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스푸트니크 여인에서 넘실대는 농밀한 언어의 바다에 빠져서 술 취한 사람처럼, 뼈가 노골노골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취하게 만들더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뭐라 딱이 말로 답하긴 어렵다. 음.....굳이 이 소설 속의 맛깔나는 문장을 맛보기로 들자면,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 이상한 거야.-(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너 보기와 달리 특이한 데가 있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하루키의 이 문장으로 점잖게 대구해 줄 것이다’)라거나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지적(知的) 난민처럼 바닥에 쌓여 있다.’ 같은 것.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아도 도수높은 알콜이 혈관으로 스미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아 나는 확실히 표현이 딸린다.

스미레는 소설 쓰는 일에 골몰해 있는 22살의 여자였다. 작중 ‘나’는 스미레를 좋아, 아니 사랑했지만, 스미레는 ‘나’를 좋아했는지 몰라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성욕을 몰랐다. 그러던 그녀가 자기보다 17세 연상의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마음의 교감을 이루었다. 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미레의 동성애 성향이 아니다.
스미레의 꿈, 그러니까 스미레가 결국 만족할 만한 소설을 완성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스미레는 글을 쓰고 또 썼지만...아직 미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경험과 시간이었다. 그녀가 쓴 문장에는 독특한 신선미가 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뭔가 중요한 사실을 정직하게 표현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적어도 그녀는 누군가의 모조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끝만으로 잔재주를 부려 완성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진정한 소설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주술적인 세계가 필요하다. 그녀는 17세 연상의 여인과 나누는 즐거운 시간들과 상처가 된 경험들 이 모두는 사실 주술적인 힘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소설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에도 이모든 아픈 경험과 시련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소설은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이 쪽 세상과 저 쪽 세상을 사이에 둔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는 이쪽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래는 저 쪽 세상의 출신인 것 같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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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2-1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책 읽을 시간도 없어 점점 이 책은 연이나 닿을는지 모르겠군요...

스미레 보고 싶은데 말이죠. ^^

잉크냄새 2004-12-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레...여담입니다만 알라딘 초기 서재 주인장중에 "스미레" 란 닉네임이 있었던것 같군요. 그나저나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다양한 책을 읽으시고 리뷰를 올리시고 보기 좋습니다.

hanicare 2004-12-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자질구레한 계산기의 키보드를 뛰어넘는.나라는 인간의 알량하고 굳어버린 윤곽선을 뜨겁게 녹여버리는 강력한 존재에의 매혹. 그런 것이 왜 이렇게 부재하는지.

icaru 2004-12-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 님~ 요즘 좀처럼 님의 따끈한 따끈한 글들을 볼 수 없어서...'왜 일까~ 하던 차였답니다....' 이 책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네요...전 최근에 시중 서점에서 구했답니다...



잉크냄시 님.. 구런 닉네임의 주인장이 있었더래요오??~ 스미레...음..제비꽃이라는 뜻이래요...



하니케어 님...강력한 존재에의 매혹...!!!

전... 특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을 무진장 왕장창창 좋아라 한다고 볼 수는 없었는데... 이 소설은 어쩐지...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정말...묘해요...

플레져 2004-12-2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제가 왜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애타게 찾고 있었나 했습니다. 바로 님의 리뷰를 읽었기 때문이었어요! (제게 말씀하셨던 거랑 비슷한 멘트지요? ㅎㅎ) 꼭 읽어봐야겠어요, 진짜루!!

icaru 2004-12-2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진짜로 궁금하네요~~ 님은 어케 이 소설의 느낌을 풀어가실지... 저는 확실히 딸림니당...그냥 좋았다...진정 좋았다... 라고 밖엔...님...꼭 읽고...리뷰 쓰셔야 해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