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설, 제사 준비를 해온지 연차가 쌓여가다보니 꾀인지 요령인지 모를 것들이 조금씩 생겨난다. 

준비를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일만 더 오래,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추석 전날, 그것도 늦은 오후에야 장을 봐다가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그 결과, 준비를 다 못 마치고 밤 11시에 잠깐 누워 쉬었고, 새벽 1시30분에 다시 일어나 마저 다 하고 나니 새벽 5시, 그대로 아침을 맞았다.

나는 추석날 친정까지 두 군데 뛸 여력이 안되어 아예 시아버님 산소만 다녀오고 말지만, 우리집에 와서 차례 마치고 친정으로 또 가야하는 동서네를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는 것이 낫기에 차례 후 서둘러 아침상만 차려 식구들 먹게 하고는 설겆이 거리 그대로 두고 아버님 산소를 향해서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도 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들이 배탈이 난 것. 화장실 들어가서 영 나오질 않는다. 10분, 20분, 30분.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남편이 아들보고 너는 집에 그냥 있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하면 안되니까.

배탈에 좋은 매실도 집에 있고 생밤도 마침 깎아놓은게 있으니 꺼내 먹으라고 하고 우리끼리 출발했다.

 

산소 갈때보다 차례 지내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가 훨씬 막혔다.

운전하는 남편은 졸릴까봐 껌을 너무 자주 씹었더니 나중엔 턱이 다 아프다고 했을 정도.

 

집에 전화했더니 아이는 배 아픈게 괜찮아져서 점심으로 우동까지 끓여먹었다고 해서 안심했다.

 

5시 다 되어 집에 들어오면서, 들어가자 마자 늦은 점심을 차려야 할 생각, 그보다도 아침에 설겆이 못하고 그대로 두고 나왔으니 그것부터 해야하나,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보니, 제기들이 마치 차례를 올리기 전 처럼 이렇게 설겆이 마치고 정리가 되어 있다.

 

 

 

 

아들 말이

"심심해서 했어요."

 

배탈은 금방 가라앉았고, 점심 혼자 차려 먹은 후 설겆이 하는 김에 다 해버렸다고.

1시간 반 걸리더란다.

안 할때 하라고 하기보다, 했을 때 많이 칭찬해주라는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했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걸레를 빨아들고 주방과 마루 바닥을 닦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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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09-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이거 완전 대박~!
드라마틱한 반전의 추석이군요~! ^^

hnine 2016-09-16 12:2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반전 ^^
반전은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어제는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음식해놓은 것이 있으니 연휴동안은 식구들이 집에 있어도 반찬 걱정 따로 안해도 좋아 그것도 일 한가지 덜었다 싶습니다.

마노아 2016-09-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제가 다 훈훈하네요.^^

hnine 2016-09-16 12:29   좋아요 1 | URL
명절때 주부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이 일의 양도 양이지만 가족간 불균등한 노동 시간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가족들이 함께 하면 해결될 일 같아요.
아이에게, 남편에게 고마운 하루였어요.

책읽는나무 2016-09-16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들이어요^^

저는 글의 도입부분 읽으면서 최대한 늦게 장을 보고 음식을 하셨대서 이것도 묘책인가?싶어 엄청 기대하며 읽었어요ㅋㅋ
저는 어제 친정 다녀오고 오늘 시부모님 산소 다녀왔어요
저희도 하루에 두 군데 뛸 수가 없어 늘 이틀 나눠서 움직입니다^^
암튼 수고 많으셨어요
제기가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hnine 2016-09-16 19:02   좋아요 0 | URL
ㅋㅋ 제 꾀에 제가 넘어갔죠. 차례 준비를 늦게 시작해도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같아요.
이틀 연속 산소 다녀오시려면 하루에 다 다녀오는 것 못지 않게 피곤하실 것 같네요. 저는 친정은 일주일 전에 미리 다녀와요.
아들은 아마 제가 설겆이 좀 하라고 시켰으면 안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런 날도 있더군요 ^^
이제 남은 휴일동안은 만들어놓은 음식만으로 상 차리며 편히 쉬세요.

moonnight 2016-09-16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지내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아드님 너무 기특하네요. 얼마나 예쁘셨을까요. 남편분도 훈훈한 마무리^^ 이렇게 조금씩만 마음을 써주면 주부님들이 덜 힘들텐데요.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hnine 2016-09-17 09:22   좋아요 0 | URL
며칠 전 저를 뒤집어지게 만들어 결혼하고 처음으로 한밤중 가출하게 만들었던, 그 아들 맞나 싶습니다 ㅋㅋ
이렇게 뒤집었다 젖혔다 하면서 사는게 일상인가 봅니다.
moonnight님도 추석 잘 지내셨나요?

상미 2016-09-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특하다~
맘도 착하고.
아들 보고 남편도 덩달아 착한 일 하셨네.ㅎㅎㅎ
난 어제 차례지내고 지금 친정에 있다~~
10일 입국해서
21일 논산에 훈련소 수료식 갔다가 23일 낮 비행기로 또 출국이야.

hnine 2016-09-17 09:24   좋아요 0 | URL
한국 왔구나!

컨디션 2016-09-17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전도 지금 비가 오겠죠?
여기 충주는 어제 밤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올 모양이예요.
hnine님 이 페이퍼는 앞으로 추석특집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온사방으로 퍼날라도 되겠어요^^

hnine 2016-09-17 13:25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 무슨 여름 장마처럼 비가 옵니다. 제가 일어난 시간 새벽에도 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와요.
계신 곳이 충주였군요! 짐작만 하고 궁금했어요.
너무 지리한 일상에 이 나마 반짝하는 하루였기에 세간살이 다 보이며 사진까지 올렸네요 ^^ 좋게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지요.