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있게 살아라 - 가장 소중한 이에게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
앤드류 매튜스 지음, 홍은주 옮김 / 고도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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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슨 이유로 내가 이 책의 제목을 수첩 한 귀퉁이에 적어 놓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 지난 수첩에서 다른 것을 찾다가 이 책의 제목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결국 찾아 읽고야 말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이 책은 두께도, 내용도 부담없이 읽을만하다. 다 아는 얘기라고 코웃음치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자연에서 배워라, 물 흐르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풀어 주고 놓아 주어라, 마음껏 현재를 누려라 등, 자기 계발서라기 보다는 동양적인 사상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
리뷰를 대신해서 메모해두고 싶은 내용 몇가지를 옮겨본다.

지금을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가로막고 가두는 것이 아니라 더 유쾌하고 향기롭게 만들어야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것이다. 지금을 충실하게 누리고 살면 우리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진다. 움직이지 않을 때, 힘 없이 손도 넋도 놓아 버리고 있을 때, 누구든 격렬한 두려움의 포로가 된다.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무언가 하는 순간, 두려워하는 마음은 깨끗이 사라진다. 언제쯤 보상받을까 조바심 내지 않고 다만 무엇엔가 몰두하라. 그것이 바로 지금을 사는 지혜이다.
마음을 비우고 평화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움직여야 한다. 무엇이든 하고 무엇에든 열중하라. 그래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무엇이라도 좋다! 아무 것이든 하라! 옛 친구한테 전화를 걸든지, 새 친구를 사귀든지, 체육관에 가든지, 아이들을 공원에 데려가든지, 하다 못해 이웃집 정원 손질이라도 도우며 현재에 몰두하라. (71쪽)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만큼 최악이 없다는 얘기이다.

기다릴 때는, 아니면 우리가 간곡히 원하는 뭔가를 기다릴 때는 시간이 지독히 더디 간다. 즉 기다릴 수록 오래 걸린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에 집착한다면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처한 환경이란 생각보다 심술궂다. 우리가 꼭 그렇게 주장한다면 오히려 반대되는 결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삶으로 뛰어들라. 바로 지금을 누리며 살아라. 한 가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을 하라. 그렇게 하면 결과에 대해 그다지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내버려두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74쪽)

여기서 '내버려 둔다'는 것을 평소에 나는 '마음을 비운다'로 바꿔 말하기 좋아한다. 기대와 기다림으로 머리속을,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한켠으로 밀어놓고 잊은듯이 다른 일에 매진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용서하겠다는 결심은 지금의 삶을 살겠다고 결의하는 것과 같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느니 차라리 과거 속에 살면서 다른 사람 탓이라고 원망할 테야!", 아니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며 살 테야" 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용서하는 일을 뒤로 물러서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으면 자신이 괴롭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도 어렵지만 자신을 용서하기란 더욱 어렵다.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쓸데 없는 죄책감을 벗어 던져야 한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듯이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그에 합당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뱅이의 핑계이다.
우리네 인생과 의좋게 지내면서 지금을 누리며 살 것인지, 저 옛날의 온갖 적의와 싸움 속에 우리를 꽁꽁 묶어 놓을 것인지, 선택은 우리 몫이다. (75쪽)
이건 너무 어렵다. 용서 대신 '포기', '기억에서 지우기'라는 말을 써도 된다면 혹시 모를까.

행복해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결심과 결정과 끈덕짐과 자기 수양을 몽땅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되는, 삶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큰 도전이다. 성숙함이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며, 가지지 못한 보다 가진 것에 마음을 쏟겠다는 의미이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생각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81쪽)

하루에 얼만큼이나 우리는 행복한 생각에 마음을 쏟고 살고 있는지. 단 한 시간이라도?

종종 인생의 목표를 재미있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인생의 목표까지 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점차 그 생각이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었다. 재미있게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별로 그 사람이 부럽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간에 자기가 재미있는 일을, 재미있어하며 하는 사람이 더 존경스럽다. 이제라도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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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 밑에 한마디씩 달아두신 댓구가 더 와 닿습니다.

-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보다 최악은 없단 얘기다.
- (용서) 이건 너무 어렵다. 용서 대신 '포기', '기억에서 지우기'라는 말이라면..
- 재미있게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별로 그 사람이 부럽지 않다. [완전 공감!!!]

hnine 2011-03-11 21:52   좋아요 0 | URL
용서는 정말 신(神)이나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게 하는 사람을 당할 수는 없다고 공자님께서 그러셨던가요? 예전엔 그 의미를 잘 몰랐었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 잘 하는 사람만 눈에 들어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즐기며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완전 공감해주시니 저도 메리포핀스님과 조금 더 가까와진 느낌이 들어요 ^^

마녀고양이 2011-03-1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어요!
하지만 재미라는게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겠죠.

용서..... 아아, 저는 잘 못 하겠더라구요. 언니 말씀대로 포기나 망각 쪽이.
그렇게라도 잘 살 수 있다면 좋은거 아닐까 하고 저를 토닥토닥. ^^

hnine 2011-03-12 16:15   좋아요 0 | URL
인생의 재미라는 것...글쎄, 그때 그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사는 것 아닐까요? 2006년 이후로 저는 재미없는 일은 안하고 살기로 작정을 했어요. ^^

꿈꾸는섬 2011-03-1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새 제 생활보단 아이들 생활에 더 중점을 두고 살고 있거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더 많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긍정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 보는 것도 즐겁네요.^^

hnine 2011-03-14 04:5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아무래도 엄마가 자신의 생활보다는 아이들에 더 중점을 맞추게 되지요. 어릴 때의 아이들은 엄마 에너지의 공급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감과 긍정의 원천이 되는데 한 역할 하는 것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것을 보고 엄마는 보람과 즐거움을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좋지요.
 
하드 러브 메타포 8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메타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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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인 잡지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혼자 글을 써서 얇은 잡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것이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져다 놓으면 관심있는 사람들이 집어다 읽고, 계속 구독하고 싶으면 잡지에 있는 주소로 우표값 정도 보내면 발송해주기도 한단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나는 감정 결핍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책의 주인공 존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으로서 '바나나피시'라는 제목의 총 열 두쪽 짜리 1인 잡지를 펴내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1인 잡지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탈출속도'라는 제목의 1인 잡지를 펴내는 마리솔을 만나게 되고 점차 이 4차원 영재 소녀에게 빠져들지만, 스스로 동성연애자임을 밝히고 다니는 마리솔은 존의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른바 하드 러브 (Hard love) 의 시작이다.
여기에 존과 마리솔의 가족 상황도 심상치 않다. 존의 아버지는 단조롭고 가족에 매여사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엄마와 이혼을 단행하여 집을 나갔고 엄마는 그 이후로 스스로의 동굴에 갖혀사는 생활을 수년간 해왔다. 그런 엄마를 측은해하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럽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존은 막상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자 자기의 갈 길에 대해 혼란을 겪으며 더욱 시니컬해진다.
한편 마리솔은 어릴 때 친엄마로부터 버림을 받고 지금의 양부모 밑에서 비교적 이해와 사랑 속에 성장해가지만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를 늘 잊지 못하면서 원망하기 보다는 이해해보려고까지 노력한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분노하고 엄마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존에게, 보내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부모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권한다. 마리솔의 그 충고에 따라 존이 아빠에게 쓴 편지 중 일부가 다음과 같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편지 쓰기는 쉬웠어요. 수많은 이유로 엄마한테 화가 나지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은 드니까요. 엄마는 아직도 내가 하는 말을 들어 줄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죠. 아빠는 내 말을 절대 듣지 않겠지만 이건 그냥 연습일뿐이니까 아빠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써보려고 해요. (...) 아빠를 미워하지는 않아요. 증오는 강한 감정인데 아빠에게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가봐요. 당신은 누구세요? 자신이 바라는 이기적인 생활 방식에 맞지 않는다며 아내와 아들을 떠난 남자. 매주 금요일 밤 아들과 저녁을 먹지만 아들에게 할 말이 없는 남자. 아들이 여자 애를 집으로 데려와서 마리솔의 청바지를 샤워봉에 걸쳐 놓을 때까지는 아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남자(...) 난 언젠가 정말 멋진 소설을 쓸 거고, 그제야 아빠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질 테고, 세상 사람들에게 "내 아들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겠죠. 그럼 난 말할 거예요. "기억나요. 예전에 금요일 저녁 베르투치에서 피자를 먹을 때마다 봤던 사람이군요 (이 아빠는 아들과 만나는 날이면 늘 이 식당에 가서 말없이 저녁을 사주곤 했다). 거기서 나 혼자 저녁을 먹을 때 말이에요."

-아빠를 꼭 닮아 자기 밖에 모르는 아들, 존 프란시스 갈라디 주니어. (188쪽)

멋진 소설가가 될 자질이 보인다는 말 밖에.
마리솔과의 힘든 사랑, 부모 사이에서의 갈등. 어떻게 보면 식상한 주제이지만 작가는 재치있는 대사와 개성있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살림으로써 이 소설을 아주 읽을만한 소설로 완성해놓았다.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이 살아있다.
자기정체성, 진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상황으로부터의 탈출, 곧 성장. 이것들을 독자들에게 던져 주는 이 소설에서, 힘든 사랑은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사람의 인생의 퍼즐 일부를 완성시킨다. 더 완성된 사람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주인공 존과 마리솔 뿐 아니라, 존의 엄마 역시 자기의 상처에서 힘겹게 빠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또 언제 어떻게 힘든 사랑을 통해 인생의 퍼즐을 맞춰 나갈지 모르는 일.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여 궁금해지는 노래와 시와 소설이 있다. 존이 펴내는 1인 잡지의 제목 <바나나 피시>의 유래라고 여겨지는 샐린저의 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이 실려 있는 <아홉가지 이야기>와 시인 John Berryman의 시 Dream song 14, 그리고 밥 프랑케의 노래 Hard Love이다.
<13> 이란 소설집의 필자로 참여한 저자의 글이 재미있어 그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다가 읽은 책인데 재미있다. 아마도 그녀의 또 다른 책을 찾아나설 것 같다.  

-- > 작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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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바나나피쉬라는 유명한 만화도 있어요, 꽤 충격적인.
바나나피쉬가 마리화나의 은어이지요? 아니면 다른 마약이던가?
그래서 청소년의 반항과 직결되는 용어로 자주 나오나봐요.

편지가 참 좋았어요. 코알라가 제게 쓰는 편지는 어떨까여?
자기 멋대로 하는 엄마, 저기서 별로 나을거 같지두 않아요. ^^

hnine 2011-03-12 16:18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바나나피쉬라는 만화가 있는 것도 몰랐고, 마리화나의 은어라는 것도 몰랐어요. 바나나피쉬라는 물고기가 정말 있는데 좀 특이하긴 하지요. 전 그것만 알고 있었네요. 청소년의 반항과 직결되는 용어라...
저 책에서 캐릭터가 잘 살아있다고 했는데 저는 아빠의 입장도,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아주 안되지는 않더라고요. 주인공 남자아이의 입장은 물론이고요. 작가가 글을 잘 썼어요.

하이드 2011-03-1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피쉬, 셀린저 단편 중에도 있지 않나요? 뭔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바나나피쉬, 전쟁때 군인들이 썼던, 마리화나보다 더 강한 그런 마약.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쨌든, 1인잡지 같은거 늘 하고 싶어하고 있어요. 링크해주신 페이퍼 가봐야겠어요.

hnine 2011-03-13 06:45   좋아요 0 | URL
바나나피쉬,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 에 실린 단편 중 하나라고 안그래도 위에 적어놓았어요.
1인 잡지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 요즘은 워낙 블로그가 대세라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더 편하고, 반응이 빠르니까요. 그래도 활자화된 것이 가지는 매력이 있는데 말이지요. 자기가 쓰는 글에 대한 책임감도 좀 더 할 것 같고요.
 

 

 제6회 푸른 문학상 동화집 조태백 탈출사건 외

우리 나라 창작 동화 중에 등장하는 식물원이나 정원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다. <엄마의 정원> 을 비롯하여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모두 읽을만 했다. 
<구경만 하기 수백번> 조 향미 작
반에서 태준이 일당에게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진우를 보며, 나서서 말리거나 선생님에게 알릴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아이의 심리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꿈틀하는 지렁이를 보고 감정 이입을 하는 비유가 좋았다.
<상후, 그 녀석> 공 수경 작
열성 혹은 극성 엄마 덕에 시험, 학원 등 얽매인 생활을 하고 있는 상후의 잠재된 소망이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어느 대상에게 투사되어 대리 만족을 한다는 설정이 특이하다.
<조태백 탈출사건> 황 현진 작
부모와 한집에서 살고 있으나 사실 부모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침에 바쁘게 출근하는 엄마, 택시 운전일을 하여 오후나 되어야 일어나는 아빠를 둔 태백이는 숙제장 살 돈을 급하게 구할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집에 도둑이 들어서 숙제장을 못가져왔다고 거짓말을 한것. 결국 거짓말이 들통나고 아빠로부터의 욕을 피해 집을 나온 태백이는 교장 선생님과 형의 이해로 마음을 돌려먹는다. 아이들의 거짓말은 그 자체를 야단치고 벌주기 보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해주는 작품이다.
<누구 없어요?> 조 현실 작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마저 사고로 잃고 장례가 끝난 후 빈집에 혼자 돌아온 아이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지만 집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옆집에 역시 혼자 사는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고 배가 고팠던 아이는 아저씨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에 침이 고이며 식욕을 느낀다. 제목에서부터 누군가의 관심과 돌봄을 요청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독자에게도 확실히 들린다.
<엄마의 정원> 김 화순 작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간호하던 아이는 어느 날 병원 옥상에서 정원을 발견하는데, 식물인간이 되어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 평소에 자기가 좋아하던 진짜 식물로 변해 이루어진 정원이다. 아이의 손길이 닿으면 그 식물은 원래의 사람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고 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던 식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아이의 절실한 바램과 환타지 세계가 접목된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식물인간이라고 이름 붙여질 때와 달리 실제 식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글 속에 묘하게 대조되어 있다.
<낯선 사람> 김 일옥 작
내 가족이 아니면 일단 낯선 사람으로 보고 경계해야 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내용이다. 이웃에서 도난 사고가 일어난 물건을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그 친구의 아버지를 좀도둑으로 의심하기 까지 아이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고 얼마나 주의를 들었을까.
<마니의 결혼> 이 혜다 작
맹랑하다고 해야하나, 순진하다고 해야하나. 식구들이 많아 복작거리는 집에서 자기의 의지는 무시당하기 일쑤라고 생각한 여자 아이 '마니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막내라서 지어진 이름)'는 맘에 드는 남자 친구인 성준이와 결혼해서 자기들끼리 따로 살기로 했다고 식구들 앞에서 선언한다.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는 대신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반응하는 마니의 식구들. 실제 살림을 차릴 준비를 하다가 마니가 깨닫는 것은? 가족의 의미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알려주는, 재미있는 소재의 작품이다.  

 


최나미 작 <셋 둘 하나> 외 

아이들이 등장하는 책을 어른이 쓸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어른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가라는 소개를 듣고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제일 먼저 읽게 된 책인데 <수호 천사>, <마술 모자>, <셋 둘 하나> 이렇게 세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수호 천사>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자혜의 반에 선우가 전학을 오면서 그 인기도는 선우쪽으로 기울게 된다. 작가는선우라는 아이의 특이한 캐릭터 설정을 잘 해 놓았다. 그 아이를 통해 미움과 호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자혜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게 잘 그려져 있다.

<마술 모자>
외로운 아이와 외로운 아줌마가 등장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할머니, 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는 아이는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어 식구들과 늘 충돌한다. 우연히 동네 공터에서 만난 리어커에서 물건을 파는 아줌마와 가까와 지고 그 아줌마의 집까지 따라가서 알게 된 것은 자기보다 더 외롭고 딱한 아줌마의 상황이었다. 아줌마가 리어커에 가지고 있던 물건중 팔지 않는 것이라고 하던 마술 모자를 아줌마는 선물로 남기고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셋 둘 하나>
열 세살 아이가 등장하는 국내 창작을 찾아보다가 읽게 된 책이다. 셋이 친구일 때와 둘이 친구일 때, 그리고 혼자 다닐 때, 한 사람씩 인원이 많고 적고의 차이뿐 아니라 그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다. 원래 셋이서 친하게 지내다가 반에서 왕따 당하고 있는 은혜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함께 그룹에 끼워주고 어울려 다니지만 정작 은혜가 느낀 것은 단순히 고마움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쓴다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보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도가 너무 드러나는 작가들도 있다. 아마도 최 나미 작가는 아이들의 내면 심리를 연구하고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타입이 아니가 생각된다. 어른들이 모르거나 놓치기 쉬운 아이들의 결핍, 아픔, 소망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을 글 쓰는 이유로 삼고 있지 않을까 혼자 추측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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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3-11 12:17   좋아요 0 | URL
어쩌면 당연할지도...위의 책은 거의 처음 등단한 작가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아래 최 나미 작가는 저도 이름만 들어보았는데 아는 분이 추천하시길래 읽어보았어요. 어린이책을 읽기는 하지만 저는 솔직히 그냥 소설이 더 재미있어요 ^^

어서 건강이 회복되어서 왕성한 활동을 재개하셔야 할텐데요.
 
후편도 계속 내주셔야해요.

 

끝까지 웃는 모습을 보여준 조 수진씨의 소식을 오늘 들었다.
항암 치료 받던 중 증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귀여운 얼굴, 또랑또랑한 인터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은데,
일부러 블로그에 찾아가 화이팅 댓글도 남기고 왔더랬는데, 
이제는 후편을 볼 기회는 영영 없게 되었다.
 

마음이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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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3-0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침마당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결국 유명을 달리했군요. 안타깝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nine 2011-03-08 22:37   좋아요 0 | URL
장난꾸러기 소녀 같은 인상을 주는 아가씨였어요.
제가 한참 우울할때 그녀의 책을 보게 되었는데 제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책을 보며 배우기도 했는데...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참 밝고 맑았어요.

sangmee 2011-03-0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글 보고 검색해보니까, 참 곱게 생긴 아가씨였네...
맘이 안좋다 정말.

hnine 2011-03-08 22:39   좋아요 0 | URL
얼굴도 예쁘고, 재능도 있고, 말도 잘하고, 성격도 밝고, 그런 사람으로 보였어. 감기가 어째 낫지 않고 오래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암으로 판정받고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텐데. 그 긍정적인 마음과 오기로 이겨내기를 바랬는데.

진주 2011-03-0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얼굴 그러니까 떠오르는 얼굴이 있네요.
오방떡 소녀 말이지요?
만화 보면서 힘내라고 응원도 많이 했는데...ㅠㅠ

hnine 2011-03-08 22:40   좋아요 0 | URL
오방떡 소녀 맞아요. 얼굴형을 보고 그렇게 별명이 붙었다지요.
여러 사람의 응원을 받고서 힘을 많이 냈을텐데, 스물 일곱에 암 판정을 받고 서른 둘의 나이로 세상을 떴네요.

하늘바람 2011-03-0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에고 참~

hnine 2011-03-08 22:41   좋아요 0 | URL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이라지만, 이럴 때의 허무함이란 쉽게 지나가지지가 않아요.

잘잘라 2011-03-0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워요.
저도 TV에서 보고 참 밝다, 이겨내겠다 했는데...
웃는 모습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오방떡소녀..

hnine 2011-03-08 22:41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도 TV에서 보셨군요.
맞아요. 많은 사람에게 웃는 모습으로 기억될 사람이어요.
오방떡 볼때마다 생각나면 어쩌죠? ㅠㅠ

카스피 2011-03-08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턴 의사와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간다고 하던데 참 안타깝더군요ㅜ.ㅜ

hnine 2011-03-08 22:43   좋아요 0 | URL
이 세상 사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갔어야했는데, 사람은 가고 책만 남았네요.
 

 

 

어릴 때의 기억은 때때로 얼마나 끈질기게 뇌 속에 박혀있는지, 새삼 우리의 기억 시스템이 신기하기만 하다.
중학교 2학년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음...30 여년 전. 난 팝송을 무척 좋아했다.
TV의 영어 교육 방송에서 가끔 팝송 가사를 해설과 함께 소개해준다는 것을 알고는 열심히 찾아서 시청하고 있던 어느 날 이 노래가 소개되었다. 이 노래는 그 당시에도 이미 올드 팝송에 속하는 노래였는데 상큼한 리듬과 여자 싱어의 투명한 목소리가 절로 따라서 부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여기에 가사까지 의미있게 와닿으면 완전 몰입하게 되는건데, 이 노래 가사가 지금 봐도 그렇지만 열 다섯살 나에게도 참 좋았었나보다.

한쪽에서만 보시나요? 이쪽 저쪽에서 보고 생각해보세요. 좋은 면만 있지도 않고 나쁜 면만 있지도 않아요. 난 인생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본답니다.

내맘대로 다시 써본 가사 일부이다. 원래 Joni Mitchel 이 부른 노래인가본데 그 날 방송에선 Judy Collins의 노래로 들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Both sides now 하면 Judy Collins의 목소리를 먼저 떠올린다.  

이렇게 배운 팝송으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keep ~ing 형태 구문을 소개하기 위해 채택된 노래 같지만 사실 내게는 여기서 raindrop이란 단어가 단순히 빗방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고난, 어려움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듣고서 그 날 이후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노래가 되었다. You've got a friend도 있구나. If I needed you도 있고. 

당시 그 방송을 담당한 강사는 서강대 객원교수라고 소개되던 서 승현 교수. 얼마전에 EBS를 보다가 영어가 아닌 관광 매너인가? 그런 프로그램을 하고 계신 걸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30년전 마음에 와서 박힌 노래들을 지금 다시 불러도 좋다.
한때 열광하다가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많은데, 어떤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뭉클했던 감동 그대로 남아서 추억하게 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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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06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중학교 2학년때 촌에서 도시로 전학했고, 팝은 고등학교 때나 알게 됐어요.
그때 친구들과 흥얼거렸던 올드 팝이 생각나네요.
음악이든 영화든....추억을 불러오는 게 좋지요!^^

hnine 2011-03-07 05:02   좋아요 0 | URL
중학교 2학년이면 한참 사춘기때였겠네요. 저는 중학교 입학전 아버지께서 사주신 라디오 덕분에 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라디오 키드가 되었어요. 저렇게 어느 한 노래가 떠오른 날은 하루 종일 그 노래만 흥얼거리게 되더라고요.

kimji 2011-03-07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oth Sides Now는 Joni Mitchell곡으로 좋아해요. http://youtu.be/tKQSlH-LLTQ Joni Mitchell의 노래라면 어떤 노래라도 좋아하지만요.

저도 초등생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즐겨듣고 자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께서 팝송으로 영어를 가르치시는 시간이 있어서, 많은 올드팝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더랬죠. 그때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곡은, 'Dick And Jane' 였어요. http://www.youtube.com/watch?v=7teCYJRNV1I 뭐랄까, 인생이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달까요. 아, 겨우 열일곱살짜리가 말이죠^^ 그리고 'Starry Starry Night' 도요. 생각해보면, 그 당시 참 개혁적인(?) 영어선생님이셨던 거 같아요.
아무튼, 덕분에 저도 오래전 노래를 찾아 다시 듣는 아침입니다!

hnine 2011-03-07 10:08   좋아요 0 | URL
지금 막 노래 듣고 왔습니다.
위에 말씀하신 노래들은 저도 다 아는 노래라서 반갑네요. 인생이란 것은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열일곱살 고등학생이라니, 우린 이미 그때 다 커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노래는 좋아하면서 여전히 한 방향에서, 한 가지 안목으로만 보고 판단하고 절망하는 제 모습이라니...이제는 both sides를 넘어서 multi sides로 세상을 봐야하는 때인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마녀고양이 2011-03-0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곡 너무너무너무 좋아해요.
첫머리만 들어도 달콤하잖아요. 목소리도 사라락하게 부드럽고.
아...... 너무 좋아요. (고개 까닥이며 듣는 중 이예요~ 나인 언니)

hnine 2011-03-07 20:57   좋아요 0 | URL
난 구세대라 그런지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 노래가 좋던데, 요즘은 그런 노래를 내가 못찾는건지, 별로 없는건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노래로, 영화로 위안 받으며 지내고 있어요. 어제는 하루에 영화를 두편이나 봤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