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머릿속 지도의 거리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도 홀로 초연히 그 남자네 집은 그냥 조선 기와집으로 남아 있다. 그 남자. 그 남자가 나에게 해 준 최고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구슬 같다고 했더랬다. 애인보다는 막내 여동생에게나 어울린 찬사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같은 눈물 “구슬 같은 여자”.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주 먼 외가 친척 벌 되는 그 남자. 누나이고, 먼 친척이다보니, 양쪽 집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어울림을 사랑이라 생각지 않았던. 그래서 그들의 로맨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온몸에 솜털이 곤두설 듯 아릿함을 불러일으키는 연애담. 한 때 그들의 사랑은 ‘구슬’과 ‘솜털’이라 명명해얄까보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자전적 3부작의 3부 같은 느낌이다.

'그 많던 싱아는....'이 박완서의 자전소설 1부라면,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는 또 2부라면, 이 책은 2부에 이어 3부, 그러니까 미군 부대에 다니던 미스 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의 시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굽이굽이의 내력을 쓴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이 앞의 두 작품과 이 작품 셋을 시리즈라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1, 2부에 비하면 한 개인의 가족사가 동시대의 가족사이던 실낱 같던 서사의 힘은 덜하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무섭다지만, 어찌 그 험난하게 살아왔던 그 시간들을 쉬이 잊을 수 있겠는가 싶게 1, 2부는 대서사시였다. 하지만 3부(내 맘대로 3부랜다.) 그 남자네 집은 전작에 비해 시대를 읽는 힘은 딸리는 것이다. 하지만 또 앞선 작품보다는 애틋하고 서정적이어서 읽는 맛이 애간장 녹이게 좋았던 것도 인정해야지 싶다.


앗, 이 작품에 시대를 말하는 키워드가 전작들에 비해 덜하다고 했지만, 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실토해야겠다. 그녀가 말하는 개인사 속에 슬몃슬몃 끼어드는 시대의 아픈 부산물. 앳되고 수줍고 소박한 티가 물씬하던 여고생 춘희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도 보게 된다. 홀어머니에 동생이 줄줄이 딸린 남편의 이웃집 춘희를 자기의 후임으로 미군부대에 취업시켜 주었지만 그녀는 어느덧 양공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살러 가고 동생들을 모두 미국으로 이민시켜 버리는 춘희. 그리고 베트남 전쟁 후에 그곳 도로 건설 인부로 파견을 나갔다가 고엽제 피해를 본 사촌 조카 광수.


이 작품의 끝부분에 춘희가 자기네 형제 자매의 이민사를 쫘악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슬퍼졌다. 미국 땅에서도 떵떵거리며 일류 학교 들어가 잘 산다는 요점이었지만, 내막에는 전쟁과 가난이 인류 최대의 악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어설프게... 그리고 아이들 조기 유학으로 따라온 엄마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명품 사족 못쓰고 부동산 투기 과외 공부 이야기 등등.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천박함을 치떨리게 묘사하는 부분이 여기에도 있다. 저것이 실상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세상이 속물의 키워드로 읽히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뒷맛이 이리도 씁쓸한 것은 우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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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2-1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설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님은 참 부지런하시군요.
시댁 가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다니......
박완서 선생의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icaru 2005-02-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속삭이신 님... 말씀대로 바로잡았습니다!!
바른 말 정확한 말!!! 경롓!!

로드무비 님.. 박완서 님은 선생이라는 칭호가 무람없네요~ 진짜...
님도... 설 잘 쇠셨어요?
저야모...여전히 때마다 시댁에선 어설프게..동분서주 한다지요...^^

플레져 2005-02-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에 글 한 줄 읽지 못했어요, 저는요...ㅠㅠ
혼자 있을 때만 책 읽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할텐데요. 부럽슴다!!!
저두 이 책 읽어보고파요. 어찌어찌 생길 것 같아서..추천만 살포시 눌러요 ^^;;

마냐 2005-02-1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추천 살포시.....참으로.....다른 리뷰들. 제 눈에 보이는 것과 님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들이 참으로 다릅니다. 같은 책, 다르게 읽기...참으로 흥미롭슴다..
암튼, 명절 포함해 일주일째...무쟈게 재미난 책 한권을 끙끙대며 보고 있으니...독서않고 사는 계절임다...ㅋㅋ

2005-02-11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13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LLING & RAMPAL -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
클로드 볼링 (Claude Bolling) 외 연주 / 굿인터내셔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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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다. 귀가 있다면 누구나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바이런


이 세상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음악의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클로드 볼링의 피아노와 장 피에르 랑팔의 플룻 선율이 만난 이 재즈 트리오 또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들만의 색깔과 스타일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마치 잔잔한 물이 흘러가는 질서를 파악하고 그것의 시각적인 모양새를 청각적인 음악으로 들려 주는 듯한.


'센티멘탈'은 귀에 감겨드는 느낌이 이루말할 수 없이 감미롭다. 밝고도 사뭇 관조적인 이 곡이 왜 '센티멘탈'이라 붙여졌는지~ 진짜, 알쏭달쏭하다.

앨범 자켓을 읽어보니, 주로 끌로드 볼링 위주의 헌사를 남겼다. 그의 출생, 재즈피아노의 신동으로 알려짐, 각종 콩클의 수상 이력. 등

나 같은 경우 장 피에르 랑팔의 플룻도 위상이 크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앨범 제목마저도 '클로드 볼링의...' 로 되어 있어, 앨범을 검색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오륙년전 센티멘탈이라는 제목 하나만 가지고, 이 음반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장 피에르 랑팔’과 ‘센티멘탈’이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였다. 혹, 센티멘탈이라는 제목을 잘못 알고 있는건가 싶어, 랑팔의 플룻앨범을 여러 샀었는데 센티멘탈은 없고, 죄다 바하의 곡을 플룻으로 연주한 것들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생각지도 않은데서 바하의 플룻곡을 만날 수 있어 나름으론 좋았다. 그리고 곧 센티멘탈은 잊었다. 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날 음악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보자 하니, 이 앨범엔 센티멘탈만 좋은 게 아니다. 귀에 익은 음악들이 제법이다.


지금은 전혀 그게 아니라 그립기만한, 음...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귀에 꽂힌 음악이 있으면 동네의 음반 가게를 샅샅이 뒤지고 아니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안되면 기차도 타고 멀리 원하던 것을 찾아 음반 순례를 다니던 호시절이.

책을 일삼아 읽는 취미가 생긴 건 사실 최근 일이년 사이의 일이고, 오랜 시절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음반 찾아 삼만리였던 거다. 변변한 로션 하나 사바르는 것도 벌벌 떨던(샘플로 주는 게 이렇게 숱한데 멀쩡한 큰 통에 들은 걸 왜 사냐구...,) 나였지만, 음반을 살 때는 살짝 맛이 갔었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데 돈에 개념이 있었을라고. 음. 그 당시에는 강남과 종각 쪽에 타워레코드가 2~3층 이상으로 매장을 꾸리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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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개월만에 음반리뷰를 올리시는군요. 플룻은 단독으로 연주하는 곡이 많지 않은가봐요. 대부분 협주곡 형식이더만요. 게다 바흐의 소나타가 보편적으로 쓰이더라구요. 매우 서정적이고 부드럽고 감미롭고..흘..아릅답죠. 그 분야에선 상관 없지만 센티멘탈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센티멘탈 워크', 라고 또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도 생각나요. 근데 찾다찾다 음반이 없으면 꽤 허탈하지 않았어요? 복순 아짐두 발품 많이 팔으셨구나..전 좀 편집증 같은 증세가 있긴 한데 흥분만 잘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또 구하고 싶은 음반을 잊어버리게 돼서..으흐흐..저도 마니아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잘 안 돼요!복순 아짐, 우리 마니아 해요! 아쒸..공공근로로 얼마나 번다고 마니아라니..정신 차리자..

icaru 2005-02-0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개월만이라...그러네요...
님은 마니아 맞아요...꾸준히 신보를 접하시잖나요~ 전...예전 것만 듣네요...귀에 익은 것만요..

2005-02-01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네르바 2005-02-0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님은 음반 찾아 삼만리 했군요. 저도 대학교 때 잠깐 그랬어요. 그 때 음반들이 지금은 창고 속에 그냥 방치되어 있네요. 요즘은 음악을 듣기보다는(아니, 귀에 익은 음악들은 여전히 좋아하지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다. 귀가 있다면 누구나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바이런의 이 글을 읽으니 내가 참 메마르게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드네요. 모든 사물에서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전 소음처럼 들리고 있으니... 그런데 자연의 소리는 예외인 듯 싶네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새소리 등은 여전히 음악처럼 들리니까요^^

잉크냄새 2005-02-0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런의 글에 눈이 확 꽂히네요. 음...전 음반에 대한 그런 애정을 가져보지 못하고 산것 같네요. 음악, 있으면 듣고 없으면 안듣는 스타일이라서....근데, 막걸리집의 가야금 소리에는 혹~ 하는 필을 받곤 합니다.^^

icaru 2005-02-0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 플룻까지...별거별거 다 배우셨었네요~ 5개월 정도 배우면 무슨 곡을 연주할 수 있는가요? 히야~

미네르바 님 ^^ 님이 그 말씀하시니...파도소리 듣고 파요~ 해변에서 갯돌을 마지막으로 주워본 게 언제였든가...아흐.. 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음악은 스피커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한창 나이에 너무 이어폰으로 크게 음악을 들어서... 지금 가는귀가 먹은듯해요... ㅠ.ㅜ

잉크냄새님.... 막걸리집의 가야금 소리라!! 이 국면에서 님이 자주 찾으시는 주가가...두둥....

내가없는 이 안 2005-02-02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끌로드 볼링의 자켓은 몇 개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네요. 내 돈 내고 사다가 들은 건 기억해도 동생 것을 빌려다 들은 건 죽어도 기억을 못하는. ^^ 그런데 사람 귀가 참 이상해요. 클래식만 귀에 꽂다 보면 가끔 차 안에서 대중가요나 뽕짝 메들리를 틀어놓을 때 귀에 거칠거칠하게 들리데요. 그것도 사실 이것저것 듣지 못하는 귀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겠지만...

2005-02-02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02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02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2-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 음...제말이요~
요즘...뭔바람이 불었는가...예전에 듣던 음반들을 듣고 있는데...이것저것 듣다가...새삼스레 트레비스라는 그룹이 들려 주는 음악에...절절히 빠져 지낸답니다... 보컬의 '꺾는 음'이 이리도 애잔하게 들리다니... 제가 나이를 먹는건가요...귀만 말랑말랑해진건가요, ,,,

2005-02-05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 - 창비장편소설
박정요 지음 / 창비 / 1998년 1월
평점 :
품절


 

나도 후배가 이 소설을 권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작가도. 작품도. 게다가 구입한 책이 최근 것인데도 아직 1998년이 초판인 상태이다. 제목에선 얼핏 ‘어른들은 몰라요’ 같은 청소년물 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지는데...  읽어보기 전까지는 전말을 어찌 알았겠는가...


작품 속 면면히 흐르는 해학과 입심좋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나붓나붓한 전라도 사투리는 낯설지만 말맛이 오지게 좋다. 그리고 땅끝마을에 대한 유래. 배추 한포기 속 배추벌레가 징그러운 벌레 마법에서 풀려나 초록날개를 달고 훨훨 나비로 하늘을 날 듯이, 넓은 새벌이 원래는 바다였는데 꼬막이 되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면서 바닷물을 물고가 바다가 뻘이 되어버려 생겨진 들판이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을이 생겨 났다는 이야기에 신기해하며 밤잠을 설치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농림학교를 다닌데다 다소 낭만적인 데가 있던 아버지는 팔 남매가 태어난 때마다 기념으로 나무 한그루씩을 심었다는데, 이것이 바로 그 말로만 듣던 내내무 전통일 것이다. 첫딸은 벽오동 나무를, 두 번째 아들은 은행나무를 둘째딸이 태어났을 때는 살구나무를 셋째는 무화과나무를....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네의 풍속과 풍부한 토속어의 한없는 세례를 받게 되었다. 


전라도가 고향인 친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고장 친구들은 초등 학교에서부터 대학 강의에 이르기까지 동학 농민 혁명과 그 정신을 기려 배운다고 했었다.


탐관오리들의 포악한 정치에 견디다 못해 힘없는 백성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서 관군에게 대항을 했다던, 녹두장군 동학군 이야기. 전쟁이 끝나고 난리가 평정되다보니 관군한테 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다 역적이라. 그들과 그 후손들은 저기 땅끝 해남으로 밀려와 자리잡았던 것이었고,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거슬러 올라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사는 것이 힘들 때마다 저 새벌을 봐라. 잘 보믄 끙끙 돌을 져나르고 둠벙을 파고 씨를 뿌리는 거인들이 보일 것이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대역죄인이란 누명까지 모든 것을 옛일로 돌려버린 어른들이시다. 느그도 그렇게 살어야 한다.”


그렇게 모여 살던 사람들이 6. 25 난리를 만나고, 제 편인지 남의 편인지 구분하기 위해 쏘아대는 총구에 에먼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 난리 중, 제가 살기 위해 같은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을 바닷물 속으로 밀어버려야 했던 사람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세상을 향해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의좋은 형제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몰래 가져다 나르던 아버지와 노인(바닷속에 밀어 죽은 친구들의 아버지)의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결국 아버지의 위선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드러나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인간의 도리를 다했노라 주장했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 뿐. 마음 속에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갚아왔던 것이다. 백일하에 드러난 아버지의 위선은 우리가 가난뱅이가 되고 아버지가 간첩 혐의를 받아 뼈가 녹는 고초를 겪고 이웃의 경원을 당하고 언니들의 앞길이 망가지고 ‘나’와 제남이가 외톨이로 소외된 그 어느 것보다 나쁜 일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아버지를 오래 전에 용서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번 굴절된 삶의 궤적은 한계 밖의 것이 되어버렸고, 아버지는 자신의 그런 생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다 못해 술의 힘을 빌린다거나 변명 한마디조차 없이,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용서할 수 없었고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묶었던 올가미와 궤적뿐 아니라 온갖 체제와 규범과 가치, 세상 자체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하셨던 아버지가 맥아리 없이 드러누우시고 쓰다달다 말한마디 없으셨다.


검은눈에 나돌기를 좋아하던 ‘나’는 흉폭한 몇몇 일들을 겪으면서, 인간이란 도대체 구원이 없는 존재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황당하고 조잡한 이념들의 올가미에 꿰어 허우적이다 결국은 그렇게 허무한 것으로 사라져야 한다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슬픈 짐승인 것 같은.


“산다는 건 그렇게 부질없이 길기만 한 지루한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핍박과 수고뿐이던 조상들의 삶도 아버지의 좌절도 잘못 꾼 나쁜 꿈인지 모르는 것이다. 노인이 왜 민들레가 보여준 그 텅 빈 것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했는지, 종일댁의 죽음도 보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보아버렸다. 미래라고 해 봐야 양상을 달리한 그것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아주 우울한 소녀였다.”


마무리를 우울하게 해 버린 것 같다. 이게 다가 아닌데, 이게 끝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조카 나대를 업고 들판을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태어난 이상 생존의 게임은 불가피한 것이고 우리는 어차피 아버지가 물려준 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아버지’는 아직도 저 들판 새벌을 서성이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를 통해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한번 태어난 이상 우리는 조상의 피를 다시 살고 극복하고 완성하는 과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새벌은 아직 생명의 가망이라곤 없어 보이는 검은빛으로 낮게 엎드려 있다. 그러나 머잖아 햇빛 따뜻한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저 땅의 온갖 슬픔과 분노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푸른 새 생명들이 힘차게 솟기 시작할 것이다. 차갑고 사납던 바람의 기억은 그 생명들을 더욱 강하고 푸르게 일어서게 할 것이며 불불이 일어난 생명의 숲은 더욱 은성한 물결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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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2-0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난 이상 생존의 게임은 불가피한 것이다' - 끄덕 끄덕.
근데...아주 훌륭한 소설 같은데 좀 무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읽으면서 계속 고민을 하게 하는 소설....읽고 싶은데 약간의 두려움이...

icaru 2005-03-05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제가 무겁기그지없게 리뷰를 썼네요...
읽는 순간순간 나를 궁지로 내모는듯한 그런 작품...절대 아니예요..한때는 부유했던 집안의 팔남매 중 일곱째 여자아이가 '나'로 등장해 좌우대립과 남녀차별의 역사에 대해 눈떠가는 과정을 토속적인 느낌을 실어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남도 땅은 한국근현대사의 축소판이더만요~ 음..

별다섯인 이유는, 몰랐던 작가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대어를 낚은 강태공의 심정이었답니다... 물론 후배를 통해서였지만...

hanicare 2005-02-0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여 쓰신 리뷰. 복순이 언니님은 폭넓은 독서를 하시네요.덕분에 좋은 작가이름을 하나 알았네요.^^

미네르바 2005-02-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좀 무거울 듯 하지만 또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님은 독서의 폭이 굉장히 방대해요. 문학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그래서 굉장히 부러워한다는...^^) 그리고 읽은 즉시 열심히 리뷰도 쓰시고. 참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이 책 도서관에 있을까 모르겠네요. 최근에 책을 너무 많이 사서 이제 책사는 것은 자제해 보려구요.(잘 읽었어요. 추천!)

잉크냄새 2005-02-0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저한 자기 부정, 갈팡질팡하는 삶의 허우적거림...살아가면서 한번쯤 심하게 도전받고 유혹받는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icaru 2005-02-0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 케어 님.. 읽어 주셔서 그리고, 머리카락과 문장들을 쥐어뜯으며... 썼다는 걸 ..파악해 주셨네요..
미네르바 님... 제가 넓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도 깊지도 정확하지도 않다지요 ^^
저도 최근에 읽지도 않을 책을 너무 많이 사버려서 방바닥 여기저기에 책들이 지적난민처럼 널부러져 있어요^^

잉크냄새 님... 술로도 달랠 줄 모르는 철저한 자기 부정, 휴우.. 너무 강직해도 세상살기 어렵지 싶어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2-02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불이 일어난 생명의 숲은 더욱 은성한 물결을 이룰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 너무 맘에 들어서 저 가지고 갑니다... ^^
가끔 마음에 남는 작가들 있어요. 저도 며칠 전에 읽은 소설이 하나 있는데, 순우리말이 데굴데굴 나뒹구는 공들여쓴 소설인데다 구성도 탄탄하지, 입심도 훌륭하지, 그런데 막상 그 작가, 제가 뭐라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책이 많이 팔리진 않겠다 싶어서... 그렇게 때려죽여도 가볍게 쓸 수 없는 작가들이 있더군요...

2005-02-02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2-0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라도가 고향인 친구의 말은 과장이 아닐까 싶네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말들을 통해서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동학운동이나 5.18을 마음 깊숙이, 그리고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교육받고 되새김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는 특별한 가르침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이 좀 색다른 사람이었을련지 모르겠지만. 부마 항쟁이나 제주4.3 항쟁과 무게가 다를 필요도 없을테구요. 아마 피해의식이나 자존심 정도로 남겨져 있을련지는 모르겠습니다. 국사책을 보면서 광주학생운동에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듯이, 내 주변의 고장에서 무슨 자랑스런 일이 일어나면 뻐기고 싶어하고,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면 창피스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니 말입니다. 분명 지역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사건들이 있을 수 있으나, 단순히 그 지역색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거대한 흐름같은 것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 리뷰와 상관없는 지엽적인 것에 마음이 쏠려서 그만... 으, 이것도 어쩜 또 다른 피해의식 비슷한 것일련가 모르겠네요.^^;

icaru 2005-02-0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 하루살이님...
제 친구는 고향이 익산인데~ 그 친구에게는 그랬나보아요~ 정말 지엽적인 이야기지요... 제가 리뷰에 그렇게 쓰고 나니, 일반화가 되어버리고...선입견의 단초을 제공했는가요..?? 앗 나도모르게 그만, (이거 복학생 멘트 아니고요...^^;;)

저 부분을 쓰면서..좀 걸린다 싶었는데.. 하루살이 님께...딱 걸렸어요!!!

icaru 2005-02-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저도 이 작가의 작품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좋은 소설이었어요~ 진짜....
하지만...현실은...그렇죠... 좋은 소설과 잘 읽히는 소설은 따로따로 인거 같아요...

토란잎 2008-12-2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근에 이 소설가를 잘 아는 후배가 권해줘서 지금 주문했어요.
님의 독후감 읽으며.... 빨리 읽고 싶어지데요.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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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4남매이다. 내 기억에 엄마와 아빠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주루룩  딸린 것을 많이 힘들어하셨던 거 같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우리들 중 하나 둘은 친척집에 보내졌다. 외가는 서울이었고, 친가는 내가 살던 소읍보다 더 시골인 어촌마을이다. 나는 친척집에서 낮 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사촌들과 잘 놀다가도 산그림자가 짙어지는 저녁이 되면 쓸쓸하게 어두워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곧잘 이상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엄마 아빠, 두고 온 집 생각으로 시작해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나’일까. 지금의 '나'가 아니라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다른 '나'가 있지 않았을까....같은 조그만 애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형이상학적인 것들까지....

 

그런 생각들에 결론이란 없다. 손으로 갈퀴를 만들어 물 속을 헤집는 것처럼,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그저 처연한 느낌이 조금 들다 말 뿐....


이 소설은 그 때 뜬금없이 들곤하던 정황들이 연장되어 겪게 되는 느낌이 든다. <어두운 거리의 상점>처럼 실루엣으로 느끼고 파악하고, 줄거리보다는 정황의 설정이 중요해지는....


‘전생퇴행워크숍’이라는 게 나온다. 몇 년 전이었지 싶은데...한참 전생 바람이 불었었다. 그것을 소재를 다룬 트랜드 드라마도 많이 나왔고 말이다. 이 책도 그것에 편승한 것이었을까... (편승이라는 가벼운 느낌을 주는 단어 말고 다른 것 없는가???)  이번 생은 조졌지만.... 전생은... 아니, 조지고 말고가 중요하지 않지...암 중요하지 않고말고... 


이 소설에서는 밥과 국과 찌게를 만들어 먹는 장면에 대한 서사랄까 묘사가 많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밥이란 것이 얼마나 중한데 밥상을 치섰소....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어, 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왠지 그렇게 잘라 말하기가 미안해진다. 적어도 어느 한 지점에서 작가와 나는 소통하고 있지 않았을까.


태초의 ‘나’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것. 그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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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솔직하고 잔잔한 글이네요.어렸을 때의 기억, 절절하게 와닿아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랑 같이 있지 않으면 기 죽고 그러쟎아요.
전 어렸을 때 진짜 유명한 "울보"였데요. 엄마가 옆에 없으면 아주 난리가 났었데요.
울 엄만 얼마나 힘드셨을까?
복순이 언니님의 글을 읽으면서 미소 짓다 갑니다. 왜냐구요?
저 같음....씩씩하게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어." 라고 말했을 것 같아서.ㅋㅋ

icaru 2005-01-23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고마워요~ 수선님... 이 책 읽고 고민했습니다... 왜냐구요?
리뷰로 쓸말이 없다는 생각...
왜...꼭 있지요....속도를 내어 끝부분까지 읽어나가긴...했는데 맨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그래서?" 라는 생각이 드는 책 있잖아요...
그런데...어케어케 옛날 이야기를 꺼내다보니...구냥....리뷰꼴을 갖춘 글이 나왔네요... 참..나...끄응..

님 어렸을 적에 유명한 울보셨군요~ 하하... 수선님의 서재에서 님이 장녀라는 글을 읽고...오호...의외다 했었답니다...ㅎ..제가 겪은 장녀들 치고...유쾌상쾌발랄이...전무하다시피였거든요...핫 참고로...저두 장녀예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1-23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복순이언니님은 골수장녀의 면이 언뜻 느껴지면서도 무척 유쾌하고 상쾌하고 발랄해요. ^^ 그런데 리뷰 첫부분은 괜히 눈물나네요...

비로그인 2005-01-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욜에 뜬 리뷰인데 뽁스네 집에서 복순 아짐 발견하고 이리로 왔어요. 호잉? 리뷰가 있네요. 비발쌤네 이벤트한다고 술 마시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구나..
크하..복순 아짐, 멋지십니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누구인가,를 가끔 자문하셨군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사촌들이랑 놀 때 '저것이 라면을 몇 가닥 더 가져갈까, 내 과자는 숨겨둬야지, 쟤네 아버지(외삼촌)사장인데 나처럼 없는 것이 건빵 사달라고 조르면 사 줄까 ..' 뭐, 그렇게 추잡스런 질문들만..
조경란은 개인적으로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읽고 나서도 그래서, 뭐가 어?다고? 그런 묘한 반발심만 드는게..제 취향이 아닌가 봐요. 세계가 별루 보이질 않던데..복순 아짐, 말씀 잘 하셨네..상황만 있을 뿐..(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넘 심한 말을..)

icaru 2005-01-2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아구구..그러게요...제가 쓴 걸 앞부분..다시 읽어보니..쩜...처량맞네요..골수장녀요? 하하... 골수까지 장녀의 피가 흐른다 이거지요~ 음음..히히...

복돌언니.. 저두요..먹는거에는 엄청 집착했다는..형제가 많은집이 늘 그렇듯 먹을 땐 피튀겨요... 음..근데...제가... 왜..나는 나일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느냐면요...어릴적엔...그 시절 그 때의 '내'가 '내 모습'이 참...싫었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가 되어보는 상상을 많이 하며 놀았던 거 같아요... 옷도 이쁜 거 많고..해서 이쁘게 입고....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내가 아닌 다른 애가 되어보는 상상요~
조경란꺼는...저두 읽기가 수월치 않드라고요... 막말로... 너무 자기세계와 그 멋에 빠진 듯 보였고요..... 근데 최근에 플레져 님의 국자이야기 리뷰를 읽었는데... 조경란이 조금 달라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노력하는 작가였는모양예요~

플레져 2005-01-2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문학적 소양은 그 어린날에 이미 형성되었군요. 짐작은 했습니다만... 이안님처럼 저두 눈물나요. 조경란의 이 소설은 하이텔 문학관에서 연재하던 소설이에요. 원래 제목은 이오에서 온 빛 아니면 이오의 빛... 일 거에요. PC통신 시절이었는데, 뒤늦게 하이텔 문학관을 알게 되서 막 연재를 시작하던 이 소설을 본 기억이 나요.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 (원래 제목은 꿈속의 나오미) 도 하이텔 문학관에서 봤던 소설이구요... 흠~ 그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불과 몇 년전이네요. 에고고.... 너무 딴 얘기만 늘어놨어요. 소설속에서 주인공은 참 배고파 보이지요? ㅎㅎㅎ 참 좋은 리뷰에요!!

icaru 2005-01-2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문학적 소양이요!! 하이쿠......해몽이 더 멋져요!! 조금 헐벗은 느낌의 유년을 보내서 그런가보아요...
하이텔 문학관에 연재라... 플레져 님...이쪽..근황을 아주 잘 아시네요~ 으흠...뭔가 있어요? 그죠?
오늘 출근을 했는데...일이 마구 덤비네요...
마음만 급하고...시간은 없고...참으로 떫은 맛이네요.. 에효...

로드무비 2005-01-2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초의 나를 생각해 보게 한다니 그 정도면 작가는 할 바를 다했네요.
울림이 있는 글이에요.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5-01-2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앗...감사합니다... 울림이 있는 글이라니, 에구구..제겐 최대의 찬사네요..
 
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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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읽고, 그와 유사한 내용을 보기 위해 이 책을 읽으려 했던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부분이 발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어링 부부의 소박한 시골 생활의 모습을 이 책에서는 자세히 볼 수 없으니까요.

대신 이 책에서는 스콧 니어링의 성장 과정과 그의 사상의 역경을 훑어 볼 수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은 자신의 일생을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첫째 이 지구상에서 모든 전쟁의 근원인 인간의 착취 행위가 근절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한 것이지요. 둘째, 진실을 찾아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둘 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반면 규제와 제한과 금지는 증가했지요. 하지만 스콧 니어링은 자신의 일생을 자신의 신념대로 끝까지 그렇게 살았더군요.
스콧 니어링의 “기질에 따라 사람을 나눈다면 안락한 삶을 열망하는 사람들과 끊임없는 결단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힘겨운 삶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라는 말에 비추어보면 그 자신의 일생은 당연히 두 번째 부류에 속한 것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신념처럼 철저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출판사는 반전을 부르짖고 자본의 분배 문제를 깊게 천착하려는 그에게 점점 배타적이 되다가 결국엔 그의 글을 기고해 주지 않았고, 미국의 대학 강단에서도 해직되었습니다. 미국뿐인가요. 서구 사회 자체가 그를 따돌렸지요. 그는 스스로가 서구 문명에 안녕을 고합니다.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러했습니다. 첫째, 서구 문명의 위선적 태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 둘째 서구 문명이 경쟁을 으뜸의 원리로 삼아 세워졌기 때문. 셋째 문명의 중심지들이 남아도는 잉여금을 파괴자들에게 넘겨 주고 있으며 군대의 모험가들이 도박을 하고 있는 사이 가망 없는 파산 상태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

그리고 1930년대 미국 우익의 압력 아래서 살아가는 삶의 수단으로 택한 것은 자급농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것은 여기서 나온 말이지요.

아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 혹 자기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 또는 하나의 이념과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콧 니어링, 그의 논리는 아주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논리와 사상을 삶 속의 실천으로 구현하였으며, 시종.....자본주의 문명과 패권적 국제 질서에 대해 성찰과 비판을 하였기 때문에 그 위대함에 고개를 숙입니다. 


밑줄 친 부분

우리는 정치적 견해보다 식사법이 공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치열한 싸움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열정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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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5-01-23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콧 니어링의 삶의 철학도 그렇고 삶 속의 실천도 대단하지만 그의 시간분배가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요?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 제 시간분배와 대단한, 엄청난, 쨉도 안 되는 차이가 있군요. ^^

비로그인 2005-01-2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부분이 화악~ 눈에 들어오네요. 유럽에서는 보통 6시간 근무라고 하던데..그리고 자유시간~ 캬..최장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선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군요.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진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자, 로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데 가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편견을 드러내고 무의식중에 차별을 일삼는 행위들을 보면..(실명비판 좀 해야 쓰겄습니다. 갑자기 '김규항'이 생각납니다..쿡쿡..)매우, 실망이랍니다..

파란여우 2005-01-2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 아우의 김규항 비판은 내가 고자질 해야지..큭큭^^..그리고 복순언니님!! 추천 하나로는 부족한 투시력 깊은 리뷰였습니다.

호밀밭 2005-01-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정치적 견해보다 식사법이 공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 부분 저도 밑줄 긋고 싶네요. 생계를 위한 시간 노동을 4시간만 하는 사회가 오는 날이 있을지. 스콧 니어링의 삶은 왠지 제가 서 있는 곳이 너무 다른 세계라는 생각도 들어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icaru 2005-01-23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의 하루 시간 분배가 무지 궁금하옵니다 ^^ 우리들에겐 자신을 위하지 않은 일하는 시간이 압도적이네요~

복돌이 언니님~ 김규향이요...마자요... 예전에 그의 글 중에 애들을 위해서 이민가고 싶다고 토로하는 글을 읽고 좀 실망했었다지요~ 정말...대한민국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삽니다...일하느라...말이죠...과거에는 더 심했겠죠! 저희 아버지도 재작년에 정년퇴임하셨는데...젊은시절에 너무 일만 하셔서...마땅히 취미 생활을 갖지 못하셨기 때문인듯... 노년을 그닥 재미있게 지내지 못하시는게..보여...늘...마음에 걸립니다...

파란여우 님~ 저 이 책 읽으면서 님 서재를 아니~ 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땅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실천하는 스콧의 생활과 사상이 님의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듯 여겨졌습니다....

호밀밭 님~ 하하...님..맞아요!! 사회 생활하면서 저도 식성이 많이 바뀌었답니다.. 육식 위주로요.. 특히 저는 아웃백이나 티지아이 같은 페밀리 레스토랑 음식을 즐겨 하고 싶지 않음에도...회식을 하게되면...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을 선호하거든요..
전...채식주의자는 못되고...육식주의라고 하기도 어렵고...ㅋㅋ....생선주의잔가..??
생계를 위한 시간 노동을 4시간만 하는 사회가 오는 날이 있을지... 글쎄 말입니다~~

플레져 2005-01-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쉽게 쓴 리뷰를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비결 좀 가르쳐주세요. 부럽습니다. 생선주의자님! ^^

icaru 2005-01-2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물마시면서...님의 코멘트 보다가...생선주의자 부분에서...사레 들였어요....
님도 참... 왜 제가 하고픈 얘기를 하십니꺼...

잉크냄새 2005-01-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콧 니어링은 실천적이고 충실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다간 대표적인 인물이죠.
그의 삶의 시간 배분을 어리숙한 제가 따라한다면 굵주리기 딱 좋겠네요.^^

icaru 2005-01-2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 냄새 님~ 님이 쓰신..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정말 인상 깊게 읽은 사람 중 하나랍니다~

잉크냄새 2005-01-2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헬렌 니어링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님의 리뷰를 통해서였답니다.
그 당시 땡스투가 있었다면 당연히 땡스투였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