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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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4남매이다. 내 기억에 엄마와 아빠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주루룩  딸린 것을 많이 힘들어하셨던 거 같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우리들 중 하나 둘은 친척집에 보내졌다. 외가는 서울이었고, 친가는 내가 살던 소읍보다 더 시골인 어촌마을이다. 나는 친척집에서 낮 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사촌들과 잘 놀다가도 산그림자가 짙어지는 저녁이 되면 쓸쓸하게 어두워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곧잘 이상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엄마 아빠, 두고 온 집 생각으로 시작해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나’일까. 지금의 '나'가 아니라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다른 '나'가 있지 않았을까....같은 조그만 애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형이상학적인 것들까지....

 

그런 생각들에 결론이란 없다. 손으로 갈퀴를 만들어 물 속을 헤집는 것처럼,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 그저 처연한 느낌이 조금 들다 말 뿐....


이 소설은 그 때 뜬금없이 들곤하던 정황들이 연장되어 겪게 되는 느낌이 든다. <어두운 거리의 상점>처럼 실루엣으로 느끼고 파악하고, 줄거리보다는 정황의 설정이 중요해지는....


‘전생퇴행워크숍’이라는 게 나온다. 몇 년 전이었지 싶은데...한참 전생 바람이 불었었다. 그것을 소재를 다룬 트랜드 드라마도 많이 나왔고 말이다. 이 책도 그것에 편승한 것이었을까... (편승이라는 가벼운 느낌을 주는 단어 말고 다른 것 없는가???)  이번 생은 조졌지만.... 전생은... 아니, 조지고 말고가 중요하지 않지...암 중요하지 않고말고... 


이 소설에서는 밥과 국과 찌게를 만들어 먹는 장면에 대한 서사랄까 묘사가 많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밥이란 것이 얼마나 중한데 밥상을 치섰소....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어, 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왠지 그렇게 잘라 말하기가 미안해진다. 적어도 어느 한 지점에서 작가와 나는 소통하고 있지 않았을까.


태초의 ‘나’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것. 그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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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솔직하고 잔잔한 글이네요.어렸을 때의 기억, 절절하게 와닿아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랑 같이 있지 않으면 기 죽고 그러쟎아요.
전 어렸을 때 진짜 유명한 "울보"였데요. 엄마가 옆에 없으면 아주 난리가 났었데요.
울 엄만 얼마나 힘드셨을까?
복순이 언니님의 글을 읽으면서 미소 짓다 갑니다. 왜냐구요?
저 같음....씩씩하게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어." 라고 말했을 것 같아서.ㅋㅋ

icaru 2005-01-23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고마워요~ 수선님... 이 책 읽고 고민했습니다... 왜냐구요?
리뷰로 쓸말이 없다는 생각...
왜...꼭 있지요....속도를 내어 끝부분까지 읽어나가긴...했는데 맨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그래서?" 라는 생각이 드는 책 있잖아요...
그런데...어케어케 옛날 이야기를 꺼내다보니...구냥....리뷰꼴을 갖춘 글이 나왔네요... 참..나...끄응..

님 어렸을 적에 유명한 울보셨군요~ 하하... 수선님의 서재에서 님이 장녀라는 글을 읽고...오호...의외다 했었답니다...ㅎ..제가 겪은 장녀들 치고...유쾌상쾌발랄이...전무하다시피였거든요...핫 참고로...저두 장녀예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1-23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복순이언니님은 골수장녀의 면이 언뜻 느껴지면서도 무척 유쾌하고 상쾌하고 발랄해요. ^^ 그런데 리뷰 첫부분은 괜히 눈물나네요...

비로그인 2005-01-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욜에 뜬 리뷰인데 뽁스네 집에서 복순 아짐 발견하고 이리로 왔어요. 호잉? 리뷰가 있네요. 비발쌤네 이벤트한다고 술 마시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구나..
크하..복순 아짐, 멋지십니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누구인가,를 가끔 자문하셨군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사촌들이랑 놀 때 '저것이 라면을 몇 가닥 더 가져갈까, 내 과자는 숨겨둬야지, 쟤네 아버지(외삼촌)사장인데 나처럼 없는 것이 건빵 사달라고 조르면 사 줄까 ..' 뭐, 그렇게 추잡스런 질문들만..
조경란은 개인적으로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읽고 나서도 그래서, 뭐가 어?다고? 그런 묘한 반발심만 드는게..제 취향이 아닌가 봐요. 세계가 별루 보이질 않던데..복순 아짐, 말씀 잘 하셨네..상황만 있을 뿐..(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넘 심한 말을..)

icaru 2005-01-2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아구구..그러게요...제가 쓴 걸 앞부분..다시 읽어보니..쩜...처량맞네요..골수장녀요? 하하... 골수까지 장녀의 피가 흐른다 이거지요~ 음음..히히...

복돌언니.. 저두요..먹는거에는 엄청 집착했다는..형제가 많은집이 늘 그렇듯 먹을 땐 피튀겨요... 음..근데...제가... 왜..나는 나일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느냐면요...어릴적엔...그 시절 그 때의 '내'가 '내 모습'이 참...싫었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가 되어보는 상상을 많이 하며 놀았던 거 같아요... 옷도 이쁜 거 많고..해서 이쁘게 입고....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내가 아닌 다른 애가 되어보는 상상요~
조경란꺼는...저두 읽기가 수월치 않드라고요... 막말로... 너무 자기세계와 그 멋에 빠진 듯 보였고요..... 근데 최근에 플레져 님의 국자이야기 리뷰를 읽었는데... 조경란이 조금 달라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노력하는 작가였는모양예요~

플레져 2005-01-2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문학적 소양은 그 어린날에 이미 형성되었군요. 짐작은 했습니다만... 이안님처럼 저두 눈물나요. 조경란의 이 소설은 하이텔 문학관에서 연재하던 소설이에요. 원래 제목은 이오에서 온 빛 아니면 이오의 빛... 일 거에요. PC통신 시절이었는데, 뒤늦게 하이텔 문학관을 알게 되서 막 연재를 시작하던 이 소설을 본 기억이 나요.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 (원래 제목은 꿈속의 나오미) 도 하이텔 문학관에서 봤던 소설이구요... 흠~ 그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불과 몇 년전이네요. 에고고.... 너무 딴 얘기만 늘어놨어요. 소설속에서 주인공은 참 배고파 보이지요? ㅎㅎㅎ 참 좋은 리뷰에요!!

icaru 2005-01-2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문학적 소양이요!! 하이쿠......해몽이 더 멋져요!! 조금 헐벗은 느낌의 유년을 보내서 그런가보아요...
하이텔 문학관에 연재라... 플레져 님...이쪽..근황을 아주 잘 아시네요~ 으흠...뭔가 있어요? 그죠?
오늘 출근을 했는데...일이 마구 덤비네요...
마음만 급하고...시간은 없고...참으로 떫은 맛이네요.. 에효...

로드무비 2005-01-25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초의 나를 생각해 보게 한다니 그 정도면 작가는 할 바를 다했네요.
울림이 있는 글이에요.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5-01-2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앗...감사합니다... 울림이 있는 글이라니, 에구구..제겐 최대의 찬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