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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 하면, 씨네21에 <이창>이라는 코너가 생각난다. 고만고만하기 만한 클라이막스 없는 일상에서 간간히 선사 받는 청량제, 김영하의 <이창>이라는 코너가 내게 딱 그랬다. 하지만, 그 이후 <아랑은 왜>를 그럭저럭 읽고 나서, 한동안 김영하의 글을 읽는데 흥미를 올리지 못했었다. 작년 초 쯤에 김영하의 새소설인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알라딘 서점은 신작을 들고 간만에 돌아온 오빠! 김영하로 인해 술렁술렁했었지만, 나는 심드렁심드렁하기만 했었다.
나 개인의 소설 취향을 놓고 보자면, 글쎄...나는 그러니까 인물의 자아찾기를 그림 그리듯 볼 수 있는 “성장 소설” 같은 것에 감성이 쉽게 들러 붙는 쪽이다. 그러나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소설집 나에겐 아주 좋았다. 성장 소설도 아닌 것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집과 회사를 오가는 사이사이 한 편씩 읽었다. 그런데 순식간이었다. 음, 아직 내게도 꽤 쓸만한 집중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신퉁방퉁한 소설이다. 최근 읽었던 책들 중에 머릿속에서 글자가 퉁그러져 나가 중도하차한 책이 꽤나 되어 의기소침해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 뒤에 문학평론가 김태환이라는 사람의 해설이 붙어 있다. 어떨 때는 평론가의 해설이 본작보다 더 난해해서 되려 작품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 평론가의 해설은 더도덜도 아닌 해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듯, 군더더기 없어 좋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평론가의 평론은 독자인 나 본연의 감상이 어설픈 것이었노라 자학하게도 만드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니, 해설이라는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설집은 꼭지 하나하나 일상과 섞어드는 놀라운 힘이 있다. 작품 속 변두리 것들이 독자에게 아주 익숙해서 그런 거 같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는 저민 닭가슴살에 뭉근하게 익힌 당근으로 만든 카레를 신부님인 친구에게 저녁으로 만들어 대접하는 소설가. 위스키 발렌타인 한 병을 들고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신부님 친구의 모습이...
<오빠가 돌아왔다>에서는 오빠는 아빠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스무살이 됐을까 말까한 앳된 여자를 데려왔다. 그 여자에게 ‘남자 맛은 일찍 알아서 오빠만 보면 침을 질질흘리는 주제에 새언니 노릇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며 오빠의 여자에게 뻣대는 중학생 여자아이인 나의 모습이...콩가루인 집안 식구들...그런데 아빠와 이혼하고 함바집을 하는 엄마가 집으로 다시 들어온 기념으로 의기투합하는 의미로다가 야유회를 가고, 경춘국도변 고기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데.... 중학생이 여자아이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우습다는 듯 시덥잖게 말하고 있다... 콩가루가 뭉쳐지는 화해 무드가 싫지는 않은 눈치인 여자 아이의 모습이....참..흐흐
<너를 사랑하고도>는 아침반 수영장이 배경이 되어 친근하다. 작년 이맘때, 일을 쉬고 있었을 때다. 지독하게 늦잠을 자는 습관을 고치려고 아침반 수영을 다녔었다. 그때 수영반에서 할머니들 틈에 끼여 수영 배우던 게 자꾸 오버랩되는거다.
<이사> 또한... 이사하는 날.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인부 아저씨와 벌였던 심리전 실갱이 같은 것이 어찌...알만하다...싶은 거 말이다.
아무튼...위의 모든 것은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 같은 것과는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변두리 것들이다. 작품의 본론으로 들어가자면....음...읽은 사람은 알겠지....
이것이 돌멩이인지, 노다지인지는 직접 캐봐야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