지라~ 흐흐

2005-07-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벙어리 목격자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임경자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 작가의 추리 소설은 비오는 밤, 방 안에서 혼자 읽는 맛이 최고 아닐까.

포와로가 맡은 이번 살인 사건이 그의 다른 사건들과 조금 다른 점을 찾자면, (굳이 찾으려 들자면, ^^)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긴 하지만,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트릭으로 포와로와 대결 구도를 펼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와로가 범인의 기발한 트릭을 쫓으려 했다면 범인을 찾아내기 힘들었을 거고... 정황상 용의자들의 심리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야만 풀리는 사건인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커튼>이 그랬지만, 독자는 취향에 따라 기발한 트릭의 발견을 높이 사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살인자의 심리학’을 정교히 다룬 작품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같은 경우는 전자이다. 그래서... 음...


하지만... 이 책 덕분으로 비오는 밤을 꽤 짜릿하게 보낸 덕은 또한 인정해야겠지...

 

p.s.   ...제목이 영... 상투적인 게 내용과 핀트가 안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7-17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1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머리가 멍하도록 충격적인 반전을 좋아해요! 모두 범인처럼 생각되는데 결국 주변인물이었다, 라는!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추리소설이죠. 글쵸, 이카루님! 이카루님 리뷰를 읽으니까 넘 좋아요!

2005-07-1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이 읽어주시니까 넘 좋아요!

님들... 고맙습니다... 우웁...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에는 잠을 잘 못 잔다. 잠을 자도 깊이 청하지 못한다.

졸립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더라... 잊었다. 자야 하니까... 잠을 자두지 않으면 머리가 많이 무거워질테니까. 토닥토닥 힘들게 잠을 청하곤 한다.


10대 시절 나는 각종 귀신님들이 출몰하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리고 20대엔 무서운 영화들도 곧잘 찾아 보고는 했는데, 30대의 나는 이젠 일부러 무서운 영화를 찾아 보는 수고를 행하지 않는다. 굳이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아도 세상사는 겁나는 게 많고, 더 이상 무서운 건 신선하지가 않다. 라고 하면 과장일까.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영화도 요즘엔 보기가 힘들다. 솜에다가 물을 붓는 격이어서 나는 그만 축 늘어지고 말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즈음 난 볼 영화가, 나를 당기는 영화가 없는거다. 그래서 오늘 퇴근길에 대여점에서 빌려온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앞에 두고 나는 조금은 겁을 집어먹고 있다.


<인간 실격>을 읽었다.



“뭐가 갖고 싶지? 하고 누가 물으면 저는 그 순간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져버리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를 즐겁게 해줄 것 따위는 없어. 그런 생각이 꿈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이 준 것은 아무리 제 취향에 맞지 않아도 거절도 못했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틀림없이 편파적일 게 뻔해. 필경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일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봐도 흠칫할 정도로 음산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슴 속에 꼭꼭 눌러서 감추고 감추었던 내 정체다. 겉으로는 명랑하게 웃으며 남들을 웃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음산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고 혼자 인정했지만 그 그림은 다케이치 외에는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제 익살 밑바닥에 있는 음산함을 간파당하여 하루아침에 경계당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또 어쩌면 이것이 내 정체인 줄 모르고 또 다른 취향의 익살로 간주된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자전적이라고 보여지는 주인공인지라, 소설의 마지막을 부분을 덮으면서 뒤적뒤적 디자이 오사무 라는 사람의 생애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본다.

“자살...”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자살이라, 어떤 인생이었길래.... 하고...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죽음을 기도하지는 않는다. 죽고 싶을 때마다 실천하려 들었다면,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보다 더 묘묘한 생물이 되었을거다.


죽음과 그렇게 번번히 조우하려 했던 디자이였다면, 그는 퍽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게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거부의 집안에 태어나 온갖 영화를 다 누렸을 법하다. 비관적인 세계관이란 가난에서 오는 비참함과 굴욕 같은 것에서 원인이 되는 경우보다는 반대 급부의 경우가 더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도련님 온집안의 귀염둥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예민한 자아로 인하여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


자신을 인간 세상에 적응할 줄 모르는 생활 무능력자라고 인식했던 그였던 만큼, 가족에게 의지를 했고, 가족의 기대와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했으나.... 주위 사람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회피책으로서의 자살로 번역자 김춘미는 해석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좀 더 가시화된 가진 자로서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그의 자살 시도들에 원인 제공을 했을 터이지만....


이 소설은 일본의 패망 뒤 일본 사회에 만연했던 허무주의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불현듯 천성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공포를 느끼곤 하는 우리들의 휑한 가슴에도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 후비는 작품인 것 같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7-17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7-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살을 무려 일곱 번이나 시도했던 사람인데 아직 살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자살하고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마지막 일곱 번째 시도 이후 제게서 완전히 지워 버렸습니다. 스스로 죽고 싶은 만큼 내 속엔 삶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여러 이유로 자살을 하겠지만-어느 철학자는 생존의 욕구가 가장 강한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공감합니다.
정도는 달라도 삶에 무기력해지는 것도 일종의 자살이 아닐까요. 이카루님은 현명하신 겁니다. 몸과 영혼이 스스로 감당 못할 만큼 처질 땐, 슬픈 영화나 음악은 듣지 마세요. 물론 가끔은 저는 한번 정도는 일부러 아주 아주 슬픈 영화나 음악, 또는 책에 저를 내버려 두곤 하지요. 실컷 울기 위서 말예요. 단, 실컷 운 다음엔 씻은 듯이 잊을 것을 단서로 하고요. 그럴 자신 없으면 그냥 그냥 님처럼 슬프거나, 아프거나, 무섭거나, 괴로운 것은 살살 피해 다녀요.
이카루님이 숙면을 못 취하신다니 밤마다 편히 잠드시길 기도할 게요...

2005-07-1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들...말씀 고맙고요오...
진주 님... 언제나 님의 경험을 통해 해 주시는 말들은 깊이 새기게 되네요...예...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고 할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숙면을 취하는 나날이 오겠지 하구 있어요 ^^

잉크냄새 2005-07-18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말에 이 소설 리뷰를 쓴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 요조에 대하여 엄청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님의 글을 찬찬히 읽으니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일년의 시간이 또 사고를 좀 변화시키는 모양입니다. 순진한 무구심이 결코 죄의 원천이 되는 일은 없어야할것 같네요.

icaru 2005-07-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님의 비판적인 입장에 전 더...공감을 합니다... 요조의 약한 부분...음산한 마음...이 독자인 저도 감정이입 되는 부분이 적잖이 있긴 했지만... 앗...그리고 인간실격 뒤에 나오는 단편도 있었잖아요...
님은 그거 읽으셨어요~ 뭐였더라 제목이 두 글자였는데... 아무튼 저는 그것도 건너뛰었네요 ....

잉크냄새 2005-07-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양>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유다의 심리에 관한 소설...좀 특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네요.

2005-07-30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