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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직장을 생활을 하면서 이쯤까지 지내다 보니 드는 생각은 버티는 것은 마음 관리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을 하지 않고도 여유 있게 살기를 꿈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할 것인가 생각해 봤을 때 의문이다.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한 방식일 뿐이다 라고 봤을 때도 생계에 대한 절박이 있으니, 그렇게 낭만적으로 볼 일도 아니고 말이다.
이왕 일을 하는 거라면 더 신나게 할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만나는 책이기도 하면서 다른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괴로워하며 회사생활 하기엔 인생이 길지 않은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만난 책이라 더 단비같다.
저자가 열심히 일을 하면서 느껴왔던 건강한 불안감과 하나하나 쌓아올린 내용인데,
탁월하게. 이 단어가 내 눈길을 잡아끌며 튀어 올랐다. 전문성이 아니라 탁월함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해오던 터이기도 했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되는 직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내 직업 삼아 살고 있다는 느낌.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30대 중후반에 접어드는 것.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자의로든 타의로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일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시대다. 전문성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전문성은 점점 더 닿기 어려운 도착지가 되고 있다. 전문성은 오랜 기간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무개지.”라는 식으로 전문성의 훈장이 주어진다. 호칭은 대체로 사후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사전적인 인정이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가 전문성의 조건인 것만은 분명. 사람들은 누군가와 직접 일해보기 전에 이력서의 몇 줄, 그러니까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했느냐를 가지고 전문가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시스템의 교복을 입고 차곡차곡 모범생으로 보낸 시간의 총량이 전문성의 훈장으로 환원되는 셈이다. 이렇게 전문성이라는 이름의 디딤돌은 한곳에서 오래 일할 기회를 누리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에 딱 그만큼 점점 더 희소한 자원이 된다. 이런 식으로 규정되는 전문성은 불가피하게 배타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탁월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더욱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자격 조건 같은 것은 없지만, 시스템의 내부에 안착해 그저 시간을 쌓는 것만으로 탁월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별개로, 자기만의 만족 기준,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탁월성을 만들어낸다. 탁월성은 또한 자신이 해온 일,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반추하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탁월성은 전문성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탁월성의 세계는 교복 입은 학생의 세계와 다르다. 탁월한 사람이 언제나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한 조직 내에서 가장 먼저 승진하고 가장 좋은 고가를 받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탁월한 사람이란 법은 없다는 의미다. 스스로 탁월성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향해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전문성이라는 디딤돌이 정적인 것, 자격증이나 회사 타이틀, 직책의 이름을 획득하기 위해 한참 머물러야 얻어지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끊임없이 이것과 저것을 조합하고. 그 모든 경험을 관통하면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역량이자 고유한 스토리일 것이다. 1~2년짜리 계약직만이 가능한 선택지일 때, 그게 아니라도 이 직장에서 3년 이상은 일하기 어렵겠다는 전망이 들 때, 혹은 처음부터 프리랜서의 길로 뛰어들었을 때, 이런 경험을 통해서라도 디딤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언제나 머뭇거렸다. 전문성의 자리에 ‘디딤돌’이라는 단어를 넣고, 그 디딤돌을 전문성과는 다른 종류의 탁월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은 어쨌든, 나의 제한된 경험 안에서만 유효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일의 현장으로 가져와 일을 고용주와 나 사이의 거래 관계로 생각하면,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시간을 셀프 착취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크건 작건 스스로 목표를 정하면, 고용주와 나 사이의 제로섬 게임 바깥에 내 일의 또 다른 층위가 생겨난다.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은 고용주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력을 갖다 바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개인적 충만함을 위한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가파른 기울기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다른 경험에 직면해서도 그런 기울기를 추구한다. 가파른 기울기는 즐거움의 총량을 늘린다. 즐거움은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무엇이 즐거운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고, 탁월함 또한 그렇다.
#일하는마음
#제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