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요즘에는 잠을 잘 못 잔다. 잠을 자도 깊이 청하지 못한다.
졸립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더라... 잊었다. 자야 하니까... 잠을 자두지 않으면 머리가 많이 무거워질테니까. 토닥토닥 힘들게 잠을 청하곤 한다.
10대 시절 나는 각종 귀신님들이 출몰하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리고 20대엔 무서운 영화들도 곧잘 찾아 보고는 했는데, 30대의 나는 이젠 일부러 무서운 영화를 찾아 보는 수고를 행하지 않는다. 굳이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아도 세상사는 겁나는 게 많고, 더 이상 무서운 건 신선하지가 않다. 라고 하면 과장일까.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영화도 요즘엔 보기가 힘들다. 솜에다가 물을 붓는 격이어서 나는 그만 축 늘어지고 말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즈음 난 볼 영화가, 나를 당기는 영화가 없는거다. 그래서 오늘 퇴근길에 대여점에서 빌려온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앞에 두고 나는 조금은 겁을 집어먹고 있다.
<인간 실격>을 읽었다.
“뭐가 갖고 싶지? 하고 누가 물으면 저는 그 순간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져버리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를 즐겁게 해줄 것 따위는 없어. 그런 생각이 꿈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이 준 것은 아무리 제 취향에 맞지 않아도 거절도 못했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틀림없이 편파적일 게 뻔해. 필경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일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봐도 흠칫할 정도로 음산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슴 속에 꼭꼭 눌러서 감추고 감추었던 내 정체다. 겉으로는 명랑하게 웃으며 남들을 웃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음산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고 혼자 인정했지만 그 그림은 다케이치 외에는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제 익살 밑바닥에 있는 음산함을 간파당하여 하루아침에 경계당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또 어쩌면 이것이 내 정체인 줄 모르고 또 다른 취향의 익살로 간주된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자전적이라고 보여지는 주인공인지라, 소설의 마지막을 부분을 덮으면서 뒤적뒤적 디자이 오사무 라는 사람의 생애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본다.
“자살...”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자살이라, 어떤 인생이었길래.... 하고...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죽음을 기도하지는 않는다. 죽고 싶을 때마다 실천하려 들었다면,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보다 더 묘묘한 생물이 되었을거다.
죽음과 그렇게 번번히 조우하려 했던 디자이였다면, 그는 퍽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게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거부의 집안에 태어나 온갖 영화를 다 누렸을 법하다. 비관적인 세계관이란 가난에서 오는 비참함과 굴욕 같은 것에서 원인이 되는 경우보다는 반대 급부의 경우가 더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도련님 온집안의 귀염둥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예민한 자아로 인하여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
자신을 인간 세상에 적응할 줄 모르는 생활 무능력자라고 인식했던 그였던 만큼, 가족에게 의지를 했고, 가족의 기대와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했으나.... 주위 사람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회피책으로서의 자살로 번역자 김춘미는 해석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좀 더 가시화된 가진 자로서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그의 자살 시도들에 원인 제공을 했을 터이지만....
이 소설은 일본의 패망 뒤 일본 사회에 만연했던 허무주의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불현듯 천성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공포를 느끼곤 하는 우리들의 휑한 가슴에도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 후비는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