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머릿속 지도의 거리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도 홀로 초연히 그 남자네 집은 그냥 조선 기와집으로 남아 있다. 그 남자. 그 남자가 나에게 해 준 최고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구슬 같다고 했더랬다. 애인보다는 막내 여동생에게나 어울린 찬사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같은 눈물 “구슬 같은 여자”.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주 먼 외가 친척 벌 되는 그 남자. 누나이고, 먼 친척이다보니, 양쪽 집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어울림을 사랑이라 생각지 않았던. 그래서 그들의 로맨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온몸에 솜털이 곤두설 듯 아릿함을 불러일으키는 연애담. 한 때 그들의 사랑은 ‘구슬’과 ‘솜털’이라 명명해얄까보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자전적 3부작의 3부 같은 느낌이다.

'그 많던 싱아는....'이 박완서의 자전소설 1부라면,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는 또 2부라면, 이 책은 2부에 이어 3부, 그러니까 미군 부대에 다니던 미스 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의 시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굽이굽이의 내력을 쓴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이 앞의 두 작품과 이 작품 셋을 시리즈라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1, 2부에 비하면 한 개인의 가족사가 동시대의 가족사이던 실낱 같던 서사의 힘은 덜하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무섭다지만, 어찌 그 험난하게 살아왔던 그 시간들을 쉬이 잊을 수 있겠는가 싶게 1, 2부는 대서사시였다. 하지만 3부(내 맘대로 3부랜다.) 그 남자네 집은 전작에 비해 시대를 읽는 힘은 딸리는 것이다. 하지만 또 앞선 작품보다는 애틋하고 서정적이어서 읽는 맛이 애간장 녹이게 좋았던 것도 인정해야지 싶다.


앗, 이 작품에 시대를 말하는 키워드가 전작들에 비해 덜하다고 했지만, 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실토해야겠다. 그녀가 말하는 개인사 속에 슬몃슬몃 끼어드는 시대의 아픈 부산물. 앳되고 수줍고 소박한 티가 물씬하던 여고생 춘희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도 보게 된다. 홀어머니에 동생이 줄줄이 딸린 남편의 이웃집 춘희를 자기의 후임으로 미군부대에 취업시켜 주었지만 그녀는 어느덧 양공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살러 가고 동생들을 모두 미국으로 이민시켜 버리는 춘희. 그리고 베트남 전쟁 후에 그곳 도로 건설 인부로 파견을 나갔다가 고엽제 피해를 본 사촌 조카 광수.


이 작품의 끝부분에 춘희가 자기네 형제 자매의 이민사를 쫘악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슬퍼졌다. 미국 땅에서도 떵떵거리며 일류 학교 들어가 잘 산다는 요점이었지만, 내막에는 전쟁과 가난이 인류 최대의 악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어설프게... 그리고 아이들 조기 유학으로 따라온 엄마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명품 사족 못쓰고 부동산 투기 과외 공부 이야기 등등.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천박함을 치떨리게 묘사하는 부분이 여기에도 있다. 저것이 실상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세상이 속물의 키워드로 읽히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뒷맛이 이리도 씁쓸한 것은 우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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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2-1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설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님은 참 부지런하시군요.
시댁 가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다니......
박완서 선생의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icaru 2005-02-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속삭이신 님... 말씀대로 바로잡았습니다!!
바른 말 정확한 말!!! 경롓!!

로드무비 님.. 박완서 님은 선생이라는 칭호가 무람없네요~ 진짜...
님도... 설 잘 쇠셨어요?
저야모...여전히 때마다 시댁에선 어설프게..동분서주 한다지요...^^

플레져 2005-02-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에 글 한 줄 읽지 못했어요, 저는요...ㅠㅠ
혼자 있을 때만 책 읽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할텐데요. 부럽슴다!!!
저두 이 책 읽어보고파요. 어찌어찌 생길 것 같아서..추천만 살포시 눌러요 ^^;;

마냐 2005-02-1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추천 살포시.....참으로.....다른 리뷰들. 제 눈에 보이는 것과 님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들이 참으로 다릅니다. 같은 책, 다르게 읽기...참으로 흥미롭슴다..
암튼, 명절 포함해 일주일째...무쟈게 재미난 책 한권을 끙끙대며 보고 있으니...독서않고 사는 계절임다...ㅋㅋ

2005-02-11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13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