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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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게 글써 온 여성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훌륭한 여성들을 알게 되고, 그들이 멈추지 않고 쓰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고양되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쭉 쓰라고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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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 어느 TV 중독자가 보내는 서툰 위로
이승한 지음, 들개이빨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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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바로 이 책을 다 읽기 하루 전날인 어제,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선배는 대뜸 올해 미디어업계 뉴스를 꼽는다면 1위는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그 다음은? 5위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정말 나는 잘 모르는구나. 나름대로 관심 있고 공을 들여왔다는 분야에 대해서도 즉답을 하지 못할 만큼.

 

선배는 이른바 '선진국'의 대단함이 '적재적소의 기록'에서 나온다고 말해주셨다. 최근 1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 몇 명, 중요한 사건 몇 가지. 오랫동안 기억하고 함께 숙지해야 할 일과 사람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풍토가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갈리는 지점이었다.

 

"우리나라가 칭찬에 유독 인색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욕하기는 쉽잖아요. 그런데 무언가의 좋은 점을 말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저도 뭐가 좋다고 쓰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선배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부족함을 애써 희석시키기 위해 꺼낸 말이긴 했지만, 내용만은 진심이었다.

 

길었지만 쓸데없는 앞머리는 아니었다, 고 생각한다. 이승한 님의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는 내게 제때, 기억해야 할 만한 것을, 성실하게 담고 있는 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표지에서도, 머리말에서도 저자는 자신이 위로에 영 서툰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써 온 사람으로서 이 책은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했던 자신의 가난한 시도들이 모였다고도 했다. 3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저자가 얼마나 자기자신의 '공감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한 인물 혹은 사건을 매번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대체로 무신경한 여느 사람들로서는 끝내 찾아낼 수 없거나 보고도 깨닫지 못했던 숨은 1cm가 모든 글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엽기 콘셉트와 개그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밴드 노라조가 이미 '제대로 된 곡'을 발표했었다는 것과 윤상은 단순히 아이돌 누구의 프로듀서만으로 호명되기 아까울 정도로 '소리 깎는 장인'이라는 것을 짚는다. 아직 대중에게 '덜' 알려진 이민지에게는 가능성 가득한 말간 얼굴과 박미선에게 부드러운 교통정리와 훅 들어오는 재치라는 무기를 발견한다.

 

오랜 시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면 이야기되지 못했을 것들. 마감에 쫓겨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데 짧은 시간만 투자했을 뿐이라면, 더더욱 감탄하게 된다. 덜 드러나 있었던 진면목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에.

 

인물이 걸어온 핵심적인 발자취는 놓치지 않고, 참신한 시각으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간편하고 게으른 '꼬리표 붙이기' 식 글이 넘쳐나는 와중에,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의 설득력과 스스로 가꾼 독창적 관점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글은 퍽 반갑다.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에는 애정 어린 시선만 있지는 않다. 부조리와 부당한 차별에는 예리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감수성의 의미를 알게 된 지 이제 10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생각과 언행을 보이는 나는 이 책이 어떤 길잡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흔히 빠지게 되는 착각에서 구해주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보여주는.

 

김유정의 짝다리에 쏟아진 과도한 비난을 지적한 '불편하디? 젊은 여자라서?', 오로지 피해자성만을 강조해 온 교육과 그로 인한 사회 분위기 탓에 애써 피하고 있는 한국(인)의 인종차별을 꼬집은 '언제까지 무릎만 칠 건가', 혐오자들이 동원하는 전략의 '비논리'를 질타하는 '어차피 너도 나와 다를 바 없잖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 줄 '나'에 도취돼 멋대로 무결함을 판단하는 행태를 비판한 '기대만큼 아파 보이지 않아 실망하셨나요'에서는 약이 되는 쓴소리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글이 원고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든 없든, 저자의 글을 읽고 나면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주의자'로서의 신념보다 간절함을 원동력으로 삼은 배역을 맡아온 염정아, 스스로의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거침없이 그건 '잘한 것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매서운 프로 이소라, 모두가 고개 숙이라 하는 상황에서도 정면을 응시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김부선까지.

 

TV드라마, 예능, 영화, 대중음악. 한 가지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방대한 분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문화적 배경과 취향에는 또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무리 반짝이는 것이라도 누군가의 눈에 들지 않으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보이기도 전에 묻히고 만다. 저자는 특유의 밝은 눈으로, 누군가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나아가 본인조차도 모르고 지나쳤을 그만의 어떤 '매력'과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냈다. 그 기록의 총체가 바로 이 책이다.

 

'한겨레'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로 이미 본 원고가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다시 맞닥뜨릴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아주 조금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빛바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저 '촘촘히 엮인 문장이 빚어낸 단단한 글'만을 느꼈을 뿐이다.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직업을 스스로 택해 5년을 넘겼음에도 감이 안 되는데 설치는 게 아닌가 하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나는, 이 책에 나온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온 사람들의 묵묵함'이 특히 더 마음에 들어왔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마도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라는 제목이 아닐까.

 

저마다의 가치를 지닌 사람과 작품을 둘러보게 만들고는, 결국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기하고 고마운 위로.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기에 그간 걸어온 궤도를 폄하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마 앞으로도 감기처럼 찾아올 불안함과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하겠지만, 이제는 왠지 조금 덜 흔들리고 덜 주눅 들어도 괜찮을 것만 같다.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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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혼자 살겠다고 부모님 집을 나오면 독립적인 성인이라고 존중을 받죠. 반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부모님 집을 나오면 결혼을 포기했거나, 결혼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받아요."
_ 81쪽

 

많은 한국인들이 주택청약예금은 만인이 꿈꾸는 내 집 장만의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이는 임대주택은 과도기적인 주거형태라는 신념을 강화한다. 하지만 내 연구참여자들을 비롯한 노동빈곤층에게 임대주택은 장기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유일한 선택지이다. 노동빈곤층도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한 주택청약예금이 있으면 아파트 구입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싱글가구는 청약순위가 가장 낮고, 목돈이 없다보니 입찰 가격에서 아파트 가격에 덧붙는 프리미엄을 두고 경쟁을 할 수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상당한 예금을 갖지 못한 사람은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임대할 길이 전혀 없다.
_ 93쪽

 

"글쎄요. 정말 절약해서 큰돈을 모은 20~30대 여성들도 있어요. 근데 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난 돈이 있으면 그냥 써버리거든요. 경제관념이 없어요.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큰 자부심을 느끼긴 하는데 큰돈이 필요한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구걸을 해야 하는 게 정말 싫어요."
_ 104쪽

 

자본주의 문명이 우세한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상한 망상을 품고 있다. 이 망상은 사회적, 개인적 고난을 일으키면서 200년이나 슬픈 인류를 고문해왔다. 이 망상은 바로 한 개인과 그 자손들의 생명력을 소진시킬 정도로 퍼내는 노동에 대한 사랑, 노동에 대한 맹렬한 열정이다. 성직자, 경제학자, 윤리학자들은 이 같은 정신적 일탈에 반대하기는커녕 노동에 신성한 후광을 입혔다. 맹목적이고 유한한 인간들은 신보다 더 지혜롭기를 원했고, 나약하고 경멸받아 마땅한 인간들은 신이 저주했던 것을 주제넘게 복원시키고자 했다. 나는 기독교도도, 경제학자도, 윤리학자도 아니지만, 이들의 판단에 불복해 신에게 탄원한다. 이들의 종교적, 경제적, 혹은 자유사상 윤리의 설교들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끔찍한 결과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_ 폴 라파르크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여성단체들이 아이 엄마와 기혼 직장여성들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기혼 여성의 모성과 육아 문제를 여성 문제의 대표처럼 다루는 건 불편해요. 그들이 힘든 상황에 있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건 그들만이 아니에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건 그들의 선택이에요. 내가 여성노동 문제에 관심 있다고 말하면 기혼 여성노동자를 위한 육아 문제를 연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질렸어요."
_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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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기 -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송제숙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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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 번 빌렸다가 다 못 읽고 반납했나, 아니면 그냥 슥 훑고만 왔다. 드디어 자세를 고쳐 앉고 읽는데 학술적 용어가 많아서 읽는 도중 꽤 버퍼링이 걸렸다. '정동'이나 '레짐' 같은 용어가 나올 때마다 작아졌다. 딴에는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입장인데도 기본적인 개념에도 취약하다니,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동시에 연구자들의 용어는 이늘 이렇게 어느 정도의 장벽이 있는 채로 대중에게 전달되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구자들만 보라고 만든 책은 아니었을 테니, 그건 저자나 번역자나 출판사에서 신경 썼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혼자 살아가기]는 30대 초반~30대 후반의 비혼 여성 16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과 저자의 연구 내용이 어우러진 책이다. 역시나 심층 인터뷰가 재미있었다. 일부 인터뷰이가 하는 말은, 마치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생해서 정신이 퍼뜩 드는 기분까지 들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비싼 전세금을 마련할 만큼의 생활수준에 다다르지 못해 허덕이는, 그러면서 진보적(책 속에서는 '좌파적'이라는 말로 나왔다)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

 

학생운동도, 노조운동도 하지 않았다. 대학 저학년일 때 집회 참가가 처음이었고 첫 직장에서 사회운동에 대해 조금 감을 잡은 내가, 감히 '좌파'니 '진보'니 자처할 순 없겠지만, 주거 환경이나 생활 태도가 유사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비교적 젊은 축이라는 것이고(100세 시대에 솔직히 40대도 젊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 하는 일이 불안정 노동은 아니라는 것 두 가지다.

 

더 높은 수준의 감정 노동을 수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임금 후려치기를 당하고, 여성 혼자 '독립'해서 나가 산다는 것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편견과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사실 희망은 찾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현실을 담담히 읊는 느낌이었달까.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성운동 의제에서 '비혼 여성'은 여전히 꼴찌로 밀려나 있다는 것이었다. 기혼 여성의 출산, 육아, 이후 경력단절 문제가 그나마 사회적으로 꾸준히 이야기되는 '주류 이슈'라면, 비혼 여성의 삶은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홀로 되는 것 모두 '선택'의 문제인데도 평등한 위치에서 다뤄지지 않는 데서 오는 답답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도시 빈민이자 비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지 나도 비혼 여성에 대한 진전된 정책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 공동체 같은 거 필요없으니 단 10평이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마련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 여자 혼자 사는 것이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1인 세대가 늘어가고 특히 비혼 여성이 늘어가는 추세가 있으니, 대출 제도에서 불이익을 입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로운 책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사회과학서를 완독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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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A 1~3 세트 - 전3권 - 너와 나, 우리들의 성장 드라마
허5파6 지음 / 비아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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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잠시 일을 쉴 때 웹툰을 공부하듯, 밀린 숙제하듯 본 적이 있었다. 여기서 '밀린 숙제하듯'은 그만큼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접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지, 숙제할 때 느끼는 그 '부담감'을 뜻하는 건 아니다. 여튼, 재미난 웹툰이 많아 보여서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았었다.

 

[여중생A]는 추천 받았던 작품 중 하나다. 워낙 유명해서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 친구는 아예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다소 우울한 내용이라고 하여 시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일단 두었다.

 

그러고 나서 어제인가, 트위터에서 [여중생A]의 연재가 끝났다는 소식을 보았다. 오늘은 현충일. 앉아서 웹툰 하나 정도는 정독할 수 있을 듯하여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우울함의 수위가 끔찍하게 높지는 않네, 하고 생각했는데 주인공 장미래가 세상을 등지기로 마음먹고 나서 우연히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하루만 사는 날을 더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눈물이 났다.

 

입력이 적어서 요새는 웬만하면 무엇을 보고도 잘 울지 않는데, 아까는 정말 뭐라도 잃은 사람처럼 서러운 감정에 휩싸였었다. 미래만큼 위태롭진 않았어도, 녹록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내왔던지라 알게 모르게 마음이 깊게 쓰였던 것 같다.

 

미래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새벽에 일 나가서 돈을 버는 어머니 사이에 난 중학생이다. 좀처럼 '평화'란 없는 가정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해 택한 것은 게임.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다 보니 높은 레벨의 캐릭터도 갖게 되었고, 학교생활보다 게임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게 된 건, 미래의 단짝이었던 친구가 미래를 돕겠다며 돈을 모았고 그걸 공개적인 자리에서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늘 조용하고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아도, 필요할 때 '한방'이 있는 캐릭터라 그런가 그걸 버려서 이상한 애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것까지 신경쓰냐' 싶은 것들을 미래는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우습게 보이지 않고 나대는 것처럼 안 보일지 머리를 굴리는 것이나, 흔적이 남지 않게 우느라 애쓰는 것 같은.

 

조용히 묻혀 지내고 싶었던 미래는 중3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여론몰이하기 좋아하는 장노란의 눈에 띄어 웃음거리가 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이백합에게는 글쓰기의 경쟁상대로 인식돼 견제당한다. 성게 머리를 한 이태양에게는 마음을 뺏긴다.

 

늘 외로운 자신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도서관에 데려오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같이 보면서 미래는 이태양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이태양은 이백합에게 공개 고백을 하고 사귀게 된다.

 

술 마시고 때리는 아빠는 변치 않고, 팍팍한 날들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이태양은 알고 보니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었으며, 게임을 하던 가상공간에서도 난처하게 된 미래.

 

미래의 이야기는 자꾸만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아도 단지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따돌려질 수 있다는 것, 집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으려면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마음을 열기도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워진다는 것. 모두 내 이야기 같았다.

 

드러내놓고, 혹은 뒤에서 나를 비웃거나 우스개로 만드는 아이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올 한 해를 같이 보낼 단짝을 찾아헤매는 절박한 마음. 애매하게 잘하는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관심. 종종 있었던 아빠의 폭력. 그앞에서 손쓰지 못하고 묵묵히 돈을 벌었던 엄마. 미래처럼 문학을 읽지는 않았으나 책 속으로 도피했던 것도 같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어쩌다 반장선거에서 한 표가 나와서 내가 찍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장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다행히 2학기 때에는 반장이 되었고,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고1 때는 소위 프리라이더와 같은 조여서 그걸 다른 친구들에게 고민상담한답시고 얘기해서 졸지에 수행평가 점수 몇 점에 목숨거는 비겁한 애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여행이 잡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많이 고민했다. 미래는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럴 방법도 없었다. 별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뜻과 상관없이 한 공간에서 같은 무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환경'은 때로 압박이 되어 돌아왔다. 혼자가 된다는 게 너무나 표났기 때문에 늘 내 옆이 비지 않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했다. 딱히 주목받고 싶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성격도 아니고.

 

대학교 1학년 때도 조금 버겁긴 했지만, 그때는 '혼자'가 웃음거리도 부끄러움도 아니었고 많은 부분에서 '혼자'여도 괜찮은 상황이 만들어졌기에 중고등학교 때보다 편했다. 신경쓸 것도 적었고.

 

소외당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경험을 했던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쪼그라들게 만드는지.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따지고 고려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내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미래에 잔뜩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아 요새는 진짜 배부른 소리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랬지, 친구 하나가 아쉬웠고 어떻게 '관계 정립'을 해 나가야 하는지 어려워하면서 살았지, 하고. 지금도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회화가 된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수학여행 때 누구랑 짝하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니까. '내가 꼭 누군가와 한 세트'여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됐으니까.

 

아직 끝을 보진 못했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거나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작품이 마무리되지 않길 바란다. 살면서 대단히 크고 충만한 행운과 행복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아, 이런 맛에 사람들이 생을 유지하는 건가' 싶을 정도의 작은 기쁨들은 종종 찾아오기 때문이다. 미래도 그걸 느껴보길 바란다.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상태를 '나 방금 되게 정상 같았어' 아닌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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