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카푸치노 같은 것, 거품이 많지만 그러나 따스한 것,

파세라, 날 잡지 마,

가을은 오는데

 

 

=김승희 <파세라 (passera)> 일부=

 

 

인생이 카푸치노 같은 것이라는 구절보다 뒤에 나오는 거품이 많지만 그러나 따스한 것이라는 구절을 생각해본다.

시인이 인생을 카푸치노 같다고 보는 이유.

인생이 카푸치노 같을 때도 있고, 에스프레소 같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자판기 밀크 커피처럼 달달, 끈적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나?

이 시의 제목 passera는 스웨덴어로 지나가다, 흘러가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영어의 pass에 해당하는 말인가보다.

 

 

 

밥 짓는 주부답게 이 시집의 다음 시에서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새벽밥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랴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김승희 <새벽밥> 전문=

 

 

아침에 밥을 안먹겠다는 아들 때문에, 새벽에 밥을 짓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밥 대신 과자 같은 시리얼. 그것도 겨우 먹고 간다.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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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6-09-3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두 개. 아들꺼 딸꺼요. 애들 아이때 너무 바빴던 엄마였어서 도시락으러 그 시간을 사죄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밥이 뜸들어가는 것을 사랑이 익어가는 것으로 시인이 썼네요. 시인이 놓친 밥냄새, 를 여기 얹져놓고 갑니다. 밥냄새가 상상하니, 간강게장의 맛도 입안에 번집니다. 내 몸이 기억하는 오감들. 크! 그게 진짜 시..일지도요.

hnine 2016-09-30 18:05   좋아요 0 | URL
냄새는 가끔 다른 어떤 감각보다 오래 기억 속에 남는 것 같아요. 새벽의 밥 냄새, 그리고 새벽 자체의 냄새, 새벽 공기의 냄새를 저는 무척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새벽밥 짓던 때가 그립기도 해요. 그런데 문제는 반찬 만드는 건 늘 고민이지요. 잘 못하거든요. 도시락을 매일 두개씩 준비하신다니, 부지런하게 새벽을 여시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코스모스꽃의 우리말 이름은 살랑이꽃.

꽃의 생김새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우주,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 코스모스와 꽃 이름 코스모스는 무슨 관계일까 한동안 궁금했었다. 이 하늘하늘하고 여리디여려보이는 꽃 이름이 어떻게 우주, 질서라는 의미의 코스모스가 되었을까.

 

검색해보니 이 꽃이름이 코스모스가 된데에는 이 꽃으로 '장식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식한다? 그러면 원래 코스모스의 뜻인 우주, 질서, 조화와 장식한다는 뜻은 또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

아마도 완전한 체계를 가진 질서와 조화는 곧 아름다움으로 이어지고,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장식에 이용된다는 뜻으로 발전한 것 같다.

 

 

 

 

 

 

 

 

 

코스모스는 흰색, 분홍색을 주로 봐서인지 남편은 이게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면서 어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갔다.

"코스모스!"

보자마자 자신있게 대답하는 나에게 남편은,

"노란색 코스모스가 어딨어."

라면서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흔한 색은 아니지만 색깔보다도 우선 꽃과 잎의 생김새가 코스모스 맞다고 자신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 꽃의 이름은 보이는 그대로 노란 코스모스, 황코스모스, 또는 황화 코스모스.

 

 

 

 

천변에 계획적으로 조성한 단지인지, 다른 색 코스모스는 거의 없고 모두 이 노란 코스모스가 밭을 이루고 있었다.

 

 

 

 

 

 

 

 

 

 

 

 

뒤에 보이는 저 산은 계룡산이겠지.

 

 

 

 

 

 

 

하늘 향해 브이자 (V) 를 그리고 있는 꽃과 가지.

 

 

 

 

 

 

여기서 지금 제일 바쁘신 양반이다.

벌!

 

 

 

 

 

 

 

 

 

 

 

 

 

 

우연인가? 뒤에 보이는 건물 (지역 방송국) 벽에 시립미술관의 기획전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기획전 제목이 <COSMOS>이다.

 

 

 

 

 

 

 

 

질서와 아름다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던 오후, 짧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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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6-09-2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랑이꽃`이라는 이름은 요즈막에 누군가 지은 듯한데
잘 어울리네요.

그런데 꽤 옛날부터 `살살이꽃(살사리꽃)`이라는 이름이 쓰였어요.
바리데기 이야기에서도 `살살이꽃`이 나온답니다.

hnine 2016-09-25 14:39   좋아요 0 | URL
아 예~ 살살이꽃도 검색하다가 봤는데 그게 더 오래된 이름인가보네요 ^^
바리데기에서도 이름이 나왔다면 역사가 아주 오래된 이름인데, 그만 외국 이름이 더 익숙해져버렸네요. 라일락처럼.

stella.K 2016-09-25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노란 코스모스가 있었군요. 이것도 예쁘네요.
멋집니다!^^

hnine 2016-09-25 14:47   좋아요 0 | URL
확실히 노란색이 사람들 눈길을 확~ 잡아끄는것 같아요.
stella님 책 표지도 그렇잖아요? ^^

stella.K 2016-09-25 14:51   좋아요 0 | URL
ㅎㅎ 제 노랑과 h님 꽃 노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꽃 노랑이 더 예쁩니다.^^

Nussbaum 2016-09-26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하늘이 이렇게나 파랗구나.. hnine님 사진보고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차로 일터에 다니다보니 하늘 볼 일이 적은데, 다시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교차가 심하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

hnine 2016-09-26 15:22   좋아요 0 | URL
네, 하늘이 아주 파랗습니다.
하늘이 파라니 꽃색깔이 더 선명하고요. 굿 콜라보레이션이죠? ^^
 
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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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어떤 읽기 모임에서 한번 다뤘던 책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때는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건지 헤매이기만 했을 뿐, 받아들이는 것 보다 놓치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한동안 밀쳐 놓았다가 올해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아니 읽을 기회를 만들었다. 서양고전문학 강의를 듣는데 역시, 첫날 첫 강의가 일리아스였니까.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Rage-Goddess, sing the rage of Peleus's son Achilles"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스와 트로이는 10년째 전쟁을 하고 있는 중. 그런데 그리스 진영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인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 왕에게 삐져서 난 이제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아가멤논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아킬레우스는 요지부동. 결국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 대신 아킬레우스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에 참여한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의 맏왕자이자 가장 뛰어난 장수인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킬레우스는 분노하여 트로이의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끌고 다니며 치욕을 보인다. 트로이의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은 아킬레스를 만나 간청해 간신히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아온다.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은 이날 부터 헥토르 장례를 마치기까지의 10일 동안 휴전한다.

이 휴전 기간동안 프리아모스왕의 딸인 트로이의 공주 폴뤽세나에게 사랑을 느껴 그녀와 혼담을 진행시키기 위해 아폴로 신전으로 가던 아킬레우스는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발뒤꿈치 (아킬레우스 건)를 맞고 죽게 된다.

한편 그리스 군에서는 지략가 오디세우스의 계획에 따라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 앞에 갖다놓고 소문을 퍼뜨리고, 이 목마를 잘못 해석한 트로이군은 성벽을 허물고 이 목마를 스스로 성 안으로 들여놓는다. 밤이 되어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밖으로 나와 트로이성을 불태우고 트로이는 함락된다. 이것으로 형식상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끝난다.

여기까지가 일리아스의 대강의 줄거리이다.

일리아스와 짝을 이루는 <오디세이아>는 이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제목처럼 그리스 군의 지략가 오디세우스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 책 <일리아스>는 무슨 뜻? 일리온의 노래라는 뜻. 일리온 (Ilion) 은 트로이의 다른 이름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 오디세우스라면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이다. 두 인물을 비교해놓은 문헌도 많이 나와있다.

 

  • 일리아스의 저자는? - Homer
  • 쟝르는? - Epic poem: Epic이란 민족의 이상과 정신을 일깨워내는 문학을 말한다.
  • 쓰여진 언어 - 고대 그리스어
  • 쓰여진 시기와 배경 무대 - 확실하지 않으나 대개 그리스 본토, 기원전12-13세기로 추정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다음은 일리아스 9권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킬레우스를 포이닉스와 오디세우스가 찾아가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아킬레우스의 거부의 답변이다. 일리아스에서 손꼽히는 rhetoric 중 하나라고 하여 옮겨본다.

 

I say no wealth is worth my life! Not all they claim

was stored in the depths of Troy, that city built on riches,

in the old days of peace before the sons of Achaea came-

not all the gold held fast in the Archer's rocky vaults,

in Phoebus Apollo's house on Pytho's sheer cliffs!

Cattle and fat sheep can all be had for the raiding,

tgripods all for the trading, and tawny-headed stallions.

But a man's life breath cannot come back again-

no raiders in force, no traiding brings it back,

once it slips through a man's clenched teeth.

Mother tells me,

the immortal goddess Thetis with her glistening feet,

that two fates bear me on the day of death.

If I hold out here and I lay siege to Troy,

my journey home is gone, but my glory never dies.

If I voyage back to the fatherland I love,

my pride, my glory dies...

true, but the life that's left me will be long,

the stoke of death will not come on me quickly.

아카이오족의 아들들이 오기 전 그 옛날 평화로운 시절에

번화한 도시 일리오스가 갖고 있었다고 하는 모든 부(富)도,

바위투성이의 퓌토에 자리 잡은 명궁 아폴론의

돌 문턱 안에 쌓여 있는 모든 보물도 내게는 결코

목숨만큼 소중하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오

소떼와 힘센 작은 가축 떼는 약탈해올 수가 있고

세발솥과 말들의 밤색 머리는 사올 수가 있지만

사람의 목숨은 한번 이빨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나면

약탈할 수도 구할 수도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420쪽)

 

운명이라는게 정말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운명이 있다고 해도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는 인간의 몫이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가 알려준 두가지의 상반된 운명중 오래 수명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쪽을 택하였다.

 

그리스 신화를 문학보다는 신화로 보는 데 반해 일리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출발하였으나 문학으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근거는, 신화에 수사를 (rhetoric) 더하여 재탄생시켰고, 그럼으로써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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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문헌
강영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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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 신간 소식을 보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구매를 해버렸다. 생각해보니 한국 소설을 실로 오랜만에 구입하여 읽어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나로 하여금 다시 한국 소설을 읽게 한 작가 강영숙. 이 소설은 나의 그런 기대에 부응했을까?

 

귀향: 歸鄕. 고향으로 돌아감. 여자는 태어나고 자란, 오랜 시간 자기와 함께한 고향에 별로 애착이 없다. 현재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단지 짧은 기간 사귀다 헤어진 남자, 그리고 그 상처일뿐. 그 상처는 결국 그녀의 발길을 별 애착 없는 고향으로 돌리게 하는데, 가는 길 만나는 다양한 인간형들은 그동안 그녀가 살아온 행로를 대변한다고 보면, 제목 귀향 역시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폴록: J는 환경운동단체의 인턴사원. K는 환경단체이사. J가 K를 인터뷰하러 간다. 인터뷰 도중 K가 느닷없이 언급하는 폴록의 그림. 그림처럼 이 글의 구성은 구심적이기 보다는 원심적이라는 느낌이다. 폴록의 그림을 인용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작품의 주제와도 너무 연결이 안되는 제목 아닐까.

 

불치 不治: 이건 또 무슨 얘기란 말인가. 중심도 주제도 모르겠고 앞 뒤 내용의 연결도 잘 안된다. 담배피우는 간호사들 얘기가 이 단편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제목의 의미도 역시 모르겠고. 읽어나가는 내내 부스러기를 만지는 기분이다. 뭉쳐지지 않는 부스러기.

 

맹지: 눈먼 땅 盲地. 그저그런 목숨들이 발 붙이고 있는 땅의 계급은 맹지. 비싼 돈 주고 하이힐 사서 신고 다니는 땅은 다른가? 맹지에서 붕 떠 사는 듯한 특권층들이 사는 곳. 떠 있다 뿐이지 별볼 일 없는 목숨들이 딛고 사는 땅이나 다를 바 없는 맹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모가 먹다 남긴 마카롱 반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마카롱은 끔찍하게 달았다. 이 맛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맛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119)

 

해명: 바다 해 울 명. 뭔가 있을 것 같은 제목에 비해 다 읽고도 마음에 남겨지는 것이 없다. 중심 없이 주변 묘사만 어지러울 뿐. 제목마저 내용과 아무 연결이 안된다.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사탕을 입에 넣자 갑자기 치통이 느껴져 주저 앉고마는 마지막 장면은, 감춰져 있던 통증을 우연한 단맛이 일깨워 몸 전체를 통째로 주저앉게 만든다는, 삶 전체를 마비시킨다는 상징으로 해석해보지만 이것 역시 나의 억지일지 모른다는 석연치 않음.

 

검은웅덩이: 검은웅덩이는 암울한 정체를, 건물의 벽은 제압, 제한을, 주인공 정연이 지하철에 갇히는 상황은 절실하고 급박한 주인공의 상황을 대변한다. 25년간 몸담은 직장 은퇴후의 삶이 제발 이 작품에서처럼 웅덩이 같이 고여있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고여있다는 것은 곧 죽음이 아닌가. 어쩌면 정연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어 애쓰는 것은 그래서일 것.

 

가위와 풀: 정유미 실장이 팔걸이의자를 가져오는 순간, 나는 나무보트에 매달린 끈을 가위로 똑 끊었다. 스스로 끊는 것외에는 방법을 몰랐다. (199) 문장이 웬지 섬찟하다. 스스로 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가. 제목 가위와 풀에서 풀은 제대로 등장하여 역할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생각.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크훌: 크훌은 인간의 웃음소리, 아니 탄식의 소리. 작중화자가 말하는 대상 '당신'은 하느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 현실적인 내용 연결고리가 그나마 탄탄해서 가독성 있고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제목의 개성과 의미, 상징도 살아있다. 너무 다 가질려고 한 것 잘못했습니다 라고 주인공이 탄식하며 우는 장면이 기억에 한동안 남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아쉬워 책 뒤의 해설까지 읽어제낀다. 첫마디가 이렇다.

'강영숙은 큰 몸을 지닌 작가다. 그가 쓴 소설들은 단순히 등장인물 몇 사람의 기억이나 경험 혹은 단면에 머무르지 않고 이들이 거주하는 세계에 대한 상념을 한데 끌어들인다 (228)'

강영숙에 대한 해설의 이 말이 맞다면 이 소설집은 그녀의 이런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론가의 이 말을 아주 부정하고 싶지는 않은 걸 보면 아직 작가에 대한 내 기대는 살아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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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9-17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접하지 않은 작가입니다. 단편은 호흡이 짧고, 머리를 써야 해서 쉽지 않네요.ㅎㅎ
비 오는 토요일, 편안한 연휴 보내시나요?

hnine 2016-09-17 15:44   좋아요 0 | URL
호흡이 짧고, 그래서 머리를 써야하고. 단편의 특징을 세실님께서 콕 집어 말씀해주셨네요. 그래서 코드가 잘 맞지 않거나, 아니면 집중해서 작품 속에 빠져 읽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럴때의 허무감이란 ㅠㅠ
기대가 커서 실망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작가에 대한 애정은 아직 건재합니다.
여기도 비가 여름 장마때처럼 오네요~

수이 2016-09-17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서 좀 아쉬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도 나인님 말씀처럼 실망한 그만큼 기대도 애정도 계속 갖고 가려구요. 강영숙의 다음 작품집.

hnine 2016-09-17 17:53   좋아요 0 | URL
제가 야나님 페이퍼 덕분에 이 책이 출간된걸 알게 되어 반가움의 댓글을 남겼었지요.
그래도 크훌이나 검은웅덩이 같은 글은 공감이 되었어요. 크훌은 단숨에 읽히기도 했고요. 작가와 독자의 적절한 거리 유지, 적절한 코드를 잡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지요. 너무 멀어도 안되고 너무 가까와도 좀 그렇고요.
 

 

추석, 설, 제사 준비를 해온지 연차가 쌓여가다보니 꾀인지 요령인지 모를 것들이 조금씩 생겨난다. 

준비를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일만 더 오래,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추석 전날, 그것도 늦은 오후에야 장을 봐다가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 결과, 준비를 다 못 마치고 밤 11시에 잠깐 누워 쉬었고, 새벽 1시30분에 다시 일어나 마저 다 하고 나니 새벽 5시, 그대로 아침을 맞았다.

나는 추석날 친정까지 두 군데 뛸 여력이 안되어 아예 시아버님 산소만 다녀오고 말지만, 우리집에 와서 차례 마치고 친정으로 또 가야하는 동서네를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는 것이 낫기에 차례 후 서둘러 아침상만 차려 식구들 먹게 하고는 설겆이 거리 그대로 두고 아버님 산소를 향해서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도 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들이 배탈이 난 것. 화장실 들어가서 영 나오질 않는다. 10분, 20분, 30분.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남편이 아들보고 너는 집에 그냥 있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하면 안되니까.

배탈에 좋은 매실도 집에 있고 생밤도 마침 깎아놓은게 있으니 꺼내 먹으라고 하고 우리끼리 출발했다.

 

산소 갈때보다 차례 지내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가 훨씬 막혔다.

운전하는 남편은 졸릴까봐 껌을 너무 자주 씹었더니 나중엔 턱이 다 아프다고 했을 정도.

 

집에 전화했더니 아이는 배 아픈게 괜찮아져서 점심으로 우동까지 끓여먹었다고 해서 안심했다.

 

5시 다 되어 집에 들어오면서, 들어가자 마자 늦은 점심을 차려야 할 생각, 그보다도 아침에 설겆이 못하고 그대로 두고 나왔으니 그것부터 해야하나,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보니, 제기들이 마치 차례를 올리기 전 처럼 이렇게 설겆이 마치고 정리가 되어 있다.

 

 

 

 

아들 말이

"심심해서 했어요."

 

배탈은 금방 가라앉았고, 점심 혼자 차려 먹은 후 설겆이 하는 김에 다 해버렸다고.

1시간 반 걸리더란다.

안 할때 하라고 하기보다, 했을 때 많이 칭찬해주라는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했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걸레를 빨아들고 주방과 마루 바닥을 닦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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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09-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이거 완전 대박~!
드라마틱한 반전의 추석이군요~! ^^

hnine 2016-09-16 12:2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반전 ^^
반전은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어제는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음식해놓은 것이 있으니 연휴동안은 식구들이 집에 있어도 반찬 걱정 따로 안해도 좋아 그것도 일 한가지 덜었다 싶습니다.

마노아 2016-09-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제가 다 훈훈하네요.^^

hnine 2016-09-16 12:29   좋아요 1 | URL
명절때 주부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이 일의 양도 양이지만 가족간 불균등한 노동 시간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가족들이 함께 하면 해결될 일 같아요.
아이에게, 남편에게 고마운 하루였어요.

책읽는나무 2016-09-16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들이어요^^

저는 글의 도입부분 읽으면서 최대한 늦게 장을 보고 음식을 하셨대서 이것도 묘책인가?싶어 엄청 기대하며 읽었어요ㅋㅋ
저는 어제 친정 다녀오고 오늘 시부모님 산소 다녀왔어요
저희도 하루에 두 군데 뛸 수가 없어 늘 이틀 나눠서 움직입니다^^
암튼 수고 많으셨어요
제기가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hnine 2016-09-16 19:02   좋아요 0 | URL
ㅋㅋ 제 꾀에 제가 넘어갔죠. 차례 준비를 늦게 시작해도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같아요.
이틀 연속 산소 다녀오시려면 하루에 다 다녀오는 것 못지 않게 피곤하실 것 같네요. 저는 친정은 일주일 전에 미리 다녀와요.
아들은 아마 제가 설겆이 좀 하라고 시켰으면 안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런 날도 있더군요 ^^
이제 남은 휴일동안은 만들어놓은 음식만으로 상 차리며 편히 쉬세요.

moonnight 2016-09-16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지내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아드님 너무 기특하네요. 얼마나 예쁘셨을까요. 남편분도 훈훈한 마무리^^ 이렇게 조금씩만 마음을 써주면 주부님들이 덜 힘들텐데요.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hnine 2016-09-17 09:22   좋아요 0 | URL
며칠 전 저를 뒤집어지게 만들어 결혼하고 처음으로 한밤중 가출하게 만들었던, 그 아들 맞나 싶습니다 ㅋㅋ
이렇게 뒤집었다 젖혔다 하면서 사는게 일상인가 봅니다.
moonnight님도 추석 잘 지내셨나요?

상미 2016-09-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특하다~
맘도 착하고.
아들 보고 남편도 덩달아 착한 일 하셨네.ㅎㅎㅎ
난 어제 차례지내고 지금 친정에 있다~~
10일 입국해서
21일 논산에 훈련소 수료식 갔다가 23일 낮 비행기로 또 출국이야.

hnine 2016-09-17 09:24   좋아요 0 | URL
한국 왔구나!

컨디션 2016-09-17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전도 지금 비가 오겠죠?
여기 충주는 어제 밤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올 모양이예요.
hnine님 이 페이퍼는 앞으로 추석특집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온사방으로 퍼날라도 되겠어요^^

hnine 2016-09-17 13:25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 무슨 여름 장마처럼 비가 옵니다. 제가 일어난 시간 새벽에도 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와요.
계신 곳이 충주였군요! 짐작만 하고 궁금했어요.
너무 지리한 일상에 이 나마 반짝하는 하루였기에 세간살이 다 보이며 사진까지 올렸네요 ^^ 좋게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